나는 오늘 당신 또한 죽였습니다. 죽이고야 말았습니다. 그와, 당신. 이것으로 벌써 두 번째의 일입니다. 


당신이 죽은 이유가 궁금한가요? 정녕 그러한가요? 나를 사랑하는 당신이었던 만큼, 당신에게는 나에게 죽임당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죽은 이유는 그것입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했기에. 또는, 사랑하는 척을 했기에. 그것을 탐할 자격조차 되지 않는 이가 분에 넘치는 것을 탐내버렸기에. 그렇기에, 당신은 당신이 사랑해 마지않던 나에게 죽임 당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당신은 아마 나에게 찔려 죽었을 것입니다. 내가 당신의 죽음을 망상할 때면, 당신은 항상 무언가에 찔려서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쩌면 나는 당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나와의 술자리에서 우리가 나눈 오랜 대화 끝에 비워버린 초록색이나 갈색의 병들 중 하나를 깨어 그 파편으로 당신의 목을 찔렀을 것입니다. 

어쩌면 목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지요. 품에 숨겨온 과도로 배를, 술병 대신 깨어낸 유리창의 파편으로 옆구리를, 그도 아니면 직접 당신의 머리를 붙잡고 어딘가 깨어지면 날카롭게 변할 무언가에 부딪힐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왜 당신을 이토록 찔러 죽이고 싶은지는 스스로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한 때의 내가 당신이 두 번째의 이혼을 겪고 괴로워 함에 같이 괴로워하며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히고, 그 큰 파편 세 조각을 머릿가죽에 박아넣은 기억이 썩 유쾌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유쾌함을, 나는 당신에게 선물하고 싶은 것일까요. 아니면, 당신을 찌름으로써 그 유쾌함을 다시 느껴보고 싶은걸까요. 

모르겠습니다. 나는 어쩌면 그것에 대한 해답을 영영 알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다만 내게 필요한 것은 당신이 내게 찔려 죽었다는 그 사실 하나 뿐이었기에, 그것에 대한 해답이 그리 중요한가 싶기도 합니다.

그저 당신 또한 그와 같이 죽어야만 했기에 죽었을 뿐이었으니, 죽음은 굳이 이유를 따져볼 필요가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당신이 당신의 죽음을 궁금해 한다면, 끝내 그 이유를 모른 척 하겠다면, 정말로 내 앞에서 당신이 그런 병신을 자처하겠다면.

나는 그런 당신의 모습이, 이토록이나 한심하고 통탄스럽다고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나는 당신이 기억하지 못할 많은 순간을 기억합니다.

나는 당신이 항상 새벽 늦게 집에 돌아와 당신의 첫번째 아내와 싸우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고성이 오가던 집안의 풍경을 기억하고, 당신이 그녀와의 화해를 위해 준비한 콘돔이 티브이 책상 위의 라디오 옆에 놓여있던 것을 기억합니다.

당신과 그녀가 화해하고 싸우고, 다시 화해하고 또 다시 싸운 끝에 어느 날 이혼을 결정했음을 스스로 알아차린 과거의 어느 날을 기억합니다.

그리하여 내가 당신의 집이 아닌 조부모의 집에 맡겨지던 날 또한 기억합니다. 나와 동생을 껴안으며 통곡하던 조모의 모습을 기억하고, 뒤에서 무뚝뚝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조부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리하여 바뀐 나의 삶을 기억합니다. 당신이 무책임하게 우릴 그곳에 맡겨둔, 당신의 태초의 죄악을 기억합니다.

나의 삶은 그리하여 영영 바뀌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그곳에 두었기에, 8살의 나는 내가 당신 이전에 죽일 수 밖에 없었던 그를 만났습니다. 당신이 나를 그곳에 두었기에, 당신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새로운 사랑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여쁜 셋째와 넷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조부모에게 팽개쳐놓고 당신만의 새 삶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당신은 나의 아비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말로는 나와 동생에게 필요한 것을 사주겠다 하였으나, 정작 그 관심은 당신의 두번째 아내와 셋째와 넷째에게만 향해 있었기에.

그때부터 나는 당신을 미워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학년 때였는지 2학년 때 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나의 중학 생활의 어느 날, 갑작스레 집으로 날아온 빚 독촉 전화를 시작으로 나와 조모와 동생을 일이년간 괴롭히던 그 온갖 성난 목소리들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날 당신이 당신의 어미의 명의를 빌려 썼다는 것을 알아차렸기에. 그를 이용해 우리을담보로 대출을 받고, 그를 갚지 않아 법원에서 경매 안내 우편이 날아드는 것을 직접 보았기에.

당신이 그 5천만원을 갚지 못했기에, 제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어 도박에 쏟아부었기에. 그리하여 당신이 우리의 소중한 보금자리를 망가뜨리기 직전까지 가버렸기 때문에.

그리하여 나는 당신을 증오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아직도 돈에 이토록 민감한가 싶습니다. 친구들에게 때론 쪼잔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누군가는 따위라고 치부할 1000원을 빌려줄 때 마저도 어딘가의 메모지에 친구들의 이름과 날짜를 적어가며 차용증을 적어가는 내가 되었나 싶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당신을 그토록 끔찍히 여깁니다. 당신이 저지를 과오를 그토록 내가 보아왔는데. 눈이 어두운 조모를 대신하여 우편으로 날아온 당신의 그 모든 행적을 내가 읽어주었는데. 나는 그렇게 중학교 때부터 괴로워하며 몸부림쳤는데도 당신은 나와 동생이 당신의 과오를 모를 것이라 생각하기에.

당신이 그렇게 후레자식마냥 살아왔음에도 내 앞에선 감히 아비이고자 하기에. 그런 당신을 아픈 손가락이라며 끝내 내치지 못하는 조모의 모습을 보며 내가 자라왔기에.

당신이 성공하지 못한것은 그냥 당신의 천성이 게으르고 못되쳐먹어서 쌈박질이나 할 줄 알고 부모 속 썩이는 것이 당신이 가진 모든 재능일 뿐이었기 때문인데, 내 유약한 조모는 그런 당신을 아들이라 여기기에.

그렇기에 당신이 빚을 낸 5천만원과 천만원과, 삼천만원과, 차마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백만원들과, 1억을 내 조모가 갚았기에.

내 가엾은 조모가 자신의 적금을 깨고, 빚을 내어, 당신의 빚을 제 빚으로 삼아 당신을 구제했음에도, 당신은 그럼에도 끝없이 빚을 내어 그 빌어쳐먹을 인생을 구차하게 연명하기에.

그럼에도. 그럼에도 끝내 내 앞에서 아비이고자 하기에. 당신의 그 우둔한 머리로 나와 동생은 그 사실을 모를것이라 생각하기에.

그렇기에 나는 당신을 그토록이나, 그토록이나 끔찍히 여깁니다.

나는 당신을 끔찍히 여기는 나 자신조차 끔찍했습니다. 나는 왜 저런 아비에게 났나. 왜 나의 조모의 배에서 나온 것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었을까.

왜 당신은 효자이지 못하나. 왜 당신은 좋은 아비이지 못하나.

탓할 이를 찾을 수 없는 문제를 끝없이 탓하며, 나는 내 스스로를 끔찍히 여겼습니다. 당신의 아들인 내가 끔찍했고, 나의 아비인 당신이 끔찍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욱이 끔찍한 것은. 내가 그런 당신을 사랑하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난 당신의 그 모든 허물을 알고 있는데도. 당신이 내 앞에서 아비이고자 하여 보이는 그 모습이 가면임을 그 어린시절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그럼에도 나는 사랑이 고파서. 조모에게 받은 사랑으로 만족하면 될것을, 내가 이토록이나 욕심이 고파서. 그리하여 당신이 내보이는 그 아비이고자 하는 모습이, 거짓된 사랑이 그토록 고파서.

당신의 그런 삶을 긍정하고,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해서. 당신도 힘들었으리라 믿어서. 언젠가는 당신이 개과천선하리라 믿어서.

그래서. 나는 나 자신도 끔찍한 것입니다.

당신은 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술을 진탕 퍼마실 때면 동생은 안중에도 없이 첫째인 나에게만 전화를 하여 사랑한다고,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말하지만 몇 년이고 제 잘못을 반복하는 글러먹은 사람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화가 나는 것 중에 하나는 당신이 오직 나만을 신경쓴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첫째 아내에게서 얻어낸 자식은 나와 동생이 있을진데, 왜 당신은 나만 그토록 신경을 쓰는건지. 왜 동생의 안부는 나와의 전화에서만 묻는지.

왜 동생과 연락은 기념일에만 하는지. 왜 동생에겐 개인적인 연락을 안하는건지. 나는 그게 그토록 짜증이 났습니다. 나는, 당신의 아들이기 이전에 나의 동생의 형제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또 화가 나는 것 중에 하나는 당신이 이혼을 두번이나 겪고도 새로운 여자친구를 사귀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당신의 삶이라 긍정하고자 했으나, 끝내 긍정하지 못하고 분노하는 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옆구리가 시려 살 수 없는 병신같은 삶이 세상 어딘가엔 존재하리라 생각하고자 해도, 두번째의 쓰라린 이혼을 겪고도 여자를 곁에 두는 당신이 그토록 병신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헌신적인 조모의 지원으로 뒤늦게 갖게 된 당신 명의의 집을 셋째와 넷째를 위한다며 두번째 아내에게 위자료로 준 것이 병신같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집을 잃고 월셋방을 전전하면서도 새로운 여자친구를 사귀고, 결혼은 하지 않을거라 자위하며, 이번엔 서로 만족하는 연인 사이로만 만족하고 지내겠다며 돈을 갖다 바치는 당신의 모습을 보면 손발이 이리저리 뒤틀려버릴 것 같기 때문입니다.

나는 많이 참았습니다. 나는 정말 많이 인내했습니다. 그토록 병신머저리같은 당신을 이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있어선 나도 또 하나의 대출자라는 사실을 알아버렸습니다.

끝내 당신이 내게 돈을 빌려갔기에. 군대에 간 아들의 손을 벌려 그 돈을 받아갔기에.

당신을 위해 대출을 받으면 신용이 떨어질수도 있다 애원했음에도, 그럼에도 당신이 내게 돈을 달라했기에.

두달에 걸쳐 갚겠다는 약속이 벌써 이만큼이나 밀려버렸기에. 넌지시 돈을 갚아달라 이야기할 때면 당신이 그 이야기를 꺼려하는 기색을 보이기에.

끝내 마감기한이 다가와 남은 것이라곤 연장밖에 없어졌을 때에, 당신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니 일말의 고민도 없이 대출을 연장하라 말하는 당신의 이야기를 내가 들었기에.

이전과 같이 신용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해보아도 그것이 당신이 상관할 바는 아니었기에.

그렇게, 내가 당신에게 있어선 이제 아들이라기보단 또 한명의 대출자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에.

그렇기에, 당신은 죽어야만 했습니다.

내 앞에서 더 이상 아비이기를 포기한 당신은 죽어야만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당신도 끔찍했으나, 스스로가 누군가의 아비이기를 그토록이나 저버렸음에도 끝내 아비이고자 하는 당신의 모습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만큼 역겨워졌기에.

끔찍한 내가 그런 당신의 사랑을 갈구하게 될 까봐. 그런 당신의 가면을 보고 또 당신을 어떻게든 이해하려 할까봐.

그런 무용한 노력을 할까봐. 당신에게 또 다시 의미없을 기회를 주게 될까봐.

그렇기에. 나는 당신을 끝장내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내게 있어 세계는 당신이었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위해선 당신을 파괴해야만 했습니다.

나는 태어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더 늦어버리기 전에.

그를 부수기 이전에, 나는 당신부터 죽여야 했던 것이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삶을 살기 위해선, 그에서 벗어나기 이전에 당신을 벗어나야만 했던 것입니다.

나는 그를 이제서야 실행합니다. 한참이나 늦어버렸지만, 그렇기에 나는 지금 당신을 죽입니다.

나는 당신을 죽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