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귀, 뱀파이어, 밤피르.


인간의 피를 섭취하는 초인적인 존재.

신이 창조한 피조물 중에 유일하게 신에게 대적할 수 있는 존재.

너무나도 강력했기에, 흡혈귀는 저주와 함께 태어난다.


오직 한 명의 인간에게만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저주.


흡혈귀는, 오늘도 운명의 사람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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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 운명의 사람은 바로 너야, 얀붕아."


갑작스럽게 머리에 들어온 정보의 소용돌이에 뇌의 사고회로가 완전히 멈춰버렸다. 흡혈귀? 그런거가 실제로 존재할리가 없잖아. 흡혈귀는 물론 신에 대해서도 제대로 생각해본 적 없는 내게 얀순이의 말은 다른 별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너를 찾기 위해 지금까지 온 세상을 돌아다녔어. 매일이 괴로워서 죽고 싶었지만, 너만을 생각하면서 버티고 살아왔어. 아무런 감정도 없이, 흑백과도 같은 세상을 몇 백년 동안 버텨왔어."


얀순이는 내 앞에 바로 선채로 내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보석 같이 빛나는 붉은 색의 눈동자에서 한 가닥의 물줄기가 흘러 내리고 있었다. 


"오직 너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나는 태어났어."


몸에 주문이 걸린 것처럼,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사랑해 얀붕아.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내 반응을 듣고 싶었는지, 얀순이는 내 앞에서 가만히 선채로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녀의 붉은 눈동자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나를 지긋히 쳐다보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뭐라고 대답할지 모르겠다. 오늘 공원에서 처음 만난 사람, 아니 흡혈귀한테서 그런 말을 들어도 믿기 힘들고 말야.


"......"


무슨 대답을 해야할지, 그녀가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 생각하며 눈 앞의 얀순이를 쳐다보았다. 


보기 힘든 은발에 빛나는 붉은 눈동자, 그리고 입술 사이로 살짝 삐져나온 송곳니. 일반적으로 흡혈귀를 생각했을 때의 외형의 특징을 가진 얀순이었지만 이 정도로 그녀가 흡혈귀라고 믿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만약 그녀가 흡혈귀라 해도, 몇 백년이나 기다린 존재가 나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근데, 애초에 왜 나야."


"...응?"


얀순이는 그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보였다.


"나는 평범한 학생일 뿐이라고? 오늘도 시험을 망치고, 살기 싫다는 생각을 하면서 공원을 걸어가다가 너를 만난 거란 말야. 너처럼 특별한 존재에, 내가 어울릴리가 없다고."


"그렇게 자신을 비하하지..."


"하는 것마다 실패하고, 제대로 된 노력도 하지 않고 불평만 하고. 열심히해도 남들의 반도 제대로 못따라 가는 반푼이 같은 내가, 다른 누구의 운명의 사람일리가 없잖아."


내가 지금 하는 것이 상관없는 사람에게 화풀이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기계처럼 반복되는 지겨운 삶에, 그리고 끊임없이 부딪히게 되는 실패라는 벽에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다. 


그런 와중에 내게 다가와 자신이 흡혈귀라던지, 내가 자신의 운명의 사람이라는 이상한 말을 하는 얀순이에게 나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대답해버렸다.


"아..."


정신을 차리고보니, 얀순이가 호흡이 닿는 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 비하하지 말아줘."


얀순이의 눈동자가 눈 앞으로 다가와있었다. 


"그렇게, 슬픈 표정은 짓지 말아줘."


얀순이의 따뜻한 숨결이 콧등을 간지럽혔다.


"너가 아프면, 내가 더 아프니까."


내가 그녀의 말에 대답하기 전에, 얀순이가 내 입을 자신의 입술로 덮어버렸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에 놀란 것도 잠시, 얀순이가 입술을 떼고 뒤로 물러나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럼, 우선 집으로 가볼까? 마음 같아서는 납치해서 둘만의 세상으로 떠나고 싶지만, 얀붕이에게 미움받기는 싫으니까."


언제 울었냐는듯이 활짝 웃으며 얀순이가 내 팔을 잡고 앞으로 이끌어갔다.


그녀가 진짜 흡혈귀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이렇게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야 되는 것 아닐까?


"그런데 얀순아, 우리 집 이쪽 방향 아닌데."


"알아. 너희 집은 27동 504호잖아. 지금은 내 집으로 가는거야."


응? 집 주소를 말한 적은 없는데...?


"어짜피 자취중이니까 이제부터 우리 집에서 살아."


얀순이가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이 팔을 강하게 끌어안은 바람에 나는 끌려가듯이 얀순이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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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데레 흡혈귀 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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