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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4일. 아직까지는 날짜를 셀 정신이 남아있는게 다행입니다. 창 밖으론 새소리가 들려옵니다. 새 소리가 들릴 리가 없는데...오늘도 식사를 거부하자 한숨 소리와 함께 여동생이 입을 열었습니다.

"저기, 오빠? 어째서 먹어주지 않는거야? 음식이 입에 안 맞아? 먹고싶은게 있으면 말을 해..."

마치 제 눈치를 보는듯 쭈뼛쭈뼛 다가와 저를 곁눈질 하며 묻는 그 모습이 역겨워져서, 저는 늘 상 그렇듯이 입을 다물고 등을 돌렸습니다.

저는 양팔과 다리가 모두 구속되어서, 음식을 먹을때면 여동생의 도움을 받아야만 합니다.

저를 감금한 망할 여동생이 제가 입을 벌리며 먹을 것을 구걸하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하는것이 분하고 화가나서, 저는 어제부터 음식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여동생이 직접 만들어준 도시락 먹고 싶다고 그랬었잖아...그래서 요리도 연습했는걸? 왜 기뻐해 주지 않는거야..."

정말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속상해하는 여동생을 보고있자면 소름이 돋습니다.

어쩌다 저렇게 미쳐버린건지, 왜 하필 그 대상이 나인건지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그야, 밖에는 오빠를 위협하는게 많으니까. 길가다 오빠가 차에 치여버리면? 계단에서 굴러죽어버리면? 친구가 생겨서 더이상 나랑 안 놀아주면? 웬 씨발년을 만나 연인놀이에 빠지면?"

광애로 점칠된 단어들이 오래전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듯 미친듯이 쏟아져 나올 뿐이어서, 대화하는 것은 반쯤 포기했습니다.

그 후로는 이런 의미없는 줄다리기만을 반복할 뿐입니다.

저는 음식을 거부하고, 여동생은 어떻게든 음식을 먹이려 애쓰다가 "그런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는 것도 귀여워." 따위의 말을 지껄이고 저를 계속 응시할 뿐입니다.

이제 곧 제가 이곳에 갇힌지 한 달이 되어갑니다. 어째서 경찰이 오지 않는걸까요? 늘 제 방에 놀러왔던 친구들은 왜 오지 않을까요? 일주일간 출장을 가신다던 부모님은 왜....

남은 희망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니 제 상황이 더욱 절망적으로 느껴집니다. 목이 마르고 뱃속이 요동치자, 저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잠에 들었습니다.

"....방식을 바꿔야겠네..."

문 밖으로 여동생이 무어라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던것 같은데, 이미 수마에 빠진터라 제대로 듣진 못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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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6일. 슬슬 저 햇살이 비참해질 지경입니다. 이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여동생이 제 체온을 위해 보일러를 켜주었다는 것에 안심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미쳐가는 걸까요?

결국 저는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굶어죽는다는 선택지를 고를 용기도, 고통을 견딜 배짱도 없었나봅니다.

"드디어 알아주는구나...고마워, 고마워 오빠! 먹고싶은거 있으면 말해! 다 만들어줄게!"

여동생은 저를 굴복시킨게 기쁜걸까요, 아니면 다시금 개새끼마냥 입을 벌리고 먹을걸 구걸하는 저를 볼 수 있어서 기쁜걸까요? 어느쪽이든 끔찍한 악취미에는 틀림이 없겠지요.

한계에 달한 배고픔에 게눈 감추듯 음식을 먹어치우자, 그제서야 갈증이 몰려옵니다.

"물, 물..."

"오빠 목말라? 물 마시고 싶어?"

제가 비참하게 물을 부르짖으면, 여동생은 기쁜 듯이 물을 가져옵니다.

그리고는, 일부러 양을 조절해가며 최소한의 수분만 제 마른 혀에 떨어지도록 조덜해가며 물을 부어주는겁니다.

"물...더..."

"그러면, 사랑한다고 해줘!"

잠시 할 말을 잃은 채 멍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진심이라는 듯 제 앞에서 물을 멀리 떨어뜨립니다.

"이렇게 완벽한 여동생이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못 해줘?"

그제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 미친년은 보통 미친게 아니구나.

저를 굴복시켜서, 목숨줄을 잡고 흔들어서, 늘 그녀만을 바라보고 그녀만을 사랑하는 완전히 순종적인 개로 만들 생각이라는걸 알아채버린겁니다.

그 악랄한 발상의 진원지가 독점욕인지, 사랑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랑해."

"응? 뭐라구?"

"사랑한다고...씨발..."

평소엔 입에도 담지않던 욕지거리마저 섞어가며 내뱉은 '사랑'.

"...나도! 나도 사랑해! 나도 오빠 진짜진짜 사랑해!"

그 말 한마디에, 그녀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은 듯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저를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 날 하루, 그녀는 마치 제가 계급이 한 단계 올라갔다는 듯 제게 해둔 구속을 하나 풀어주었습니다.

단순히 다리 하나가 풀린 것 만으로 느꼈던 그 지독한 해방감은, 한 달 내내 구속당했던 저에게 마약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녀가 지정한 제 취침시간. 제 다리를 다시 구속구에 채우려 다가오는 그 순간, 저는 여동생에게 다시금 사랑을 속삭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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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7일, 창 밖에선 아무 소리도, 빛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아마 그녀가 조명과 스피커를 꺼둔것이겠지요. 저는 주기적으로 그녀에게 사랑을 헌납하는 기계가 되어있습니다.

사랑한다고, 평생 내 곁에 있어달라고 말하지 않으면 물 한 방울 마실 수 없고, 그녀에게 키스하지 않으면 밥도 먹을 수 없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키스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할 수 있을 텐데, 결코 그러지않고 모든 결정권을 저에게 맡기는게 참으로 악질적입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녀에게 세뇌되고 사육당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지만, 이제와서 그것이 뭐 어떻냐는 생각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오늘 그녀는 평소보다 10분 정도 늦게 들어왔습니다. 단순히 그것에 불안해하는 저는 미쳐가고 있는게 확실합니다.

하나 확실한 것은, 저는 그녀의 충실한 오빠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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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일. 저는 더 이상 구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창 밖을 내다보니 스피커와 조명이 설치된 스튜디오가 뻔히 보입니다. 이젠 숨길 마음도 없는가보네요.

그녀는 순종적인 제 태도에 완벽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저는 완전히 포기한 상황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녀의 앞치마에 피가 묻어있든말든, 그건 제가 알 일도 아니고 알아서도 안됩니다.

"그래서, 오빠 중학교 앨범을 봤는데 거기 사진이..."

"...얀순아."

"응?"

"사랑해."

오늘 처음으로, 저는 아무 이유없이 그녀에게 사랑을 속삭였습니다.

그녀는 말없이 저를 끌어안고, 저를 놔주지 않았습니다.

머리를 쓰다듬고 싶다는 충동이 순간 일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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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 그녀가 들어오면 묘한 안도감을 느끼는 저를 발견하곤합니다.

그녀가 저를 끌어안고, 키스하고, 사랑을 나누는 모든 순간순간에는 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고 따뜻한 무언가가 느껴집니다.

사회에서 제구실도 하지못하는 남자 따위를 이토록 사랑해주는 그녀를 만난 것은 어쩌면--

저는 방에서 나오고, 휴대전화도 받았습니다. 심지어 그녀는 오늘 일이 있다며 외출했습니다.

저는 당황해서 그녀에게 왜 나를 풀어주냐며 물었지만, 그녀는 제게 키스하고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은채 나가버렸습니다.

무언가 테스트인게 틀림없습니다. 여기서 밖으로 나가면, 다시금 그 어두컴컴한 방에서 갇혀 있어야 하겠지요.

분명, 분명 이건 저를 테스트하는거라고, 그래서 저는 나가지 않은거라고...

.....그렇게 합리화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 잠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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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3일. 저는 포근한 침대에서 그녀와 함께 깨어납니다.

오늘은 아내의 생일이니,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미역국을 끓이려 했지만...저를 잡고 놔주지 않는 탓에 결국 또 침대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고 맙니다.

아침에 일어난 아내는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저도 모르게 끌어안고 싶어집니다.

저런 아내와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저는 분명 선택받은 게 아닐까 싶을정도로 매일이 행복합니다.

"오빠, 가기전에 키...읍...!!"

"...헤헤, 사랑해 오빠."

아내를 배웅한 후에, 저는 홀로 아내가 없는 집안에 남게됩니다.

당장 문을 열면 바깥입니다. 근처에서 조금 걸어가면 사람들이 사는 곳이 나오고, 경찰서도 있습니다.

하다못해 제 손에는 당장이라도 비상연락이 가능한 휴대전화가 들려있습니다.

그러나 그런게 무슨 소용일까요?

저는 한참전에 실종된 별 볼일없는 취준생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보다, 결코 아내의 곁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처럼 간혹 아내가 외출이라도 하는 날이면, 불안함에 tv나 게임조차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아내가 돌어오면, 오늘은 잔뜩 어리광을 부리고, 또 아내의 어리광을 받아주자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몇 시간 씩이나 오빠를 못봐서 엄청, 엄청 쓸쓸 했으니까..."

저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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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 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