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해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다 보니, 받은 상처를

조금이라도 면하기 위해 다짐하는 한 가지 신념이 생겼다.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이 원하는 건 내가

분노와 후회로 망가지는 내 모습이라는 거. 



진짜 복수는 누군갈 망가뜨리는 게 아닌, 내가 잘되는 것이다.

그걸 보여주기 위해 나는 피와 땀을 흘리며 훈련을 하고 있다는 거.



내게 상처 준 사람이 원하는 무너진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지.

매일 이를 꽉 물며, 곡 씹던 말이다.



예전보다 성장해서 못 이기게끔 만들어 내야지.

불과 몇 년전만 해도 나는 매일 눕고 먹고 퍼질러 자는 게 일상이었다.



그 사건만 아니었어도.



이제는 그렇지 않다.

더이상 누워있을 수 만은 없다.



그렇기에 더 악착같이 죽을 듯이 훈련하는 거다.



내 검이 허공을 베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의 목을 베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온전히 그 사람의 목을 베는 것에만 집중한다.



계속 검을 휘두르다 보니.



벌써 해가 저물고 달이 떠오른 걸 보면 오늘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훈련을 했나 보다.



솔직히 말해서 이게 잘하고 있는 건지.

잘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어찌 됐건 나는 그 때보다 훨씬 강해졌다는 것.

아직 복수를 할 만큼은 아니지만..



이젠 궁전같이 화려하고 평화로운 공간이 아닌 나무들과 온갖 

적들이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숲속에 숨어 살고 있다. 



이제 근처에 있는 호숫가에 들어가 대충 씻고 잠에 청하려 

작은 오두막집에 들어가 지푸라기에 몸을 던졌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부스럭 부스럭




야생 동물의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지능이 낮은 동물일지라도 무시할 수 없다.



경계심을 풀 수 없다.

맘을 편히 납둘 수 없다.

어렴풋이 들린 작은 소리도 집중을 해야 한다.



이게 내가 여기서 살아온 방법이니까.

작은 동물이라고 무시해서는 안된다.



여기는 위험하니까.

착한 동물이란 없으니까.

약한 동물이란 없으니까.



그러니 신중해야 한다.

집중해야 한다.



뭔가 이상했다.



야생 동물이라기엔 발소리가 굉장히 얕게 났다.

내가 알던 발소리가 아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발소리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니까, 대부분 동물의 발소리는 컸다.



작은 동물이라고 해도 이렇게 까진 작게 들리진 않는다.



발소리가 작위적이다.

분명 사람이다.



내가 모든 인연을 끊은 사람인 걸까?

아니면 내가 처음 보는 동물인 걸까?



얼마 안 가 이 궁금증은 풀리게 되었다.

누군가 나무로 된 문을 세게 걷어찼다.






-쾅!






"아~ 이런 곳에 숨어있었어?"



어두운 밤하늘과 밝은 달이, 청명한 빛을 띈 채 날카로운 

칼날이 보이는 검을 밝혀주었다.



내 가문을 없애버린 그녀다.

내 가족을 없애버린 그녀다.



"-어? 잘도 숨어있었네? 잘 지냈어?"




잘 지냈냐고?



아니?



























곡 씹고 있던 신념이 쉽게 깨져 간다.

매듭처럼 잘 묶어 놓은 줄이 쉽게 풀렸다.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점점 머릿속엔 분노가 차오른다.



막상 만나니 꾹 억눌러왔던 감정들이 튀어나왔다.

이제 와서 태연한 척 내게 말걸지마.



나도 알고 있다.



저리 태연한 말과 날 보며 싱긋 웃고 있는 그녀를

이길 수 없다는 것쯤은 진작에 알고 있다.



하지만 내 가족의 내 가문에 복수를 위해서라도 포기할 수 없다.

나 또한 칼을 집어 들었다.



"어떻게 알았어....어떻게 알았냐고!"


"매일 수련 하는 모습 보기 좋더라.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뭐? ..왜 이러는 건데. 나한테 왜.."


"네가 파티에 안 왔잖아. 내가 직접 초대장까지 보냈는데도 너는 안 왔잖아."


"..."


"나랑 같이 살자. 밥이면 밥 옷이면 옷 원하는 거 누릴 수 있게 해줄게."


"아무것도 없는 내가 이러면 좋다고 달려들 줄 알았나 봐?"



몸을 일으켜 그녀에게 칼을 내밀었다.

그녀는 귀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아, 이 칼로 날 이길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아, 그래 내가 그녀를 절대 이길 일은 없다.

승산이 안 보인다.



그럼에도 묵묵히 칼을 꽉 잡고 우두커니 서있다.



그녀가 내게 약한 살기를 비춘다.



그와 동시에 내 몸은 경직되었고 그 공기에 억눌렸다.



이런 걸로 끝낼 줄 알았으면 시작도 안 했어.

난 진심이니까.



내가 여태까지 수련했던 것처럼 다짐한 마음을 잡고

그녀에게 칼을 휘두른다.




-휙




그녀의 목을 보고 휘두른 칼이 허공을 베었다.




빗맞았다.



진심으로 휘두른 칼이 빗맞았다.



이미 승산이 안 보임에도 나는 진심을 다한다.

그녀가 이제 칼을 휘두른다.




-캉!




이 소리와 함께 내 칼은 지푸라기로 날아갔다.




절망.




애초에 희망 따위 보이지 않은 싸움이었다.

일방적으로 밀리는. 이미 승부가 정해진 싸움이었다.



"이제라도 나랑 같이 사는 게 어때?"



아까부터 이 말이 진심인지 떠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동의하던 거절하던 지옥인건 변하지 않을 거 같다.



지금도 거지같은 삶인데.




너 때문에.




그래, 포기하자.




그만두자.




나도 가족의 곁으로 가자.





"..죽여."


"그냥 나랑 같이 살자고. 너 그런 실력으로 여기에서 얼마 못 살아. 내가 도와준다니까?"



왜 자꾸 나를 위한 척 위세 떠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평범했던 내 삶에 기름을 뿌린 거라고.

그 때문에 나는 더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는 거라고.




너 때문에.




"너가 원하는 거 아니야? 그냥 죽여."


"그냥 나한테 의지해주면 안될까? 왜 계속 힘들면서-"


"시발련아. 정말 몰라서 물어? 너 그거 심각한 거야."


그녀는 점점 내게 다가왔다.

나는 뒷걸음질 치고 있었고.



치다 보니 칼이 날아간 지푸라기 쪽으로 왔다.



나는 칼을 잡고 내 목에 겨 놨다.

날카로운 칼날이 내 목을 향한 채로.



그러자 그녀는 놀란 듯, 아까와 다른 살기를 내 뿜었다.



아까와는 다르게 숨이 턱 막혔고 그대로 몸이 멈췄다.

칼은 그녀에 손으로 들어갔고.



"그...그렇게 내가.. 내가 싫어?"


그녀가 울먹인다. 


"왜.. 죽으려는 건데. 그냥 나랑 같이 살자고.."




죽지마. 



아깝잖아. 



너무 아까워.



내가 이제부터 행복하게 해줄게.



그러게 파티 초대 할 때마다 오지 그랬어.



왜 한번만 오고 안 오는 건데.



그 미소 나한테 안 보여주는 건데.



나 왜 피하는 건데.



이건 너가 잘못한 거다?



이제 나랑 같이 사는 거다? 



우린 이미 성혼이 된 사이니까.

























이 장르에 얀데레 쓰는 사람들 존경합니다 진짜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음..

(사실 복수물 쓰려고 했던 게 아닌데.)


피드백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