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xx고등학교의 입학식을 마칩니다.


"야 이얀붕, 졸았냐? 고등학교 첫날인데 빠져가지고~"


"아니 똑같은 이야기를 30분 동안 하는데 어떻게 안 졸 수가 있어..."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이 끝나는 순간 박수소리가 들려오면서 나를 깨웠다. 잠에서 깬 나를 소꿉친구인 성아가 핀잔을 준다.


"맨 처음에 회장 선배가 입학 축하 연설할 때는 남자애들 환호성 장난아니었는데, 나도 여자지만 진짜 예쁘시더라."


"어... 그랬었나?"


"으이구 잠탱아, 그때도 졸고 있었어? 한서연 선배말야. 예쁘신데 집도 부자고 항상 전교 1등까지 혼자 다 해먹는다고 우리 입학하기 전에도 난리였잖아!"


분명 그랬었다.


고등학교 입학 전부터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 선배에 대해서 소문이 무성했다.


소심한 성격 탓에 나는 어릴 때부터 친했던 성아랑만 다니지만, 아무리 나라고 매일 중학교에서 이야기되는 사람 이야기를 모를 리 없었다.


입학식 하는 동안 남자애들이 갑자기 환호성을 지르며 소란스러웠던 게 바로 그 분 연설 때문이었구나.


입학식이 끝나고 성아와 강당을 나선다.


"얀붕아! 이제 너 어디 갈꺼야? 오늘 이 누나랑 분식집 갈까?"


"미안, 오늘은 일찍 가서 부모님 일 도와드려야 해서... 담에 보자~"


강당을 나서다가 시선이 느껴져 주위를 둘러보니, 앞쪽에 서연 선배가 내 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딜 둘러보는거지? 내 주변을 살펴보고 다시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는 내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


아쉬워하는 성아를 뒤로하고 학교를 나서자, 교문 앞에 서연 선배가 서있었다.


어깨 너머까지 가지런히 흘러내리는 흑발과 아름다운 외모가 어울려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확실히 내가 보기에도 남자애들이 환장하며 따를만 했다.


나도 참, 이런 생각은 실례겠지, 저 선배는 누굴 기다리는 걸까.


별 의미없는 생각을 하던 도중, 서연 선배가 내 쪽을 지긋이 바라본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어?


"너, 이름이?"


"이... 이얀붕이요..."


깜짝이야, 나한테 말을 걸 줄은 몰랐는데.


무서운 눈으로 나를 째려보신다. 혹시 계속 쳐다봐서 기분 나쁘셨나...?


"이얀붕... 예쁜 이름이네. 혹시, 나한테 전화번호 가르쳐..."


빵빵!


"우와앗!"


갑자기 가까이서 들리는 차 경적소리에 놀라버려 그만 서연 선배의 말을 끊고 말았다.


"죄... 죄송해요 선배, 뭐라고 말씀하셨죠?"


"...아냐, 입학 축하해"


선배의 얼굴은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나 보였다.


"감사합니다 선배. 그럼 저, 가볼게요."


부모님 가게로 곧장 가봐야 해서 인사를 끝내고 바로 뛰어갔다.


...사실 선배가 나를 바라보는 표정이 무서워서 쫄아서 더 황급히 달아났다.


뭐라 말씀하려고 하셨던걸까. 전화번호 어쩌고 하던 거 같던데...


아, 혹시 나한테 전화번호를?


잠깐 착각할 뻔도 했지만, 설마 그 멋진 선배가 나 같은 평범한 남자애한테 그러진 않겠지.


그도 그럴게, 나는 키도 작고 얼굴도 잘생기지 못한 걸.


그저 지나가는 입학생한테도 입학을 축하해준다니, '분위기는 좀 무서워도 참 상냥한 선배구나!' 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


"얀붕아, 너 도서부가 아니고 축구부 매니저 한다며?"


"아, 응. 도서부는 인원 수보다 하려는 사람이 많아서 밀려났어. 나 축구는 잘 모르는데 어쩌지.."


"에이, 내가 축구부라서 나 보려고 일부러 지원한 건 아니고? 헤헤... 그래도 내가 있어서 다행이지?"


저놈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물론 성아는 수요가 많을 얼굴이긴 하지만 그런 공주병은 친구로서 자제해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입학식이 끝나고 한 달 쯤 지나, 어느정도 고등학교 생활에 적응하게 되었다.


부활동을 정할 때 얼떨결에 하게 된 축구부 매니저지만 성아 말마따나 성아라도 있는 건 다행이었다.


원체 낯가림이 심해서 모르는 사람의 매니저가 되면 어쩌지 싶어서 곤란했던 와중이었다.


하는 일도 경기 구경하거나 담당 선수 챙겨주는 정도니까, 이정도는 가뿐하지!


...라고 생각했던 건 내 오산.


"저는 이 선배를 모르는데요 선생님..."


"아 그랬니? 서연이는 너를 콕집어 자기 매니저로 해달라길래 서로 아는 사이인 줄 알았지."


"그래도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선배랑 친해지기가 쉬운 일이 아니잖니? 친해져서 나쁠 거 없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대로 하자, 응?"


선생님이 안절부절해 하신다. 명단 다시 작성하는게 그렇게 힘든가?


음... 공문 다시 올리는 게 내가 모르는 귀찮은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원래 모르는 사람하고 매치가 되는 일도 많기도 하고.


그렇지만 잘 모르는 선배랑 내가 어떻게 친해져...


살짝 불안해진다.


***


""와아!!""


"선배 슛! 그렇지 골!!"


예상 외로 축구 구경은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이 뙤양볕에 땀 뻘뻘 흘리면서 뭐하나 싶었는데,


내가 응원하는 팀이 골을 넣었을 때는 온 몸이 짜릿했다.


내가 만약 여자로 태어났더라면 나도 축구부에 들어갔을지도...?


그랬어도 난 몸이 약해서 무리이려나, 하하...


휘익-


종료 휘슬이 울렸다. 결과는 2-1, 서연 선배가 속해 있는 팀이 이겼다.


부활동이 정해진 이후로, 지금까지 서연 선배의 매니저 활동을 해왔다.


축구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나지만, 서연 선배가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잘한다는 건 알 것 같았다.


뭐랄까... 보면 볼 수록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사람이었다.


그치만 처음의 걱정과는 달리, 선배가 나에게 너무 잘 대해주셔서, 그럭저럭 친해질 수 있었다.


전화번호를 교환한 후에도 나는 부담스러워서 선배에게 문자를 보내지 못했다.


하지만 서연 선배는 매일 특별한 용건이 없어도 나에게 문자를 보내주었다.


으으... 자꾸 이러면 착각할 지도 모르는데.


나는 다른 매니저들이 하는 것처럼 땀수건과 포카리를 들고 쫄래쫄래 서연 선배 뒤로 달려갔다.


"선배, 여기 마실 거 가져왔어요."


목소리가 작아 들리지 않았나보다. 이럴 땐 좀 더 용기내서..!


"서... 선배! 여기요오..."


그제야 서연 선배가 여기를 바라본다. 


"아 얀붕이 왔구나! 고마워~


내 플레이 봤어? 오늘 경기는 어땠어?"


"멋졌어요... 헤헤."


경기가 끝나고 한적한 벤치에 돌아가 선배의 땀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얀붕이는, 갑자기 내가 널 매니저로 선택해서 좀 당황스러웠니?"


"아... 네에... 그치만 이렇게 멋진 선배랑 가까워질 수 있어서 좋네요."


갑자기 튀어나온 질문에, 저번에 선생님이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해버렸다.


뭐 어느정도는 맞는 말이기도 했고.


"후후... 멋진 선배라니, 영광이네.


미안, 네가 너무 귀여워서 내 마음대로 해버렸어.


원래대로라면 자연스럽게 알아가야겠지만...


네가 다른 여자들이랑 친해진다고 생각하니까, 짜증이 나는 거 있지?


나, 아마 입학식 첫 날부터 너에게 관심이 있었나 봐~"


서연 선배는 나를 보며 슬며시 웃어보이곤 말했다.


"노... 놀리지 마세요! 선배가 저처럼 소심한 애를 왜..."


그녀가 내 어깨을 붙잡으며 말했다.


"거짓말 아냐, 나 진지해."


"나한테 하는 짓마다 귀엽고... 말도 오물조물 이쁘게 하고... 처음엔 그거 나 꼬시려고 한 건줄 알았어.


그러다 정신차리다 보니, 계속 너만 생각하고 있었다고. 수업시간에도, 집에 혼자 있을 때도, 방금 부활동할때도.


대답은 지금 안 해줘도 돼. 그냥 알고 있어줘. 알았지?"


서연 선배의 기세에 압도당해서, 무슨 말을 하려 해도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선배는 다시 한 번 어른스럽게 나를 향해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솔직히 그간 같이 지내면서 어렴풋이 선배의 마음을 알고는 있었다. 단지 확신을 할 수 없었을 뿐이다.


나 같은 애가 도대체 뭐가 좋다고...


나는 서연 선배가 좋아할 만한 애가 아닌데.


"선배 아파요... 놓아주세요."


"저... 저는 그만 가볼게요! 수고하셨어요!"


나는 서연 선배가 손을 놓자마자 황급히 자리를 떴다.


멀리서 '얀붕아 잘 가~ 라고 말하며 손을 흔들어주는 선배가 보였다.


머리가 혼란스럽다.


난 어떻게 해야 하지...


***


이틀 후, 그 일이 있고나서 서연 선배와 한동안 만나지 못했다.


나는 점심시간에 옆자리 성아와 한창 수다를 떨고 있었다.


"이야~ 얀붕아 너 내가 그때 감아차기로 슛 넣은 거 봤었냐?"


"아니 그걸로 몇 번을 우려먹는거야... 유치하게, 애같아."


"애같은건 초딩같은 얀붕이 키구요~"


"너 말 다했냐!"


나는 말을 끝내고 성아에게 헤드락을 걸었다.


"우하핫, 조금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좀 더 세게 해보시지!"


물론 내가 걸어봤자 당연히 아프지 않을테지만 그 말에 오기가 생겨 더더욱 힘을 세게 줬다. 


"야야, 저기 봐 서연 선배야."

"서연 선배가 1학년 교실에 왜 오셨지?"


갑자기 교실이 소란스러워지는 바람에 주변을 살펴보았다.


교실 뒷문에는 서연 선배가 우리 쪽을 싸늘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


분위기가 심상치않음을 느끼고, 슬며시 성아에게 건 헤드락을 풀고 고개를 숙였다.


덥석!


"나랑 잠시 얘기 좀 할까?"


"저기, 얀붕이 친구니? 잠깐 얀붕이 좀 빌릴게."


"아, 네! 그러세..."


서연 선배는 성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막무가내로 내 가냘픈 손목을 잡고 이끌었다.


나는 두려움에 휩싸여 아무 말도 못하고 따라갔다.


***


선배는 나를 체육관 뒤편 창고로 데려갔다.


1년에 한 번 체육대회 때 쓸 물품을 보관하는 데 쓰이는 장소인데, 평소에는 양아치 선배들이 담배를 피는 곳이니 절대 가지말라는 신신당부를 성아에게 들은 적 있다.


"저기, 얀진아. 내가 잠시 여기 써야겠는데."


그 무섭던 일진 선배들이 서연 선배 한 마디에 담뱃불을 끄고 황급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저... 저기"


"야."


"...네?"


선배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나는 개미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만 낼 뿐이었다.


나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나 계신걸까,


내가 대답을 하지 않아서?


아니면 혹시 성아랑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이 선배를 자극한걸까?


"나를 가지고 노니까 재미있었니?


가만히 있어."


선배가 두 손목을 꽉 잡아채셨다.


나는 겁이 나서 팔을 휘저어 빼보려고 했지만...


갑작스럽게 서연 선배가 나를 벽 쪽으로 밀치더니,


...


그대로 키스했다.


선배가 내 가랑이 사이로 다리를 집어넣어 나는 조금도 저항할 수 없었다.


선배의 혀가 그대로 내 입으로 들어와 거침없이 내 입 안을 유린했고,


저절로 신음이 내 성대를 타고 흘러나왔다.


선배의 한 손은 내 머리를 잡고, 한 손은 마치 구렁이처럼 등에서 허리로, 엉덩이로 계속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 엉덩이를 세게 조물딱거렸다.


극심한 공포감에 손과 다리가 떨리고 머리는 새하얘졌다. 선배가 나를 다리로 받쳐놓지 않았다면 주저앉았을 것이다.


그녀는 점심시간이 끝나갈 때까지 나를 희롱해대는 걸 멈추지 않았다.


서서히 그녀가 머리를 떼자, 입과 입으로 타액이 얽혀 둘 사이를 연결하고 있었다.


선배는 엄지손가락으로 내 입을 닦아주었다.


"그만,하세요오... 이러는 거 무서워요..."


나는 다시 한 번 몸을 뒤흔들며 선배에게 저항했다.


"이거 놔아아..."


그럴수록 나를 구속하는 선배의 힘은 더욱 강해졌다.


"남자가 여자를 힘으로 이길 수 있을 거 같아?


원래는 느긋하게, 부드럽게 요리해 너를 먹어줄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바뀌었어.


이거 다 네 탓이니까 그렇게 알아."


"흐읏!"


그녀가 내 귀를 살짝 깨물었다.


"얀챈아파트 xx동 xx호."


우리 집 주소였다.


"누나가 얀붕이네 집 사정을 조금 잘 아는데~


아버지 어머니께서 카페를 운영하시고... 여동생은 바로 옆 얀얀초등학교 다니고 있지?"


우리 얀붕이, 허튼 짓 했다가는...


그때는 이 누나도 가만있지 않을거란다?"


"넌 이제 내 소유물이야."


***

모든 수업이 마치고 하교하는 길이었다.


나는 교실에 남아있다가 마지막으로 학교를 나섰다.


"흑... 히끅..."


걷는 중에도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내가 감당하기 버거운 너무 무서운 일이었다.


한참을 천천히 걷다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입학식 날과 똑같이, 교문에는 서연 선배가 서 있었다.


그녀의 뒤에는 고급 리무진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얀붕아, 이리 와야지...?"


온 몸을 벌벌 떨면서도, 나는 그녀의 품으로 다가갔다.


나는 그녀에게 저항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