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자취방에 돌아오자마자 옷도 안갈아입고 침대에 드러누워버렸다. 그리고 환하게 웃던 그녀의 표정을 떠올렸다.

"나따위에게는 사치겠지.."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도 환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니 오늘은 악몽을 꾸지는 않을거같다.

아침7시쯤 되었나? 나는 나보고 일어나라고 외치는 핸드폰을 부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고 일어났다.

잠결에 핸드폰을 확인하니 대출받으라는 광고와 알바점장님이 보낸 카톡외에는 볼게 없던 내 카톡에 안읽은 메시지가 3개정도 와 있었다.

"어제는 잘 들어갔어?ㅎㅎ"

"왜 대답이없어?"

"자는거야??"

확인해보니 어제 세라가 보낸 카톡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 어제 걔한테 전화번호 알려줬지.  

"어제 너무 피곤해서 집에 들어가자마자 드러누웠어 미안" 이라 답장을 하였다.

어차피 답장이 올거라고는 기대도 하지않기 때문에 샤워를하러 들어갔다. 따뜻한 물에 몸을 적시니 어제의 그 피로가 내려가는거같다.

그리고 나서 아침밥해먹을려고 햄이랑 계란 굽던도중에

"카톡"

하고 답장이 왔다.

"아 그렇구나~난 또 뭔일 있는지 알았지"

답장이 올거라곤 기대도 안했지만
그래도 막상 답장이 오니 묘하게 기분이 좋다.

"엉..근데 너 디게 일찍 일어나네?"

"웅 나도 오늘 수업 일찍 시작하거등"

"아 그래?"

하면서 우리는 아침수업이랑 관련된 얘기로 카톡했다.

대화가 끝나자 대충 아메리칸 브렉퍼스트로 아침을 때운다음에 학교에 가는 전철을 탔다.

전철에는 이상한사람이 많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한 4~50대쯤보이는 아저씨가 5~6살정도된 어린아이에게 욕을퍼붓고 있었다. 죽여버리겠다느니, 너같은건 태어나지 말아야했다느니.

그 아저씨는 결국 다른사람이 신고해서 잡혔지만 그아저씨에게서 죽은 내 아버지의 모습과 고아원 원장의 모습이 보였다.

자기가 쥐어준 깡통캔이 반이상 차지않으면 벨트로 나를 때리던 아버지와, 매일매일 단단한 죽도로 나를 두들겨 패던 원장
그리고 그런 나보고 부모가 없는 고아라고 나를 왕따시키던 아이들..


"너같이 반도 못채워오는 쓰레기새끼를 내가 왜 낳아가지고.."

"너같이 무능력한 썅놈을 누가 받아들이자 해가지고.."

"쟤 부모없이 고아원에서 자란데ㅋㅋㅋ"

"그래서 부모요리교실에 아무도 안왔구나.."

대학교에 들어와서도 달라진것은 없는거같다.
처음에는 여기선 좀 낫겠지 하는 생각으로 막연한 희망을 품어봤지만

내곁에는 아무도없다.

정말 죽고싶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두려워서 죽지못하는 내 모습이 너무나도 한심하다.

기억의 고통이 나의 목을 졸라 질식사 시키기전에 학교에서 내렸다.

그리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강의실에 들어갔다.

'어제는 그저 운이좋았던거뿐이야..누가 나같은 고아를 좋아하겠어?'

강의실에들어가서 언제나 그랬듯이 눈에 최대한 띄지않는 자리에 앉았고 업드려서 잘려고 했다. 그랬더니

"무슨일 있어??"라고 옆자리에서 말을 걸어줬다.

나는 고개를 들어 누가 말을거는지 볼려했다.

세라였다.

"무슨일 없어..걍 졸려서.."
나는 졸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그렇구낭.."하고서 세라는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한5분정도 지나자 사람이 점점많아지고있었다. 강의실은 점점 시끄러워졌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었다.

세라역시 잘생긴 남자애들이랑 여자애들이랑 대화를 하고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최대한 의식하지않을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얼마있다가 교수가 들어와서 출석을 불렀다.

나는 그때가 되어서야 고개를 들었고 교수가 내이름을 부를때하는 형식적인 답변을하고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강의가 시작되는줄알고 꿀잠을 자려던 찰나 교수가 갑자기

"조별과제를 진행할 예정이니 오늘 3시까지 조편성 명단제출해주세요." 이라고 못을박아버렸다.

그리고 강의가 끝나자 사람들은 조편성에 관해 이야기하고있었다.

그때 나는 마음맞는 사람들끼리 조를짜는 인싸들이 부러웠다.
세라도 과 남자애들이 같이조를 하려고 난리도 아니었다.  


나는 '어차피 누구랑하든 별도움 안될텐데 아무대나 들어가자'라는 마인드였다. 그랬더니 세라가

"정우야 너 조 정했어?"라고 물어봤다.

"아니 나 아직 안정했는데 딱히 누구랑 하든 상관없으니까 암대나 들어갈려고"

"그래? 그러면 나랑 같은조 할래?"

그 말 이후로 정적이 흘렀다. 주위 남자애들이 나를보면서 이렇게 말하는거 같았다.

'도대체 쟤가 우리보다 어디가 더 낫길래 쟤를 선택한거지?"

'죽여버리고 싶어'

"아니..고맙지만 사양할게"
너무 무서워서 그만 거절해버렸다. 그러더니..

세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왜? 딱히 아무대나 상관없다며? 혹시 내가 싫은거야?"

그런말을 들으니 도저히 거부할 수 없을거 같아 승낙해버렸다.


"하..알았어."

그러더니 세라는 언제 그랬냐는듯이 표정을 풀어 미소를 보였고, 주위 남자애들은 여전히 나를 죽일듯한 눈으로 보고있었다.

그렇게 폭풍같은 오전이 끝나고 점심을 먹으려고 편의점에 갔다.
세라가 나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었으나 그로인해 다른사람들이 나를 저주할까봐 두려웠다.

더이상은 아프고 싶지않았다. 더이상은.

과제는 사람이 적어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세라한테 민폐끼치기 싫어서 그런지 빠르게 끝나갔다.
내가 이렇게 밤을새면서까지 무언가에 열중했던건 또 처음인거같다.


무엇보다도 나에게는 도저히 잡히지 않을거같던 세라랑 단둘이서 있는 시간이 많아서 좋았다.

물론 이시간이 끝나면 난또 남남이되겠지..그렇지만 괜찮아..난 언제나 혼자였으니까...

그렇게 조별과제를 하다보니 나와 세라는 꽤 가까워져있었다.
어느덧 나는 만난지 1주일조차되지도 않은 그녀를 무지하게 신뢰하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내 과거를 말해도 넘어가 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