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몰랐던 사랑



어? 어?

몸이 이상하다. 

옴짝달싹 못하는게 아 가위 눌렸구나. 

얼른 꿈에서 깨어나야지 싶어 손가락 끝에 힘을 주어도 꿈에서 깨질않는다. 

"하아 하아" 

가쁜 숨을 몰아쉬는 여인의 소리와 맡아본적 없는 무겁고 달콤한 여인들이 쓸 법한 향수냄새.

"드디어 잡았어."

 자신을 안은 채 목덜미에 입을 맞추는 그녀는 꿈속인데도 현실감이 있어 등에 소름이 돋는다.

이쯤이면 잠에서 깨는데 이상하다. 

계속 조금씩 손끝 발끝을 움직여봐도 움직이질않는다.

"하아, 얼굴도 볼래."

어둠에 익숙한 두 눈 앞으로 보이는 본 적 없는 광경.

눈을 가렸던것보다는 밝지만 유난히 어두운 방조명덕에 빠르게 눈이 시야를 회복한다.

그를 안고있는 하얀 목덜미너머로는 어항이 가득하고

큰것부터 작은 것까지 열대어들이 각자 조용히 헤엄치고있다.

꿈이 오래가네

"끄히 어헤가헤."

혼잣말을 하는데 입안에 뭔가 있는지 말이 잘 안나온다.

"아냐 꿈이 아닌걸. 문수는 이제 내꺼야."

귀에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는 거짓이 아니다. 

멀리에 있던 시선을 끌어당겨 자신을 안고있던 여인을 바라본다.

보라빛의 눈을 가진 그녀는 광대가 승천하듯 웃으며 문수 입을 막고있던 볼을 빼준다.

고였던 침이 조금 흐르지만 묶여있는 손은 빠지질않고 그녀가 정성스레 수건으로 닦아준다.

"욱, 뭐야? 당신 누구....."

아니다. 자극할 필요는 없겠지.

"누구신가요?"

"나를봤어 드디어 날봤어 그 해충년들이 아닌 나를 봤다고 히히히히히."

조금 아픈 친구인것같은데 걸려도 단단히 잘못 걸린것같다. 

보랏빛눈동자를 가진 준수한 외모의 백인이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많이 아픈 친구로 보인다. 

"문수 어때?"

뭘 물어보는지는 모르겠지만 통성명을 하자.

"저는 그쪽 이름을 잘 모르는데 혹시 이름을 알려주시겠어요?"

"아야네. 착한 아야네는 문수가 보기만을 기다렸어."

외모는 서양인이지만 이름은 일본어에 유창한 한국어라니 이 무슨 끔찍한 혼종인가.

"아야네가 문수를 가지고싶었는데 그 얄미운 도둑고양이 해충들이 얼마나 방해하는지 몰라. 

특히 그 가짜수녀. 건방지게 축성물을 당신 방에 흩뿌려놔서 고생 좀 했어."

다시 그의 목 안쪽을 혀로 핥는다. 

"음 하지만 이젠 상관없어. 이제 문수는 내거니까 천천히 음미해줄게."

특정취향인 이들에겐 포상이겠지만 그는 그런 취향이 아니다. 

샬럿의 매도를 가끔 즐기긴했지만 그런 일상 속의 가벼운 매도와 

갇힌 채로 아무것도 못하고 맛보겠느니 뭐니하며 희롱당하는건 이야기가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꿀맛같은 진짜 일절 노터치 일주일짜리 휴가를 이렇게 보낼 순 없다. 

냉장고의 차갑게 식혀둔 파타고니아 맥주와 프레첼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계속해서 작은 신음과 함께 그의 목을 핥으며 달라붙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말랑한 입술과 혀의 감촉은 분명 기분 좋지만 이 여자가 언제 그의 몸에 바람구멍을 낼지 모르니 잔뜩 신경을 곤두세운다. 

한창 핥고 빨아대던 그녀가 입을 떼고 그를 바라본다.

소파에 앉혀져 몸이 묶인 문수 위에 올라탄 그녀는 일부러인지 찰싹 달라붙어선 이미 될대로 된 그곳을 자극한다.

"문수는 나를 기억못해? 기억못해? 정말 기억못해?"

"스쳐도 인연이니까 본 것 같기도 하구요."

인연이라는 단어에 확실하게 반응한 그녀가 더욱 강하게 들러붙는다.

"좋은 단어야 인연. 히히히히"


시간을 거슬러올라가 휴가의 이틀째 되던 날이었다.

연락이 자주오긴하지만 그녀들 나름대로 정말 휴가를 보장해주려는 것인지 무단침입도 없었다.

그런 안락함을 만끽하던 문수는 오랜만에 하릴없이 동성로 산책을 하고 있었고

한동안 가지 못했던 카페 `더가든`에  들러 주문을 했다.

그 예쁜 알바생은 오래도 있더만 결국 다른 곳으로 갔나보네. 

하긴 그 예쁜 외국인알바생 보려고 온 손님으로 작은 카페가 북적북적했으니 

다른 돈많은 대형카페에서 스카웃해가지 않았을까?

무심하게 오래간만에 나온 우에하시 나호코의 신작을 

페이지를 아껴가며 읽는도중 번쩍 의식의 흐름이 끊겼다.



"그 카페에서 당신을 보는게 내 낙이었는데 어느날부터 오질 않아서 찾아봤더니 

이 해충들이랑 어울리고 있었어."

"당신 그때랑 머리랑 눈동자색깔이 다른데요?"

"어딜가나 너무 튀니까 염색하고 렌즈를 꼈어. 난 예쁘니까. 

다른 이유도 있지만 혼자 와서 말없이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보기좋았어."

그녀가 문수의 얼굴을 손으로 감싼다. 

"어째서 고백하지않는거야? 나처럼 예쁜 사람은 별로 없어. 거기에 몰래몰래 쿠키도 하나씩 줬었는데."

"앗, 그거 서비스아니었나요."

"아냐. 그 커다란게 서비스면 장사망해."

하긴 그의 손바닥정도는 됬으니 무척 커다랗긴 했다.

그저 아픈 친군줄 알았는데 꽤나 장삿속이 있다.

"잠시만 그럼 그쪽이 주인이에요?"

"당연하지. 아빠가 건물째로 사줬거든."

진짜배기 금수저다. 

많이 쳐줘봐야 그와 동년배로 보이는 그녀가 동성로 정중앙 근처의 건물을 가지고 있다니.

"돈도 있고 미모도 출중한 나지만 고령 박씨 38대손 박문수는 가지지 못했지."

그녀가 조용하게 혼잣말을 하더니 그의 허벅다리 안쪽으로 손을 옮긴다.

"아니 어떻게 저도 모르는 38대손인것도 아세요?"

"후후 사랑이란 이런거야."

바지 후크를 능숙하게 한손으로 벗기려하지만

어설픈 나머지 계속 헛손질만 한다. 

"익, 익. 이게 왜 이렇게 안되는거야."

자존심 문제가 됬는지 남는 손을 쓰지않고 한손으로만 열어보려 애를 쓰지만 

아쉽게도 남녀바지 후크 방향이 반대인것을 모르는 그녀는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요. 그건 그렇다치고 아무리 용감한 남자라도 멍청한게 아니라면 점원에게 고백하진 않아요."

문수의 말을 믿지못하는지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든다.

"왜왜왜왜왜? 영화에서는 그렇게 자그마한 성의로 시작하던데?"

물론 그녀처럼 예쁜데다 돈마저 많은 금수저 집안의 여인이라면 기꺼이 

기둥서방 셔터맨 셔틀버스맨 남성가정주부 피규어남 하인 

그 어떤 용어로 표현하든 그런 쪽으로 충실할 자신은 있다. 

"직원이 친절의 표시로 그걸 준건지 애정의 표시로 준건지 어떻게 압니까. 

거기다 겨우 그런거 가지고 고백을 하다니 바보아니면 안하죠. 

그런건 옛날 애니메이션의 편지고백이랑 마찬가집니다."

후두둑. 손발을 묶어놓았던 매듭이 풀린다.

"아 아아 아안돼!"

꽁꽁 묶어놓았으니 그녀는 안심했겠지만 

보통사람들은 매듭에 대해서 능숙하지 않다. 

남자들조차도 군대나 뱃일할때 눈치껏 배울뿐이지 

제대로 배울일이 없는데 하물며 그녀가 어떻게 잘 묶었겠는가. 

그냥 되는대로 이래저래 꼬았을뿐이고 그런 매듭은 잠에서 깨어 손발에 힘이 다 돌아온 후 

천천히 움직여가며 느슨하게 한 상태에서 힘주는 정도 한번에 스륵 풀릴뿐이다.

"싫어. 가지마."

문수를 꽉 끌어안은 그녀. 

그러나 합리적 겁쟁이 문수는 그런 그녀를 덥썩 받아먹을 의향따위 없다.

시대가 어느시대인데 말이야. 

엉거주춤 몸을 뒤로빼며 그녀에게서 벗어난다.

금새라도 눈물을 펑펑 흘릴듯 눈시울이 붉어진 그녀는 별수 없다는 듯 전기충격기를 손에 쥔다.

틱티디딕 소리와 함께 스파크가 튀는 저것이 아마 그를 여기로 인도한 일등공신일것이다.

"자 잠시 그거 내려두고. 그렇죠. 자 어디 안가니까. 네 좋아요."

이번에는 부엌에 달려가 식칼을 든 그녀.

덩치차이에다 신장도 차이가 있으니 이 정도는 얼추 제압할수도 있지만 

그렇기에 잘못해서 어느쪽이 다쳐도 무조건 문수쪽이 손해다. 

"아뇨 아뇨 아뇨. 자, 내려두세요. 어허, 진짜 어디 안간다니까요." 

전혀 믿지않는지 식칼을 쥔 채 저벅저벅 다가온다.

자, 보세요. 여기 앉을게요."

아까전까지 묶여있던 그 자리에 자연스레 앉는 문수를 보고 그제서야 식칼을 내려놓고 그의 옆에 앉아 딱 달라붙는다. 

"진짜 안갈거야? 그럼 뭐할까?"

한쪽 팔을 감싸안은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문수를 바라보고있다.

"같이 놀아야죠. 그 뭐냐 이야기도 좀 해보고 좋아하는게 뭔지 물어보기도하고요."

"난 다 알아. 문수가 좋아하는 음식은 탕수육!"

땡.

"좋아하는 색깔은 파란색!"

녹.색.

"그리고 가장 많이 들른 사이트는 폰허브!"

"아니 그걸 어떻게?"

"가끔 폰을 두고 화장실 갈 때 봤어. 잘했지?"

최근 주변 여자들이 그의 사생활을 없다시피 취급했지만 

그래도 월드와이드웹에서는 안전할줄 알았다. 

간혹 들어가긴했지만 누적되어서 가장 사용량이 많은 사이트가 되었을 줄이야......

"일단 서로를 믿는것부터 시작하죠."

"거짓말쟁이, 그렇게 말해놓고 도망가려는거지?"

"거짓말해서 도망가봤자 전기찜질 한번 더 당하겠죠. 그런것보다 배고픈데 뭐라도 시켜먹죠."

"그럴까?"



끝까지 자고 가라며 들러붙는 그녀를 내일 만날 것을 빌미로 뿌리치고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왔다.

살면서 처음 받아보는 과도한 사랑의 표시로 전기와 강철을 본 문수의 심장이 아직도 콩닥콩닥 뛴다.

사랑의 두근거림과 차원이 다른 생명의 두근거림을 뒤로 한 채

사람은 고쳐먹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고치지않으면 뱃때지에 바람구멍이 날 것이기에 

어떻게하면 내일 만날 그녀를 고쳐먹을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잠에 든다. 



저는 말이 통하는 얀데레가 좋습니다. 소프트 얀데레라고 해야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