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


"사정이,,, 있었읍니다."


"무슨 사정!"



강변.


노인은 땀을 흘렸다.


나리가 노발대발했다.



"몇 해 전까진 한아름 있던 배가,,, 빙소와해하고 말았습니다."


"빙소와해가 뭐요?"


"사라져 없어졌단 뜻이니라."


"원인은 물론,, 물괴들입니다.

보셨다시피,,,,, 강에 천변과 지괴가 들끓으니,,,

일반적인 선박으로,,, 강을 건너는 건 포호빙하의 시도나,,,,, 진배 없습니다.

하여 이 친구에게 맡긴 겝니다...."


"포호빙하가 무시당가? 쉽게쉽게 설명하소."


"무모하단 뜻이니라.

강이 위험해서 그랬단 게지? 한데...."



나리가 팔을 들어올렸다.


그대로 요괴가 득시글거리던 강가를 가리켰다.



"강의 위험을 사전에 고지하지 않으면 어쩌잔 게냐!

네놈이 관리를 능멸하느냐?"



아닌 게 아니라 우릴 태우던 거북 요괴는 피떡이 되어 드러누운 상태였다.


강가의 자잘한 돌멩이 위로 거북 요괴의 핏물이 줄줄 흘렀다.


몰려드는 메기 떼를 돌파하다가 입은 상처였다.


메기 떼가 너무 많았다.



"보거라!

네 놈이 데려온 남생이 요괴조차 한그릇 용봉탕이 되기 직전인데

만일에라도 우리 중 하나가 다쳤으면 어찌 배상할 속셈이었더냐!"


"죄송합니다,,,, 제가,,, 유구무언입니다."


"죄송으로 끝날 거면 관졸이 다 무슨 소용이냐, 이 노옴!!"



평소 화를 자주 내는 나리지만 저렇게까지 역정을 내는 꼴은 처음이었다.


어린 아이가 떽떽거리는 모습은 보기에 안 좋아, 나리를 말렸다.



"그만하시오. 다들 무사하잖소."


"놔라, 애초에 상황이 아무리 급하다지만 그런 요괴의 뭘 믿고 사람을 태운단 말이더냐?

혹여 강의 중도에 이르러 우릴 수장이라도 시키려들었으면 어찌 막으려고!!"


"그럴 일은,,,,,,,, 천부당만부당이옵니다."


"내 앞에 있는 너는 예언자더냐?

미래의 일을 단언하게?"


"이 친구와는,,, 오랜 세월,, 함께했으니까요."



통 통.


노인이 바닥을 두번 쳤다.


노인의 얼굴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비유적 의미가 아니라, 진짜로.


진짜 돌이다. 색도 회색으로 바뀌었다.


손톱으로 두들기면 둔탁한 소리도 날 것 같았다.



[이 암석 같은 모습이 제 본래 모습입니다.]



노인이 말했다.


입술조차 돌덩이의 흠집 한 줄로 변화하여 흐릿해졌지만 말한 건 말한 거다.



"뭐, 뭐더냐? 그것이."


[따개비입니다. 전 따개비의 정괴지요.]


"네놈도 요괴 일당이었단 뜻이더냐...!"


[정괴입니다. 요괴와는 다릅니다.]


"정괴가 무시여."


"요괴 비슷한 건데 착한 거요."


[일당... 이라니. 그 놈들과 동일취급하지 마라.]



거북 요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직 상태가 안 좋아보이는데.



[그 치들은 반역을 꾀한 불한당이거늘.

인간은 왕과 반역자를 묶어 비교하는 버릇이 있느냐?]


"오냐, 왕이 누구더냐?

그 놈하고 이 어처구니 없는 사태를 결단지어야겠느니라."


[낙호 강 일대의 군주라면 이 몸이시다.]


나리가 거북의 피로 얼룩진 낯을 손가락질했다.


"어쭈?

왕치곤 제법 지저분한 용안이시구나.

사람이 죽을 뻔 했는데 사과도 없는 걸 보니 상도덕도 모르고.

궁정 예절 꼬락서니 알만하구나."


[뭐야?]


"언제까지 싸우실 거에요."



으르렁거리는 둘을 무당 여인이 제지하였다.



"분위기가 혼란하고 무질서합니다.

정괴님께선 그간 있던 일을 밝혀주십시오."



무당 여인의 정중한 추궁에, 정괴가 잠시 침묵했다.



[이 몸은 낙호 강을 다스리는 정괴의 왕이었느니라.



침묵은 얼마 가지 않았다.


거북은 그리운 회상을 하듯 하늘을 우러렀다.


[이 몸이 지배하던 시절에 낙호 강은 안전하고 아름다운 곳이었지.

강의 모든 생명체는 이 몸을 공경하고, 군주인 나는 그들을 보살폈다.]


"읍읍. 읍읍읍! 읍브브읍?"



독특한 지적 방식에 놀라니, 무당 여인이 나리의 입을 손으로 막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무당 여인은, 달아나지 못하게 나리를 끌어안고 있었다.


무당 여인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었다.



[실로 이상적인 강이었지.
어느 날부터 군신간의 예의도 모르는, 저런 폭력배 물괴들이 날뛰기 전까진.]


"폭력배 물괴라면 그 뿔 달린 물고기 말이오?"


[모든 것의 시작은 마을의 젖소 녀석이었느니라.

백성들이 날 못 알아보고 공격하질 않나, 백성들의 머리에 뿔이 돋질 않나, 백성들 일부가 요괴가 되질 않나.

강 일부가 하얗게 새버린 것도 그 탓이고.]


"마을의 젖소란 게 누구인지요."


[젖소는-.]


[젖소는 젖소지요.]



따개비 노인이 말을 가로챘다.


거북 요괴, 아니 거북 정괴가 노인을 힐긋 쳐다보았다.



[마을에 어느 날 젖소 요괴가 나타났거든요.

강한 요괴는 아닌데, 요력으로 주변에 기이한 영향을 끼치는 게 특징입니다.]



어라?


뭐지 이 위화감.


기분 탓인가?



[결국 놈의 요력에 오염된 강의 백성들 탓에 남생이 이 친구가 왕노릇을 못하게 되었단 이야기입니다.

그뿐이죠.]



따개비 노인이 이야기를 갈무리 지으려했다.


수상쩍은 점을 따져물으려 했으나 총잡이 여인이 선수를 쳤다.



"대강 알갔소.

그라믄 당신네덜은 '강의 백성' 을 흉포케 허는 고 놈을 잡고 싶은 게로구만?

우덜 도움이 있으면 좋을성 싶어가 태워다 준 게구."


[예예. 그렇습니다.]


"참고로다가 묻는디, 고 도움이란 건 무신 도움이 필요헌가?"


[간단합니다. 이 친구나 저나, 물가가 아니면 힘을 못 쓰니까요.

마을에 있는 놈을 예까지 끌고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갔소.

그란해도 우리 꼬맹이 왈로, 낙호 모시리에 있는 나쁜 거시기란 놈을 족치는 게 목표였다 했응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라며 일은 척척 진행되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 우린 말을 타고 마을 어귀로 들어서고 있었다.


께름칙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도사님 왜 그러세요?"



무당 여인이 조심스레 묻길래, "아무것도 아니요" 라고 둘러댔다.



"암캐도 아니라고요?"


"으휴."


"그보다 도사님 저 고민이 있는데요."


"읊어보시오."


"이 아이, 말인데요."



무당 여인이 배를 만졌다.



"태어나게 되면 저기, 그...."


"약 올리지 말고 빨리 말하시오."


"약으로 감도를 올린다고요? 어떻게 그런 음탕한 말씀을 하세요!"



대단한 일은 아니겠거니 싶어져 넘겼다.


나리는 뚱하게 있었다.


총잡이 여인이랑 둘이 탄 게 그리도 원통했나?



"왔구려."



장승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은 금방이었다.



*



마을은 휑했다.



"별일이네요. 날씨가 아무리 춥다지만."



별일 정도로 치부하고 마는 무당 여인의 대담함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길에, 시장에, 밭에.


그 어디에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관아를 가보자꾸나."



나리의 의견을 따랐다.


가보니 덩치 큰 사내 몇몇이 앉아있었다.


사내들은 빙 둘러 앉아있었기에 우리 눈엔 그들의 등만 비쳐졌다.



"저래 깨벗고 춥지도 않나벼?"



총잡이 여인의 지적대로, 사내들은 아랫도리만 입고 상반신은 나신이었다.


그런 주제에 기이하게도 갓은 쓰고 있었다.


"실례하겠소." 라고 해도 사람을 등지고 앉은 무례한 태도를 수정하지 않았다.



"이보시오. 실례 좀 하겠대도."


"목소리가 작았나보구나."


"이보시오! 실례 좀 하겠소!"


"더 크게 말해야 하려나봐요."


"이보! 시오!! 실례 좀!! 하겠! 소!!"


"더 크게~!"



따콩.


놀리는데 맛 들린 꼬맹이와 무당 여인에게 한대씩 쥐어박았다.


꼬마 나리가 '히잉' 이라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부스럭' 소리가 났다.


사내들이 천천히 얼굴을 돌렸다.


험상궃은 외모로구나.



"와아앗!"



총잡이 여인이 별안간 뒷걸음질쳤다.


낯빛이 창백해져서는.



"아무리 우락부락하게 생겼다지만 그렇게까지 놀랄 것 있느냐."


"나리, 그 말이 더 심한 것 아시오?"


"우락부락한 성기다지만이라고요?
나리, 공공장소에요. 그런 외설적인 언행은 삼가셔야죠."


"괴... 괴물이여."


"대물이요?"

"괴물이라고!"

"괴물이요?"



무당 여인이 지그시 눈꺼풀을 내렸다.



"어허, 인간한테 괴물이라니. 도가 지나치구나."


"그런 거이 아니여. 참말로 괴물이여."



총잡이 여인이 땀난 손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서있는 각도가 바뀌자 숨겨져있던 게 보였다.


미묘하게 사내의 몸으로 가려진 각도.


총잡이 여인의 각도에서만 보이는 정경.


시야 끝에는,
빙 둘러앉은 사내의 원圓의 끝에는 아녀자가 있었다.


아녀자는 쓰러져있었고 사내들은 아녀자의 신체에 손을 박아넣고 있었다.


손이 박힌 부위에서 아녀자의 피는 흐르지 않았는데

전에 봤던 요술처럼, 사내들의 손은 아녀자의 몸 속으로 사라진 것같이 보였다.


쓰러진 아녀자는 눈을 게슴추레 뜨고 간혹 하반신을 꿈틀거렸는데
시체가 아니란 점을 어필하기엔 무리였다.


외려 사후경직이 연상되었기 때문이었다.


우릴 마주본 사내가, 모자를 벗고 다가왔다.


사내의 갓 아래에는 흰 뿔이 두개 나있었다.



"요괴 맞소! 기립하시오."

"요괴에요! 떠요!"


나와 무당 여인의 판별은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



"무어라? 요괴?"


"괴물, 괴물한테 잡히면... 잡히면 저리 되는 거여?"



총잡이 여인만 놀란 정도가 남달랐다.


왜 반쯤 넋이 나간 거야.


얼른 말에 올렸다.



[음머어어어!]



포효를 하자 사내의 모습이 노랗게 변했다.


털도 굵어졌고 낯짝도 길어졌다.


황소다!


이족보행은 계속하며, 손가락이 5개인 점도 그대로였다.


소 인간.


전생에 읽었던 그리스 신화에 비슷한 괴물이 나왔다.


'미노타우르스' 라고.



[음머어어어!]


"이럇!"

"진짜 요괴로구나. 소 요괴!"


"말이 안 되오!

관아에 몇명씩 둘러앉아있었잖소.

어떻게 저런 요괴가 있는 걸 못 알아챈 게지?"


"다들 저런 소 괴인이란 거겠죠!"


"관아에 있던 사람들은?"


"저 놈이 해치운 것이겠죠!"


[음머어어어!]



미친 소, 다른 사람들은 본 적 있는지 모르겠다.


난 못 봤다.


전생, 현생 통틀어 한번도 못 봤다.


그리고 지금 보고 있었다.


달리는 말을 쫓는 미친 소.


소 머리 요괴는 재빨랐다.



"안 쓰려고 했는데...!"



부엉이 사냥에 유용하게 썼던 밧줄을 꺼냈다.


묶어서 던지고, 손가락을 꼬면....



"변해라!"



밧줄이 사람으로 변했다.


나의 모습이었다.


어수룩한 닮음이었다.


급조한 분신은 반대쪽으로 보냈다.



[음머어어어!]



소 괴인도 반대쪽으로 따라갔다.


땀을 닦았다.



"허어, 제길."


"천만다행이여.

잡혔으믄, 잡혔으믄 그 여인처럼 쭉정이가... 으으으."



총잡이 여인이 희게 샌 얼굴로 신음했다.


쭉정이가 무슨 뜻이람.



"마을에 사람이 없던 건 저 놈들 탓인가보구나.
전부 몰살당한 모양이야."



나리가 입술을 깨물었다.



"너무 늦어버렸구나.

주상 전하께 뭐라 보고해야 할지...."


"밖에서 오셨습니까?"



웬 아이가 말을 걸었다.

땅에서 솟았나? 하늘에서 떨어졌나?


어디서 나타난 건지 어린 아이가 있었다.



"다시 묻겠습니다. 밖에서 오셨습니까?"


"봉남 마을에서 오는 길이니라."


"하아... 왜 이런 마을에 오셨어요."



아이가 한숨을 쉬었다.


어린 나이치고 깊은 한숨이었다.



"말에서 내리세요. 저 따라오시고요."



아이가 조금 걷더니 길바닥에 있는 나무판자를 들어올렸다.


판자를 치우니 지하로 파놓은 길이 있었다.



"들어오세요. 안은 복잡하니 잘 따라오셔야 해요."


"무엇에 쓰는 땅굴인고?"


"집이에요.
요괴들 등쌀에 땅 위에선 못 살겠어서 만들었어요."



요컨대 카타콤 비스무리한 거랬다.


말은 끌고 갈 수 없는지라 지상에 놔뒀다.



"변해라."



그려두었던 종이를 도술로 살렸다.


쥐가 세 마리, 호랑이가 두 마리, 매가 세 마리, 이리가 네 마리.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말 지키고 있어.

쥐는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보고하러 오고."



짧게 명령을 내려놓고 진입했다.


아이는 구불구불한 지하도를 앞장서다 질문을 던졌다.

뜬끔없는 질문이었다.


"참. 애 받을 줄 아시나요?"



*


이번화 원본은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