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악의 소녀로부터 (1)

 

 

 

 

 

1.

 

“야, 거기 너. 그만 졸고 일어나.”


아차.

 

깜빡 졸았다, 아니 그냥 잠든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의자를 뒤로 밀고 일어섰다.

 

“너, 식별명은?”


“……Y-B입니다.”


“그래, 내 수업 도중에 자다니 배짱은 인정해주마.”


“그래서요?”


“그래서, 내가 방금 한 이야기를 네가 다시 설명해주면 좋겠는데.”

 

그녀가 막대기로 칠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가 누구고, 여기 왜 왔는지에 대해 역사적인 관점으로 말해봐.”


괜히 쓸데없이 꼬아서 말하네.

 

나는 한숨을 내쉬고선, 이렇게 말했다.

 

“저희들은 종마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저희가 여기 온 이유는 번식을 위해서입니다.”


이런 걸 굳이 자기 입으로 말하게 하다니…….

 

“역사적인 관점으로 말하자면, 현재 저희가 있는 이 세상- 판데모니움은 멸망하고 있습니다.”


다만 멸망하고 있는 이유가 재앙이나 질병 때문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5년 전, 대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전쟁은 10년 넘게 지속되었고

 

그 결과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문명을 유지하는 게 벅찰 정도로 말이죠.”

 

“마지막 설명까지 하도록.”


“네, 판데모니움의 ‘정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전부 실패했고, 마지막 수단으로……다른 세상의 인간을

 

납치하자고 결정했습니다. 그 납치 피해자들이 저희, 종마들입니다.”

 

“납치라니, 초대라고 해주면 좋겠는데.”


“납치당했습니다.”


그녀가 작게 웃었다, 나는 웃지 않았다.

 

“뭐, 자기 처지를 잘 알고 있다면 굳이 혼내진 않겠다.”


“그거 참 감사합니다.”


“너희들도, 자기 처지를 잊지 말도록. 너희가 여기 온 이유는 세상의 재건을 위해서다.

 

너희의 쓸데없는 인생을 훨씬 가치 있는 것으로 바꿔준 것이니, 감사히 여기도록. 이상.”

 

아이고, 그러시겠죠.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교실을 나갔고, 다른 종마들도 슬슬 자리를 떠났다.

 

“……멋대로 납치해놓고선 감사하라니, 미친 거 아니냐고.”


그 때, 나의 공책에서 딸랑딸랑, 종 울리는 소리가 났다.

 

말이 공책이지 사실상 원래 쓰던 태블릿에 가까운 물건이지만…….

 

‘만남을 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15분 이내에 지정된 장소로 이동하십시오.’

 

“켁, 들어가서 낮잠이나 자려고 했는데.”


하지만 호출을 거절할 권리 따윈 없다.

 

부르면 가야 한다. 만약 거부했다간……잘못하면 ‘목장’으로 끌려갈지도 모른다.

 

그것만은 피해야한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얼른 나의 못난 모습을 보여주고 돌아가 보실까?”

 

나는 교실을 나가 만남 장소, 그러니까……음……리히트 홀로 향했다.

 

그나저나 리히트 홀이라니, 여긴 아무나 못 쓸 텐데?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 내게 거부할 권리는 없다.

 

“……죽진 않겠지, 그래. 죽지는 않을 거야.”


나는 리히트 홀로 향했다, 불행히도 여기서 그리 멀지 않았다.

 

이곳, 리히트 타워는 속칭 ‘정점’의 일원들만 사용할 수 있는 장소 중 하나였다.

 

나도 여기는 처음 왔고, 다른 곳과 다른 이 압도적인 분위기에 기가 눌렸다.

 

모든 것이 하얀 색이었다. 바닥도, 벽도, 천장도. 거기에 진짜 금으로 온갖 현란한

 

무늬와 그림을 새겨 예술의 예도 모르는 나조차 다리가 떨릴 정도로 아름다운 장소였다.

 

리히트 타워의 승강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찰칵-

 

승강기의 문이 열리자, 어마어마하게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공간 마법인지 뭔지- 바깥에서 보는 것과 내부 구조가 다르다.

 

그 엄청나게 넓은 공간 한 가운데에, 테이블과 어떤 여자만이 있었다.

 

“……으음, 조금 늦었네.”


바닥을 덮을 정도로 긴 머리카락과 염소를 닮은 뿔, 루비를 닮은 눈동자.

 

기묘할 정도로 깨끗했다. 피부도, 얼굴도, 완벽 그 자체였다.

 

이렇게 멀지만 알 수 있었다.

 

아름답다.

 

지금껏 내가 본 그 어떤 것보다도 아름다웠다.

 

이토록 아름다운 존재가 있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앉아도 되는데?”


“……저기, 사람 잘못 부른 것 같은데.”


“아냐, 아냐. 제대로 불렀어, Y-B……얀붕이라고 부를까?”


“뭐야, 그 이상한 이름은.”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테이블로 다가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가까이서 보니까 이젠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향기마저 느껴졌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


“몰라.”


“어, 진짜로?”

 

“사람 이름 외우는 건 젬병이라서.”


“그래도 나를 모르다니……신기하네.”


사실, 그녀에 대한 정보는 이미 내 손에 들어왔을 터였다.

 

종마들은 모두 우리를 선택하려는 ‘고객’에 대한 정보를 미리 받는다.

 

그녀들이 누구인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 뭘 좋아하는지- 그런 사소한 것까지 전부.

 

하지만 나는 단 한 장도 읽지 않았다.

 

“그럼, 그냥 ‘마리’라고 불러줘.”


“마리……그럭저럭 괜찮은 이름이네.”


“예쁜 이름이라고 칭찬해야 하는 타이밍 아니야?”


“내 장점이자 단점이 솔직한 거라서.”


“그런 것 같네.”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 반쯤은 거짓말이다.

 

목소리부터 얼굴까지 너무 완벽해서……이 정도면 성욕보단 경외심이 생긴다.

 

대체 얘는 누구지? 그보다 나를 왜 여기 부른 거야?


아까 먹은 밥이 도로 올라올 것 같았다.

 

“내가 널 여기 왜 불렀는지, 알고 있어?”


“전혀.”


“보통 호출하는 이유에 대해선 알고 있지?”


그거야 뭐, 나도 호출을 아예 안 받았던 건 아니니까.

 

“종마가 자신과 어울리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서……잖아?”

 

“잘 아네. 거기서부터 설명해야 하나 싶었어.”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너랑 전-혀 안 어울리니 시간 낭비할 필요 없다는 거야.”

 

“그건 내가 정할 문제지.”

 

마리가 살짝 일어나, 몸을 앞으로 숙였다.

 

……나는 얼른 가슴골로부터 도망쳤다. 눈을 피한 것이다.

 

“신기하네.”

 

“신기할 정도로 못생겨서?”


“아냐, 아냐! 얼굴은 마음에 들어, 너무 잘생기면 오히려 부담스러워.”


“그럼 적당히 못생긴 걸로 할까.”


“내가 신기한 건, 너의 반응이야.”


내 반응이 뭐? 그녀가 도로 자리에 앉았다.

 

“내 종족, 뭔지 알고 있어?”


“……박쥐 인간?”


“아니거든! 내 어디가 박쥐같다는 거야?!”


“박쥐 좋잖아, 멋있고……범죄자들을 혼내줄 거 같기도 하고.”


“나는 서큐버스야. 그것도 순혈 중의 순혈, 퓨어야.”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그게 어쨌다고? 뭐 눈물 흘리면서 박수라도 쳐야 하는 부분인가?


“퓨어 서큐버스는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수컷을 매혹시켜.”


“좀 흔한 설정 같은데.”
 
“하지만 사실이야. 지금까지 불렀던 남자들은 전부 날 덮치려고 하거나

 

그 자리에서 졸도했어. 몇몇은 더……꼴사나운 태도를 보였다고만 할게.”

 

“그거 참 불편하겠네.”


“맞아! 그거 때문에 널 부른 거야!”


마리가 소리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다른 사람이랑 대화하고 싶어도, 다 나한테 반해버려서 곤란하단 말이야!

 

평범한 대화가 하고 싶어! 아무나 좋으니까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애인 말고! 친구!”

 

“그러냐? 와, 응원해줄게. 열심히 해. 그럼 나는 간다?”


“앉아!”


나는 얼른 자리에 도로 앉았다.

 

“……흠, 흥분해서 미안해. 품위 없이 행동했네.”


“품위는 나도 없으니까 뭐, 괜찮아.”


“아무튼 너는……날 보고도 멀쩡한 거 같아. 그렇지?”


아니, 사실 지금도 가슴이 쿵쿵 뛴다.

 

사랑이라곤 평생 해본 적도 없건만 당장 사귀자고 고백하고 싶을 정도다.

 

“아마……도?”


“있지, 앞으로도 나랑 이렇게 대화해주지 않을래?”


마리가 내 손을 잡은 순간, 숨이 멎었다.

 

“그, 그게…….”


“어려운 부탁 아니잖아, 응? 평범하게 대화할 사람이 필요해……제발…….”

 

이걸 어떻게 거절하란 말이야.

 

아아, 젠장. 도망쳐야한다, 여기 더 있다간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겠다.

 

“알겠어, 알겠으니까 이 손부터 놔!”


“만세! 나도 드디어 친구가 생겼다!”


“그렇게까지 기뻐할 일이야?”


“당연하지! 자, 우린 앞으로 친구야. 그러니까 내가 부를 때마다 바로바로 와야 돼?”

 

“그건 친구보단 애완동물-”


“아무튼! 다음에 또 호출할게!”

 

그 직후, 나는 반쯤 내쫓기듯 타워를 내려왔다.

 

내려가는 승강기에 타자마자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후아……머, 머리가 다 아프네……뭐냐고 그거, 반칙이잖아.”


잠깐 대화한 것뿐인데 마리의 얼굴만이 떠오른다.

 

이게 사랑인가? 아니, 이건 그냥 성욕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그나저나 마리……? 대체 누구야, 저 녀석. 평범한 고객은 절대 아닌데.”


원래 확인할 생각 따윈 없었지만, 이번엔 예외로 둬야겠다.

 

나는 공책을 펼쳐 ‘마리’라는 여자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

 

그리고 딱 하나……일치하는 사람을 찾았다.

 

‘마리아 타브나스 알렌시아’

 

나이, 15세. 세상에 5명도 남지 않은 퓨어 서큐버스이자 정점의 일원인

 

로베르트 타브나스 알렌시아의 외동딸…….

 

“세계를 지배하는 가문의 일원이라는 건가.”

 

타고 태어난 서큐버스로써의 능력이 너무나도 강력해 마주치는 수컷을

 

모조리 노예로 만들 수 있으나 본인은 그 능력을 싫어하여 스스로를 유폐시켰다.

 

좋아하는 것은 평범한 대화, 싫어하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자길 좋아하는 것.

 

“아니, 그보다도 왜 그런 여자가 날 호출한 거야? 대체 왜?”

 

……불길하다.

 

그냥 불길한 것도 아니고,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불길하다.

 

“차라리 목장으로 갈까. 아니, 그냥 죽을까…….”


나는 대체 왜 이런 곳에 끌려온 걸까…….

 

오늘따라 집이 그리웠다.

 

 

 

 

 

2.

 

“있지, 아빠! 나 친구가 생겼어!”


“……친구? 노예를 잘못 말한 게 아니라?”


“이번엔 친구야! 나, 친구는 가져본 적 없으니까!”


수정구 너머의 아빠가 턱을 쓰다듬었다.

 

“그거 참 신기하군. 그 친구가 여자더냐?”


“아니, 남자!”
 
“보통 남자가 너의 매혹을 견디다니……어쩌면 고자일 수도 있겠구나.”


“아, 그건 확인 안 했다. 그래도 친구니까 괜찮아!”


“아무렴, 네가 좋다면야.”


으음, 그나저나 의자가 좀 불편하네.

 

나는 내 밑에 깔려있던 노예한테 말했다.

 

“저기, 좀 흔들리는데.”


“죄, 죄송, 죄송합니다! 제……제발 의자로 있게 해주세요…….”


“아무튼 마리, 친구를 사귀는 것도 좋지만 슬슬 종마를 찾아 보거라.

 

퓨어 블러드가 줄어드는 것은 안타깝지만……이젠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니.”

 

“잘 자!”

 

“잠깐 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방으로 돌아갔다.

 

문을 열자마자 수많은 노예들이 바닥에 엎드려 나를 칭송하기 시작했다.

 

“마, 마리 님! 오늘도 아름다우십니다!”
 
“부디 저희를 밟아주시옵소서!”


“오늘은 너희 밟을 기분은 아닌데, 나 이제 들어가서 쉬어도 돼?”


“무, 물론이옵니다! 아아, 저희 같은 노예들에게도 너무나 상냥하십니다…….”


나는 노예들을 지나쳐, 침대에 누웠다.

 

“친구, 친구라……히히, 진짜 친구가 생겼어.”

 

아- 그냥 데려와서 쭉 친구로 삼을 걸 그랬나?


아니야, 그러면 노예랑 다를 게 없으니까. 분명 이쪽이 더 재미있을 거야.

 

하지만 가지고 싶어지면…….

 

…….

 

그 때는, 내가 가져가야지.

 

 

 

 

 

 

 

 

 

 

 

딱히 쓰고 싶은 건 없고 그냥 무지성으로 써봤다

얀데레 하렘 그런 걸 쓰고 싶다, 단지 그것뿐...

원래 다 친구로 시작해서 애인되고 부인되는 거다 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