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붕이 기타를 잡은 계기는 간단했다.

중학교 3학년때 단순히 간지난다는 이유였다.


훗날 자취방에 기타만 4대를 둘 얀붕은 클래식 기타와 통기타를 구별 못하고 기타의 기자도 모르던 시절에 첫 방과후 기타레슨을 수강신청하면서, 아버지가 어디서 구해온 클래식 기타를 들고 기묘하게도 통기타 수업에 모습을 드러내며 그 성대한 막을 올렸던 때를 회상했다.


지금도 얀붕은 이 시절 생각을 하면 풋하고 웃음이 절로 나온다고 한다.


방과후 신청서를 쓸 때, 일주일이 지나서 신청마감까지도 반에선 딱히 호응이랄게 없이 시큰둥한 분위기가 지속하여 이러다 본인만 통기타 수업을 듣게 될런지 얀붕은 싱숭생숭했지만 정작 첫 수업시간 전에 청소를 끝내고 해당 교실로 가보니 재잘거리는, 일면식이 있던 여자 둘 사이에서 쭈뼛쭈뼛 그 작은 손으로 줄을 애처롭게 누르며 통기타의 줄을 뜯고 있는 얀순의 모습을 보게 된다.


'저 녀석도 이거 신청했었나.'


저 녀석, 얀붕에게 얀순은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같은 반이 되어, 이상하게도 죽이 참 잘 맞기도 하고 달마다 제비뽑기로 진행하는 자리배치에서 짝꿍을 3번 이상이나 꿰찬, 친구이상 연인미만의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던 중에 3학년으로 진학하면서 유일하게 같은 반이 된 친구였다.


"오옹, 얀붕군아니야?"


얀순의 왼쪽 친구가 앞 문을 드르륵 열고 교실에 들어서던 얀붕을 보고 말했다. 그러자 기타줄을 뜯던 얀순은 슬며시 얀붕을 힐끗거리다 이윽고 다시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네요. 얀붕군도 수업 듣는거네요."


뭐가 그리 재밌는지 히히덕 거리며 얀순의 오른쪽 친구가 말했다.


"어... 근데 니들 언제 신청한거야? 쌤이 신청하랄 땐 코빼기도 안보이더니만."


소프트케이스를 조심스레 책상에 가로로 뉘어 대고, 케이스의 지퍼 손잡이를 아래서 위로 당겨 올려 기타를 꺼내들며 얀붕은 말했다. 그래도 내심 반가웠다.

그러자 얀순의 왼쪽 친구가 가늘게 눈을 뜨더니.


"아 그거? 우리 아까 6교시 끝나고 청소시간에 쌤한테 찾아간거야. 흐흐... 얀순은 엊그제 신청해놓고 오늘 우리를 끌고간거지만."


"맞아요. 후후... 사실 저흰 그렇게 생각 없었는데 말이에요. 보세요. 저희 둘은 기타도 없답니다."


그러고 보니 셋 중 유일하게 기타를 들고있는 건 얀순 뿐. 하기사 끌려왔다니 그렇겠지.

게다가 꼭 기타를 가져오라고는 한 적은 없으니 이상이랄 건 없다고 생각한 얀붕은 단지 그 미적지근한 동기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그건 그래. 니네 평소 행실을 보면 하나도 안어울리긴 해."


"얀붕~ 그거 칭찬이야...?"


"칭찬은 아닌거 같네요. 얀붕군..."


"그면, 마지못해 신청했다지만 무슨 연유로 굳이 청소끝나고 집엔 안가고 여기 붙어 있는거야? 따지는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그냥 가도 상관없지 않아?"


턱을 긁적이며 얀붕은 의문에 대한 해답을 물었다.


"아 그건, 얀순이 사실... 뭐, 왜 그렇게 째려봐?"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네요. 우린 조용히 있도록 하죠."


"귀엽다, 귀여워 아주!"


그러고는 박수를 짝짝치는 얀순의 왼쪽 친구.

그나저나 얀순이 묘하게 화난 것으로 보인다.

이 쪽을 전혀 쳐다보진 않지만 느낌상.


얀붕은 별 생각 없이 왼쪽 친구를 째려보던 얀순에게 평소 말하듯이 툭하고 던졌다.


"너 기타칠 줄 알았어? 디게 신기한 이미지다 너도."


"...뭐 어떤데 그래."


눈을 가늘게 뜨고는 옆 얼굴만 보여주니, 이거 평소답지 않게 새침한 모습이다. 

이거 생각보다 귀여운 걸 이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지만 말할 순 없겠다.


"얀붕군. 눈치좀 차려요... 아얏! 얀순, 허벅지에 피멍들면 숙녀로서 치명적 결점이에요..."


"얀붕도 참 죄 많아. 옆 반 얀진말야. 얀진은 1학년 때부터 알고 있었나 둘이?"


얀순의 동공이 줄어들면서 눈빛이 무서워졌다.


"그렇죠. 저도 1학년부터 2학년동안은 얀붕군, 얀진양, 우리 귀여운 얀순과 전부 같은 반이었거든요. 지금은 얀진양이랑 붙었고 얀붕군이랑은 떨어졌지만요"


그거 참 아쉬워요~ 하는 소리를 내며 얀순의 오른쪽 친구가 얀순에게 손날로 얇은 바람을 일으켜 보냈다.

줄어들은 동공을 한 무서운 눈으로 1플랫과 3플랫에 걸쳐져 있는 c코드를 부들부들 잡고는 집중하여 그 손을 응시하고 있던 얀순의 오른쪽 눈썹이 꿈틀거린게 그 순간은 대놓고 보였다.

왼쪽 친구가 흐으응 하며 말했다.


"그래? 1학년때는 그렇다쳐도 2학년때 아주 볼만했겠는데?"


"그럼요. 아주... 여기까지 할게요. 얀순, 거기 아까 꼬집은 곳이에요."


"너네 재잘거리는 거, 슬슬 신경쓰이니까 닥쳐. 기타치는데 전부 방해야."


"어머, 얀순. 그런 험한 말은 못써요."


"뭐, 평소 내 모습인데?"


얀붕이 거들었다.


"그건 맞아. 아주그냥 거칠기 짝이 없어요."


"너는 뭘 안다고. 시끄럽네 진짜."


얀순은 심기가 불편한 듯 어깨를 들썩이며 투덜거렸다.

평소 모습과 다른 바 없어, 안심하고 얀붕은 피식 웃으며 받아쳤다. 


"니 짝꿍만 몆날 몇일을 했는데 이젠 어느정도 안다 이말이야."


"후후... 얀붕군도 은근 제법이에요."


얀순의 얼굴이 빨개지던 와중, 기타 수업을 이끌어 갈 외부 초청 강사가 교실에 들어섰다.

그 날은 기초적인 1플랫과 3플랫 언저리의 도레미파솔라시도로 이루어진 스케일 블럭 하나와 기본적인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들고있던 기타는 통기타가 아니라 클래식 기타였다는 것도.






학교는 평범하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런데 짝꿍인 얀순으로부터 수업시간 내내 은근한 신경질과 괴롭힘을 받기 시작했다.


괴롭힘이라기보단 졸고있을 때 턱을 괸 팔을 툭치고 모른척 하거나, 혹은 책상을 슬슬 긁어 선을 긋고는 넘어온 지우개를 압수하거나, 교과서에 본인이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들의 이름을 빽빽하게 새겨넣는 장난정도.


뒤에서 지켜보던 친구들은 눈꼴시렵다며 꺼지라고 했지만.


시간은 흘러, 어김없이 방과후 기타 수업의 시간이 돌아왔다.

얀붕은 이번엔 통기타를 들고 수업에 참여했다. 클래식 기타는 방에 고이 모셔두었다.


와보니 이미 얀순 패거리들이 도착해 있었다.

왠일로 전부 기타를 들고있었고.


"무슨일이야. 전부 기타들고 있잖아."


"후후. 생각보다 재밌는거 같아서 아버지께 부탁드렸더니 하나 구해다 주셨어요."


"나도! 난 삼촌아저씨 쓰던 걸 잠시 빌린거지만 말야."


왈가닥들이지만 그래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니 묘하게 같이 텐션이 오르는 느낌을 받은 얀붕이였다.

그나저나 왼쪽 친구, 삼촌분이 디자인을 조금 중시하시나 보다. 새빨간 유광에 엣지를 화이트라인으로 처리한 드레드넛 통기타가 무척 이뻐보인다.


"기타 지금치냐. 한 번만 들어보자. 진짜 이쁘다."


"얀붕군 부탁인데 아무렴. 자!"


"야 야, 넥 그렇게 막 잡고 움직이지 말라고! 삼촌분꺼잖아!"


넥이 휘어버릴라 헐레벌떡 조심스레 아기를 받듯이 건네받아 폼을 잡아보고는,


'생각보다 묵직한 게 역시 드레드넛인가? 컷어웨이보다 확실히 무겁다. 아닌가 나무 차이인가?'


하며 고민하는 데, 얀순이 그 모습을 보며 동공이 전보다 더욱 극적으로 줄어든 무서운 눈으로 얀붕을 힐끗거렸다.


"얀순, 그런 눈을 하고 있으면 얀붕군이 놀라 자빠진다구요?"


"무슨, 시끄러워. 닥쳐."


다행히 얀붕은 이 눈을 못본 것 같다. 물론 기타를 건네준 당사자는 뒤에서 입을 손으로 가리고 낄낄거리고 있었고.

이윽고 얀순은 매서운 안광을 곧 거두고 들고 있던 기타 바디의 홀쪽을 만지작 거리며 슬쩍 말했다.


"내것도 쳐봐. 야, 야! 내 말 안들려?"


"어... 무, 뭐? 미안, 기타소리 땜시 안들렸어. 뭐라고?"


"아, 아니야."


"뭐? 너 그러고는 이따가 또 꼬투리 잡을거잖아. 바른대로 말하지 못할까 어허..."


"으... 그냥 내것도 쳐보라고... 기타 말이야."


얀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물었다.


"엥? 갑자기? 왜?"


그러자 얀순이 발끈한 것 같지만 우물 거리더니 말했다.


"이거 비싼거야. 100만원이 넘는다고. 이래도?"


얀붕은 오히려 손사래를 치며 거부했다.


"얘가 미쳤나. 가격을 알고나면 그런 걸 내가 어케 만져. 부담스러워."


"뭐야 얀붕군! 우리 삼촌것도 비싼거라 했어!"


"그래? 그런데 넌 임마, 왤캐 막 다루는거야?"


"우리 아빠가 싼 거라 그랬거든."


얀붕은 한숨을 내쉬며 얀순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얀순은 기대한다는 듯이 눈을 똥그랗게 떴다.


"말을 말자. 그럼 줘봐. 저 녀석처럼 넥을 무자비하게 잡고는 넘겨주지 말라구."


"어련하시겠어. 잘받아. 고장나면..."


갚을 때까지 옆에 잡아 둘거니까 라는 아주 쪼만한 목소리는 안들린 얀붕이었다.


"걱정 붙들어 마셔요. 내가 너도 아니고."


"너 진짜 맘에 안들어 요즘."


투덜거리는 얀순을 뒤로, 100이 넘는 기타를 만져본 얀붕은 간단하게 2플렛, 3플렛 언저리의 g코드를 잡아보고 오른손으로 줄들을 긁어보았다.

사실 소리 차이는 모른다. 기타는 어제 처음 쳐보고 집에서 조금 쳐본 게 다니까.

그래도 초록배추 100장의 위력은 중학생인 얀붕에게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얀순에게 돌려주려 뒤돌아보자 흠칫하고 놀란 얀붕.

그도 그럴게 입을 헤 벌리고 두손을 가슴팍에 모아놓고는 꼼지락 거리며 멍한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으니까.


"...왜이러는거야? 받아."


"응... 고마워."


"너 뭐 잘못먹었냐."


뒤에서 히히덕거리는 얀순 친구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무튼, 발끈해서 얀붕에게 뭐라 말하려는 얀순의 모습과 동시에 어제의 강사 선생님이 교실 앞문을 통해 나타났다.


오늘은 c d e a g 코드들을 배웠다.

내일은 바레를 해야하는 f bm코드를 배운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아니 글도 잘못쓰는데 옛생각도 나고 회로 돌아서 짧게 쓰고 금방 잘라캤더니 왠걸 검나 길어져부렸네

나중에 본편 다시 쓰러옴 ㅎㅎ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