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





생각이 뒤죽박죽 얽힌다.

아프고 괴롭다.

시간 감각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저 살아있는지, 아니면 죽었는지 조차 가늠이 안될정도로 의식은 쉼없이 깨어나고 다시 잃는 것이 이 허무한 공간에서 반복하기만 했다.

힘들었다.


셋카.

셋카.


잃어가는 의식을 억지로 붙잡기 위해, 하나의 이름만 속으로 읊었다.

지금 가장 보고 싶은 아이.

내 사랑하는 딸.


잃고 싶지 않았다.

잊고 싶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어딘가로 떠나버릴 것 같은 몸을 억지로 붙잡았다.

단 한번이라도 보고 싶으니까.

단 한번이라도 목소리를 듣고 싶으니까.

억지를 부렸다.

억지로 버텼다.


셋카.

셋카.


되뇌인다.

이곳에 버티고 있는 이유를.

깨어나자.

일어나자.

버티자.

광명조차 비추지 않는 그 어둠 속에서도 믿고 있었다.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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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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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시간이 더 흐른 느낌이었다.

점차, 기억이 흐려진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잊어서는 안되는 이름.

잊을리가 없던 이름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떠올려지지 않는다.

세....세....

아무리 부르고 싶어도, 이제는...기억이 나지 않는다.




괴롭다.

어째서 나는 기다리고 있는 걸까.

어째서 나는 누군가를 믿고 있는 걸까.

그런 느낌만이 가슴에 남아 맴돌고 있었다.








딸랑.







아무소리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가 들렸다.

방울 소리였다.

무의식적으로 앞을 바라보니, 멀리서부터 누군가가 뛰어오고 있었다.


뛰달리고 있다.


채이고 구르면서도 올곧게 뻗어오고 있었다.

아프고, 힘들어서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얼굴을 지으면서도, 뛰고 있었다.

멈추지 않는다.

그 아이는,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것이다.








딸랑.







발을 챌때마다, 그 아이의 목에 달린 방울이 울렸다.

알고 있다.

그 소리를, 그 방울을.

그 눈을, 그 모습을, 그 얼굴을, 그 귀를.

아이를 알고 있다.

잊어서는 안되는 이름.

잊어서도 안되는 이름.

아이의 이름이 천천히 떠올려졌다.

아이가 가까워져 갈수록, 흐리고 탁하기만했던 내 정신이 맑아져 간다.

아니, 아이가 아니야.


셋...셋, 셋카. 셋카.


기다리고 있던 이유.

믿고 있었던 이유.

어느새 지척에 달한 셋카를 보며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셋카.

셋카.

셋카!

셋카!!


기억이 난다.

내 딸.

사랑스러운 내 하나뿐인 딸.


아빠!


그 외침을 들었다.

울고있으면서, 하지만 그만큼 웃으면서.

품에 들어오는 그 아이를, 놓고싶지 않아 꽉 껴안았다.

그리고, 그 순간 공간이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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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떠진다.

굳게 닫힌 채, 다시는 떠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야말로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


이곳이 어디인지를 파악하는 눈의 움직임이, 이내 내 앞에 고정된다.

편안한 웃음.

그렇게, 아프고 힘들면서도 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빠는, 그렇게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많이 기다....렸...니?"


열기도 힘들어하는 입.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묻는 아빠가 힘겹게 손을 내밀었다.

앙상한 팔.

수척해진, 아빠의 손을 그러쥐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아빠...이제...이제....흡.....끅..."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받아들였어도, 굳세게 마음을 먹어도, 다음 말을 내뱉기가 너무나 힘이 들었다.

이미 늦은 것을 알고 있다.

너무나 늦어버린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말을 해야 되는데.

반드시 말해야 하는데....

둑 터지듯 터져나오는 울음을 억지로 삼켜냈다.


"끕...흑...아빠!....그러니까....그러니까...이제, 괜찮으니까....편히...편히 쉬....어어어...."


그 말을 겨우 내뱉었다.

아빠는 살짝 놀란듯이 눈이 커졌지만, 이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웃음을 지었다.


"우리...셋카...많이 컸...네."


손이 천천히, 머리에 닿는다.

따뜻한 감각.

그때처럼 차갑기는 커녕, 아빠의 손은 세상 그 어떤 것 보다 따스하고, 포근했다.


"더...많이...함께하고....싶었...는데..."


"미안...해..."


고개를 저었다.

미안한건 아빠가 아니야.


"아빠, 미안해...자꾸 붙잡아서...아빠가 힘들어하는걸 알면서도...나 때문에, 아빠가....아빠가 너무 아파서..."


이번에는 아빠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 하지 말라는 듯이, 천천히 하지만 또렷하고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쓰다듬던, 손이 뺨으로 내려왔다.

쉴새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며 싱긋 웃는다.


하지만, 시간은 비정할만큼 오래 기다려주지 않았다.


"지금...도, 많이...기다렸지만...아빠...잠깐...갈 데가....있어."


숨이 약해지고 있다.

한 번.

두 번.

들이쉬고 내쉴때마다, 점차 느려져만 간다.

하지만, 맑았다.

꺼지기 전, 가장 밝게 타오르는 촛불처럼.


"다녀올게."


또렷하고, 맑은 목소리로 그리 말했다.

그래서.

단 한번도 하지 못했던.

나갈때마다, 불안해서.

아빠가 가지 않았으면 해서, 단 한번도 내뱉지 못했던.

그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다녀오세요."


웃으면서 보낸다.

최대한 밝게 웃으면서 보낸다.

기약도 없을 여정의 끝임에도, 그렇게 웃으면서 보냈다.

아빠도 웃고 있었으니까.

내 말을 듣고, 그렇게 편안하게 눈을 감았으니까.

천천히 떨어지는 손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렇게, 아빠는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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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잠에 들면 같은 꿈이었다.

눈이 내리고 있는 산.

그 중턱 즈음에 있는 낡고 투박한 오두막이 앞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볼때마다 항상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익숙한 기시감.

분명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어째서 그것을 익숙하게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만, 이 꿈에 해답은 없었다.

언제나, 그런 느낌만 받다가 꿈에서 깨곤 했으니까.


끼이익...


"자 자, 도착했습니다! 내리세요~!"


기사의 외침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아아, 제법 멋지네.

버스 차창에서도 보이는, 거대하고도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는 산이 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오늘 내가 오를 산이다.


"감사합니다."


"네~ 즐겁고 안전한 등산되세요!"


기사의 유쾌한 인사를 뒤로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높기도 하네..."


정상까지의 거리는 제법 되보이기에, 문득, 걱정이 일었다.

산을 그리 좋아하지 않기에 나오는 소리이기도 했다.


'지랄하네. 주말만 되면 미친놈 마냥 산으로 뛰어가는 놈이, 무슨.'


문득 친구의 등산이 그리 재밌냐는 물음에 답해주자, 어이없다는 듯이 코웃음 치던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등산은 그리 취향이 아니었다.

정말이다.


그저 꿈에서 일어나면, 언제나 생각하던 것.

'이 꿈이 내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오로지 하나의 꿈만을 꾸는 것이 평범한 일은 아닐 것은 분명하기에.

그런 의문은, 결국 그렇게 나를 산으로 이끌었다.


그 때와 똑같은 풍경.

그 때와 똑같은 곳을 찾기 위해.

그렇게, 수많은 산을 찾았다.

의문을 풀기 위해서.

의문 뒤에 숨겨진, 답답하면서도 어쩐지 슬퍼지는 이유를 알고 싶어서.


"자, 자! 부적 하나씩 챙겨가세요! 이게 있으면, 아무리 위험한 겨울산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산의 초입. 수많은 장사꾼들이, 등산객들을 상대로 저마다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부적이라고? 미신이라도 되는걸까.

매대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부적에 그려진 여우의 형상을 보며,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자, 장사꾼이 손을 싹싹거리며, 말을 걸었다.


"아이고, 손님 뭐 찾으십니까?"


"이 부적, 여기 그려진 여우는 뭡니까?"


"오호, 손님 그건 이 산을 지키는 여우신입니다."


"여우신?"


"네, 옛날 상서로운 힘을 가져, 널리 사람들을 평안하게 이끌었다는 수호신입죠! 저희 동네에서는 아직도 이 여우신님을 기리는 축제도 하고있습니다요!"


여우신.

붉은 실로, 표현된 꼬리가 아홉개인 여우.

어째서인지, 이상한 기분이 든다.


"하나 드릴까요?"


"네."


"감사합니다!"


마치 홀린듯이, 지갑을 열고 있는 내가 있었다.

부적은 터무니 없을만큼 비싸지는 않았지만, 그리 싼 가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심장은 쿵쾅대고 있었다.

여우.

여우...

본 적이 있는 느낌.

천천히 산을 바라보는, 내 눈은 분명 여태까지와는 다른 일종의 기대감이 가득 차 있었을거라 생각했다.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직 숨이 찰만큼 힘들지도 않은데도, 심장은 빠르게 요동치고 있었다.

점차 익숙한 광경이 이곳 저곳에서 보인다.

처음 보는 것인데도, 처음 마주치는 광경인데도, 가슴이 시릴정도로 아프고 익숙했다.


붉은 실.


얼마나 걸었을까.

등산로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보이는, 길목에서 문득 붉은 실이 보였다.

가슴에 나풀거리는 붉은 실은, 바람에 흩날리면서도 확실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홀린 듯, 걸음을 옮겼다.


"어, 어 어? 어이 형씨! 거기는 길 없어요!"


"어머, 어머...뭐하는 사람이래?"


뒤에서 만류하는 등산객들의 소리가 들렸지만,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저, 나아간다.

그저, 한걸음이라도 더 빨리 내딛는다.


"허억, 허억."


스쳐지나가는 기억들.

내 기억이 아닌 것들이 편린처럼 떠오른다.

이상하게도 눈물이 차오른다.

무언가를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던 무언가.

그것이 그 너머에서 기다리는 느낌이었다.


"여기다..."


언덕을 넘는다.

그러자, 꿈에서 보았던, 그 오두막이 보였다.

그것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자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아무리 오래걸려도, 누군가를 위해 그 곳에 남아 기다리고 있었다.


덜컹!


오두막의 문이 세차게 열렸다.

나와 같은 느낌.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누군가를 찾는듯 황급하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내 둘의 시선이 교차했다.




실이 늘어진다.

서로에 달린 실이, 마치 제 짝을 만난듯이 이어지고 있다.

붉은 실이 아름다운 매듭을 그리며, 나와 그녀를 이었다.

떠오르는 기억.

그 잊지 못할 수많은 추억들이, 솟아오른다.

그녀의 이름.

세월이 지나, 이제는 성숙한 여인이 되어있는 그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셋카."


"....흐윽.....흑 흐흐흐흑...."


나의 부름에, 어찌할줄을 몰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고운 얼굴이 잔뜩 망가질 정도로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울고 있었다.

하지만, 웃고 있었다.

너무나 기뻐서, 너무나 행복해서 웃고 있었다.

그 말을.

언제나 듣고싶었을 그 말을 해야지.









"다녀왔어."


"어서와.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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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냈다.

어쩐지 시원섭섭한 느낌이네.

뭔가 더 풀어보고 싶었는데, 잘 안되기도 했어서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그래도 언제나 응원해주고, 잘 봤다고 해주는 게이들 덕분에 힘도 나고, 재밌기도 했어.

나중에, 쳐낼거 쳐내고 나 스스로도 만족할 만큼 고치면, 노피아에도 올려놓을게.

얀챈러들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