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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17433855


부지불식 不知不識

미처 생각하고 알지도 못함 또는 그러한 정황. 부지불식간에 저지른 일과 같은 형태로 쓰이는 말.





어두워.


씌워진 자루 때문에 전혀 빛이 들어오지 않고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소리까지 들리지 않는다는 건 상당하다. 일부러 차음성이 높은 천이라도 썼나 하고 의심하고 싶은 부분이지만, 확실히 소리라도 치면 들려버리기 때문에 그런 소재를 사용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다.

그 경우에는 테이프 같은 걸로 입을 막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지금까지 알게 된 건 일단 질식의 위험성만은 없어 보인다는 것뿐이다.


팔은 뒤로 구속되어 있고, 지금 그런 상태로 짊어져 있는 것 같아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신체의 자유가 빼앗겼다.


비슷한 일은 과거에도 있었다.

그게 골드 쉽한테 무인도로 납치되었을 때였나.

대체 뭐가 그녀의 심금을 울렸는지는 전혀 불분명한 채였지만, 한번 접촉한 이후 가장 트레이너 생명의 위기를 느낀 것이 그때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별일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 될 수도 있지만, 어쨌든 트레이너 일을 계속해 왔으니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 운이 여기서 다했던가, 아니면.



시야가 완전히 가려져 있기에 신체 감각이 그다지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소리도 이상해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아까부터 몸이 이따금 바닥에 눕혀지거나 불쑥 들어 올려지는 등 정신이 없다.

인질 수송이라는 건 생각보다 난폭한 것일지도 모른다.

인질이라고 할 정도니까 좀 더 정중하게 다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아무래도 좋은 일을 생각할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여유라고 하면 어폐가 있을지도 모른다.

물리적 위해가 가해지지 않고 그저 어딘가로 옮겨지고 있는 것 같다는 것밖에 모르고, 과거에 한번 비슷한 경험을 겪은 덕분에 패닉에 빠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패닉을 일으키지 않았을 뿐 사고가 이상한 방향으로 헛돌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어차피 루돌프가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어차피 합류하기 직전이었다. 그녀라면 뭔가의 흔적을 찾아주겠지.

학생회라는 직함도 있으니 주변 청취도 수월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안심해도 될지 모르지만, 불안 요소도 있다.


주머니에 넣고 있던 휴대 단말이 없어졌다.

GPS로 바로 장소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납치범 입장에서는 버리거나 파괴하는 게 당연할 테고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리고 그걸 나를 포박하고 바로 시행했다는 건, 우마무스메의 생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트레이너는 대부분 어떤 수단으로든 감시당하기 십상이니까.


그 밖에 위치를 발신할 수 있는 것이 들어 있었을 가방은 가져갔거나, 아니면 벤치에 버려두고 왔을 것이다.

몸에서 떨어졌으니까, 어쩔 수 없나.


여러모로 밖에 내놓고 싶지 않은 정보도 담겨 있지만, 루돌프와 테이오의 정보에 관해서는 보안이 견고한 클라우드에 보관돼 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불안하지는 않다.

학생의 데이터를 다루는 이상 섣불리 분실 우려가 있는 단말기에 바로 넣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철칙이다.

유출됐을 때 입는 피해가 너무 크다.


학원 측의 견책도 당연하지만, 과거에 「제 데이터가 발가벗겨져 시집갈 수 없으니 책임지세요」라며 이상한 방향으로 피해를 본 트레이너가 있었다.


불필요한 보안 리스크와 결혼 리스크는 피해야 한다.




또 수송 담당이 바뀐 것 같네.

차가운 바닥에 내려지고 잠시 후 들어 올려진다.


이제 솔직한 심정은 장난감인가 뭔가다.

그녀들의 입장에서는 나 정도 무게는 상당히 가볍게 느껴질 것이고, 거기다 트레이너의 인권도 가볍다.

뭐 하나 기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꽤 오래 운반되고 있다.

도대체 어디까지 데려가려는 걸까.


배와 같은 흔들림은 없으니 다시 무인도라는 일은 없겠지만......

대신 가끔 뭔가 드르륵하고 배 밑바닥이 울리는 듯한 진동이 느껴진다.

차에라도 실린 건가?

하지만 슬슬 묶인 팔도 저릿저릿 아프기 시작했고 짊어져 있던 시간이 긴 탓에 배와 허리가 아파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하고 궁금하기는 하지만, 이제는 생각해도 소용없다.


포기하고 현상을 우선은 일단 받아들이고, 해방 내지는 이 자루인가 뭔가가 제거되었을 때의 대응을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직후.


조금 전까지 눕혀지거나 들어 올리거나 하는 식으로 있던 경우가 많았던 신체가 갑자기 일으켜지고, 그리고―――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토크 이벤트를 끝내고.

오토나시 기자와 일단 헤어진 뒤, 트레이너 군에게 연락한 나는 빠른 걸음으로 노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사람들. 팬들.

즐거운 듯이 서로 웃는 사람들.

눈을 반짝이는 미래를 책임질 우마무스메들.


그런, 내가 원했던 그것들이, 지금은 괜히――


가볍게 머리를 흔들어 초조함을 어떻게든 몰아내려고 한다.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오늘은 데이트라고 트레이너 군에게 선언했다.

하루를 같이 돌자면서.

지금까지 일만 했으니까 그런 일이 한 번쯤 있어도 되겠지.


그리고 아침부터 좌절했다.


알고 있다. 알고 있던 일이다.

자신의 처지를 아플 정도로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이런 돌발적인 대응에 쫓기는 것도 언제나 있는 일이다. 새삼스럽게 그런 것들이 갑자기 없어지는 일은 없고, 무슨 일이 생기면 그쪽을 우선시해 버린다. 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학생회장. 황제.

직함과 그에 부끄럽지 않은 언행. 실적.


꿈을 그리고, 꿈을 생각하고.

그것들을 이렇게 해 온 것이 바로 나다.


그리고 그게 트레이너 군이 원하는 내 모습이기도 할 거야.

스스로 (이랬으면 좋겠네)라고 강요한 꿈의 모양새는, 어느새 상당히 답답해져 있었다.


사람의 흐름 속에서 뚝 걸음이 멈춘다.

즐거워 보이는 인파 속에서 갑자기 걸음을 멈춘 나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리.

남의 시선에는 익숙하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입장이, 시선이, 모든 게 방해가 된다고 그렇게 생각해 버렸다.


꼴사납다.

요즘은 이렇게 자조만 한다는 자각은 있다.


자각할수록 비참함은 커진다.


다시 한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런 마음 그대로 트레이너 군한테 갈 수 없다고.

힐끗 놀리듯 시야를 가로지르는 유성이 뭔가 말하고 싶은 듯했다.






트레이너 군이 기다리고 있는 노점 구역에 도착했을 때, 위화감을 느꼈다.

묘하게 웅성거리고 있다. 막연한 당혹감이 그 소란스러움을 채우고 있었다.


무슨 말썽이라도 생겼나 싶어 달려가자 마침 학생회 임원의 완장을 사람들 안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앗, 회, 회장님......」


말을 걸자 휙 얼굴이 창백해진 그녀는 조금씩 떨고 있었다.

최근 학생회에 막 들어온 우마무스메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듯, 오늘 아침도 아직 긴장한 모습이었지만......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게다가 이쪽을 인식하고 나서 얼굴빛을 바꾼 건 도대체 무슨 일인 걸까.


방문객의 트러블?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즉시 그 생각을 취소한다.

만약 방문객에 의한 트러블이라면 즉시 보고가 올라오는 체제가 갖추어져 있다.

게다가 어설픈 트러블이라면 학생회는커녕 학원 관계자가 적절히 진압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겁먹은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진정하도록.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아아. 저, 저......」


그녀에게서 들으려 해도 도저히 요령부득이다.

시선은 분주하게 방황하고 안색도 나쁘다.

이마에 땀이 나고 호흡도 얕다.

.....가벼운 패닉 상태이다.

일단 진정하라고 타이르지만......어디까지 효과가 있으려나.


「일단 호흡을 가다듬는 거야.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고. 몇 번 반복해서. 억지로 말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호흡에 집중하도록」


「ㄴ, 네....」


이럴 때 트레이너 군이......그래, 트레이너 군이다.

방금 연락을 취했을 때는 이 근처에 있었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사람들의 끝. 멀리 둘러싸듯이 반원형으로 사람이 모여 있는 그 끝에 낯익은 것이 놓여 있었다.

아니, 버려진 것처럼 거기에 떨어져 있었다.



아직 새것인, 검은 숄더백.



바로 얼마 전 데이트에서 구입한 그것이 홀로 벤치 앞에 떨어져 있었다.


「.....트레이너 군?」


멍하니 입에서 흘러내린 말은 군중의 소란 속으로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