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붕이와 얀순이는 동갑 소꿉친구야.

얀붕이 어미니와 아버지는 얀붕이가 어릴 때부터 맞벌이로 바빴기에, 심심했던 얀붕이는 옆집 얀순이네 집에 가서 놀았어. 

언제 놀러가도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얀순이에게 보답하기 위해 얀붕이는 보디가드 역할을 자처했지. 

얀순이는 어릴 때부터 자신을 지켜주던 얀붕이의 듬직한 모습에 끌렸어. 

얀붕이도 중학교에 올라가고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며 자신과 다르게 작고 귀여운 얀순이에게 애정을 느끼게 돼. 

항상 붙어 다니다 보니 서로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은 금방 알게 되었고, 둘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자연스럽게 사귀게 되지.


 그렇게 시간은 흘러,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문제가 생기지.

어디서 뭘 보고 왔는지 얀붕이가 얀데레라는 장르에 심취하게 된거야.
얀붕이는 얀데레 성향이 있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만화, 라이트 노밸은 물론이고 영화와 고전 소설까지 탐닉했어. 

조금 더 큰 자극을, 좀 더 많은 얀데레를 접하고 싶었던 얀붕이는 결국 얀챈이라는 어디 듣도 보도 못한 사이트에 발을 들이고, 중증 얀챈 중독으로 하루라도 사료를 받아 먹지 못하면 경기를 하는 불쌍한 상태가 되어버리지.

 불쌍한 얀붕이. 흑흑.

 

 하지만, 사실 정말 불쌍한 건 얀순이었어.

10년 넘게 함께 지낸 소울 메이트, 사랑하는 남자친구, 미래의 남편이 갑자기 폐인이 되어 여자친구인 자기 연락도 받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버렸으니까 말이야. 거기다가 얀순이는 얀붕이가 갑자기 이상해진 이유도 알지 못했어. 얀붕이도 부끄러운 건 아는지 자기가 얀데레를 좋아한다는 사실과 얀챈을 한다는 사실을 철저히 숨겼으니 말이야.


얀순이가 아는 사실은 얀붕이가 폐인이 될 무렵, 그 애가 스마트폰을 많이 쳐다보고 있었다는 사실 뿐이었지.


 결국 얀순이는 얀붕이가 자고 있을 때 몰래 방에 잠입해 스마트폰을 뒤져 보기로 해.
 어차피 얀붕이 어머니 아버지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으시고, 얀붕이 집 비밀번호나, 얀붕이 스마트 폰 암호 정도는 이미 다 알고 있었기에, 계획 실행은 별로 어렵지 않았어. 얀붕이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이것도 얀붕이를 위한 일이라고 얀순이는 스스로 합리화를 했어. 

 얀붕이 방에 잔입한 얀순이는 얀붕이 핸드폰을 열어 갤러리와 인터넷 사용 기록, 동영상 시청 기록 등을 철저히 뒤져 보기 시작해. 그리고 진실을 마주하게 되지…

 얀붕이의 갤러리에는 수 백 편의 얀데레 웹 소설과 얀챈 소설 캡쳐 본이 들어 있었고, 검색 기록은 얀챈으로 빼곡하게 장식되어 있었어. 

 평소 애니메이션은 커녕 드라마도 잘 보지 않던 얀순이는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지.

 일단 집으로 돌아온 얀순이는 얀챈이라는 사이트를 검색해보고 얀데레라는 단어의 뜻을 검색했어. 그리고, 얀붕이가 이 얀데레라는 정신 나갈 것 같은 장르에 제대로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이제 곧 고 3인데, 이대로 가면 얀붕이는 대학은 커녕 고등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게 되어버려….’


 처음에는 이상한 것에 빠져 인생을 낭비하는 얀붕이에 대한 연민을.

 그 다음에는 텍스트 쪼가리에 빠져 자신을 무시한 얀붕이에 대한 분노를.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대로 가다가는 그 텍스트 쪼가리에 얀붕이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느꼈어.

 자기가 어릴 때부터 꿈꿨던 미래가.

 얀붕이와 같은 대학에 진학해, 같은 방에 살며 대학을 다니고, 졸업해 같은 직장을 구하고…… 영원히 함께 하는 그 미래가 흔들리기 시작한거야. 


 ‘이대로는 안돼… 뭔가, 뭔가 수를 써야해….’


 얀순이는 생각했어.

 그리고 답을 떠올렸지.


 “그래, 얀데레에 질리게 만들면 되는 거야.”

 

 얀순이는 자기가 직접 얀데레를 연기하기로 했어.


‘겨울 방학이 끝나기 전까지 내가 연기한 얀데레를 보고 얀붕이가 얀데레에 질린다면, 얀붕이가얀챈을 그만두고 방 밖으로 나와준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한 얀순이는 정보를 얻기 위해 얀챈에 접속하게 돼.

얀붕이를 빼앗아간 그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이 영 꺼려지기는 했지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라는 말도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얀순이는 생각했어.

얀챈에 올라온 여러 소설과 만화를 읽고 얀순이는 얀데레라는 캐릭터와 그 시츄에이션을 학습하기 시작해. 

그렇게 1주일… 얀순이는 진짜 얀챈이 그리는 얀순이를 완벽히 이해하게 되었어.


그리고 바로 행동에 나섰지.

얀붕이에게 문자 폭탄을 날리고, 몇 분 간격으로 전화를 날리고, 얀붕이 집에 몰래 침입하거나, 당연한 것처럼 얀붕이 집에서 생활하거나…

얀붕이는 처음에는 갑자기 달라지는 얀순이의 모습에 당황했어.

평소 귀여우면서 담백하고, 청순했던 얀순이가 이렇게 자기한테 달라붙어 온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야. 

처음에 얀붕이는 달라진 얀순이의 모습에 당황했어. 부담스럽기도 하고 꺼림직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한가지 생각이 들었지.


 얀붕이는 일단 얀순이에게 당분간 연락하지 말아 달라고 문자를 보냈어, 그리고 핸드폰을 끄고 도어락 비밀번호를 바꾸고, 자기 방 문에 자물쇠를 걸었지..

얀순이는 얀붕이가 이렇게 강경하게 대응했다는 사실에 약간 충격을 받았어. 이러다가 얀데레가 아니라 자신한테 질려버리는 것 아닐까 생각도 했지. 


하지만, 이제는 물러날 수 없었어.


얀순이는 얀붕이 집 문 앞에서 오열을 하고 창문을 통해 얀붕이 집에 침입하기도 했고, 몇 시간동안 얀붕이 방 문앞에 꿇어 앉아 얀붕이한테 빌기도 했지.

‘얀붕아 미안해, 내가 잘 못했어… 한번만, 한번만 열어줘.. 얀붕아….’

 

 그런 얀붕이는 얀순이를 보면서 생각했지.

 ‘이거 진짜 얀순이 같은데?’

 그 얀순이는 현실의 얀순이가 아니라 얀챈의 얀순이를 말한 거였어.




더 써 올게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