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략4:정략결혼 4 - 얀데레 채널 (arca.live) 






"야, 한 병 더 가지고 와…. 좀만 더."


"야, 야! 그만 좀 마셔. 평소에는 술은 입에도 안 대던 놈이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어서 그래. 자 이만 일어나. 형수님이 기다리시겠다."


나의 양쪽 어깨를 붙잡고 흔드는 친구의 얼굴이 세 갈래로 나뉘면서 꽤 웃긴 장면이 탄생했다. 


"와이프랑 딸내.... 아무튼 친정 갔어! 히히.. 앉아. 너도 인마. 가끔은 이렇게 친구하고도 놀아야…. 히끅! 정신 건강에 이로워요!"


"드디어 술독이 올랐구먼 미친놈. 콜택시 부른다. 나도 가정이 있는 남자다 얀붕아. 마누라가 자정까지 안 들어오면, 나 팬티 바람으로 쫒겨난다니까?"


"나쁜 새끼이이…. 2년 만에 보는 친구를 그렇게 문전 박대하는 시바알…."


눈앞에 보이는 술병을 끌어모아도 벌써 한 궤짝을 치고도 남는다. 지나치게 달려버린 탓인가. 목구멍 속에서 매쓰거움이 일어, 구토감이 배로 늘어간다. 


"야, 폰붕아. 나 화장…. 우웁!"


"어어. 빨리 꺼져. 여기서 하면 진짜 목 꺾어버릴 거야."


그대로 포장마차 문을 박차고 화장실을 찾았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찾은 곳은, 공원의 가장자리 부분에 위치한 작은 공용화장실이었는데, 변기를 보아하니 더욱 구토감이 치솟아 올랐다.


 커버에는 음식 찌꺼기부터 시작해서, 오물, 담배꽁초, 심지어 콘돔까지. 참으로 가지가지 한다. 생각했다.


"도의 성이라고는 떡 치고 안에다 싸서 버렸나? 사이 발 연놈들……. 읍! 우웨에엑!"


한바탕 쏟아내고 나서는, 정신이 조금이나마 맑아졌다.


친구가 쩔쩔매던 모습도 이해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친구도 한 가정의 가장이자. 누군가의 남편이다. 심지어 토끼 같은 자식도 있는데, 고등학교 친구 따위가 눈에 늘어오는 게 오류이자, 모순이었다.


그제야 베일에 감추어져 있던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흘러나오는 눈물을 셔츠 소매로 흘겼다. 


"…. 나, 이제 돌아갈 곳이 없네?"


구제 불능 쓰레기, 폐기물, 무능력. 현재의 내가 달고 있는 타이틀이었다. 차례차례 따져보면 틀린 말 하나 없다. 


머리 하나는 꽤 잘났다고. 자부하면서 지냈다. 

금수저를 물었다고 까지는 말 못 하지만, 꽤 유복한 가정에서 길러져왔다. 자부하면서 지냈다. 

그렇게 나날이 콧대가 높아져 가는 순간, 모든 것이 파도에 쓸려가는 모래성마냥 쓰러졌다. 갑작스러운 사업 확장은 곧 부도로 이어졌고, 한순간에 모든 게 바뀌었다.


집안의 모든 물건에는 다닥다닥 압류딱지가 붙어,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으며, 나는 경품과도 같이 팔려 갔다.

물론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이틀 전까지는. 아내라는 작자는 견문을 넓힌다는 목적으로 유학을 가. 딴 놈이랑 눈을 맞아, 아이를 배어서 돌아왔다. 

심지어 나는 그 아이를 병신같이 애지중지하며 돌봤다.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시기가 아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아이 또한 아내와 나의 특징을 쏙 뺴닮았으니. 차라리 확인하지 말걸. 아니, 알더라도 평생 묻어가는 게 맞는 선택이었을까? 


'아…. 맞다. 폰붕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힘이 풀려 쓰러져버린 다리를 재촉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포장마차 아주머니가 테이블을 접어서 옮기는 걸 보니,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었는 듯했다. 


"폰붕아! 형님 오셨..."


당연하게도 자리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그릇까지 모조리 치운 걸 보아, 한참 전에 먼저 돌아갔다. 


'하긴. 화장실 간다고 30분 걸린 놈을 누가 기다려주겠냐. 이 자식 지갑도 안 들고 왔다고 했었지?'


테이블에 5만원권 지폐를 3장을 올려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마운 걸 넘어서 사랑스럽기까지 한 녀석.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2년 전이 것만. 전화 한 통 넣었다고, 하던 일 내팽개치고 와주었다. 


'자기 부인한테 진탕 깨지겠지?'

심지어 그가 무릎 꿇고, 혼나는 장면을 시뮬레이션까지 해가며 키득거렸다. 

그렇게 인근 편의점에서 맥주나 까며 소식 하나 묻지 못했던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열에 여덟. 서로가 반색하며 근황이나 과거 이야기들을 안줏거리 삼아 즐겼다. 


즐겁다. 행복하다. 이렇게 숨통이 트이는 감각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야기의 주제는 학창시절 은혜가 깊은 은사님, 생각보다 난이도가 쉬웠던 모의고사, 마지막으로는 친구들의 치정 싸움의 스토리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었다. 


"어, 근데 얀붕아, 형수님 목소리가 안 들리신다? 예전에는 2~3분만 통화해도 끋으라면서 요란법석을 떠시던 분이?"


그년의 소재지가 궁금진 것인지. 동창 중 한 명이 물어왔다. 막상 상황이 닥쳐오니 말문이 닫혀버려 아무 말이나 내뱉어 버렸다. 


"어, 어. 나 사실 가출했어, 가출."


순간 긴장 속에서 적막이 흐르더니, 친구 놈이 박장대소하며 외쳤다.


"뭐, 네가? 혹시 아내 없으면 혀 꺠물고 뛰어내린다는 '김얀붕' 씨가 맞습니까? 제 친구 얀붕이는 가출 같은 거 할 리가 없는데 말이죠. 만약에 진짜 가출한 거면 8할은 네 잘못도 있는 거니까. 싹싹 빌어라. 그럼 이만 끋는다. 형수님한테도 안부 전해드려!"


역시 유쾌한 거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무조건 싹싹 빌라니. 뭐 틀린 말은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친구와의 통화를 끋고 시간을 확인했다. 12:45.

뭘 하기에도 애매한 시간이기에. 오늘 밤은 대충 모텔에서 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어, 어?"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를 않는다.


마치 팔다리가 각자의 자아가 생긴 마냥 놀아나고 있다. 분명 앞을 걷고 있었건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뒷걸음질을 치고, 시야가 흔들렸다. 지나가던 사람이 주위에 모래를 뿌려놓았나? 


휘청대는 걸음으로 신호등 앞까지 걸어오는 데에 성공했다. 

주위 사람들이 나를 보며 수군대는 것을 느낀다. 하긴 코트에 토 묻히고 휘청대는 아저씨를 보는 게 흔치 않지. 오해할 만 하네!


'저게 빨간불? 아니면 초록 불인가? 구별이 안 되네.'


붉은 색이었던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기도 하고. 눈 하나 깜빡하면 어느샌가 보라색으로 바뀐다. 이번에는 노란색. 각양각색의 색들이 모여져 무지갯빛을 띠기도 하였다.


"무지개…. 예쁘다."라고 혼잣말을 내뱉었다. 


눈은 신호를 바라보고 있지만, 다리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시선은 무지개. 걷다 보면 언젠가 무지개에도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야, 저 사람 뭐야! 갑자기 차도에 뛰어드는 미친놈이 어딨어!


-어머머! 어떻게! 


'시끄럽다고, 이 새끼들아.'


자동차의 크락션 소리와 사람들이 고함치는 게 느껴진다. 역시 내가 무지개에 가는 것이 부러워서 저러는 게 분명하다.


"아아, 무지개다."

솜사탕을 바라보는 아이처럼 손을 뻗었지만, 결코 무지개가 잡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뻗으면 뻗을수록 무지개는 나를 피해 쏜살같이 도망가기 일쑤. 그런 무지개가 마지막으로 멈춘 곳은 어떤 오토바이의 라이트 부분이었다. 


나는 달려오는 오토바이를 바라보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아빠가 미안해…. 서율아. 아빠가 못난 아빠야."


*

사고의 현장에는 피 칠갑이 되어서 쓰러져있는 남자와 부서져 있는 오토바이가 나란히 누워있었다. 

오토바이는 반파가 돼서는 연기가 새어 나왔고, 남성은 오른손에 한 장의 사진을 꼭 쥐고 있었다. 사진에는 화목한 가족이 서로를 껴안으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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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까지 다 쓰고 올리는 거임. 못 써도 양해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