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함이 진리다. 그리고, 그 강함을 가진 자의 말은 절대적인 가르침이다.”

 

“살면서 제대로 익힌 고기도 잘 먹지 않을 야만인이나 할 법한 이 생각이 참으로 안타깝게도 내가 전수 받은, 그리고 앞으로 네가 배우게 될 사자의 검의 전통이다.”

 

“참으로 맘에 안 들지만, 전통인 이상 따를 수밖에 없지. 그러지 않는다면, 쌓아 올린 근간 그 자체가 무너져버리니까.”

 

“네가 지금 이 총인원 2명밖에 없는 검술 문파의 대표가 되고 싶다면, 현 대표인 나를 검으로 쓰러트려라. 지금의 나한테 뭔가 가르쳐주고 싶은 게 있다면 말이야.”

 

“……그렇게 하면 당신은 행복하나요?”

 

여태껏 조용히 경청하던 소녀가 조심스레 묻는다.

 

층분히 딱딱한 모습이지만, 평소의 네, 아니요. 만 기계적으로 내뱉던 것과 비교하면 천지차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엘프와 인간의 혼혈, 그 탓에 어느 측에도 어울리지 못하고 노예상에 비싸게 팔려갈 소녀를 거둬들인 선생은 놀람을 감추며 그녀의 궁금증을 해결해주었다.

 

“검도 제대로 잡지 못 하는 제자가 선생을 넘어설 때까지 성장하는 걸 보고 기뻐하지 않을 선생은 없을 거다.”

 

“……알겠습니다.”

 

그때 소녀의 앞머리가 길어 얼굴의 대부분을 가렸기에 선생은 보지 못 했다.

 

선생과 함께 있을 때만 생기를 되찾던 소녀의 눈이 지금까지 없었던 정도로 불꽃을 품은 것을.

 

 

 

 

 

 


***

 

 

 

 

 

 

 

“윽!”

 

“끝이다. 이걸로 1,112번째 패배구나.”

 

“더 할 수 있어. 아직...”

 

“끝났다고 했지. 그만 검을 집어넣어.”

 

“아직, 괜찮아. 한 번 정도는 더 할 수 있어.”

 

네가 아니라 내가 힘들단 말이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제자와의 검술 대련.

 

듣기만 해도 진이 빠지는 이를 3년이 넘게 빠짐없이 해온 선생은 목도를 거꾸로 하여 손잡이로 검을 잡은 제자의 머리를 툭 때렸다.

 

“검을 집어넣으라 했다. 그리고, 선생에겐 제대로 존댓말을 쓰라고 헀을 텐데.”

 

“어차피, 내가 사자의 검 대표가 되면 그럴 필요가 없는데.”

 

“그러니까, 그전까지는 쓰란 말이다.”

 

아직 되지도 못한 사자의 검 대표라는 뜬구름을 바라보는 제자에게 다시금 현실을 깨달으라며 선생은 다시금 그 머리를 때렸다.

 

 

 

 

 

 

 

 

***

 

 

 

 

 

“저기, 선생님.”

 

“뭐냐.”

 

이젠 2,000을 넘어버린 횟수의 대련이 끝난 뒤, 죽겠다며 늘어져 휴식을 취하던 선생에게 찾아온 제자.

 

고작 제자 1명밖에 없는 꼴이라지만, 그래도 자존심은 세워야 했던 선생은 급히 자세를 고쳐 잡았다.

 

“……풉.”

 

물론, 제자는 그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눈에 담았다.

 

완벽한 컨디션으로 휘둘러진 선생의 쾌검도 어느 정도 반응하는데, 저런 걸 놓칠 리가 없었다.

 

“웃으러 온 거라면 더 좋은 데가 있으니 그리로 가라.”

 

“아, 아니야.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온 거야.”

 

얼굴이 붉어지는 걸 겨우 참은 선생이 축객령을 내리자 제자는 급히 이유를 말했다.

 

그 흔한 질문 하나 없이 복잡한 검을 배우는, 죽어라 존댓말을 쓰라고 말해도 안 듣는 저 고약한 기지배가 궁금한 거라니?

 

그 윤곽조차도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기에 선생은 저 작은 입술에서 나올 질문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사자의 검은 지금 이 형편 없는 규모에 반해 상당히 옛날부터 존재했다고 했었지?”

 

“그렇다.”

 

“그리고, 사자의 검 대표는 검으로 이긴 사람이 차지한다고 하는 게 전통이라고 했고.”

 

“그래.”

 

“……그렇다면, 선생 이전 사자의 검을 대표하던 사람들은 대표의 자리에서 내려간 뒤 전부 어떻게 된 거야?”

 

“그게 궁금했던 거냐?”

 

제자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알 것 같은 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선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이젠 소녀가 아닌 한 여자가 되어버린 제자의 머리를 늘 하듯이 거칠게 헝클었다.

 

“걱정하지 마라. 나는 선대 멍청이들과는 다르니까. 너한테 질 일도 없으며, 졌다고 해서 ‘이곳을 대표하지도 못하는 내 검은 의미가 없다!’라며 자결을 하거나, 자리를 되찾으려고 무리하다가 몸이 상해 죽는 일은 없을 거다.”

 

“……정말인 거지?”

 

“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한 적이 있냐?”

 

“아니, 없었어.”

 

“그래.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너 같이 손이 많이 가는 놈을 버리고 어디 갈 일은 없으니까.”

 

“……정말이지?”

 

방금 내가 거짓말을 한 적이 있냐 물어보지 않았나?

 

순간 의문이 들었지만, 시간도 많이 늦었기에 ‘그래. 그러니까 어서 가 잠이나 자라’ 며 선생은 제자를 돌려보내었다.

 

 

 

 

***

 

 

 

 

 

 

“하아... 하아...”

 

“내가 이긴 거지..?”

 

방금까지 손에 쥐고 있었으나 바닥에 떨어진 목도, 그와 똑같은 물건이 목까지 들이닥쳤다.

 

바로 어제까지와 비교하면 정반대의 상황,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던 선생은 목을 가다듬었다.

 

“그래. 네가 이겼다.”

 

제자가 선생을 이겼다.

 

2,311번째의 도전, 끝을 모를 법한 그 도전의 끝내 결국 승리를 가져온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내가 사자의 검 대표. 그렇지?”

 

전통에 따라 사자의 검을 대표하는 자는 가장 강한 검을 가진 자다.

 

제자랍시고 손대중이라도 두었다면 모를까 진심으로 상대해서 이렇게 땅에 처박힌 선생은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그래. 이제부터 네가, 대표님이십니다.”

 

“그럼, 지금부터 바로 내가 널 가르쳐도 되는 거지?”

 

이젠 선생이라 부르지도 않고 곧바로 너다.

 

정말로 태세전환이 빠른 모습에 어이가 없어하던 와중 전 제자, 현 스승이 검을 내려놓고 엎어진 현 제자를 일으켜 세웠다.

 

“그래. 근데 뭘 가르치려고 그러는 거냐?”

 

“아주 중요한 거야. 이렇게 되면 내가 어떻게 해서든 처음으로 가르치려고 했을 정도로.”

 

“도대체 내게 뭘 시킬 생각인 거야?”

 

“간단해. 잠시, 눈을 감고 서 있어. 그것만으로 충분해.”

 

제자가 뭘 할지 감이 안 잡혀 살짝 불안했으나, 선생은 군말 없이 눈을 감았다.

 

수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저 아이가 이루고자 했던 거다. 그 장단에 맞춰주지 않으면 선생으로서, 어른으로서 탈락이니까.

 

그렇게 얼굴에 낙서하는 거라면, 내가 했던 것과 달리 좀 잘 지워지는 거로 하길 바란다며 선생이 어둠 속에서 때를 기다리던 와중.

 

와락!

 

무언가가 선생의 몸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사람이라곤 제자와 선생밖에 없는 이 집에서 선생을 끌어안을 무언가는 제자뿐.

 

곧바로 이게 무슨 일이냐며 선생은 급히 눈을 떴으나, 이미 늦었다.

 

팔로 선생의 목을 휘감은 제자의 얼굴이 이미 바로 앞에 있었다.

 

츄읍.

 

질척이는 소리가 울리며, 두 입술이, 그 안에 있는 혀가 엮인다.

 

떨쳐내려고 했으나, 대련으로 힘이 빠진 선생과 달리 제자는 아주 힘이 넘쳤다.

 

그렇게 서로의 호흡이 얽히길 몇 분, 떨어지기 싫다는 듯 실처럼 침을 늘어뜨리며 제자는 겨우 떨어졌다.

 

“콜록! 콜록! 너 이게 무슨 짓……”

 

“좋아해.”

 

입에 들어온 이물, 그 주인이 오랜 시간 가족, 친구처럼 함께한 제자라는 것에 혼란이 온 선생이 말을 꺼내기도 전 다시금 제자는 선생을 끌어안았다.

 

“아무것도 아닌 나에게 제자라는 역할을 주고, 세상을 살아가는 기쁨을 알려준 당신을 좋아해요.”

 

“그래서 7년간 끊임없이 당신에게 이기려고 했어. 선생인 당신은 제자인 내가 훌륭하게 자라는 것 말고 바라는 게 없다고 늘상 버릇처럼 이야기했으니까.”

 

“그리고, 선생이 되면 당신에게 가르칠 수 있으니까. 지금 내가 이렇게 당신을 좋아하는 마음을.”

 

제자가 스승이 되었다.

 

그리고, 7년간 숨겨놓았던 속내를 고백했다.

 

무엇 하나 선생에게 충격적이지 않은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

 

 

 

 

 

 

“그나저나, 어떻게 하루 만에 실력이 이렇게 늘은 거냐.”

 

혼란스러운 제자의 고백이 끝난 뒤, 저녁. 선생은 여태까지 묻혀있던 의문을 물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명백했던 실력 차. 웬만한 마법으로도 절대 메꿀 수 없던 간격을 뒤집어버린 그 이유가 궁금한 것이다.

 

“몰라.”

 

“모른다고?”


“응, 전혀. 감도 안 잡혀.”

 

"네가 감이 안 잡히면 누가 그걸 안다는 건데..."


7년간 키운 제자의 좋아한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평소와 같은 자세를 취하였다.

 

오늘 있던 일은 이제 막 21살이 된 아이가 순간적인 감정에 휩쓸려 착각하고 만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어른인 내가 단단히 지지해주고 바로잡아줘야지. 괜히, 같이 혼란스러워하면 일만 커진다.

 

“그보다, 나도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

 

“뭔데.”

 

“어제 점심에 붉은 구름 여관에서 식사하면서 함께 떠든, 약간 긴 금발의 여자는 누구야?”

 

이어지는 제자의 질문에 선생은 수프를 뜨던 수저를 멈춰야만 했다.

 

어제. 분명, 볼일이 있어서 저녁쯤에 돌아온다. 집 좀 잘 지키라고 했고, 그에 네라고 대답한 놈이 어떻게 내가 어디서 점심을 먹었는지 누구와 함께 있는 걸 어떻게 아는 거지?

 

설마 미행한 건가? 그리고 나는 그걸 눈치를 못 챘고?

 

“……사자의 검 대표가 묻고 있잖아. 빨리 대답 안 해?”

 

평소와 똑같은 제자의 푸른 눈에 정체 모를 무게감이 깃든다.

 

그 위압감에 순간 몸을 떤 선생은 알 수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전통에 따라 저 제자에게 대표 자리를 찾아오지 않으면 뭔가 일이 일어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