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AAA급 부잣집 여동생(2)

AAA급 부잣집 여동생(1)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는 곧 정글이다.


“아, 안녕하십니까, 한 회장님!”

“편안하셨는지요?”

“네,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사회는 하나의 생태계고, 정글은 약육강식의 수순을 따른다. 


무리를 짓는 인간사회에서는 서열이 나눠지기 마련이며 원시에는 폭력, 중세에는 권력, 근세에는 재력으로 서열이 결정지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을 어떻게 책임지실 건지요?”

“죄, 죄송합니다! 설마 첫날부터 이런 일이.”

“변명은 듣기가 안 좋네요.”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인간관계에서는 포식과 의존관계에 따른 질서가 생겨난다. 한마디로 먹이사슬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먹이사슬을 정점에 다다른 것은 바로 재력이다. 세계기업 순위를 봐도 알 수 있다. 1~3위를 석권하는 것이 바로 금융업이다. 돈이 최고라는 뜻이다. 황금만능주의,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오라버니? 안색이 안 좋아보여요.”

“아? 으응. 아냐. 괜찮아.”

“하지만.”


정말 걱정스럽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세아를 마주보며 살며시 고개를 가로질렀다. 별것도 아닌데 필요이상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창문 바깥을 내다보며 상념에 빠졌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교장실이며 점심시간에 일어났던 학교폭력 때문에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그런데 이 광경은 대체 뭐지?


왜 교장선생님이 세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진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건지 의문이다. 교장선생님은 흘끗거리며 세아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육십대 초반의 남자가 십대 중후반의 어린 여자아이에게 깍듯이 존댓말을 쓰며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있으니까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어째서 세아에게 저렇게까지 비굴한 태도로 일관하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아니. 사실은 짐작이 간다. 


왜냐하면 이 학교는 사립학교이니까. 


사립학교는 하나의 사업장이나 회사에 가까우며 저 중년의 남자는 교장이라기보다는 사업가에 더 가깝기 때문에 후원자에게 잘 보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세아가 이 학교에 상당히 많은 금액을 후원해준 것 같다.


저 태도를 미뤄 짐작해 봤을 때 단순히 후원해준 것만이 아니라 뒷돈을 좀 찔러줬나? 


아니,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저 태도는 너무나도 이상하잖아? 


마치 목숨 줄을 저당 잡힌 것처럼 세아의 한마디 한마디에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저 인간이 대체 왜?


“그럼 이야기를…….”


덜컥!


갑작스레 교장실 문이 열었다.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낯선 아줌마가 저벅저벅 교장실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값비싼 명품 가방에 모피 코트를 두르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부잣집 사모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줌마는 세아와 교장을 번갈아보더니 이윽고 세아의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저 아줌마가 김지건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하나밖에 없는 귀하신 아들내미가 웬 여자에게 걸레짝이 되도록 흠씬 두드려 맞았기 때문에 찾아온 것 같다.


“이런.”


김지건의 아버지는 한원 중공업의 임원이다. 


이른바 상위1%이상의 집안이라는 것이다. 


고위상류층의 일원인 저 아줌마가 다짜고짜 세아에게 버럭 소리를 내지르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왠지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장면이 연출될까봐 심히 두려웠기에 세아를 흘긋 쳐다보았다. 


그러나 세아는 아줌마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나만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는 것 같은 아름다운 미소였다. 


저벅저벅. 


아줌마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값비싼 것 같은 진한 향수향이 여기까지 풍겨왔다. 


하지만 세아의 은은한 사과향과는 다르게 눈살이 찌푸려지는 냄새였다. 나는 슬며시 아줌마를 올려다보았고, 아줌마는 세아만을 바라본 채 입술을 우물거리더니 이윽고 말문을 열어젖혔다.


저 아줌마가 무슨 소리를 내뱉을까 사뭇 궁금했는데, 상당히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죄, 죄송합니다.”


아줌마는 바로 세아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뭐?


“우, 우리, 아들이 그만 실례를…… 제, 제발 용서해주세요…….”

“무슨 말씀이신지?”

“제발요 저희가 잘못했으니까.”


나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분명 잘못한 것은 나와 백월량 씨였다. 


물론 먼저 싸움을 건 것은 김지건이었지만 백월량 씨의 폭행은 상식에서 벗어났다.


거의 전치 6~8주에 해당될 정도로 잔혹하게 폭력을 행사했다. 


금쪽같은 내 새끼가 반병신이 되서 구급차에 실려 갔는데 어째서 저 아줌마는 세아에게 사과를 하는 걸까? 


형사입건을 한다고, 합의는 해주지 않을 거라고 하면서 노발대발 하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 


나는 왠지 이러한 상황에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정작 사과하는 쪽은 우리인데 왜 아줌마가…….


“사과는 저의 오라버니한테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요? 사모님?”

“아, 아! 네, 죄송해요, 죄송해요.”


아줌마는 재빨리 나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사과를 읊었다. 


반쯤 울먹이며 죄송하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아줌마를 쳐다보았지만 아줌마의 연신 고개를 숙인 채 사과를 반복할 뿐이었다.


나는 사십대 아줌마가 훌쩍이면서 사과를 건네는 모습을 더 이상 바라볼 수 없어서 재빨리 손사레를 쳤다. 


“그만, 괜찮아요. 저는 괜찮으니까 이제 그만 하셔도.”

“사과는 사모님이 아니라 아드님이 해야 되지 않을까요? 실질적으로 오라버니를 다치게 한 것이 아드님이니까요.”


세아는 방긋 웃으며 내 말을 잘랐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놀란 나는 두 눈을 껌뻑거리며 세아를 쳐다봤으나 세아의 시선은 나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세아의 새까만 눈동자는 아줌마를 향하고 있었고, 예의 웃음과 함께 아줌마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어? 세아야?”

“네 오라버니.”

“아니 그게 좀.”

“괜찮아요 오라버니.”


뭐가 괜찮다는 걸까?


지금의 나는 세아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와 세아가 대화하는 사이, 아줌마는 진땀을 뻘뻘 흘리며 김지건을 불렀다. 


그러자 교장실의 문이 슬며시 열리더니 김지건이 뚜벅뚜벅 걸어오기 시작했다. 


김지건은 조심스러운 눈초리로 발걸음을 옮겨 아줌마의 곁으로 향했다. 


“어? 아니 쟤가 왜?”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제법 심각한 부상을 입은 김지건이 어째서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않고 교장실로 찾아온 거지? 당연히 병원에 있는 줄 알았는데? 


“김지건, 빨리 사과하지 못해?!”

“…….”

“김지건!”

“……죄, 죄송 합…… 니다.”


김지건은 아줌마의 호통에 움찔거리더니 입술을 짓씹으며 정말 하기 싫다는 표정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사과를 읊조렸다. 


당연하다.


그는 피해자고 나는 가해자다. 


어째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사과를 하는 거지? 


그것도 저렇게 다친 몸으로?


“지건아! 제대로 좀 해!”


아줌마의 아들의 모습이 답답한지 더욱 큰 소리로 김지건을 다그쳤고 김지건은 정말 입술에 피가 날 정도로 꽉 감쳐 물고서 눈을 내리깔며 느릿느릿하게 사과를 반복했다. 


하지만 세아는 영 마땅치 않은 것 같다.


“이상하군요.”


세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아는 사과와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만? 모름지기 사과라는 것은, 정말 죄스러운 마음을 담아, 상대방의 마음이 풀리도록, 정성을 다해 해야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아야 아니, 이제 그만해도 되니까.”

“그런데 영 진심이 느껴지지 않아요. 안 그렇습니까 오라버니?”

“난 괜찮아. 이제 그만 하자. 응?”


세아는 나의 말을 무시한 채 그네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네들은 몸을 바들바들 떨며 세아와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그네들을 바라보던 세아는 작게 웃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세아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사용인 몇 명이 종이박스를 가져왔다. 


사용인들이 종이박스를 거꾸로 뒤집어 내용물들을 테이블 위로 탈탈 털어냈다.


테이블 위에 어질러져있는 내용물들은 비디오, 서류, 캠코더, 녹음기 등등이 있었는데 세아가 서류 한 장을 집어 들고서는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읽어보기 시작했다.


“정 사모님의 남편 분께서는 한원 중공업의 토지매각 대금을 횡령해서 여러 가지를 구매하는데 이용했다죠?”


세아의 말에 아줌마는 새파란 얼굴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한원그룹의 홍보대사 모델 발탁건으로 러블리 걸즈의 우지원 양에게 접대를…… 아. 남편분께서 독특한 취미가 있었던지라 이렇게 비디오까지 찍으신 모양이네요.”


세아는 테이프 하나를 까닥이면서 싱긋 웃었다.


“또 사모님의 남편분께서는 작년 강남의 어느 유홍주점에서 여종업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되었던 적이 있으시죠? 물론 돈으로 입막음해서 유야무야 넘어갔지만 여기 있는 녹취록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나는 테이블 위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집어 들면서 친절하게 설명하는 세아의 모습을 멍청하게 쳐다보았다.


저기 있는 물품들은 아무래도 김지건 집안의 부정을 증명하는 증거품이었다. 


그래서 저들이 세아에게 꼼짝도 못한 채 사과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세아의 말에 불편한 기분을 느끼며 테이블 위를 내려다보았다. 


‘이게 다 뭐야.’ 


저 자료들을 대체 어떻게 구한 걸까? 


그것도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나는 의아스럽게 세아를 바라보았으나 그녀는 방긋 웃으며 한마디 말을 툭하고 뱉어냈다.


“이러한 것들이 언론에 유출되면 상당히 곤란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으.”

“그러니 진심으로 사과해주시기 바랍니다.”

“사, 사과는 지금까지.”

“아니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된 한마디가 필요합니다. 진심이 담긴 사과가 그렇게 어려운 건가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세아의 모습이 어째서인지 싸늘하게 느껴졌다. 


아줌마와 김지건은 잠시 머뭇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까지 사과했건만 진심을 다해 사과하라는 세아의 말이 조금 당혹스러운 것 같았다.


“그다지 어려운 게 아닌데. 아무래도 제가 조금 도와드려야 될 것 같네요.”


상냥하게 웃으며 따스하게 말한다.


“그러니까 꿇으세요.”


아름다운 목소리로 계속 말을 잇는다.


“일단 꿇는 것부터 시작할까요? 사모님?”


세아는 아들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굴욕을 감내하라는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008



“네, 네?”

“못 들었나요? 다시 한 번 말해드릴까요 사모님?”


아줌마의 눈동자가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별안간 입술을 꽉 짓씹으며 고개를 쳐올렸다. 그리고 말도 안 된다며 간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세아는 번복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으라니. 그것도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는 사십대 아줌마에게 그러한 일을 시키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처사였다.


나는 세아의 어깨를 붙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나 보다 한발짝 먼저 행동한 사람이 있었다.


“씨발.”


김지건이었다. 


그는 재빨리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네가 뭔데 우리 엄마한테 그딴 짓을 시키는데?!”


더 이상 굴욕을 감내할 수 없었는지 김지건을 핏발이 선 눈빛으로 세아를 노려보았다. 평소 지 꼴리는대로 행동하던 김지건에게 있어서 지금 이 상황은 매우 낯선 상황일 것이다. 그래서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욕을 내뱉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마치 겁에 질린 쥐가 고양이를 위협하듯 찍찍 거리는 걸로만 보였다.


“꿇으라고? 씨발 좆까!”

“…….”


별안간 백월량 씨가 발을 한발자국 내딛었다.


백월량 씨는 무료한 표정으로 주먹을 움켜쥔 채 김지건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세아가 손을 뻗어 백월량 씨를 만류했다. 


그러자 백월량 씨는 자연스럽게 걸음을 멈춰 다시 나와 세아의 곁으로 돌아왔다.


백월량 씨가 움직였을 때 몸을 움찔움찔 떨었던 김지건이었지만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매서운 눈으로 세아를 노려봤다.


돌연 세아가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잘 알겠어요.”


세아는 우아한 미소와 함께 스리슬쩍 아줌마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줌마는 어깨를 움찔 떨었다. 세아는 웃는 낯으로 말을 잇는다.


“그렇다면 사과하실 생각이 없다는 걸로 받아드려도 될까요, 사모님?”

“네?”


세아의 말에 아줌마는 깜짝 놀랐다.


“욕설을 내뱉으며 거부했잖아요? 당연히 사과할 뜻이 없는 게 아니겠어요?”

“그런!”


아줌마는 화들짝 놀라 세아를 덜덜 떨리는 눈으로 올려다보았고 세아는 예의 웃음과 함께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요. 분명 아드님께서 말씀하시길 사과할 의향이 전혀 없는 것 같은데요?”

“아니에요! 제, 제가 사과를!”

“엄마! 씨발 왜 그러는데 정말!”


아줌마가 헐레벌떡 무릎을 꿇으려고 하자 곁에 있었던 김지건이 재빨리 만류했다.


“흐응.”


하지만 세아는 관심 없다는 듯 손가락을 튕겨 사용인 한 명을 불렀다. 


검은 정장의 사용인은 새까만 전화기를 세아에게 건네주었다. 세아는 전화기를 건네받자마자 곧바로 어딘가를 향해 전화를 걸었다.


잠시 동안 수신음이 갔고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세아는 작게 웃으며 입술을 뗐다.


“안녕하세요, 성 기자님? 편안하셨는지요? 재밌는 기사거리를 찾았던지라 이렇게 전화를 드렸…….”

“자, 잠깐만요!”


기자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 아줌마가 세아를 불렀고 세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시했다. 


“왜 그러는지요?”

“무, 무릎 꿇게요! 그러니까 제발 봐주세요 제발!”


그 말과 함께 아줌마는 무릎을 꿇었다.


“엄마!”


김지건은 아줌마의 팔을 꽉 붙잡고 일으켜 세우려고 했으나 아줌마는 아들의 팔을 뿌리치고 가만히 무릎을 꿇고 있을 뿐이었다.


“성 기자님. 죄송해요.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 모습에 세아는 전화를 끊고 아줌마를 흘끗 내려다보았다.


아줌마는 세아의 시선을 느끼며 몸을 사시나무처럼 달달거렸다.


세아가 연분홍빛 입술을 달싹거렸다.


“이상하네요.”

“네?”

“어째서 오라버니에게 폭력을 행사한 아드님의 목이 그렇게 뻣뻣한지, 저는 이해하기가 힘든 걸요?”

“아.”


그 말을 듣자 아줌마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김지건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지, 지건아……! 너도……!”

“아니, 엄마? 시발 아무리 그래도 그렇……!”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하필이면! 하필이면!”

“엄, 엄마?”


아줌마는 아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


나는 무릎을 꿇고 있는 아줌마의 모습을 더 이상 바라볼 수 없었다.


세아에게 그만하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분위기, 이 공기, 이 느낌.


모든 게 낯설고 꺼름칙했다.


“……아하.”


쿡 웃던 세아는 작게 말한다.


“정말 재밌네요.”


……재밌다고?


“사실 아드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겠지요. 잘못한 것은 이쪽인데 왜 자신과 어머니가 부당하고 굴욕적인 취급을 받아야 하냐고.”


이 일의 모든 발단은 김지건의 시비와 백월량 씨가 김지건을 폭행한 것으로부터 비롯됐다. 


“솔직히 잘잘못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안 그런가요? 아드님께서 누군가를 괴롭혔을 때 잘잘못을 따졌나요? 아니잖아요?”


김지건은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폭력 및 갈취를 일삼았다. 


그는 지역구에서 상당히 저명한 불량서클에 몸담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으로 굴림했다.  


“솔직히 말해서 아드님이 누굴 괴롭히든 말든 하등 상관이 없지만 오라버니를 건들면 용서하기가 어럽네요.”


세아는 웃으며 상냥하게 속삭인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정성을 다해 사과를 해주신다면 충분히 용서할 의향이 있으니까요.”


“아! 그, 그러면! 지건아 빨리!”


“큭.”


아줌마의 재촉에 김지건은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결국 무릎을 꿇었다.


아줌마도 무릎을 꿇고 있는 마당에 더 이상 바보처럼 굴 수 없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


“이제 다 된 건가요? 저희가 전부 잘못했으니까 제발 그 자료는…….”

“네?“


세아는 두 눈을 깜빡거렸다.


“다 끝나긴요. 제가 말씀 드렸잖아요. 일단, 무릎을 꿇고 시작한다고.”

“……아.”


아줌마의 안색이 다시 흐릿해진다.


“그러면 일단 가볍게 오라버니에게 머리를 숙이고 진심으로 사죄의 말을…….”

“세아야.”


나는 세아의 말을 끊었다.


계속해서 내 말을 끊고 고의적으로 그네들을 괴롭히는 세아를, 내가 말려야만 했다.


이곳에서 세아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이제 그만하자.”


여동생의 어깨를 붙잡고 그만두자는 나의 말에 세아가 고개를 돌리더니 거뭇한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았다.


세아의 눈동자는 마치 까마득한 절벽아래를 연상케 하듯 어두컴컴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입술을 살짝 짓씹다가 한숨을 내쉰 후 다시 말을 뱉어냈다.


“나는 이미 용서했어. 그런데 자꾸 왜 그러는 거야.”

“…….”

“이런 말 하기는 싫지만 네가 자꾸 이러는 거 그냥 재밌어서 괴롭히는 거 아니야?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

“…….”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던 세아는 두 눈을 깜빡거렸다.


그리고 느릿하게 아줌마와 김지건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그네들은 세아의 눈과 마주칠 때마다 흠칫거렸지만 세아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다시 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가요?”


세아는 씁쓸한 표정으로 혼자서 고개를 주억였다.


“그렇군요.”


여동생은 낮게 말했다.


“제가 잠시 깜빡했습니다. 현재의 오라버니는 예전과 다르지요.”

“뭐?”


예전과는 다르다니? 무슨 말이지? 


내가 질문할 사이도 없이, 세아가 재빨리 사과를 표했다.


“죄송합니다 오라버니. 제가 그만 주책을 부렸네요. 그리고 사모님과 아드님께서도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반금 전까지는 다르게 세아는 덤덤히 사과를 읊조리고서는 손가락을 튕겨 사용인들을 불렸고, 사용인들은 테이블 위에 있는 물품들을 종이상자에 담아 아줌마에게 건네졌다. 아줌마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종이상자를 건네받았다.


“모든 물품들은 사모님에게 드리겠습니다. 제 무례한 행위를 부디 용서하시길.”

“아, 네……?”


급작스러운 태도변화에 적응이 안 된 듯한 모습이다.


“아드님의 병원비와 위자료 등을 저의 쪽에서 전액 지불하겠습니다.”

“세아야?”

“따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여기로 전화해 주시길 바랍니다.”


세아는 메모지 한 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서는 그네들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먼저 실례하지요.”


세아는 그렇게 교장실 문을 열고 나갔다. 교장선생님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안, 안녕히 가십시오!” 라고 소리쳤고 나는 어벙하게 세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재빨리 세아의 뒤를 쫓았다. 백월량 씨도 우리 뒤를 쫒았다. 


“세아야 잠깐!”

“왜 그러는지요?”


복도에서 세아가 멈췄다. 


교장실 근처라서 그런지 아무도 없었다. 을씨년스러운 복도는 적막감만을 안겨줄 뿐이었다.


창문 사이로 석음(夕陰)이 내려앉고 황혼빛 노을이 세아의 살갗으로 스며들었다. 세아는 나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혹시 화났어?”

“네.”


망설임 없이 대답하자, 나는 짧은 신음을 삼켰다. 


“화가 났습니다만 참았습니다. 오라버니께서 원하시지 않았기에.”

“어?”


나한테 화가 났다는 게 아닌가?


“저는 그들의 처벌을 원했지만 오라버니는 아닌 모양이더군요.”

“아니, 잘못한 건 이쪽이잖아. 너무 심하게 때린 거 같거든. 아, 그리고 아까 예전과는 다르다는 말은 또 뭐야? 예전이라고 해봐야 어렸을 때 아니야?”

“…….”


세아는 잠시 침묵을 하더니 창문을 바깥을 바라보았다. 해거름이 시야에 들어왔고, 세아의 그림자가 어스름하게 일렁거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세아의 검은 눈동자가 나를 향한다.


세아의 눈동자에 나의 얼굴이 반사된다.


“오라버니께서는 예전 일이 하나도 기억나시지 않으신 겁니까?”

“어? 응.”

“그렇군요.”


세아는 한 발짝 뒷걸음을 치더니 흐릿하게 웃었다.


“그거 정말로 안타깝습니다.”


안타깝다고 말하는 세아는, 미미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수그렸다.


“그래요…… 정말…… 안타깝네요.”

“세아야?”


고개를 숙인 채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세아를 부르자 세아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고개를 든 세아의 얼굴은 평소와 다름없는 여동생의 얼굴이었다.


“왜 그러세요 오라버니?”


세아는 언제나처럼 웃었다.


“아, 아니…….”


아름다웠지만 무언가 위화감이 드는 미소였기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날.


김지건은 바로 전학을 갔고, 두 번 다시 소식을 전해들을 수 없었다.


*후기.


라노벨 감성 양학은 너무 즐거운 듯.

암튼 이거 연재하고 싶어도 너무 라노벨 느낌나서 좀 그럼.

애당초 근친, 얀데레, 라노벨이 섞인 소설은 좀 매니악하니까.

좀 대중적인 소설을 쓰고픔. 그래서 뭐, 이제 슬슬 노벨 준비하러 감. 비축분 좀 쌓아야하거든.


그럼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