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지금도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던 그 날.


술에 취한 남편에게 맞아 아기를 안고 무작정 밖으로 도망쳤던 밤. 

 


추위와 배고픔에 서서히 정신을 잃어가던 그녀의 눈앞에 일련의 무리가 나타났다. 

 


그들 모두는 검은 후드를 뒤집어쓰고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 모여든 그들은 수군수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마법의 재료로 쓰기 좋은 소재군.” “소질이 있어. 키우면 대성할 재목이야.” “그런 귀찮은 일을 누가할 건데? 네가 할 거야?” “귀찮으니 마법의 재료로 써버리는 게 더 나아.” “품 안의 아기도 쓸만한가?” “아니 저건 못써. 때가 타버렸어.” “애완 개구리의 먹이도 못되겠는걸.” “재물로도 못써 먹겠구먼.” 

 


“조용.”

 


웅성거림이 점차 커지던 와중, 한 노파가 꺼낸 한 마디에 모두가 숙연해졌다. 

 


“이 아이에게 선택하게 하지.”

 


노파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무릎을 굽혔다. 

 


“아기를 버리고 우리와 함께하겠느냐? 아니면, 사이좋게 얼어 죽을 테냐?”

 


씩 웃으며 말하는 노파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욕심이 많구먼. 너는 괜찮지만, 네 아기는 우리에게 쓸모가 없어. 데리고 가봤자 짐일 뿐이야.”

 


그녀는 침묵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노파는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금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지.”

 


노파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중 하나가 그녀의 품에서 아기를 안아 들었고, 그녀는 노파의 부축을 받아 그들의 무리에 합류했다.

 


그날, 그녀는 마녀가 되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났다. 

 

 


[낄낄. 설마 그때의 그 누더기가 황금알이었을 줄이야.]

 

“닥치고 어서 내 아이나 찾아. 할망구.”


[이런, 사역마를 다루시는 게 험하시구먼.]

 

 

노파의 안목대로 그녀는 마녀로서의 재능이 있었다. 


소위 천재라고 말하는 마녀가 한 사람 몫의 마녀로 인정받기에 걸리는 시간은 30년.

 

그녀는 10년 만에 그 업적을 달성해내고 5년 만에 한 파벌의 수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런 것들은 모두 부차적인 일에 불과했다. 


마녀가 된 이후로 그녀의 목적은 단 하나.


자신이 버린 아이를 찾는 것. 



[이해할 수가 없군. 어차피 만나도 어미라고 밝히지도 못할 것을.]


“...시끄러워. 당신은 어머니의 마음따위 모르겠지. 평생을 처녀인 채로 죽었으니.”

 


그녀가 아이를 살려주는 조건으로 노파와 한 계약은 세 가지였다. 

 


하나, 20년 안에 한 사람 몫의 마녀가 될 것.


둘, 아이를 만나도 자신이 어미라는 것을 밝히지 않을 것.


셋, 자신이 명을 다하면 자신의 혼령을 그녀의 사역마로 삼을 것.

 


단순한 구두계약이었다면 상관없겠지만, 노파와의 계약은 목숨을 담보로 한 주술로 맺어졌다. 


그녀가 이렇게나 빨리 마녀로서 대성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를 찾겠다는 목표도 있었지만, 자신의 목숨이 걸려있기 때문이었다. 

 


[오. 찾았군.]


“...어디야?”


[흐음...]


“빨리 대답해.”


[수도원이군.]


“...”

 


아이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겐 감사한 일이었지만, 수도원은 좋지 않았다. 


마녀사냥이 이미 먼 옛날의 일이 되었다지만, 여전히 수도원이 마녀를 보는 시선은 별로 좋지 않았다. 


거기에 아이가 수도사라도 되었다면, 아이를 빼내는 일은 요원하다고 볼 수 있다. 


최악의 경우, 마녀라는 이유로 아이에게 미움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녀의 입장에서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착잡한 마음을 추스르며, 그녀는 마부에게 행선지를 알렸다. 

 

 

“생각보다 작은 걸...”

 


도착한 장소는 시골의 작은 수도원이었다. 

 


[저기. 저 아이로군.]

 


사역마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신부복을 입은 한 소년이 있었다. 

 


뒤로 묶어 내린 긴 금발.


아직 젖살도 빠지지 않은 얼굴은 조금 앳돼 보인다. 

 

그다지 크지 않은 키에 마른 몸은 자칫하면 여자로 착각할 법했다.

 

 

15년 만에 보는 아이였지만, 그녀는 첫눈에 소년이 자신의 아이임을 알아챘다. 

 

 

감격에 차 소년에게로 뛰어가려는 그녀의 귀에 사역마가 속삭였다.

 


[모쪼록 계약을 잊지 말도록.]


“...”

 


사역마의 말은 짜증을 불러일으켰지만, 들뜬 마음을 추스르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자신의 아이와의 첫 만남에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었다. 


짧게 심호흡을 한 그녀는 신부복을 입은 소년에게도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신부님.”


“아. 안녕하세요. 마을 분은... 아니시군요.”

 


초대면인 인물의 등장에 소년은 조금 경계심을 품은 듯했다.

 


“네. 잠시 지나가던 차인데. 수도원이 보여서요. ....고해성사를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지금은 신부님이 안 계셔서요. 저는 어디까지나 임시라서...”


“임시라도 괜찮으니 신부님께서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안 될까요?”

 

 

잠시 고민하던 소년은 이내 ‘대신 신부님께는 비밀입니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해소에 들어간 소년은 약간 들뜬 것처럼 보였다. 


임시 신부의 신분으로 신부의 일을 한다는 것이 기뻤던 걸까. 


들뜬 소년의 모습을 보니 그녀의 마음도 포근해지는 것 같았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네.”

 

“어떤 죄를 고백하러 오셨나요?”


“...”

 

 

막상 말을 꺼내려고 하니 입을 잘 떼지지 않았다. 

 


“괜찮으니까. 천천히 말씀해보세요.”

 

 

소년의 응원에 힘입어 그녀는 천천히 운을 떼기 시작했다. 

 


“저에겐... 아이가 있었습니다.”


“저 혼자만으로도 벅찼던 저는 아직 채 철도 들지 않은 아이를 버렸습니다.”


“그렇게 그 아이를 잊고 살아가다가, 최근에 와서 그 아이라고 생각되는 아이를 찾았어요.”


“지금이라도 그 아이의 어미 역할을 하고 싶다는 건 제 욕심일까요?”

 

 

도중부터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했다.

 

애써 감추는 듯 보이지만, 고해소 너머로도 그녀가 흐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흐느끼는 그녀를 어쩌지도 못하고 당황하던 소년은 이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고아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본적도 없어요.”

 

“이미 철이 들 때쯤에는 수도원에 있었고 신부님을 아버지라고 생각하며 자랐죠.”


“어릴 때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원망한 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원망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감사하고 있어요.”


“어찌 되었든 그분들 덕분에 제가 태어날 수 있었으니까요.”


“...제가 그 아이가 아니니까 함부로 말은 못하지만, 진심으로 어머니를 미워할 수 있는 아이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게 설령 어떤 형태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한 것이 부끄러웠는지 소년은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소년의 말을 들으면서, 그녀는 멈추지 않는 눈물을 어떻게 멈추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번 터진 눈물은 좀처럼 멈추지를 않았다. 


울다가 지쳐버린 그녀는 나지막하게 소년에게 한 마디를 건냈다.

 

 

“감사합니다...”

 

 

그녀의 감사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이렇게 착한 아이로 자라준 것에 대한 감사.


못난 어미인 자신을 원망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


이런 자신이라도 낳아줘서 고맙다고 말해준 것에 대한 감사. 

 


 

마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


눈이 부은 그녀를 보고 사역마가 얕게 읊조렸다. 

 


[추악하군.]


“...”


[당사자는 모른다고 할지라도 그런 식으로 자신의 죄책감을 지우려고 하다니.]


“...닥쳐.”


[정말로 마녀다워서 좋아.]


“...”


[자, 이제 어쩌려는 거지? 그 아이를 주술로 홀려서 데려가기라도 할 건가?]


“그런 짓은 안 해.”


[어째서지? 그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아닌가? 그 아이가 수도원에 있는 건 너에겐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인 것을.]


“...그 아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할 생각은 없어.”


[...경고하지.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게 될 거야.]


“그건 ‘예지의 마녀’로서의 예언인가?”


[아니. 이런 일에는 굳이 예언의 힘을 쓸 필요도 없지.]


“...그 아이를 한 번 버린 내가 그 아이의 앞길까지 방해할 수는 없어.”


[아직도 인간을 버리지 못했군. 마녀라면 자신의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게 좋을 거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그 아이와 시간을 공유하고 싶다면, 굳이 모친의 위치에 구애될 필요가 있나?]

 


“...”


[마녀는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자들, 굳이 인간의 규율에 얽메일 필요도 없지.]


“...나보고 그 아이의 여자가 되라고?”


[그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는 거다.]


“...그런 농담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 아이와 다른 여자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넌 참을 수 있을까?]


[이제야 겨우 만나게 된 아이와의 시간을 다른 여자에게 뺏기는 걸 네가 참을 수 있을 거라고?] 


[목숨을 걸고 마녀가 되어 그 아이를 찾으려고 한 네가?]


[그 아이와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 눈물을 흘려댄 네가?] 

 

[그거야말로 농담이지.]


[솔직해져라. 마녀.] 

 


[네가 그 아이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은 단순히 모성이라는 말로 포장할 수 있을 만큼 가볍지 않아.]

 


그녀는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사역마의 말을 무시했다. 


사역마도 더 이상의 말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는지 입을 다물었다. 



마차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정말로 농담이 아닐 수 없다.

 


사역마의 말도

 

그런 사역마의 말에 혹한 자신도.





몬챈 대회용 글인데, 얀챈 대회에도 올려도 상관없대서 말머리 바꿨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