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XX년 3월 26일 (금)


운명의 상대를 만난 것 같다. 만난 건 오늘 등교 중 버스 안에서. 

평소엔 부모님이 데려다 주셨지만 오늘은 아빠가 늦잠을 자버려서 나 혼자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엔 나와 같은 교복을 입은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신기한 건 그 많은 사람들이 한 버스 안에 탈 수 있다는 것.

좁은 공간에서 겨우 손잡이를 잡은 나였지만 내 얇은 팔로는 버스의 흔들림을 버티기엔 벅찼던 것 같다.

넘어지려는 순간, 운명의 남자애가 나를 받아줬다. 마치 내가 그 남자애한테 안긴 것처럼.

그때는 놀라서 바로 몸을 바로 세우고 어색한 분위기를 참아내는 데에 급급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그 감촉을 더 느끼고 싶어. 더 안기고 싶어. 그때 느꼈던 걸 다시 느끼고 싶어. 이게 사랑일까? 

왠지 내일부터 고등학교 생활이 즐거워질 것 같다.


XXXX년 4월 2일 (금)


일주일 동안 열심히 찾아다닌 결과, 드디어 남자애의 이름을 알아냈다! 

이름은 김얀붕. 알고보니 나보다 한 학년 위인 2학년인 선배였다.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 닮는다는데, 우리는 이름부터 닮아 있다. 이게 운명이라는 걸까?

아마 선배도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선배도 나와 같은 기분일까?

선배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선배에게 나를 더 알려주고 싶어. 얀붕 선배가 좋아.

얼른 전하고 싶다. 내 마음을. 얀붕 선배에게.


XXXX년 4월 6일 (화)


선배에게 고백했다. 선배는 도서위원이라서 만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방과 후에 도서관에 홀로 남아서 책을 정리하는 선배. 너무나 멋있는 선배의 모습.

그 모습에 홀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이미 사랑의 말을 전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주말 동안 열심히 고민하고 연습했으니까 괜찮을거야.

선배는 조금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갑자기 나타난 나에게 고백을 받고는 정리하던 책을 모두 떨어뜨렸다. 귀여워.

나는 같이 책을 정리했다. 책 정리는 간단했다. 그 책을 빼 놓은 건 나였으니까. 점심시간에 빼 놓은 책들 위치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선배는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선배가 나와 사귀어 줄 거라는 걸 안다.

그야 나랑 같은 마음인걸. 부끄러워하는 얀붕 선배를 떠올리니 너무나 행복하다. 

얼른 선배가 솔직해지면 좋겠다. 


XXXX년 4월 9일 (금)


차였다. 왜? 어째서?

선배는 나랑 같은 마음일텐데. 우리는 운명으로 맺어진 사이일텐데. 

선배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이상하다. 그건 내 얘기인 게 당연한데.

점심시간, 도서실에서 선배가 방과 후에 만나자고 했을 때까지는 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했을 거다.

오후수업 따위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왜? 왜? 

선배가 이상해진 것 같다. 분명 그 몇 시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해. 

선배는 당연히 나를 좋아한다. 선배는 당연히 내 거다. 

선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 선배는 내가 지켜야해. 왜냐하면 나는 선배의 운명의 사람인걸.

조금만 기다리면, 원래의 선배로 되돌릴 수 있을거야.


XXXX년 4월 11일 (월)


그년이다. 선배와 같은 반인 진순애. 그년이 내 선배를 이상하게 만든 게 분명해.

얀붕 선배는 그년이랑 있을 때 항상 그년 눈치를 본다. 분명 협박당하고 있는거야.

불쌍한 얀붕 선배. 내가 모르는 곳에서 그년에게 괴롭힘당하는 선배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리다.

선배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모르는 눈치다. 내가 구해줘야해. 나밖에 선배를 도와줄 사람이 없는걸. 

계획이 필요하다. 완벽하게 선배를 구할 수 있는. 계획이.


XXXX년 4월 15일 (목)


3일 동안, 정보를 모았다. 1분 1초, 선배를 쫓았다. 덕분에 내 방 한쪽은 선배의 사진들이 가득하다. 

이제 방 안에서도 선배를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방 한쪽이 아니라 방 전체가 선배의 모습으로 가득할텐데. 

선배는 걸어서 학교를 다니는 것 같다. 그때 버스에서 마주쳤던 건, 우연히 늦잠을 잤기 때문인 것 같다. 운명이 다시 한 번 느껴진다.

등교할 때 선배는 진순애 그년의 집 앞에서 그년을 기다린다. 나도 아직 선배와 같이 등교해본 적이 없는데. 

선배는 그년이 나오면 마치 우연인 것처럼 그년과 같이 등교를 한다. 아니, 분명 그년이 미리 뭔가 수를 쓴게 틀림없어.

그 후, 점심시간에도 그년이랑 밥을 먹고, 도서위원 일이 끝나면 다시 그년과 하교를 한다. 하지만, 선배의 학원은 반대쪽인데.

선배는 집으로 향하는 척 하다가 학원으로 뛰어간다. 불쌍한 선배. 하루 종일 그년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 한다니.

하지만 괜찮아. 이제 곧 선배를 구해줄 수 있어. 진순애, 그년은 선배 다음이다. 


XXXX년 4월 24일 (토)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오늘은 선배가 일찍 잠든 것 같다. 잠든 선배 모습은 언제 봐도 멋있어♡

선배 방에 카메라를 설치하길 잘한 것 같다. 이렇게 매일 선배 모습을 볼 수 있는걸. 덕분에 얼마 전 내 방 전체가 선배로 가득해졌다.

선배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나의 선배를 향한 욕구는 점점 더 커져만 간다. 이제 곧 선배를 구해줄 수 있어. 다시 그 때의 선배로 되돌릴 수 있어.

조금만 기다려요.. 선배♡ 


XXXX년 5월 4일 (화)


선배가. 내 방에. 선배가 내 방 침대에서 자고 있다♡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어제 도착한 클로로포름. 이걸로 선배가 도서관에서 그년이랑 떨어져 있을 때, 그년을 기절시켰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먼저 간다는 문자를 남기고, 혼자 돌아가는 선배를 전기충격기로 제압하고, 겨우 집으로 데려왔다.

클로로포름이랑 전기충격기만 더 빨리 구했어도 선배를 더 빨리 구해줄 수 있었을 텐데. 다 내가 부족한 탓이ㄷ


잠시 선배가 깨어나서, 날뛰는 선배를 진정시키려다 선배가 침대에 머리를 박아 기절했다. 다행히 심하게 다친 것 같진 않다.

선배를 묶어둬서 다행이었다. 아직 그년이 걸어둔 세뇌가 풀리지 않았는지, 깨어나면 날뛰다가 기절하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괜찮아. 이제 쭉 함께인걸. 이제 선배의 미래에 그년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드디어 내일이다. 그년이 벌을 받는 날. 내 모든 계획의 끝. 진정한 선배와의 미래가 시작되는 날.


XXXX년 5월 5일 (수)


내 예상대로 그년은 하루 종일 선배를 찾아다녔다. 내 집에서 행복하게 지낼 거라는 사실도 모른 채.

나는 학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년이 올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 

그 뒤로는 간단했다. 학교에서 나간 그년의 뒤를 쫓아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그년의 등에 전기충격기를 꽂았다.

한 번으론 만족할 수 없어서 두 번, 세 번. 수없이 전기충격기를 찌르고 있으니 점점 그년의 몸이 뜨거워졌다. 

나는 그년의 핸드폰을 주워서 그년의 모든 연락처에 메세지로 유서를 남기고 동네에 있는 산 중턱에 묻어버렸다.

너무나 행복하다. 더 이상 선배와 나의 앞에 막아설 게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부터.

고양된 기분을 감출 수가 없다. 






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 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 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 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 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 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 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





머리속이 온통 선배로 가득차서 너무 행복해요. 좋아해요, 얀붕 선배♡ 

세뇌가 완전히 풀리면, 선배도 다시 절 사랑해 주실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