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아릴 수 없을만치 끔찍한 기억이 있다.







 연예인들에게 공황장애가 괜히 오는 것이 아니다. 어디서든 나를 지켜보고, 불특정한 누군가가 나를 해치려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순간 시야가 닫히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탁 트인 곳에 있더라도 사방이 꽉 막힌 방 안에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17살 부터 19살까지, 고등학생 시절의 내 기억이 그렇다. 따돌림이나 학교폭력을 당한 것은 아니다. 나의 사교관계는 원만했으며, 가정 내의 불화도 없었다. 이건 보다 더 심오하고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다.


 스토커,

 뒷골목 깡패,

 부잣집 아가씨,

 히키코모리,

 두 다리 저는 장애인과 여자친구.


 얀데레.


 나의 주변이, 내 사교관계가, 내가 이루려고 했던 기상천외한 일들이 화살표가 되어 나를 찌르고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끊임없이 그물 속을 해쳐 나가려고 했지만 결국 빠져나올 수 없었다.

 내가 다시 개방감을 느끼기 시작한 건, 그녀들에게서 벗어난 다음인 졸업식 이후였다.


 그렇게 찝찝한 상태로 내 청춘이 끝이 났다.

 10대의 청춘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끝났다. 내 스토커가 어디에서 뭘 하는지 모르는 채로. 내게 기형적인 욕망을 갈구하던 부잣집 영애 아가씨가 뭐 하고 지내는지 모르는 채로. 나를 감금하고, 칼로 찌르고, 약품을 들이키고 임신으로 나를 협박하던- 얀데레가 어떤 정신상태를 가지고 대학교에 입학했는지도.


 고등학교는 졸업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똑 똑.


 자취방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나 현관문으로 향했다.


 심각한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심각해진다. 이럴 때일수록 가볍고 즐거운 생각을 해야 한다. 예전에 있었던 일은 모두 예전에 있었던 것일 뿐이고, 지금에 와선 내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한다.

 나에게도, 내 여자친구에게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중요한 문제들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고 있었다.

 그래, 이를테면 3년간 나를 따라다니던 스토커 같은 여자도 이젠 더 이상-


 누구지?


 내 손이 현관문의 손잡이에 닿을 때, 무의식적으로 소름이 끼쳤다.

 손아귀에 차가운 현관문의 금속 손잡이가 닿으며 정신을 깨우쳤다. 창문 밖은 벌써 어두컴컴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조용했고, 차 시동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지금은 밤 10시를 조금 넘게 지나고 있었다.


 누가 집 앞 문을 두드리는 거지? 나는 택배를 시킨적이 없다. 배달음식도 시킨적이 없다. 부모님이 자취방으로 보내주는 음식은 아직 남아있을 뿐더러, 요즘 거의 보지 못한 집주인도 나를 찾아 올 리가 없다.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누구지? 누가 지금 내 집 문 앞에 서 있는 걸까? 택배원도, 배달기사도, 친구도, 가족도, 하물며 여자친구도 아닌 누군가가- 내 집 문을 두드리고 있는 걸까?

 식은땀이 흐르고 촛점이 흔들렸다. 이 문을 열어도 되는 걸까? 아까부터 불안한 생각을 해서 내가 괜히 지레 겁먹고 있는 게 아닐까? 사실 아무 일도 없고 별거 아닌 일이었는데, 내가 문만 열면 가볍게 끝나는 일인데 설레발 치는 게 아닐까?


 위험한 생각만 하지 않았다면 무심코 문을 열어버렸을텐데.


 그리고 다시 내 바로 앞에서 현관문이 울렸다.



 똑 똑.



 식은땀이 흘렀다. 문을 열어야 좋은 것일까? 잠깐 멈추라고 하면서 문 밖에 있는 누군가를 기다리라고 해야 좋은 것일까?

 그리고 그 때,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벽 너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계세요~?"



 가볍고 깔끔한 목소리, 높은 음색으로 보아 남자는 아니다. 안심해도 될 것 같다. 듣는 이로 하여금 편안한 마음을 주는 목소리다.

 나는 마음속에 있던 응어리가 풀어지며 현관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절그럭.


 계세요, 라고 했다. 젊은 여자 목소리였지. 이상한 사람이라면 분명 내가 아는 사람일 것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내 주변보다는 내 주위에 이상한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그래, 이를테면 방금 전에 내게 말을 걸던 목소리는 능청스럽게 나를 모욕하던 반장과 닮았다. 동그란 안경을 쓰고, 목덜미까지 오는 칼단발에, 항상 상냥하게 웃으며 모든 이를 반겨주고, 배려심 많고 학우와 선생님들에게 모두 인망이 두텁고 성격도 좋은-


 그 사람이다


 뇌가 멈췄다.

 내 손은 문 손잡이를 돌리던 그 상태 그대로 멈춰 버렸다. 손목이 90도 돌아가 있었다.

 아직 채 열기 전, 문을 완전히 열기 전에 초인적인 감각으로 멈췄다.


 온 몸의 털이 곤두서 있었다.


 그 사람이 여기에 와 있었다.


 나를 스토킹하던 사람이, 반장이, 학교회장이, 동그란 안경을 쓰고 항상 모든것을 알고 있는 듯이 사람들을 모욕하던 사람이, 신서연을 시켜 친구를 칼로 찌르게 한 사람이, 나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 내 방에 도청기와 카메라를 달아 두고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던 사람이, 나를 한낱 체스판의 말로 생각하며 그저 바라보고 관음증에 빠져 있던 여자가.


 스토커가 우리 집 문 앞에 와 있었다.



 "저기요~? 안에 계세요~?"



 절그럭.


 이 문을 열어선 안 된다.


 파멸의 씨앗과도 같은 여자다. 이 여자때문에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절대, 절대로 열어서는 안 된다. 다시 고등학교 때와 같은 일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절대, 절대, 절대, 절대, 절대로.


 나는 내가 움켜지고 있는 현관문의 손잡이를 바라봤다.


 "저기~ 안에 있는 거지?"


 그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전신에 소름이 끼친다. 틀림없이 나를 스토킹하던 여자의 목소리였다.


 절그럭.


 현관문 손잡이가 돌아갔다. 나는 내가 움켜쥔 손잡이가 멋대로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에 있는거지? 있는거잖아. 그냥 평범하게 부를 때 나와~"


 절그럭.


 여자가, 밖에서, 문 손잡이를 돌리고 있었다.


 "나와, 나오라고~ 우리 안 본지 좀 됐잖아. 나 보고싶지 않았어?"


 절그럭. 절그럭.


 문 손잡이가, 제멋대로, 돌아가기, 시작.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미친듯이 문 손잡이가 움직이고 있었다.


 문 밖에 있는 여자가 문을 두드렸다. 쾅 쾅. 내가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이 두드렸다.


 "안에 있지? 나와, 나와! 보고 있었어! 아까 학교 끝나고 집에 들어갈 때부터 보고 있었다니까?"


 쾅 쾅 쾅 쾅 문을 두드리고 있다. 똑같이 칼단발을 한 여자가, 스토커가 내 집 앞 문을 두드리고-


 "안에 있잖아! 나와! 아까 들어가고 나서 다시 나온 적 없잖아! 지켜보고 있었어!! 나한테서 벗어난 줄 알았어? 너 없는 삶은 재미 없다고!"


 제발 그만해.


 "다른 사람들은 너처럼 재미가 없어! 단 한 명도! 너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난 너가 필요해,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열어! 열어! 열어열어열어 열어 열어!!! 열라니까!!!"


 제발 날 내버려 둬.


 "이제 날 막을 사람은 없잖아? 여기가 아직도 고등학교인 줄 알았어? 진짜 안 열거야?"


 그 여자, 차지은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내려앉는다.

 마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내게 경고했던 그때처럼-



 "너가 안 열면 내가 연다--------"



 나는 제자리에서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