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월드,

쉽게 표현하자면 변방계 행성을 뜻한다.


아인슈타인이 옮았던 것인가,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하여도 인류는 빛보다 빠른 우주항해(FTL)방법을 발견하지 못했다.

지구는 이미 과포화상태다
더이상 거주하기 적합하지 않은  지구를 탈출하는 이민선단이 늘어났다.
행성간 통신(Space Network)은 물리적인 거리로 인하여 지연시간이 몆백년 수준이였다.

결국 인류는 각자의 행성에서
서로다른 기술수준과 서로다른 문명을 가지고 '생존'해 나가고 있다.

어떤 행성은 다시 석기시대로 되돌아갓으며
어떤 행성은 아광속 항해와 진정한 공산주의(노동 해방)가 가능할 정도의 초문명을 달성했고
어떤 행성은 기계문명(메카노이드)이 인류을 억압하엿으며
어떤 행성은 서기 2000년대 수준의 문명을 달성하기도 했으며


...어떤 행성은 저 모든 문명이 혼재되어 각자도생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행성을 지구의 관측자들은 '림월드'라 불렀다.

나 또한 이민선단에 몸을 싣고, 새로운 삶을 향해 동면에 들어갔다.
다시 눈을 뜨는 날이면, 광활한 초원이 날 반겨줄 줄 알았다.


그러나,
설마 천년이라는 시간이 지날 줄은 몰랏고
설마 이민선단이 소행성군에 충돌하여 비상탈출장치가 작동할줄은 몰랏고

내가 도착한 곳이 림월드 일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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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옥같은 행성을 탈출해야 한다!'
라는 일념 뿐이였다.


림월드에 왜 통일된 기술수준이나 문명이 없느냐고?
기계문명(메카노이드)의 억압때문이다.

어떤 하나의 부락이 일정 수준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면
기계문명은 엔트로피의 감소속도를 늦추기 위해 해당 부락을 '파괴'하려 한다.

저 '가치'에는 모든 것이 포함된다. 인간의 개체수, 소유물, 기술수준 등등등..


때문에 어떤 부락은 소수정예로 높은 기술수준을 보유하였으며
어떤 부락은 인구수가 월등히 많았지만, 석기시대 수준의 문명을 유지하였다.
단, 어느 부락도 '국가'수준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기계문명을 물리치며 버티는 일은. 단기간이면 가능할 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불가능하였다.
인간이 바퀴벌레를 박멸시킬 수 없듯이, 바퀴벌레 또한 인간을 박멸시킬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때문에, 이민선을 다시 건조하여 메카노이드의 손길이 닫지 않는 곳으로 탈출하는것이 가장 이상적인 생존방법이였다.

이민선단의 다른 생존자들 몆명과 규합하여 '부락'을 구성하였다. 우리는 이곳을 정착지로 불렀다.
동굴 바닥에 침낭을 깔고, 사냥을 통해 고기와 가죽을 얻고, 발전기를 설치하고, 전기용해로를 가동시켜 제련을 하고, 우주선을 건조한다.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였다.

기나긴 시간동안
다른 부락의 생존자들이 우리 정착지의 구성원이 되기도 했으며
정착지의 구성원이 납치되어, 식인종들에게 뼈와 살과 가죽이 분리된 적도 있엇다.

어쩌다 보니, 그 가죽으로 만들어진 소파가 빌의 방에 있다.
빌은 '존 맥클린'이 매우 푹신하다고 평가했다.

...뭐 빌과 존은 매우 친했으니 상관 없으려나? 존이 빌의 방에서 편히 잠들기를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우리가 동면하는 동안 이민선단을 운행할 고수준의 인공지능이 없다.

현재 우리의 기술력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메카노이드의 선단에서 코어를 뜯어내기엔 큰 위험이 따른다. 애초에 정밀전자기기가 전투에 온전히 남아잇을리 없다.

먼저 우주선을 건조하고, 유인항해를 하며 인공지능 코어를 찾자는 대안을 세웠다.
오늘도 간이조선소에서 용접을 하느라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렷는데.

"경보! 경보!"
"원시부족민의 습격!, 숫자 약 100명!"

경비를 서고 있던 클렌트의 급박한 목소리가 사이렌 소리와 함께 울려퍼진다..
겨우 일곱명이 살고있는 부락을 덮치기위해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하지만, 이런 저강도 분쟁에선 '머릿 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약 3천년전, 지구의 선조가 '기관총'을 발명해 낸 이후 무협에서나 나올법한 '만인지적'을 물리적으로 가능케 했다.
아메리카로 쳐들어간 유럽인들이, 지역 부족민들을 수천단위로 갈아버렷듯이 말이다.


하물며 3천년전 수동식 맥심 기관총도 아니고, 전자동식 헤비볼터와 동력갑옷(Power-Armor)앞에서
100명정도의 부족민들은 문젯거리도 되지 않는다.


이런 저강도 분쟁에서 승패를 결정짓는 요인은 개개인의 실력과, 무기의 수준이다.


바꿔 말하자면, 개개인의 실력이 뛰어나다면 무기의 수준을 뒤엎는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관총 사수인 그렌트의 헬멧의 취약한 바이저 부분을 노리고, 철제 투창이 날아와 꼳힌다.
그렌트의 헬멧 사이로 피가 분수처럼 솓아오른다.
그렌트의 전방 50M쯤에서 한 원시부족 여성이 던진 것으로 보인다.

옆에 있던 나는 재빠르게 그녀에게 총부리를 겨눈다. 그녀는 나의 조준을 피해 동료들의 시체 사이로 숨어버린다.
그녀는 동료들의 시체에서 투척용 도끼를 뽑아든다.

나의 헬멧 바이저 부분을 노리고 도끼를 정확히 투척한다.
고개를 살짝 비틀어 도끼를 피하니, 그녀가 벌써 나와의 거리를 좁혀 덮치기 시작한다.

그녀의 힘에 밀려 뒤로 고꾸라지는데...
"우와....."
그녀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자마자, 난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엇다.

부족민들의 피와, 자신의 피를 온몸에 뒤집에 썻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에도 무수히 많이 새겨져있는 흉터들의 그녀의 경력을 증명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아름다움을 무너뜨릴 순 없엇다.

그녀는 자신의 허리춤에서 단검을 빼들어, 다시 내 헬멧의 바이저부분을 내려찍지만
단검이 강화유리를 뚫지 못하고 부러져버린다.

나는 왼손을 휘둘러 그녀의 관자놀이를 후려친다.
동력갑옷의 힘에 짓눌려, 그녀는 몆 미터를 날아가 고꾸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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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한명이면 충분하니까... 백명이 죽든가, 백한명이 죽든가 뭐가 다른건데!!!"
기관총 사수였던 그렌트의 아내, 카밀라가 울부짖는다.

그렌트는 투창에 머리가 박살나, 그자리에서 즉사했다. (R.I.P 그렌트)
그렌트를 죽인 부족민 여성은, 동력갑옷의 보조를 받는 주먹에 정통으로 맞앗음에도 살아남아 우리에게 포로로 잡혀있다.
그녀의 다리는 총알에 갈기갈기 찢어져 살릴 수 없었기에 절단하였다. 빈 자리에는 나무로 된 의족을 달아준다.
저런 다리로 어떻게 민첩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엇는지...

어쨋든, 자신의 남편을 죽인 부족민 여성이 살아남았다는것을 알게된 카밀라가
그녀를 죽여버리겟다며 미쳐 날뛰고 있다.

기계문명의 센서는 살아있는 인간이나, 죽은 시체나 동일한 '가치'로 판별한다.
여기서 포로들을 죽여버린다면 메카노이드의 이목을 더 많이 끌 수도 있다.
차라리 적절히 치료해서 정착지 밖으로 쫒아내는것이 우리에게 훨씬 유리한 방법이다.

카밀라에게 약간의 진정제를 투여한다.
다른 동료에게 그녀를 침실까지 에스코트 해주도록 부탁한다.
나는 약간의 영양죽과, 항생제를 챙겨 포로수용소로 향한다.

포로수용소의 문을 열자,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에 잠시 숨을 들이킨다.

나의 수술이 잘 끝낫던 것일까, 아니면 그녀가 너무나도 강인했던 것일까, 

구속구에 묶인 몸을 벌떡 일으켜세워 날 쳐다본다.


"당신...이 날 쓰러뜨린 사람이지?"

이럴수가, 원시부족민이 연방 표준언어를 사용할 줄 알다니!


"... 그렇다면 어쩔거지?"


"이름을 알려줄 수 있나?"


"레린, 성은 없다"


"흠... 조금 이상한 이름이지만, 어쩔 수 없나?"

나의 동료를 죽인 여자가, 이젠 나의 이름을 가지고 트집을 잡는 상황이다. 


"레린, 당신에게 고한다. 부족의 전통에 따라, 나 '보라색'은 그대를 남편으로 맞이하여 한 평생 사랑할 것을

  위대한 인공지능의 신께 맹세한다."


"뭐?"

 인공지능의 신은 또 뭐고, 부족의 전통과 남편은 도대체 무슨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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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져온 영양죽을 맛있다는 듯 먹고 있는 이 여성의 말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부족의 전통은 매우 미개하고 원시적이였다. 

남자든 여자든 할 것 없이, 싸워서 패배한 자는, 승리한 자의 반려가 되어야 한다.

이 부족은 기계문명을 신으로써 숭상한다.

이 여자가 연방언어를 말 할 줄 아는것은, 부족의 고위 귀족이기 때문이다.

이름이 '보라색'인 이유는 별 거 없다. 부족 내에선 이러한 이름이 흔하며, 오히려 나의 이름이 매우 이상하다는 듯 하다.


"그러하니, 어서 나를 반려로써 인정하고, 아내로 맞이할 준비를 하여라"

짦게 말하면, 결혼식을 올리자는 것이다.


나의 동료를 죽인, 다리도 한짝이 없는 원시부족 여자와 냉큼 결혼해 줄만큼 난 미치지 않았다.


"보라색, 너는 다음 주에 석방될 것이다. 너의 고향으로 돌아가라"

나는 내 말만을 간단히 전한뒤, 포로수용소를 빠져나온다.


그리고 그날 밤

포로수용소에서 무언가 깨지고, 터지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동력갑옷을 입을 새도 없이 포로수용소로 뛰쳐 나갔다.


도착할 때 즈음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포로수용소의 문을 열자.


"오, 레린, 그대여, 나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와준 것인가?"

나를 보자마자 결혼해달라는 보라색과


"끄읆ㅇ키타추람ㅁ으욲욲ㅇ꾸"

그녀의 손에 목이 졸려, 피거품을 물고 있는 카밀라가 보였다.


나는 다시 한 번 보라색의 관자놀이에 훅을 날렸다.

보라색은 관자놀이에 주먹을 정통으로 맞고도 쓰러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카밀라를 조르고 있는 손 또한 놓지 않는다.


다급해진 나는 연달아 보라색의 얼굴에 가차없이 주먹질을 한다.


"나의 남편 레린, 그정도로는 날 쓰러뜨릴 수 없다네"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고, 한쪽 광대가 함몰되었음에도 그녀는 쓰러지지 않았다. 카밀라는 방금 전부터 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온 체중을 실어, 그녀의 안면에 니킥을 갈겨버린다.


어쩔 수 없는 체중의 차이로 인하여 보라색은 카밀라의 목을 놓치고 뒤로 자빠져 버린다.

안구가 돌출되고, 광대가 함몰되고, 코가  부러지고 나서야 그녀의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듯 했다.


뇌가 흔들렸는지 정신을 잃은 보라색을 버려둔 채, 나는 카밀라를 긴급히 의무실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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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 너무나 오랫동안 산소가 공급되지 않았다.

카밀라는 뇌의 기능 일부를 상실하였다. 

걷고, 움직이고, 먹을 수는 있지만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

중증의 자폐나, 치매에 걸린 노인과도 같은 상황이였다.


카밀라는 밥을 먹고, 침을 흘리며 돌아다니고, 바지에 똥을 지리고, 주저앉아 흐느낀다.


"그뤠에엔트. 그뤠엔트"


어눌한 발음으로 자신의 죽어버린 남편을 찾는다.

임시로 급하게 만든 묘지에 그렌트가 쉬고있다. 카밀라를 씻기고, 남편의 묘지로 데려간다.

망가져 버린 그녀지만,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3일간, 그녀는 밥을 먹고, 바지에 똥을 싸고, 그렌트의 묘지로 향했다.


4일째가 되는 날, 



카밀라는 관을 열고



그렌트를 먹엇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망가져버렸다.

나는, 카밀라의 머리를 향해 총을 쏘았다.

그녀가 남편의 옆에서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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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진심으로 남편을 사랑한걸세, 나처럼 말이지"

카밀라가 죽고 난 뒤, 나는 보라색을 풀어주기 위해 포로수용실로 들어왔다.


어디서 들었는지, 그녀는 카밀라의 최후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동료가 2명이나 죽었기 때문에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몆몆 동료들은 굳이 카밀라를 죽여야 했냐며, 날 비난하였다.


'정착지의 존속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카밀라는, 메카노이드의 센서에 탐지만 될 뿐인 짐짝이다.'

라고 변명하지 않는다. 그녀 또한 소중한 동료였기 때문이다.

묵묵히 다른 동료들의 비난을 받아들이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보라색의 미친 소리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다리에 걸린 족쇄를 풀어주겠다. 의족이지만, 걷는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곧장 북쪽으로 가라, 너의 마을로 돌아가라"


부락의 높은 울타리 바깥으로 그녀를 내보냈다.

그녀는 3일간 이곳으로 다시 들어오기 위해 서성이다, 이내 자신의 마을로 돌아갔다.


나는 카밀라와 그렌트를 정중히 장사지내주었다.


우주선의 건조는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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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한달여가 지났을까.

경계를 서던 빌이 허겁지겁 뛰쳐들어와 원시부족의 습격을 알렸다. 

저번보다 머릿수는 약간 줄어들어, 약 80명의 부족민이 울타리를 부수고 난입하려 한다고 알려왔다.


서둘러 동력갑옷과 총을 챙겨입고 북쪽 울타리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부서진 철책 사이로


"레린!, 당신을 맏이하러 아내가 왓다오!"


보라색이 보였다. 울타리를 도끼로 깨부수며, 헤맑게 웃는 미소로 나를 바라본다.

난잡스럽게 도끼질을 해대는 그녀의 모습과, 오히려 그녀의 아름다움이 대비되어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구친 나는 망가진 울타리 사이로 보라색에게 총을 겨누었다.

그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겻지만....


그녀는 자신의 동료를 끌어당겨 총알받이를 만들었다. 남성 부족민에게서 튀어나온 뇌수와 살점이 보라색에게 흩뿌려진다.


"미친, 어서 방아쇠를 당겨!"

부족민들에게 질렷다는 듯, 빌이 소리친다. 


울타리가 모두 부서지기 전에 저들을 먼저 저들을 제압해야한다.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이윽고,  보라색이 울타리를 부숴제끼고 나를향해 돌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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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부족민의 습격을 막아내었고, 보라색은 또다시 살아남았다. 

내가 던진 수류탄에 그녀는 왼쪽 팔의 팔꿈치 아랫부분을 잃었다. 옆구리 전체가 갈려나갔다.

저번처럼 망가져있는 몸을 꿰메고, 떨어져 나간 왼팔을 철제 의수로 대체해 주었다.


몆일 뒤, 그녀와 다른 포로 몆명을 다시 울타리 밖으로 내쫒았다.

보라색은 몆명의 동료들과 울타리 주변을 서성였다.

다음 날,  보라색만 혼자 남아 정착지 주변을 돌아다녔다.

더이상 먹을 음식이 없어지자 그녀는 북쪽을 향해 돌아갔다.


나는. 우주선에 배관과 전기선따위를 연결하고 있었다.

부족민들의 습격에 정신이 팔려, 인공지능 코어는 아직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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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여가 지나자, 보라색은 다시 우리 부락으로 찾아왔다.

내가 붙여준 철제의수와 나무의족을 아직도 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무기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지난번과는 달리 매우 말끔한(원시부족 기준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다른 부족민들도 없이 단신으로 찾아온 것이다.


"부족의 사절단이 레린을 만나러 왓소!"

그녀가 이쪽을 향해 소리친다.

경계를 서던 빌이 뭐라뭐라 보라색과 대화를 나누어보더니....

울타리의 철문을 열어재껴 그녀를 들여보내주었다.



잠시 뒤, 빌이 그녀를 들여보내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몆번의 전투 끝에 석방된 포로들이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고 한다.

포로를 해치지 않고, 오히려 치료도 해주었다. 심지어 식량을 들려 마을로 보내주었다.

고위 귀족의 자제인 보라색이, 두번이나 살아남아 돌아왔다.

그녀의 아버지가 이에 감복하여 화친을 맺고자 그녀를 사절단으로 보냈다고 한다.


평화의 의미로 선물을 챙겨왔다고 하는데.


"인공지능......코어?"


그녀가 열어보인 작은 상자 안에는, 분명 메카노이드의 인공지능 코어가 있었다.

그들은 평화협정의 증표로써, 신의 일부를 가져왔다고 한다.


"대신, 조건이 있소"

보라색이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내가 시야에 들어오자, 그녀의 동공이 살짝 커지는 듯 했다.

설마.... 그것만은 아니겟지



"레린은, 나를 아내로 맞이하여 여기서 남은 생을 나와 함께 보내야 하오"

탈출에 가장 중요한 실마리를 얻기 위해서, 탈출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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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동료들은 나를 팔아넘길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절호의 기회가 왔다며, 그녀를 제압하고 인공지능 코어를 탈취하자고 한다.

카밀라의 선례가 있으니(편히 잠들기를,카밀라)

적당히 그녀를 여기서 몆일 동안 환대하고, 방심한 틈을 타 계획을 실행하자는 것이다.


이미 우주선이 완성된 마당에 급할 것이 없다는 동료들의 설득에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첫째 날, 그녀에게 선물이라며 빌이 생체공한 의수/의족을 준비해 주었다.

그녀의 뇌파를 감지하여 움직이는 의수와 의족은 진짜 팔다리보다 튼튼하고, 진짜 팔다리만큼 자유로웠다.

새로생긴 팔과 다리를 가지고 그녀가 처음 한 일은

나와 포옹하는 것이였다.



둘쨋 날, 동료들이 보라색 몰래 우주선의 시동을 걸었다.

이제, 언제라도 탈출할 준비가 되었다.



사흘째 되는 날,



우주선이 없어졌다.



"동료들이라면, 우주를 향해 날아갔다네"


플라스틸제 의수를 삐걱거리며, 그녀가 나를 뒤에서 껴안는다.

항시 품에 지니고 있었을 작은 상자가.... 그녀에게서 보이지 않는다.


내가 잠든 사이, 그들은 날 보라색에게 팔아넘기고, 이 행성을 탈출하였다.


"이제, 여기가 우리 신혼집일세, 레린"


나와 원시부족의 평화협정은 성사되었다.


그녀가 나를 다정하게 감싼 팔이, 왠지 나의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