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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그저 어릴적 놀이 상대였다.

   

우연히 옆집에 살았고 둘다 부모님이 일때문에 집에 잘 안들어 오지 않았다.


나의 부모님은 거의 웃지도 울지도 않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옆집 사람에게 집을 비울때면 서로의 아이를 집에 드나들게 하자고 했다.


그 이후로 나와 그는 부모님이 안계시는 시간을 함께 하게 되었다.



   그는 나보다 1살 많았기에 자연스레 "오빠"라 불렀다.

   

그는 그게 기뻤는지 어린 마음에 "오빠"다운 일을 하기 위해 힘썻다.


처음 몇 년간은 그런 그가 귀찮았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으나,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내가 그를 멀리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보러 오고 걱정해 주었다.


나는 그런 그가 매우 귀찮았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 자연스레 그가 나를 멀리 할 것이라 생각해 무시했다.


나중엔 그도 나를 그저 어릴적 놀이 상대라고 여길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고등학생이 된 후 대낮에 집에 강도가 들었다. 

   

강도는 이 시간대에는 여고생 혼자 집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아는 눈치였다.


그는 칼을 내목에 대고 돈 될만한 것 전부 가져 오라고 협박했지만, 나는 떨지도 않고 공허한 눈빛으로 강도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게 마음에 안들었던걸까?


그는 칼을 내 허벅지에 깊게 박았다.


내 인생은 그 이후로 격변했다.


흑백의 세계가 빨간 선혈을 중심으로 색으로 물들어 가는 느낌.


빨강색 아픔이 척추를 타고 뇌 속에 전달되는 느낌.


처음 느껴보는 공포,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 그러한 것들이 말이 되지 못하고 눈물과 비명으로 흘러나왔다.


나는 지금까지 받아들인 적 없는 정보에 아무 생각도 못하고 그저 울며 비명을 질렀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 오빠는 나를 안고 있었다.


나는 그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팔을 세게 감아 내 울음, 첫 감정을 그에게 쏟아냈다.


사건이 어떻게 끝났는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 난 후엔 나는 입원해 있었고, 오빠는 병원 침대를 기댄채 앉아 잠들어 있었다. 


그는 색이 물들기 시작한 세계에서 유난히도 짙게 보였다.



   이후엔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 하기 전까진 거의 매일을 함께했다.

   

별거 아닌 요리, 적당한 tv 영화 채널 감상, 공부까지.


그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웃고 웃을 수 있었다.


그가 대학교를 들어 간후엔 그와 만날 수 없었다.


그를 다시 보기 위해 같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공부했고 어렵지 않게 그 대학에 붙었다.


다시 그와 고등학생때처럼 지낼 수 있다는 것에 설렜다.



   하지만 지금 그는 왜 우리 둘만의 공간이었던 곳에 다른 여자를 데려온 것일까?

   

왜 그런 걸레를 자신의 여자친구라고 하는 것일까?


  "순애야, 얘가 내 여동생이나 다름 없는 얀순이야."


   왜 그는 나에게는 보여주지도 않았던 행복한 얼굴로 잔인한 말을 하는 걸까?

   

  "너는 내 가족이나 다름 없으니까, 너에게 가장 먼저 소개해 주고 싶었어."

  

   나에게 오빠는 가족이 아니라 전부였었는데, 그는 나를 그저 그렇게 보고 있었나?

   

그에게 있어 나는 그의 삶의 편린일 뿐인가?


왜? 왜? 왜?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데 오빠도 당연히 나를 그렇게 여기는게 당연하지 않나?


  "얀순아, 괜찮니? 얼굴이 안좋아 보여."

  

  "으응...좀 어지러운거 같네. 나 집에 돌아가서 쉴게."

  

  "그래. 좀있다가 보러 갈테니까.."

  

  "빨리 와야 해."


   그 가증스런 년이랑 오빠를 같이 두는 것은 맘에 들지 않았지만 나는 잠시 물러나기로 했다.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그가 나만을 바라보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년을 죽여야 할까?


그 년의 빨간 선혈은 오빠의 마음을 나에게만 향하게 할 수 있을까?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하지만 그가 자발적으로 나에게 오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랑, 공포, 죄책감.


어떤 이유라도 좋다.


내가 그의 전부가 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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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음편을 쓰긴 할건데 언제가 될진 모르겠다.

이어 쓰고 싶은 사람은 쓰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