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아


아니스 블랙하트


루시아 아르멜리


소재: https://arca.live/b/yandere/43410937?category=%EC%8D%A8%EC%A4%98&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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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름 없는 아침이었다. 아니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왜냐하면 지금 나는 내 방이 아닌 전혀 다른 곳에서 눈을 떴으니까...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나는 분명 평소처럼 잠들었을 뿐인데.


"대체 여기는 어디야?"


방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리모컨을 발견한 나는 TV를 키고 뉴스를 시청했다. 뉴스에서는 '아르카나 아카데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아르카나 아카데미? 어딘가 익숙한 그 이름에 나는 곧장 집안 여기 저기를 뒤졌고 그곳에서는 게이트와 마력 같은 현대 판타지 소설에 나올 법한 것들의 개념이 설명되어 있는 책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런 저런 단서들을 얻게 된 나는 깨닫고 말았다. 나는 내가 읽고 있던 아카데미물 소설 속으로 들어왔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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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 들어온 걸 알게 된 나는 혹시 빙의를 한 건가 싶어 거울을 들여다 봤지만 거울 속에 비친 건 평소와 다름 없이 잘생겼다고 할 수 없는 평범한 얼굴 뿐이었다. 


빙의한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나는 실망했지만 그래도 다른 능력이라도 있지 않을까 싶어 스테이터스나 상태창 같은 말들을 외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부끄러움만 몰려올 뿐이었다.


그렇게 아무런 능력도 없이 소설 속에 떨어진 걸 깨달은 나는 절망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할까.. 그때 무심코 손을 넣은 주머니 속에 종이가 들어있었다. 나는 곧바로 종이를 꺼내 거기에 적힌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모든 주연들과 접점이 있는 엑스트라를 연기하십시오. 


단, 동정이 사라질 시 영원히 돌아갈 수 없습니다. 


기한: 아카데미 졸업까지 ❞



종이에 적힌 내용을 모두 읽은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아무런 능력도 없고 하물며 남들이 호감을 가질 만한 외모도 없는데 모든 주연들하고 접점을 만들어 내라고? 


주연이면 히로인들도 포함인데 내 외모로 히로인들에게 접근이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동정을 잃으면 못 돌아간다는 조건은 왜 붙어있는데? 원래 세상에서도 모솔이었는데 여기라고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하아.. 시발.."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나는 욕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욕만 한다고 해서 이 상황이 해결되지는 않았기에 나는 고민을 거듭하였고 이내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깨달았다.


"일단 아카데미에 입학을 해야 접점을 만들 수 있겠네..."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니 지금 시점에서 약 1년 뒤에 입학 시험 일정이 잡혀 있었다. 근데 응시 조건이 '마력 각성'이었다. 내가 마력을 각성했는지 아니면 못했는지 알 수 없던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던 나는 집에 있는 책 하나를 발견했다.


책의 제목은 "마력의 이해와 감응" 


제목 답게 마력의 개념과 어떻게 하면 본인이 가진 마력을 느낄 수 있는지 설명하는 책이었다. 다만 마력 감응 방법은 각성자가 아니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기에 나는 제발 각성했기를 바라면 책에 있는 내용대로 마력 감응을 시도했다.


한참을 끙끙거리고 있을 때 심장 어림에서 무언가가 느껴졌고 어딘가 짜릿하고 시원한 느낌에 눈을 떴을 때, 내 손에 푸른 빛의 기운이 맺혀 있었다. 이것이 마력이라는 것을 깨달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험의 응시 조건은 만족했으니까.


하지만 단순히 마력만 각성해서는 합격할 수 없었다. 시험은 필기와 실기의 두 가지로 나뉘어 있었으니까. 실기 시험은 통과할 수 있을지 없을지 미지수였고 때문에 나는 필기에 집중하여 시험을 준비했다.


1년이라는 시간이 남았지만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은 것은 아니었다. 다시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아마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





원래 세계에서 수능을 준비했을 때보다 더 빡세게 시험을 준비한 나는 운이 좋게도 나쁘지 않은 필기 성적을 받았고 내 생각보다도 실기 점수도 괜찮게 나와 무난하게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었다.


1년 동안 잠도 줄여가면서 시험 준비에 몰두한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하며 나는 입학식에 참여했다. 그렇게 앉아 있으면서 나는 소설 속에서 보았던 인물들을 찾기 시작했다.


일단 저 앞에 주인공이 보였고 조금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메인 히로인 세 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나는 내 계획을 복기하며 입학식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학장의 지루한 말이 이어지니까 순간 졸려서 잠들 뻔했지만 다행히 잠들기 전에 입학식이 마무리가 되었다. 입학식이 끝나고 학생들이 강당을 나가기 시작했을 때 나는 히로인 중 한 명에게 접근했다.


"저기..."


"넌 뭐야?"


붉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한 눈에 봐도 예쁘다고 느낄 만한 외모를 가진 미소녀 소설 속 히로인 중 한 명인 '루시아 아르멜리'였다. 까칠한 그녀의 대답에 나는 순간 쫄았지만 최대한 얼굴에 철판을 깔고 그녀에게 말했다.


"너의 외모는 꽃처럼 아름답구나? 나랑 차 한잔 하지 않을래?"


"뭐라는 거야 이 역겨운 새끼가!"


짝!


나는 그날 처음 보는 여자애한테 뺨을 얻어맞았다. 그것도 엄청 세게... 그리고 나의 뺨 맞는 소리는 나의 힘겨운 아카데미 생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





입학식에서 그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다른 히로인 두 명에게도 접근하여 비슷한 대사를 날렸었다. 물론 반응은 살짝 다르긴 했지만 나에게 거부감을 가지는 건 똑같았다.


금발의 청순한 얼굴을 가진 히로인인 '엘리아'에게 접근했을 때는 그나마 혐오는 안 당했다. 그저 "아하하.. 저는 이미 선약이 있어서 죄송해요!"라는 말과 함께 나에게서 멀어졌을 뿐이었다. 소설 속에서도 착한 캐릭터였으니 당연한 반응 이리라.


하지만 검은 장발과 붉은 눈을 가진 히로인 '아니스 블랙하트'에게 접근했을 때는 죽을 뻔했다. "역겨워.. 다가오지 마"라고 말하며 나에게 칼을 들이밀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정말 아찔했지...


이런 방식으로 계속해서 히로인들에게 접근해서 주인공이나 다른 애들에게 제지 당하는 일을 반복하니 나는 아카데미 내에서 '주제도 모르고 껄덕대는 놈'으로 통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건 내가 원했던 바였다. 어차피 외모로는 히로인들에게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차라리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게 접점을 만들 유일한 방법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다른 아이들이 나에게 보내는 혐오와 경멸의 시선은 버틸 수 없었다.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런 건 아닌데 말이야... 그나마 성적은 괜찮은 편이었기에 대놓고 무시를 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점점 내 마음이 깎여나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가끔 한번씩 엘리아가 나에게 건네는 위로가 유일한 버팀목으로 작용했다. 이것조차 없었으면 나는 정말 못 버티고 자살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가 히로인들에게 접근하여 추잡한 작업 멘트를 날리면 주인공이 제지를 하고 그로 인해 주인공과 히로인들이 호감을 쌓아갔다. 나는 다른 아이들에게 비웃음을 당할 뿐이었다. 마치 볼품없는 광대가 된 느낌이었다.


"버티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럼 나는 다시 되돌아갈 수 있어... 결국 이 방법밖에 없으니까.."


스스로에게 이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항상 각인 시키며 하루하루를 버텨가던 나였다.


여러 사건들과 함께 시간은 흘러갔고 어느덧 1년이 지나 2학년이 되었다. 나는 이제 이 짓거리를 2년만 더 하면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희망을 가지며 아카데미에 등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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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지나 오랜만에 등교한 아카데미는 평소와 다름 없었다. 그리고 나는 어김없이 루시아에게 다가가 작업 멘트를 날렸다.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여전히 예쁘네 루시아, 오늘 데이트라도 하지 않을래?"


원래 같으면 멘트를 듣자마자 나의 뺨을 올려 붙이던 루시아의 반응이 오늘은 어딘가 이상했다. 고개를 푹 숙이면서 떠는 게 이제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 생각과는 다르게 루시아는 나의 오른손을 두 손으로 잡더니 붉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응.. 좋아.. 니가 말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들어 줄게! 이참에 우리 혼인 신고서라도 쓸까? 응응, 그게 좋을 것 같아


그래야 더러운 벌레 년들이 안 꼬여 들지."


얘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평소처럼 맞으면서 매도 당할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고백을 넘어서서 청혼을 하는 그 모습에 나는 이게 지금 꿈은 아닐까 싶었지만...


"왜 말이 없어? 싫은 거야..?"


나를 바라보는 싸늘한 눈빛이 이게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오히려 당황해서 말을 못하고 있었던 그때 누군가 루시아의 손목을 붙잡고는 그녀를 쏘아붙였다.


"야, 이 손 놓지? 얘가 싫어하잖아."


루시아의 손을 잡은 건 아니스였다. 평소에 내가 다가가면 살기를 내뿜던 녀석이 지금은 루시아를 노려보며 손을 놓으라고 하고 있다. 


평소와 다른 그녀의 태도도 나를 당황하게 했지만 나를 더욱 당황케 한 것은 그녀의 눈동자였다. 어딘가 탁한 빛을 띠고 있는 그녀의 붉은 눈동자는 보는 이로 하여금 섬뜩함을 느끼게 했다.


얘까지 왜 이러는 걸까 뭘 잘못 먹었나? 계속해서 이어지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나는 도망치려고 했지만 나의 손을 더욱 꽉 잡는 느낌에 도망칠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둘은 서로에게 욕을 쓰며 싸우고 있었다.


"지금 내가 루크하고 얘기하고 있는데 니가 뭔 상관인데? 괜히 끼어들지 말고 꺼져, 아니면 그 철부지 애새끼하고 같이 있던가. 너 걔 좋아하잖아?"


"지랄하지 말고 이 손 놓으라고 씨발년아 그 손모가지 잘라 버리기 전에."


"어디 해봐 할 수 있으면."


흉흉한 살기를 내비치며 서로를 바라보는 둘의 모습은 맹수 두 마리가 서로를 죽이려고 달려들기 직전의 모습과 흡사했다. 숨 막히는 대치가 이어지고 있던 그때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신발 굽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하하.. 서로 싫다고 다가오지 말라고 매도할 땐 언제고... 염치도 양심도 없는 걸까요? 저는 당신들 같은 잡년들이 함부로 제 남편에게 다가 오는 거 굉장히 싫어 하거든요?"


살벌한 말을 하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건 엘리아였다. 원래 이렇게 살벌한 말을 할 줄 아는 애였나? 유일하게 나한테 어느 정도 친절하게 굴었던 엘리아가 이렇게 다가오니 내 정신은 점점 더 아득해져 갔다.


결국 턱 끝까지 차오르는 의문을 참지 못한 나는 그녀들에게 물었다.


"도, 도대체 갑자기 왜 이래? 너희들 원래 안 이랬잖아?"


그녀들에게 작업 멘트를 치면서 치근덕거린 건 나였지만 애초에 반응을 원한 것은 아니었던 나는 되려 물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냐고.


나의 물음에 셋은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알 수 없는 후회의 감정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 부담스러운 시선에 나는 고개를 돌리며 나를 잡고 있는 손을 뿌리쳤고 그대로 도망치려고 했는데.


"가, 가지마!! 제발!!"


루시아가 뒤에서 나를 붙잡으며 소리를 질렀다. 나머지 둘도 나를 보내지 않겠다는 듯이 나를 붙잡으며 나에게 말했다.


"미, 미안해.. 그러니까 떠나지 말아줘.."


"이, 이제는 일부러 거부하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제발..."


"왜, 왜 이러는 거야! 내, 내가 사과할게 다, 다시는 안 다가갈게!! 미안해!"


나는 그녀들의 손길을 뿌리치며 반으로 도망갔다. 오늘 일은 아마 나에게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고 경고하기 위해 벌인 일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수업 준비를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그녀들을 대해야 할 지 생각해 봤지만 처음 이 세계에 떨어졌던 그때처럼 곧바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제발... 2년 동안만 버티자..."


2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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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글 보는데 회로 돌아서 써옴.


세계관은 현대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지구가 아닌 그런 세계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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