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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마치 아이들이 듣는 동화와도 같은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 제국의 국경지대에서 일어난 전쟁에 휘말려 부모를 잃고 천애 고아가 된 두 사람, 레이널드와 아델하이드는 고향인 작은 어촌에서 도망쳐 서로에게 의지하며 수도로 상경했고, 갈 곳이 없던 둘은 교회에 몸을 의탁했다.


그곳에서 아델하이드는 운이 좋게도 사람을 치유하는 기적을 발현했고, 이내 견습 수녀로서의 자격을 얻어 기적을 사용하는 법을 완전히 익히고서 전장으로 파견되게 되었다.


친구가 다시 그 위험천만한 전장 속으로 내던져지는 것을 두고 볼 수만 없었던 레이널드는 그녀가 수녀원에 들어가던 날, 곧바로 최전방으로 향할 예정인 군단에 자원 입대했다.


본디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서, 어린 시절부터 무거운 그물을 끌어올리는 일을 해 왔던 레이널드의 다져진 몸을 눈여겨보았던 성기사단의 입단 담당자는 그가 말단 병사에 머무를 그릇이 아님을 알고서 그에게 정식으로 성기사단에 입단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고, 성기사가 된다면 그녀를 가까이서 지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레이널드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레이널드와 아델하이드, 두 사람이 한창 전장으로 나설 준비를 하던 도중에 다행히도 전쟁은 끝나고 말았다.


아델하이드는 마침내 수녀원에서 나와 레이널드와 재회할 수 있었고, 레이널드는 그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전쟁으로 피폐해져서,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우러 가자는 제안을.


그렇게, 지금까지도 제국 전역에서 여러 형태로 변형되며 아이들에게 이야기되어지는 여행담이 탄생했다.


제국 곳곳을 여행하며 사람들을 치유하는 고귀한 성녀 아델하이드, 그리고 그녀를 지키는 고결한 성기사 레이널드의 여행담이.


사실은 고귀함이나 고결함과는 거리가 먼 견습 수녀와 신참 성기사일 뿐인 두 사람이었지만, 제국의 수도에만 머물러 그러한 기적들을 볼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은 두 사람을 고귀한 한 쌍이라 숭상하며 그들의 여행담을 널리 퍼트렸다.


제국의 외간 산지까지 퍼져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인 자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두 사람은 부끄러워하면서도 자신들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것에 기뻐했다.


그렇게 몇 년 동안의 여행을 마치고서, 두 사람이 수도의 대성당으로 돌아온 두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살아있는 성녀로서의 시성과 고위 성기사로서의 승격이었다.


전례 없는 파격적인 대우에 교회의 수많은 인사들은 지나친 포상이라며 반발했지만, 제국의 황제와 교황 두 명이 동의한 사안이었기에 그러한 불만은 금세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렇게 그녀가 성녀가 된 뒤에도 레이널드는 그녀의 수호 기사로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그가 아무리 고위 성기사라고는 해도 평생토록 정결하기를 맹세한 성직자들조차 대면하는 것이 어려운 성녀의 곁에 남성인 레이널드가 그녀의 수호 기사로서 머물 수 있던 것은 두 사람이 어린 시절부터 친분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교황의 호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성기사에게 있어 가장 큰 영광 중 하나인 성녀의 수호기사가 되는 은혜를 너무나도 젊은 나이인 스물 두 살에 받은 레이널드를 사람들은 우러러보았고, 부러워했고, 숭상했으며,


질투했다.


그리고 그를 질투하는 이들에게, 그와 성녀의 친분은 그를 공격할 좋은 무기였다.

 

 



철갑이 흔들리는 소리가 넓은 회랑의 안에 울렸다.


살아남은 마지막 마법사는 자신의 눈 앞에 선 검은 강철 갑옷을 입은 남자를 바라보며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마법사가 손에 든 마법서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것을 내놓아라, 마법사여.”


마법사는 그 말을 듣고서 손 안에 작은 마법진과 함께 푸른색 불꽃을 지폈고, 그것을 본 남자는 말했다.


“그 마법은 널 집어삼킬 뿐이다, 마법사여. 그 책도 함께 말이야.”


“…네놈 같은 괴물이 이 마법서를 손에 넣는 걸 막을 수만 있다면 나는 어찌 되든 상관없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은 마법사의 손에 들린 불꽃은 그의 몸과 마법서 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남자는 앞으로 나아가 온 몸에 불이 붙은 마법사의 손에서 마법서를 가로챘다.


마법서에 붙은 불꽃은 이내 남자의 손아귀 안에서 꺼져버렸고, 그것을 보며 그는 마법사를 비웃었다.


절망을 눈에 품은 채로, 공포와 고통에 몸부림치며 마법사는 그에게 외쳤다.


“넌 절대로 그 책을 이해하지 못할 거다! 흉포한 시체 괴물 따위가 심오한 영혼의 마법-“


남자는 손에 든 철퇴를 휘둘러 마법사를 곤죽으로 만들어버렸고, 그는 바닥에 남은 마법사의 잔해를 보며 말했다.


“흉포함과 무지함을 헷갈리는구나.”


그는 몸을 돌려 회랑의 중심에 피로 새겨진 마법진의 가운데로 걸어들어갔다.


회랑의 이곳저곳에 널려 있는 시체들을 보며, 남자는 흡족하다는 듯이 음산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가 철퇴를 땅에 두드리자, 시체들로부터 어두운 초록색을 띈 빛이 떠올라 그가 든 철퇴의 머리 안으로 흡수되었다.


다시 한번 철퇴를 땅에 두드리자, 그의 발 밑에는 초록빛이 새어 나오는 균열 사이로 난 계단이 나타났고, 그는 그 계단을 따라 명계로, 그의 왕국으로 향했다.


이내 그가 완전히 지하로 모습을 감추자, 지상에 펼쳐져 있던 균열은 닫히며 흔적조차도 남기지 않았고, 그 자리에는 무참히 살해당한 마법사들의 시체만이 이곳저곳에 널려 있을 뿐이었다.





 

성기사 레이널드를 모함하는 목소리는 수도 내부에서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그들은 성녀와 그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입에도 차마 담기 힘들 말들을 지껄였고, 교단의 총 책임자인 교황과 그 추기경들에게 매일같이 익명으로 그 두 사람은 사실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말을 담은 탄원서를 올렸다.


그것들이 사실이 아님을 알기에 무시하던 교황과 추기경들도 결국 물량에는 장사가 없었는지, 결국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하여 조사해 보겠다고 공표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레이널드를 노리던 자들이 원하던 상황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고위 수녀는 인자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간주되는 성녀를 의심하고 조사한다는 것은 곧 신을 의심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었기에, 실제로 조사를 받은 것은 레이널드 뿐이었다.


당연히 레이널드는 격렬히 자신의 혐의를 부정했고, 참과 거짓을 가려낸다는 성물인 성 아스트라이아의 천칭 또한 그의 앞에서 균형을 잃지 않았기에 그의 말은 사실임이 증명되었다.


인자한 수녀는 걱정하지 말라며, 그를 안심시키고서 성녀의 거처에서 떠나갔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레이널드는 성녀의 처소를 짓밟으며 쳐들어온 성기사들의 손에 끌려 나와 재판장에 세워지게 되었다.


그에게 씌워진 혐의는 누구보다 순결해야 하는 성녀를 강제로 강간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항변하던 레이널드는, 증인석에 나와 있는 어제의 인자한 수녀를 보고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트리기 위해 계획된 함정일 뿐이었다는 것을 안 레이널드는 절망했다.


세상이 마냥 선의로만 가득 차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 자신이 자신은 물론이고 아델하이드의 명예까지 바닥에 떨어트리는 그런 죄를 뒤집어써야만 하는지, 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을 그러한 죄로 기소한 자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한 채로, 레이널드는 참수형을 선고받고서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신앙심을 잃지 않고 신에게 구원을 청하는 레이널드였지만, 다음 날 지하 감옥에서 끌려나와 교회 뒷마당의 허술한 처형대에 목이 놓일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는 구원 따위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에게 구원을 내려줄 신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처형대 위에 강제로 무릎 꿀려진 레이널드가 마지막으로 눈에 담을 수 있었던 광경은.


교회의 가장 높은 첨탑에서 비통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델하이드의 모습이었다.

 



 

그 계단 밑으로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긴 그의 눈 앞에는 거대한 성채가 그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교회의 첨탑들을 모독적으로 흉내 낸 듯한 뾰족한 지붕의 탑들이 인상적인 그 성채 안으로 그는 발을 옮겼다.


철갑이 철그럭거리는 소리와 영혼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성채의 복도를 가득 채웠다.


계속해서 걸어가자, 복도 끝의 전당과, 그 전당의 끝에 놓인 장식 없는 왕좌가 있었다.


남자는 그 앞으로 걸어가 자신의 왕좌에 앉았다.


영혼만이 갑옷에 깃든 몸이 된 뒤로 피로를 느끼는 일은 없어졌지만, 인간 시절의 버릇이 아직 남아있는 그는 인간 세상으로 불려갔다 올 때면 습관적으로 왕좌에 앉아 휴식을 취하곤 했다.


왕좌에 앉은 강철 갑옷의 기사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서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목덜미를 매만졌다.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처형당할 때의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그는 분노하며 왕좌의 팔걸이를 강하게 내리쳤다.


그의 주먹에 강타당한 왕좌의 팔걸이는 수십 조각으로 산산조각이 나며 성의 바닥에 흩뿌려졌고, 그것을 본 기사는 허공에 손을 휘저어 철퇴에 흡수시켰던 마법사들의 영혼을 꺼냈다.


그것들을 재료 삼아 왕좌를 복구하며, 그는 자신을 소환했던 자들을 생각하며 속으로 분노했다.


버러지 같은 것들.

 



 

목이 베여 처형당한 레이널드가 눈을 뜬 곳은 저승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그가 믿어왔던 천국도 저승도 아닌, 삭막하고 텅 빈 황무지였다.


빛무리의 모습을 한 영혼들은 어디에도 가지 못함에 절망하며 울부짖다 사라져갔고, 그 광경을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보던 레이널드는 이내 실소를 흘렸

다.


자신이 믿어왔던 모든 것에 배신당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국에도, 지옥에도 가지 못할 뿐인 원령이 되었다면 그가 할 일은 자신을 비참하게 떨어트린 자들에게 무자비한 복수를 선사하는 것뿐이었다.


다시금 현세로 나서기 위한 방법을 찾아, 레이널드는 황무지를 떠돌았다.


낮과 밤의 구분도 없어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 지조차 짐작되지 않는 방황 끝에, 그는 현세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을 느꼈다.


그를 저승으로부터 끌어올리고 있던 것은 금지된 술식인 강령술이었다.


레이널드는 그 부름에 저항하지 않았고, 이내 현세에서 다시금 눈을 뜬 그는 자신의 영혼이 강철의 갑옷에 속박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소환한 자를 찾기 위해 레이널드가 눈을 돌린 순간, 그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것이 자신을 고발했던 대주교 중 한 명임을 보고서 분노의 고함을 내질렀고, 그는 곧바로 강철의 주먹을 내질러 그의 머리통을 분쇄했다.


머리가 사라진 대주교의 몸뚱이가 쓰러져 땅에 부딪히는 것을 본 강령술 마법진 주위의 마법사들은 당황하며 고대어로 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고대어를 한 번도 공부해 본 적이 없었던 레이널드였지만, 그는 어째서인지 마법사들이 읊는 주문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언어가 복종, 굴복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이해한 레이널드는 자신이 지배당하기 전에 방 안에 있던 모든 마법사들을 죽여버렸고, 그들의 영혼을 포식했다.


그들의 영혼으로부터 그들이 알고 있던 마법 지식을 얻어낸 레이널드는 갑옷과 한 쌍으로 보이는 무거운 철퇴를 들고서 저승으로 돌아갔다.


어째서 성직자인 대주교가 이단의 마법인 강령술을 사용하려 했는지는 의문이었지만, 레이널드는 더 이상 그딴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젠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을 모함하고 죽인 자들에 대한 복수뿐이었다.


저승으로 돌아간 레이널드는 마법사들에게서 얻어낸 마법 지식을 이용해 자신을 불러낼 수 있는 강령술의 마법이 적힌 마법서를 작성해-이때 레이널드는 최대한 무고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평민들이 읽지 못하는 고대어로 책을 기록하였고, 최소 일곱 명의 마법사들과 값비싼 물건들을 강령의 대가로서 요구했다-복제한 뒤, 제국 전역에 그것을 흩뿌렸다.


그리고 그 마법서를 손에 넣은 어리석은 이들이 자신을 불러낼 때마다 자신을 불러낸 대가로서 그들의 영혼을 취했다.


그를 불러낸 것이 주로 고위층 귀족이나 성직자들이었기에, 그들의 기억으로부터 레이널드는 자신을 모함한 자들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었다.

영혼을 탐욕스럽게 먹어치우며 강해진 레이널드는 이내 스스로 현세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갖추게 되었고, 첫 강림 당시 얻었던 강철 갑옷을 몸으로 삼아 그는 당당히 제국의 수도에 위치한 대성당에 강림하여 자신을 모함한 성직자들을 철퇴로 뭉개고 으스러트리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원통한 목소리로 외쳤다.


대성당에 강림한 강철의 괴물을 막기 위해 수도에 주둔하던 성기사단이 출동했지만, 이미 수십이 넘는 영혼을 포식한 언데드인 레이널드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언데드를 퇴치하는 기적을 행할 수 있을 성녀들은 레이널드와 눈이 마주치자 마자 겁을 먹고 졸도해버렸다.


그렇게 수도를 헤집으며 복수를 마친 레이널드는 유유히 저승으로 다시 사라졌고, 대외적으로는 레이널드가 병사했다고 발표했던 제국 교회는 수많은 문책과 비난에 시달리며 그 위세가 꺾이게 되었다.



한편, 저승으로 돌아간 레이널드는 생각했다. 이제 자신이 존재할 이유가 있는가?


복수를 이루었을 때의 쾌감은 잠시뿐이었고, 이내 그에게 찾아온 것은 무고한 이들까지 복수에 휘말리게 했다는 죄책감과 복수라는 목표의 자리를 채운 허무뿐이었다.


레이널드는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하여 사색하던 중에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승은 여전히 황량하고 텅 빈 곳이었고, 그 어디에도 천국과 지옥은 존재하지 않았다.


길 잃은 영혼들이 이곳저곳에서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레이널드는 생각했다.


죽음 이후를 두려워하며 현세의 사람들은 신에게 매달리나, 죽음을 맞이한 뒤에 자신을 기다려주는 신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전부 절망하다 이내 자신이 누구였는지도 잊고서 사라져갔다.


그렇다면 현세에 홀로 남은 아델하이드 또한 그 독실한 믿음을 보답 받지 못하고 다른 영혼들처럼 사라져버린다는 말 아닌가?


현실을 열심히 살아가던 인간들이 죽은 뒤에 이러한 상황에 놓이는 것이 불합리하다 생각한 레이널드는 이내 한 가지 계획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영혼들이 갈 곳이 없다면, 자신이 갈 곳을 만들고 그들을, 아델하이드를 기다리겠노라고.


그렇게 레이널드는 자아가 사라진 영혼들의 마력을 모아 거대한 성을 만들기 시작했다.


셀 수 없는 시행착오를 거쳐,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성을 쌓아 올리는 데에 성공한 레이널드는 점차 성을 확장해 나가기 시작했고, 이내 길 잃은 영혼들을 자신의 성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십 년이, 백 년이 지나서도 아델하이드의 영혼이 저승으로 오지 않는다는 것에 의문을 품은 레이널드는 이내 다시 현세로 나가 보기로 했다.


그렇게 장장 백 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을 부르는 강령술에 응답한 레이널드는 자신을 소환한 자에게 현세의 상황만을 물으려 했으나…


자신의 앞에 일곱이나 되는 사람들이 산제물로서 희생되어 차마 입에 담지조차 못할 모습으로 널려 있는 것을 본 레이널드는 곧바로 생각을 바꾸어 망설임 없이 철퇴를 휘두른 것이었다.


자신이 만들어냈던 마법서를 회수하지 않은 것이 실수였을까 생각하며, 그는 마법사들에게서 되찾은 자신의 마법서를 보았다.


자신이 수도에서 난장판을 벌였던 이후로 자신을 부르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자신이 그 부름에 응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왕좌에 앉은 채로 자신이 유포했던 마법서를 회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레이널드는 이내 누군가가 자신을 소환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부디 자신을 소환한 자를 죽일 일이 없기를 바라며, 그는 순순히 그 부름에 응했다.


 


다시금 현세에서 눈을 뜬 레이널드는 곧바로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눈을 뜬 레이널드는 자신이 누워 있다는 것을 느끼고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의 사지는 움직이지 않았다.


숨은 이상할 정도로 가빴고-


…숨? 


레이널드는 당황했다. 숨을 쉬지 않아도 되는 몸이 된 지가 언제인데 자신이 숨을 쉬고 있단 말인가?


그는 고개를 들어 자신의 몸을 확인해보려 했지만, 고개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움직이기 힘들 거야, 방금 살아났으니까…”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레이널드는 소름이 자신의 등을 타고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내 그의 눈 앞으로 레이널드의 소환자는 얼굴을 들이밀었고, 레이널드는 믿기 힘든 현실을 직시하며 그녀의 이름을 입 밖으로 겨우 꺼냈다.


“아델…하이드…”


레이널드를 소환한 것은 성녀 아델하이드였다.


백 년이라는 세월이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그녀의 얼굴을 보며, 레이널드는 공포에 질렸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내 이름을 잊지 않았구나. 기뻐.”


아델하이드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지만, 레이널드의 눈에는 그 미소가 그 무엇보다도 뒤틀려 보였다.


“하이디…”


“그래, 레이.  너의 하이디야. 너의 하이디가 여기 있어.”


“무슨 짓을…한 거야…”


레이널드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아델하이드는, 자신이 알던 아델하이드가 아니었다.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눈에는 생기가 하나도 없었고, 무엇보다…


그녀에게서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레이널드를 무엇보다 두렵게 했다.


그에게 대답하는 일 없이, 아델하이드는 움직이지 못하는 그에게 자신의 얼굴을 더욱 가까이 가져가며 말했다.


“드디어 다시 만났네, 그렇지?”


“대답해…하이디…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일그러진 표정으로 레이널드는 말했다.


“후후…곧 알게 될 거야. 하지만 레이, 지금은 좀 자 두렴. 그래야 몸이 좀 나아질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아델하이드는 레이널드의 눈 위로 손을 얹었고, 이내 몰려오는 졸음에 레이널드는 애써 버텨보았지만, 그는 이내 저항하지 못하고 의식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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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강력한 마법사가 자신의 몸을 불멸로 만들기 위해 스스로를 언데드화한 존재.


마법사가 언데드화한 존재이기에 강대한 마법과 사령술을 자유자재로 부리며, 신성력이라 일컬어지는 힘이 없다면 퇴치하기가 극도로 힘들다.




 ...과거, 마법사가 아닌 강대한 신성력을 가진 성직자가 리치가 되었다는 기록 또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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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무스챈 얀데레 대회 출품작인데, 여기에도 올려봄.


얀데레 히로인은 처음 써보는데 잘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근데 여기 소프트 얀데레도 받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