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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틱.


 동생을 기다리는 내내 정희은이 손에 쥐고 있던 도청 방지 장치의 스위치가 올라가며 둘 사이의 정적을 깼다.


 그리고 그녀는 다가온다.


"누...누...나…"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말투의 정유진이 벙찐 표정을 고치지 못하고 있었다.


 나의 누나.


 나의 하나뿐인 친누나.


 도시를 헤치며 그렇게나 찾아 울었던 나의 누나.


 현실 같지가 않았다. 아이는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누나가 찾아왔다는 생각보다 누군가 인형을 세워두고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누나.. 정말..로.."


 눈앞의 인형을 향해 아이가 다시 말을 건다.

 그러나 그 인형은, 자신의 눈앞에 점점 다가오며 진짜 사람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어떻..게… 나--"


 정유진의 코앞까지 선 그녀가 아이를 자신의 품에 안았다.


 포근한 품 속에 묻히며, 그리고 진정 원하던 가족애를 느끼며 아이의 중얼거림은 점점 서러운 울음소리로 변해갔다.


"흐아아아아앙… 흑, 끅.. 끄아아아아앙….!"


 조용히 아이를 안아주는 누나는 자신의 품 안에서 흐느끼는 정유진의 등을 토닥였다.

 그녀의 눈에도 조금씩 눈물이 흘렀다.


"누나.. 나 집에 가고 싶어, 끅, 너무.. 너무 힘들단 말야..! 나 집에 갈래, 집에 데려다 줘 누나..!"


 지금껏 참아왔던 말들.


 아이는 그 말을 얼마나 참고 있었을까.


"아가…. 아가…. 우리 유진이…"


 정희은은 그저 목이 메인 목소리로 아이를 부르며 품 속에 안아줄 뿐이다.


 그녀도 참고 있었다. 자신의 동생을 눈앞에 두고 쓸어안으며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는 흔한 일마저도 그녀는 마음대로 할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오늘은 아니다. 방음벽과 도청 방지 장치가 목소리를 숨겨주는 지금만큼은, 그녀는 자신의 동생을 마음껏 부를 수 있었다.


"아가, 괜찮아? 그년이 괴롭히지는 않았어? 혹시 때리고 그런 건 아니지?"


"끅, 때린 건 없는데에… 막 누나 죽여버리겠다고, 흐읍, 나한테 소리..지르고… 밖에 나가지 말라고 가둬놓고..."


 아직도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정유진은 자신이 정윤경에게 당한 일들을 하소연하듯 이어나갔다.

 그녀가 생각했던 그대로였다. '유진이는 네가 싫어서 떠난 거다'는 정윤경의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 뿐만 아니라 사랑이 무슨 감정인지도 모르는 뒷골목 해결사 따위가 자신의 사랑스러운 동생을 자신만큼 잘 대해줄 리가 없다는 것까지도.


"누나.. 나 데리러 온 거 맞지? 그치? 이제 나 집에 갈 수 있는 거지?"


 하고 정유진이 자신을 껴안고 있는 누나를 올려다보았다.


 희망에 찬 눈으로 자기를 올려다보는 순수한 두 눈망울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


 그러나 정희은은 대답하지 않는다.


"...누나..?"


"아가."


"응.."


"힘든 부탁 하나만 할게."


"......."


 뭔가 좋지 않은 부탁이 될 것을 직감한 정유진이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분간은, 유진이가 그 여자.. 하고 같이 있어줘야 해."


"뭐!? 싫어!"


"정말 미안해, 누나도 그 여자가 너무 싫어. 얼른 유진이랑 같이 집에 가고 싶어. 하지만.."


"그러면 왜 같이 있으라는 거야…!"


"하지만 지금은 안 돼. 아직은 아니야. 조금만 더 참으면--"


"싫어..! 싫어! 난 더 못 참는단 말이야..!! 왜 그런 부탁을 하는 건데 왜애..!"


 아이가 다시 울먹이기 시작했다.


"아가.."


 잠깐 정희은이 말을 잇지 못했다.

 들어줄 수 없는 부탁임을 그녀도 안다. 스스로도 당장 문을 박차고 나가 그 여자를 짓밟아버리고 그대로 아이를 데리고 가고 싶다는 충동을 뿌리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그녀 마음대로 그럴 수는 없다.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 사람을 죽이면 감옥에 가고, 계약을 했으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정희은이 다시 아이의 등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아이는 아직도 그녀에게 얼굴을 묻고는 자꾸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다.


"우리 같이 집에 가자 누나.. 혹시 내가 싫어진 거야? 나 정말 착한 동생이 될게, 친구들 앞에서 안아줘도 뭐라고 안하고.. 돈 들면 학교도 이제 안 갈게, 그러니까 같이 데려가 줘.. 응..? 제발 누나..."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정희은은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다. 


"미안해.. 누나가.. 누나가 정말 미안해…"


 울음은 그쳤지만 아직 원망 섞인 눈빛을 하는 동생의 뺨을 정희은이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유진이가 싫은 게 아니야. 아가는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다 누나가 잘못한 거야. 그래서 더 미안해.. 누나 때문에 이렇게 되어놓고 이런 부탁이나 하고.."


"아니야, 그런 말 하지 마 누나…"


 함께 살던 시절 언제나 그랬듯, 자책하는 누나를 정유진이 애써 위로했다.


 뒤늦게서야 의젓한 모습을 보이려는지 아이가 마지막으로 훌쩍이고는 포옹을 풀었다. 정희은의 겉옷을 흠뻑 적시고 난 뒤 더는 남은 눈물이 없는지 눈이 새빨갰다.


"정말… 끅, 정말 내가 싫어진 거 아니지?"


"응, 정말로. 누나는 죽을 때까지 우리 유진이 사랑한다고 예전에 그랬잖아. 누나 못 믿는 건 아니지?"


"..아냐, 누나 믿어.."


 하고 정유진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앞으로 조금만, 조금만 더 참아줘. 누나가 약속할게. 조금만 더 참고 있으면, 누나가 우리 아가 데리러 올 테니까, 응? 그렇게 해줄 수 있지?"


"......."


"자, 누나랑 약속."


 정희은이 자세를 낮추며 새끼손가락을 아이에게 내밀었다.

 정유진도 잠깐 머뭇거렸지만 이내 자기 오른손을 꺼내 손가락을 걸어주었다.


"...누나 믿을게."


 자그마한 꼬마아이의 엄지손가락이 굳은살 가득한 정희은의 엄지와 꼭 맞닿았다.


"누나는 나랑 약속 어긴 적 한 번도 없으니까… 그러니까, 나 꾹 참고 기다릴게."


 목소리는 아직도 떨리고 있지만 씩씩하게도 울음을 꾹 참고 아이는 약속해주었다.


"그래.. 그래, 고마워 우리 아가.."


 정희은이 아이를 다시 안았다. 힘든 약속을 들어준 동생이 너무도 고맙고 미안했다.


 하지만 기뻐할 수는 없었다.


"다 끝나고 나면, 누나가 구해준 뒤에는.. 그년은 누나가 죽여줄게. 우리 유진이가 아팠던 것만큼 배로 갚아서, 누나가 대신 갈기갈기 찢어버릴 테니까…"


"그러니까 아가는 걱정하지 말아줘. 알았지?"


 차마 입에 담기조차 싫은 그 여자를 떠올리며 정희은은 동생이 보지 못하게 이를 갈았다.



 반드시 죽일 거야.


 반드시.


 내가 망가지는 한이 있어도 그년은 내 손으로 으스러뜨리고 말겠어.



 악마에게 더럽혀진, 그러나 그 모습마저도 사랑스러운 남동생을 꼭 안으며 정희은은 복수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유진이는 최면이 잘 안 되는 체질인 것 같네요."


 이미 정희은에게 지시를 받고 온 최면술사가 정윤경의 눈앞에서 최대한 미안한 연기를 하며 양해를 구했다.


"후우… 어쩔 수 없죠 그러면. 유진이는 괜찮아?"


 혹시나 들키면 어쩌나 하는 최면술사를 무시하고 정윤경은 다시 아이에게 다가갔다.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은 정유진도 마찬가지였으나 다만 새빨갛게 충혈된 눈만큼은 어떻게 숨길 수가 없었다.


"아가, 눈가가 왜 그래..? 너무 새빨간데.."


"아, 이.. 이건.."


"혹시.. 울었어?"


"으..응. 그냥 최면받다가--"


"당신."


 순간 정윤경의 눈이 차갑게 식어갔다.

 아이의 해명을 듣지도 않고 그녀는 최면술사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무슨 짓 했어?"


"그.. 저기, 잠깐만--"


"묻는 말에 대답해."


 멱살을 잡은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겨누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나 살의가 담긴 그녀의 도끼눈만으로도 최면술사는 지레 겁을 먹고 있었다.


"아니, 저건..요.. 그냥 과거 회상하다가 애가 갑자기.."


"맞, 맞아요 누나! 제가.. 아, 제가 어렸을 때.. 안좋은 기억들이 떠올라서…"


 하며 둘은 어떻게든 해명을 해갔다.


"안좋은 기억이라고..?"


"네… 제가 얘기 안했었나요? 저희 집이 많이 가난해서 안좋은 일도 많았다고.."


 꽤나 그럴듯한 변명이었다.

 정윤경도 예전에 정유진이 자신에게 말했던 기구한 집안 이야기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래.. 그랬었지."


 하며 정윤경이 살기를 거두었다.


"하아.. 그러면, 최면은 아예 안 되는 건가요?"


"어… ㄴ, 네. 이 아이 같은 경우는 누가 해도 최면이 안 걸리는 타입이라서요."


 못내 아쉬운 표정을 하는 정윤경에게 대답하는 최면술사는 아직도 무서워하는 눈을 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정윤경은 미련을 못 버린 듯 한숨을 몇 번 쉬며 아쉬운 티를 냈다.


"유진아."


"응, 누나?"


"정말 최면하면서 아무 느낌도 안 들었어?"


"어? 으...응. 그냥 평소 그대로였어."


"그래… 그렇구나."


"...혹시 실망..했어..?"


"아니야, 그런 거."


 힘이 빠진 듯한 대답이다.


 등하교 때와는 다르게 조수석에 앉은 정유진이 고개를 돌려 바로 옆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는 정윤경을 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속마음을 대신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왜?"


 도로를 주시하면서도 그녀는 이쪽의 시선을 신경쓰고 있다.


 혹시나 그녀에게 꼬투리를 잡힐까 싶어 정유진은 고개를 다시 틀고,


"아니야, 아무것도.."


 하고 말을 끊었으나,


"......."


 그녀의 그늘진 얼굴이 아이는 계속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한참 고민하던 정유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누나."


"....?"


"너무.. 안좋은 표정 하고 그러지 마. 누나한테는 그런 표정 안 어울려. 그리고.."


 마치 자신의 친누나를 위로하는 듯한 말투를 유지하려 아이는 안간힘을 썼다.


"..최면 같은 거 없어도, 난 누나 곁에 계속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누나도.. 너무 걱정 안 했으면 좋겠어."


 그 정도면 됐을 것이다. 아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진심은 전혀 담겨있지 않은 말뿐인 위로에 불과하다. 정유진은 그저 자신의 말들로 정윤경이 속아주기를, 모든 걸 포기하고 그녀의 동생이 되어준 것처럼 연기하는 자신을 믿어주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하지만 해결사인 그녀를 속일 수 있는 걸까…


 생각이 거기까지 닿은 순간 갑자기 차가 멈추었다.


 정윤경이 길가에 차를 세워둔 것이었다.



 그녀의 표정이 굳어 있다…



"누..누나..?"



 그 말에 정윤경이 고개를 아이 쪽으로 돌린다.



"누나.. 괜찮아..? 왜 그래..?"



 대답 대신 안전벨트 풀리는 달칵 소리가 그녀 쪽에서 들려왔다.



 설마 눈치챈 건가…?



 아무 말도 없는 그녀는 아이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으읏..!"



 몸을 쭉 뻗어 아이를 꼭 안았다.


 먼 거리임에도 정윤경의 두 팔은 정유진의 등까지 닿아 아이를 그대로 감싸안았고 정유진의 몸도 그녀 쪽으로 확 당겨졌다.


 아이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정윤경이 숨을 들이마시며 필요한 성분을 몸에 채워넣었다.


"...아가."


"응…?"


"아까 말 다시 해줘."


"그.. 걱정 안 했으면--"


"그거 말고. 전에 거."


"...계속 누나.. 곁에 있을게."


"한번만 더."


"계속 누나 곁에 있을게."


"한번만."


"계속… 누나 곁에.. 있을게.."


 정유진은 자신이 그 말을 할 때마다 자신을 껴안은 정윤경의 몸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불안감이었을까. 아니면 행복감이었을까.



 그것이 어떤 감정 때문이었는지 아이는 알지 못했다.


 그날 밤 그녀가 자신을 온몸으로 껴안고 잠에 들 때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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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미안하다


한동안 글이 안쓰여서 손을 놓고 있다가 최근 들어서야 다시 손을 대기 시작했어

그 전까지는 뭔가 가진 능력이 다 거덜난 것 같았거든


아직 현생이 바빠서 예전처럼 글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아마 4막/5막(끝)은 각각 5편씩으로 분량이 줄어들 것 같은데, 이걸 4막을 어떻게든 10편 분량으로 늘릴지 아니면 그냥 4막/5막을 10편짜리로 통합시켜서 4막에 끝낼 건지 심각하게 고민 중.


다만 확실한 건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손으로 글삭튀하는 일은 없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만두는 건 말도 안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