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는 짧게
왜냐면 쓰다가 날려먹어서 좀 빡침

김유정 작가는 소설 봄 봄, 동백꽃을 쓴 사람인데
생전에 박녹주 명창을 지독히 사모하여
한국사에 길이남을 얀데레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착한 얀붕이들은​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따라하지 맙시다

밑에내용은 나무위키랑 기타 블로그​ 랑 한콘진 홈페이지 인터넷뉴스 등등 뒤져가며 써놓은거임
하는말들이 씨1부1랄 사이트마다 죄다 달라갖고 거기 내용들 모아다가 팩트체크 안하고 걍 멋대로 모아다가 올리는거
날짜 나오는거도 죄다 지멋대로라서 나도 그냥 그중에서 꼴리는 날짜 집어넣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어디 사람이 동이 났다구 거리에서 한 번 흘낏 스쳐본, 그나마 잘났으면이어니와 쭈그렁 밤송이 같은 기생에게 정신이 팔린 나도 나렸다. 그것두 서로 눈이 맞아서 달떳다면야 누가 뭐래랴마는 저쪽에선 나의 존재를 그리대단히 여겨주지 않는데 나만 몸이 달아서 답장 못 받는 엽서를 매일같이 석 달 동안 썼다.

- 소설 두꺼비 중에서


어느 날, 김유정이 휘문고보 4학년일 시절에, 김유정은 목욕탕을 갔습니다
그리고 목욕탕에서 한 여인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스물 네다섯살 정도로 보이던 그 여인은, 상기된 얼굴을 하고 머리를 아무렇게나 틀어 올린 채, 여탕 문 앞에서 김유정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때, 김유정은 그 아름다운 여인에게 첫눈에 반해버렸습니다.
다음 날, 김유정은 그녀가 다시 올까 하며 목욕탕 근처를 서성이다가, 그 여인을 발견하고 뒤를 쫓았습니다.
그러고 김유정은 그 여인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바로 당시 유명했던 명창 박녹주 였다는걸요.

이후 1928년 봄, 김유정은 박녹주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조선극장에서 열린 팔도 모창대회를 보러 가고, 대회가 끝난 후 박녹주의 대기실에 찾아가 러브레터를 직접 전했습니다.

러브레터에는 「박녹주 누님 앞」 해놓고는 내용에는 “당신을 연모(戀慕)합니다.”라고 써 있었습니다.

기생이였던 박녹주는 “연모(戀慕)” 가 무슨 뜻인지 몰랐으나, LP 판에 들어 있었던 박녹주의 사진까지 오려 보낸것을 보고 러브레터라 생각하여 그것을 반송하였습니다.

그 이후, 박녹주의 앞에는 또 다른 편지가 날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누님” 자가 빠지고, 「박녹주씨 앞」으로 된 편지가 왔습니다. 이번엔 김유정의 상세한 자기소개, 집안내력을 알려 주고, 자신과 결혼해달라는 내용이였습니다.

박녹주는 이번엔 그 편지를 반송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그러자, 박녹주는 김유정으로부터 하루에 두 통씩 편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중에는 심지어 혈서까지 포함된 채로요.

박녹주는 이 이야기를 친구인 원 씨에게 이야기 하고, 원 씨는 김유정의 성의가 놀랍다며 선이나 한번 보라고 하였습니다.
박녹주는 자기도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여, 김유정에게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편지를 띄웠습니다.

그 이튿날, 새벽에 김유정이 들이닥쳤습니다. 박녹주는 원 씨를 다락에 숨긴채 김유정과 1대 1 대면을 하게 되었습니다.

“난 당신을 지극히 연모하오.”
“연모가 무슨 소리요?”
“즉 말하자면 당신을 사랑한단 말이외다.”
“학생 신분으로 소리하는 여자 사랑하면 되오?”
“학생하고 소리하는 사람이 연애하지 말란 법, 법률 몇 조에 있소?”
“그래도 공부 잘 해서 훌륭한 사람 되면 얼마든지 우리 같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게요.”
“당신이 날 사랑해주어야 공부 잘 되고 훌륭한 사람 되지.”

김유정과 박녹주의 첫 대면은 이렇게 끝났습니다.
원 씨는 이걸 보고 박녹주에게 “이년아 너 서방 하나 잘 얻었다ㅋㅋㅋㅋ”라고 놀렸습니다.
이 날 이후, 김유정은 사랑에 미치기 시작합니다.



술을 먹으며 너를 생각한다.
​지금쯤 너는 어느 요정에 가서 소리를 하고 있겠지.
​이 추운 밤에 홀로 술을 드는 나를 생각해보라.
​사랑이란 억지로 식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지금 이 순간도 너를... 생각한다.
- 김유정이 박녹주에게 보냈던 편지


​김유정이 편지를 아무리 보내도 박녹주의 답이 없자, 김유정은 자신이 다니던 연희전문을 2달 만에 자퇴하고, 박녹주의 집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걸 본 박녹주의 동생 박태술은 김유정을 달래 주었고, 그날부로 김유정과 박태술은 친해졌습니다.
​김유정은 ​친구​ 박태술을 만나러 왔다며 박녹주의 집을 찾아왔고, 박태술을 통해 박녹주에게 러브레터,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레코드 등등 각종 선물을 직접 전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김유정은 이즈음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박녹주를 만나기 위해 술을 마셔야 했고, 가만히 그냥 있을 수 없어 술을 더 마셔야 했다” 고 김유정의 종손자 김진웅 씨의 아내는 말합니다.
​하지만 박녹주는 김유정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김유정의 애정을 받아주기는 커녕, 박녹주는 조선극장의 지배인이였던 신 씨와 결혼하여 살림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김유정은 완전한 광기에 사로잡혔습니다.

김유정의 편지는 점점 과격해졌습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제일 처음에 러브레터를 보낼 때의 박녹주의 호칭은 “박녹주 누님” 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보낸 편지에서는 “박녹주 님”이 되었죠. 그러다가, 편지에서 쓰이는 호칭이 “녹주야” 가 되더니, 끝에는 “너”, “이년” 으로 변질되었습니다.



​당신이 무슨 상감이나 된 듯이 그렇게 고고한척 하는 거요. 보료 위에 앉아서 나를 마치 어린애 취급하듯 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하오. 그러나 나는 끝까지 당신을 사랑할 것이오. 당신이 사랑을 버린다면 내 손에 죽을 줄 아시오.​
​-김유정이 박녹주에게 보낸 첫 번째 협박 편지.
박녹주는 소리꾼의 특성상 밖으로 나갈 일이 많았는데, 김유정은 그런 박녹주를 따라다니며 문밖에서 박녹주가 밖으로 나올 때 까지 기다렸고, 만약 박녹주가 나오지 않는다면 온갖 망상으로 이루어진 어긋난 애증으로 그녀에게 맹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이런 김유정의 행보는 당시 쓰여진 판소리에 관한 책 조선창극사에도 소개가 될 정도였습니다.


1929년 5월, 매일신보에 박녹주가 아버지의 학대로 인한 스트레스 및 조선극장 지배인이었던 신 씨와의 애정문제로 인해, 박녹주가 약을 먹고 자살 시도를 했다는 기사가 대서특필 됐습니다.
그 후 일주일 뒤, 박녹주가 깨어나고 처음으로 본 사람은 김유정이였습니다.
“당신 장례를 치루려고 기다렸다”는 김유정을, 박녹주는 역시나 거부했습니다.
"자신은 더 이상 남자를 믿을 수 없다. 괜한 기대말고 돌아가라." 고 박녹주는 김유정에게 소리쳤고, 그 날 김유정은 박녹주의 집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박녹주는 신 씨와 이혼했습니다. 그리고 원산의 갑부 남백우와 재혼을 했죠.
이 소식을 전해들은 김유정은 ‘내가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이였구나’ 며 그녀를 스토킹하였습니다.

어느 날은, 박녹주의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오늘 너의 운수가 좋았노라. 그 길목에서 너를 기다리기 3시간, 만일 나를 만났으면 너는 죽었으리라” 라는 ​혈 ​였습니다.

또 어느 날은,
​“엊저녁에는 네가 천향원으로 간 것을 보고 문앞에서 기다렸으나 나오지를 않았다. 만일 그 때 너를 만났다면 너는 을 것이다. 그러나 좋아하지 마라. 단 며칠 목숨이 연장될 따름이니까.” 라는 편지가 박녹주 앞으로 도착했습니다.
이 편지 또한 역시 혈서 ​였습니다.

그러다가, 박녹주가 김유정에게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하루는 인력거를 타고 돌아오는데 검은 그림자가 인력거를 향해 돌진해왔다. 직감적으로 김유정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인력거꾼에게 정거하지 말고 빨리 앞으로 달려가라고 소리쳤다. 김유정은 번쩍이는 뭔가를 손에 들고 있었다. ‘칼이다’ 하는 생각이 들자 온몸이 오싹해졌다. 인력거꾼은 재빠르게 앞으로 달려갔으나 김유정이 더 빨랐다. 그는 인력거채를 움켜잡고 나에게 소리쳤다. “녹주, 오늘 밤은 너를 죽이지 않으마. 안심하고 내려라.” 그가 들고 있던 것은 하얀 몽둥이였다. 그는 자기 얼굴을 내 얼굴 가까이 들이대더니 불뿜는듯한 눈초리로 노려보면서 물었다. “너는 혹 내가 돈이 없는 학생이기 때문에 나를 피하는 거지?” 나로서는 너무나 의외의 질문이었다. 잘못 대답하면 내가 돈에 의해 좌우되는 천한 여자가 될 것만 같았다.....
​-  ​한국콘텐츠진흥원, 명창 박녹주의 예술과 비운의 사랑 이야기
​이 사건이 있고 다음 날, 박녹주는 김유정을 집으로 불렀습니다.
​김유정을 집으로 부르고 나서, 박녹주는 “저는 나이도 돈도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단지 당신에게 마음이 가지 않는 것도 제 잘못이란 말입니까?” 라며 타이르고 김유정을 돌려보냈습니다.
​이것이 박녹주가 김유정을 본 마지막 장면이였죠.
​김유정은 이 일이 있고 난 뒤, 다시는 박녹주를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김유정은 실레마을에서 허약한 몸을 요양하며 지냈고, 누나의 집에서 얹혀 살다가 신춘문예에 당선하여 문학계에 등단하였습니다. 그 이후로는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몇 년 동안 창작 활동에 혼을 불태우고, 허약한 몸을 이기지 못하여 결국  30살의 나이로 요절하게 되었죠.

김유정이 죽었을 때, 김유정의 일기장에는 “박녹주, 너를 사모한다” 는 ​혈​가 남아 있었고, 그 소식을 들은 박녹주는 ‘내가 최소한 그의 손이라도 잡아줬다면 그가 그렇게 병마에 시달리는 삶을 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며 가슴 아파 했다고 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


참조 사이트





- dc official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