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팔의 연장선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팔이 움직였다. 어깨에서 내질러진 팔의 움직임은 팔꿈치를 타고 본래의 내 손보다 길게, 더 길게 뻗어갔다. 날카로운 칼끝의 검신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 팔이 눈 앞의 외눈박이 오크를 향해서 뻗어 가고 있었다.


 미간에 박힌 단 하나의 눈, 흰 자위를 중심으로 이끼처럼 퍼지는 초록 피부. 그 정중앙에 박힌 갈색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 악취나는 몸에 인간으로썬 상상할 수 없는 근육이 나를 향해 거대한 나무 몽둥이를 휘두르려 하고 있었다.


 인간보다 강하다. 그러므로 외눈박이 오크는 인간을 사냥했다. 그 때문에 목숨을 잃은 인간이 수 명. 어쩌면 나도 그 중 하나가 될 지도 몰랐다. 심장이 뛰고, 정신은 그 어떤 때보다 결연하다.


 오크가 휘두르는 몽둥이의 위력은 알고 있다. 이미 전투현장 곳곳의 바닥이 패여 있다. 이대로라면 오크가 휘두른 몽둥이가 내 머리에 직격할테고 내 머리는 수박처럼 빨간 핏물을 쏟아내며 터져나갈 것이다.


 오크는 마치 활을 쏘는 듯이 팔을 뒤로 당겼다. 정직한 동작이다. 하지만 저 힘에 내가 모르는 생명들이 죽어갔다. 누군가의 아버지가, 누군가의 아들이, 혹은 나의 이름모를 동료가.

 그럼에도 내가 뻗은 칼은 멈추지 않았다.

 오크가 휘두르는 몽둥이의 동작이 곡선으로 포물선을 이루고, 내가 뻗은 검의 칼 끝이 직선을 이룬다. 내가 더 빠르다. 먼저 찌른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할 뿐이었다. 내가 또 한 명의 이름모를 전사가 될 지 모르더라도, 이렇게 해야만 했다. 머릿속으로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한다면 이길지도 모른다는 걸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러므로 나는 내찌른다.


 이 칼 끝에 결연한 의지를 담아, 오직 오크의 외눈만을 바라본 채 칼을 내뻗는다.

 내가 뻗은 칼은 내 늘어난 팔과 같다. 순간 팔과 이어진 칼의 도신이 확연한 직선으로 내 눈에 보였고, 나는 그때 알 수 있었다.

 나는 오크의 단 하나뿐인 외눈에 칼을 박아넣었다.


 오크의 왼눈에서 붉은 핏물이 튀어나와 녹색 피부를 덮는다.

 내 머리를 향해 덮쳐 오던 외눈박이 오크의 나무몽둥이는 공중에서 멈추고, 오크의 몸은 뒤로 쓰러져간다. 내 칼은 오크의 외눈에 박혀 있고 나는 그것으로 수 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오크의 목숨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살인병기로 쓰였던 우직한 나무몽둥이가 공중에서 힘없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비로소 이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아... 하아..."



 검을 놓친 나는 땅을 바라보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바로 앞에선 눈알에 칼을 꽂아넣은 오크가 그르륵 거리는 소리를 내며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오크의 머리쪽으로 걸어 가 오크의 눈알에 박아 넣은 칼을 뽑았다. 피슉 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 피가 튀었다.


 아직도 채 집중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때,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해냈구나~ 역시 이길 줄 알았다니까!"


 활과 화살을 꺼내든 채 녹색의 위장 후드를 뒤집어 쓴 궁수가 뒷편에서 나타났다.

 금발에 녹안의 가진 여성 엘프였다. 나는 칼을 휘둘러 묻은 피를 털어내곤 칼집에 검을 꽂았다. 마음에서 의뢰를 받은 외눈박이 오크도 처리했으니 이제는 쉬고 싶다. 나는 엘프 궁수에게 뒷 일을 맡겼다.


 내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엘프 궁수는 신난 듯이 가볍게 오크의 곁으로 뛰어가더니 손에 쥔 화살로 오크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콰직하고 뇌수가 터지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 나름의 확인사살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몇 번 더 콰직, 콰직하고 소름끼치는 소리를 낸 엘프 궁수는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 오크의 귀를 슥 슥 자르기 시작했다.


 "눈알을 가져가려 했는데 이래선 못 가져가겠네~ 완전히 터졌어!"


 나도 이런 식으로 처리하고 싶진 않았는데. 온 몸이 땀에 흠뻑 절었고, 오크의 피도 뒤집어 쓴 탓에 굉장히 찝찝하다. 전투 중엔 흥분 상태여서 느끼지 못했지만 전투가 끝나고 나니 비 오는 거리를 걷는 것 같은 눅진한 무거움에 휩싸였다.

 엘프 궁수는 의뢰를 성공적으로 처리했단 증표를 가지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내 곁으로 나가왔다. 엘프답게 걸음소리도 들리지 않고, 재빠른 몸놀림이었다.


 "괜찮아? 피곤해? 마을까지 업어다 줄까?"


 "혼자 갈게."


 나는 옆에서 부축하려는 엘프 궁수의 손길을 치웠다. 너무 피곤하면 다른 사람의 손길을 받는 것도 짜증날 때가 있다 지금 딱 그때다. 지금은 그저 무거운 몸을 질질 끌고 마을로 돌아가서 낡고 삐걱거리는 침대 위에 몸을 던지고 싶다.

 나는 절그럭거리는 철갑옷의 이음새부분을 풀었다. 매번 이길지 질지 알 수 없는 진절머리 나는 전투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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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마법사는 자신의 옆에서 아니꼬운 듯이 쳐다보는 하수인의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저 녀석 완전히 죽을 뻔 했다고."


 "아니야~ 방금 못 봤어? 완전 멋있었다고! 저 애는 분명 용도 잡을 거야. 외눈 오크로는 끄떡도 하지 않는 걸. 봐봐, 지금도 아무렇지 않아 하잖아!"


 숲 속에 있는 흑마법사는 특이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귀가 뾰족했고, 금발에 녹안이었다. 발랄하고 상큼한 높은 목소리가 여자라는 것을 알게 했다. 편안하게 하수인과 함께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는 걸 보면 평범한 흑마법사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외눈 오크를 죽인 소년과 함께 있었다.


 "봤어, 봤어? 칼을 슉 하고 뻗어서 푹 찍! 저 커다란 외눈 오크가 단칼에 죽었다니까? 내가 대려온 애지만 여기서 사람을 몇 명이나 죽였는데. 저 정도 외눈 오크를 단칼에 죽일 수 있는 전사는 분명 저 아이뿐만이라니까?"


 흑마법사의 하수인은 아니꼬운 눈으로 주인을 바라봤다. 이 여자 엘프는 한참 전부터 미쳐 있었다.

 떡잎 상태였던 인간 전사를 발견했을 때부터, 눈깔이 완전히 돌아가 있었다. 자신이 흑마법사라는 것도 숨기고, 평범한 엘프 궁수인 양 변장해서 접근했을 때는 이 여자가 도저히 맛이 가서 손 쓸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음번엔 어떤 몬스터를 대려오지? 이젠 트롤 같은 건 손쉽게 처리하는 거 아냐? 꺄아! 멋있어! 와이번을 대려와야 하나? 저 아이는 분명 나중엔 용 같은 것도 분명 잡을 거라니까!"


 그리고 미친 흑마법사가 인간 전사의 성장을 위해서라며 자신이 주변에서 몬스터를 끌고 올 때는 정말 미친건가 생각했다. 이 여자는 즐기고 있었다. 인간 전사가 살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며 뒷편에서 황홀감에 빠진 표정으로 즐거워 하고 있었다.

 정말 죽을 것 같은 위험한 상황이면 화살 한 발 예측 못한 사격을 날려주어 기회를 주기도 했다. 본인은 그러면서 신뢰를 쌓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저 인간 전사는 이미 타인에게 불신으로 가득차 있다. 주인인 흑마법사가 즐겁게 접근해도 웃는 표정을 보지 못했다.


 소년의 주변에 오는 몬스터는 모두 엘프 여자가 끌고 온 것이다.


 소년의 성장을 이유로, 극한의 시련을 안겨주어 그가 살려고 몸부림치는 발버둥을 보고 즐거워 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가 성장하면, 마치 자신의 아이를 키우는 것 마냥 즐거워한다. 엘프 여자는 사랑에 빠져 있다. 완전히 미친 방향으로, 도저히 끝을 모르는 잠재력을 가진 전사의 출현에 광기의 집착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외눈박이 오크 다음엔 더 강한 몬스터가 올 것이다.


 말한대로 와이번? 상위 트롤이나 오우거일지도 모른다. 정확한 건 그 몬스터들은 모두 흑마법사가 끌고 온 것이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인명 피해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엘프 흑마법사는 다른 사람의 목숨은 신경쓰지도 않았다. 날파리나 다름없었다. 오직 소년만 제외하고, 소년이 몬스터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주변의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 관심을 끌게 했다. 어쩔 수 없이 소년이 몬스터를 퇴치하게 했다. 소년이 죽을 고비를 넘기게 했다. 그렇게 즐거워 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몬스터에게 짓밟히며 엘프 흑마법사는 즐거워했다. 이 또한 소년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줄 뿐이니까. 소년에게 더욱 강한 동기부여를 해 줄 뿐이니까.


 엘프 흑마법사는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자신이 다룰 수 없는 강한 몬스터에 도달하기를, 그리고 그 뒤를 지켜보기를 원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전사로, 자신이 키운 전사로, 자신이 만들어내고 일구어낸 세계 최고의 전사로. 그건 이미 사랑이나 광기를 뛰어넘었다.


 엘프 여자는 어쩌면 소년의 마지막에 상대하는 몬스터가 자신이기를 원하는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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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단편밖에 쓰지 못하는 병에 걸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