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꾸 검을 연습해? 어차피 가문에서 인정도 받지 못하는데.”

 

연무장도 아닌 바닥이 불안정하고 온갖 풀들이 자라 제대로 자세를 잡기도 불편한 숲에서 거친 숨과 함께 목도도 아닌, 막대기를 휘두르는 소년의 모습에 소녀가 물었다.

 

“가문에서 인정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야. 그런 놈들의 인정 따윈 필요 없어.”

 

여태까지 휘두르던 막대기를 멈춘 소년은 진중한 표정을 하며 과거를 떠올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도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형이란 인간은 자신의 자식이 가문을 이으길 바랐기에 남겨진 아들, 검에 재능이 있는 소년을 핍박했다.

 

“그 추악한 욕심을 가진 놈들에게 똑같이. 아니, 몇 배로 갚아줄 거야.”

 

이름있는 귀족의 자손임에도 글자도 제대로 안 가르쳐줬다. 옷, 먹을 거, 잠자리는 잡일꾼보다 못했다. 이들을 따위로 취급할 정도로 소년이 바라는 검을 배우는 것을 막기 위해 아버지가 남긴 검술 문서를 찢어버렸다.

 

“네놈들이 어떤 짓을 해도 안 된다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네놈들의 검은 반이 넘게 손실된 아버지의 검보다 못하다고. 그를 증명하기 위해서 나는 검을 휘두르는 거야.”

 

이를 빠드득 갈며 살벌한 표정을 짓는 소년.

약간 떨어진 소녀가 있는 장소에서도 분노가 느껴질 정도로 가문에 대한 소년의 원한은 보통이 아니었다.

 

“……내가 밉지는 않아?”

 

그 모습을 바라보던 소녀는 조심스레 말을 꺼내었다.

소년이 죽일듯한 원한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의 형, 그것이 바로 소녀, 엘네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또, 그 소리냐. 몇 번을 이야기하냐. 나는 너희 아버지처럼 쓰레기가 아니야. 고작 개인적인 원한이나 욕망 때문에 관계도 없는 사람한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아까 전의 악귀처럼 일그러진 표정이 거짓말처럼 평온함이 소년의 얼굴에 깃든다.

엘네가 소년을 신경 쓰게 된 계기, 역대 가문 중 제일가는 검의 재능을 가져 타인에게 받는 기대나 질투에 지친 엘네를 아무런 편견 없이 바라봐주는 모습이었다.

 

“바보야.”

 

“……? 내가 왜 바보야. 이 바보야.”

 

가슴이 빠르게 뛰고, 얼굴이 화끈해지는 것을 피하고 싶었던 엘네가 억지로 말을 짜내고, 소년은 갑작스러운 바보 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됐고 바보야. 이름이나 알려줘.”

 

“아니, 왜 자꾸 바보래... 그보다 너 내 이름 알잖아.”

 

소년은 밤에는 막대기를 쥐고 검을 수련하는 꿈나무지만, 낮에는 온갖 잡일을 다 떠맡으면서 욕까지 먹는 일꾼이다.

소년의 이름이 가문의 저택에서 울리지 않는 날이 없는데, 엘네가 그를 모른다는 건 말도 안 되었다.

그를 소년이 지적하자, 엘네는 귓불까지 새빨갛게 물들이며 크게 소리쳤다.

 

“그냥 알려줘! 이름 알려준다고 뭐 닳는 것도 아니고...”

 

“아, 알았다. 알았어. 지크. 지크. 지크. 잘 알아들었지? 넌 바보니까 세 번 이야기 했다.”

 

“누구보고 바보래. 바보가.”

 

“바보를 바보라고 하지. 뭐라 해?”

 

“……그래. 나 바보다.”

 

“웬일로 네가 이렇게 간단하게 인정하…… 엑?”

 

소년, 지크의 입에서 나오는 이름을 듣고 싶다는 희망 사항을 이룬 엘네가 조심스레 꺼낸 물건에 지크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지크가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도 도망을 가지 않고 이 가문에서 계속 잡일꾼을 하는 이유.

유명한 검사셨던 아버지가 사용하던 검이 엘네의 아기자기한 손에 들려있었다.

 

“난 바보니까, 이런 물건 왜 가져왔는지도 모르겠네. 도로 갖다 놔야겠다~”

 

“아니, 뭔... 야! 그거 얼른 내놔!”

 

“가까이 오면 크게 소리 지를 거야. 그러면 하인들이랑 가문 사람들 다 몰려오는 거 알지?”

 

터억! 땅바닥에 궤적이 남길 정도로 재빠르게 지크는 엘네가 가르키는 곳에 멈춰섰다.

아버지의 검이 눈앞에 있지만 그를 바로 못 가져가는 것에 안달이 난 지크의 표정을 바라보며, 엘네는 검을 높게 들어 올렸다.

 

“자. 나, 지크는 바보다. 따라 해봐.”

 

“……나, 나, 지크는 바보다.”

 

“흐응, 하기 싫구나? 어쩔 수 없지. 이 검은 원래 있던 곳에 갖다 놔야겠다.”

 

“나, 나 지크는 바보다! 왕바보다!”

 

결국, 억지로 목소리를 짜내며 나는 바보다를 제창하는 지크.

그 모습에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느끼며, 엘네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따라해. 나, 지크는 엘네한테 검으로 한 번도 이긴 적 없다.”

 

“……야! 한 번은 내가 이겼잖아!”

 

“어어? 큰소리친 거야? 에디! 여기 지크가 나를……”

 

“알았어! 할 게 한다고!”

 

시종인 에디의 이름까지 부르는 시늉에 결국, 바보라고 인정하는 것보다 더, 하기 싫은 말을 입에 담는 지크.

 

“나, 지크는 엘네한테 검으로 한, 한번도... 이긴 적...” 

 

“어휴, 정말 지기 싫어하는구나.”

 

고작 말 한마디 시킨 것에 다 죽어가는 지크의 모습에 엘네는 높게 들어 올린 검을 내리며 다가갔다.

 

“자, 지크는 바보니까, 내가 인심 써 줄……”

 

터억!

 

검이 눈높이, 손이 닿는 거리까지 내려오자 곧바로 그를 가로채는 지크.

이놈이? 순간, 자기보다 검을 더 신경 썼다는 것에 기분이 상해 따지려던 엘네였지만, 이내 보이는 지크의 모습에 그만뒀다.

 

“흑, 흐윽... 아빠아 엄마아악...”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먹으면서도, 과녁이 되어서 돌을 맞아도, 짖궂은 장난으로 계단에서 굴러떨어져도 약한 모습 하나 보이지 않던 지크가 정말로 서글프게 울고 있다.

너무나도 이질적인 모습, 지크를 신경 쓰게 된 이후로 매일 놀리던 말조차도 꺼낼 수가 없었다.

 

“……”

 

엘네는 그저 지크가 눈물로 땅을 적시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그래서 다 울었어 지크?”

 

“으, 으응.”

 

눈두덩이를 계속 문지르며 훌쩍거리는 지크의 모습은 말과 달리 아직도 눈물이 남았음을 알려주었다.

좋아. 이젠 놀려야지. 지크는 왕바보로도 모자라 울보래요. 엘네가 목구멍 한가득 놀림을 장전하는 순간, 갑자기 지크가 엘네의 손을 붙잡았다.

 

“아갹! 뭐, 뭐야?!”

 

“고, 고마워. 엘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이, 이거 놔! 네가 울어서 더러워진다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 지크를 밀치지는 않는 엘네.

그렇게 다시금 시간이 지나고, 진짜로 지크가 진정하자 엘네가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 가문에서 도망갈 거지.”

 

“응, 그래야지.”

 

이런 사람 취급도 안 하는 곳에서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다.

등에서 느껴지는 무거움에 웃으면서 지크는 대답했다.

 

“너희 아빠가 남겼다는 검술 책은 안 가져가게?”

 

“지금 여기 있어. 갈기갈기 찢은 걸 내가 이어붙였다는 걸 알면 또 찢어버릴까봐 맨날 가지고 다니거든.”

 

지크는 품속에서 걸레. 아니, 그런 착각이 들 정도로 넝마인 종이 뭉치를 꺼내 들었다.

쓰레기. 엘네의 눈에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지크는 그를 소중하다는 듯이 바라보고선, 다시 품 안에 넣었다.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던 엘네는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나 말이야, 외국으로 간다.”

 

“응?”

 

“아빠가 나는 외국에서 검술을 배우래. 그쪽이 훨씬 더 나한테 맞을 거라면서.”

 

그렇게 중요한 말을 이어가던 도중 엘네는 앉아있는 나무뿌리에서 일어났다.

검을 등에 멘 채 멍하니 이야기를 듣던 지크를 바라보면서.

 

“다시 만나게 되면 난 엄청 강해져서 지크는 날 못 이길걸? 아니, 애초에 지크는 날 이긴 적이 없지?”

 

“……한 번 이겼다고.”

 

검을 가져다준 고마움 때문인지, 아까 전처럼 왁 소리를 지르지는 못하는 지크.

이제야 원래 하던 것처럼 지크를 놀릴 수 있게 된 엘네는 웃음을 머금으며 비아냥대었다.

 

“그게 이긴 거야? 내가 실수해서 겨우겨우 한 번 맞춘 걸 이겼다는 건 너무하지.”

 

“아니, 그래도 이긴 건 이긴 거잖아.”

 

“그래. 그래. 지크는 그렇게 나한테 1번 이긴 걸 평생 자랑으로 삼고 다녀.”

 

“웃기시네! 앞으로는 엘네 네가 계속 질 거거든?”

 

눈물과 엘네에 대한 고마움을 떨쳐냈는지, 목소리가 다시 올라간 지크는 검집에 들어간 검을 엘네에게 겨누며 말했다.

 

“이 거지 같은 가문에서 나간 나는 앞으로 계속 검을 휘두를 거야. 여태껏 그냥 무겁기만 한 나무 막대기가 아닌 진짜 검을. 엄청 강해질 거라고! 앞으로는 내가 엘네 널 계속 이길 게 분명해.”

 

“지크는 졌대요. 엘네한테 몇십 번이나~”

 

지크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안 쓰고 졌다는 소리만 계속 반복하는 엘네.

결국, 그 모습에 열이 머리끝까지 오른 지크는 발을 구르면서 성을 내기 시작한다.

 

“두고 봐! 검 한 번 맞대지도 못하고 곧바로 져서 외국에서 잘못 배웠다고 변명을 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응, 그래. 그래.”

 

그 말이 듣고 싶었어.

뒷말만큼은 속으로 삼키며, 엘네는 방방 뛰어대며 큰소리를 치는 지크를 바라보았다.

 

 

 

 

 

 

***

 

 

 

 

 

 

 

 

 

 

 

 

지크가 아버지의 검을 들고 가문에서 도망을 치고, 엘네가 외국에서 검을 배우기 시작한 지 6년이 지났다.

 

‘지크는 뭐 하고 있으려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엘네의 머릿속에 있는 지크에 대한 생각은 점점 크기를 불려갔다.

외국이라고 좀 다를 줄 알았건만, 가문이랑 똑같이 지크처럼 자신을 상대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어린애처럼 엘네는 부정하고 있었다.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어.’

 

외국의 유명한 검사 가문에서 엘네가 배울 것은 5년 하고도 반년 전에 떨어졌다.

덕분에 본래의 가문보다 불편하기만 한 이곳은 엘네에게 정말로 있기 괴로운 장소였다.

 

‘……안 돼. 이렇게 농땡이 부리다가 지크한테 지면 어떻게 해?’

 

그럼에도 그녀가 5년이 넘는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 이유.

가문보다 검을 수행하기 좋은 외국에서 좀 더 검을 수행하지 않으면 지크에게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지. 재미는 더럽게 없지만, 훈련하러 가자.”

 

보통의 견습생들이 만일의 충격을 대비해 갑옷 등의 보호구를 차는 반면, 엘네는 검 한 자루만 달랑 들고 간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다른 사람이 보면 건방져 보이겠지만, 실제로 엘네에게 검이 닿았던 적은 6년간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아무도 그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복도를 지나 연무장의 입구에 발을 딛는 순간이었다.

 

“……엘네?”

 

명목상 선생이지만, 검의 실력은 이미 엘네에게 뒤떨어진 인간이 말을 걸어왔다.

 

“가문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상당히 급한 일인 거 같으니 이 자리에서 읽어보세요.”

 

선생이 말과 함께 건넨 편지를 엘네는 곧바로 뜯어보았다.

 

“둘째 오빠가 죽었다?”

 

편지에는 이미 가족도 아닌 사람에게 순위가 밀려버리고도 한 참 밀린 가족의 사망 소식이 쓰여 있었다.

 

 

 

 

 

 

***

 

 

 

 

 

 

“오랜만입니다. 아가씨. 몰라뵈도록 성장하셨군요.”

 

다른 나라라도 순식간에 이동하는 워프 게이트를 몇 번 병행해 외국에서 가문의 저택이 있는 도시에 2일만에 도착한 엘네를 반기는 말끔한 차림의 노인.

어렸을 때부터 엘네의 시종을 들었던, 지크와 마지막 밤 때 불러오겠다고 소리를 질러대던 에디에게 엘네는 곧바로 물었다.

 

“에디. 어떻게 된 거야. 둘째 오빠가 죽었다니.”

 

좋아하는 사람을 괴롭히고, 인간성까지 쓰레기라지만 그래도 혈연이다.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던 엘렌이 곧바로 진상을 물어보자 에디는 잠시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팔란 가문과의 혼약 이야기를 위해 마차를 타고 이동하던 도중 괴한에게 습격당하셨습니다.”

 

“호위는?”

 

“역시, 괴한의 습격에 당했습니다. 도련님과 달리 전부 목숨은 건졌지만,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등 불구가 되었죠.”

 

이름 있는 검사 가문의 자손과 그 호위들이 손도 못 쓰고 당했다.

이만으로도 놀라운 사실이었는데, 이윽고 들려온 에디의 말은 더더욱 예상 못 하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둘째 도련님이 같이 가지고 가시던 푸른 검까지 괴한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덕분에 가문이 왈칵 뒤집혔죠.”

 

“……뭐라고?”

 

에디의 말을 들은 엘네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되물었다.

푸른 검. 6년 전 자신이 몰래 보물고에서 훔쳐서 지크에게 건넨 검, 지크 아버지의 유품.

 

“에디. 지금 뭐라고 말했어?”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엘네는 다시금 에디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