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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순이는 스마트폰 알람 소리에 눈을 떴어. 흘러나오는 벨 소리를 끄고 일어난 후 빠르게 샤워실로 향했지.


 “오늘은 고등학교 입학식, 얀붕이랑 같이 가는 고등학교 입학식-”


오늘은 고등학교 입학식 날이었어. 얀붕이와 관련된 모든 행사와 일정을 기억하며 어디를 가는지 체크해 두는 얀순이가 그걸 잊어버릴 리가 없었지. 


샤워기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물에 몸을 적셔 가며 샴푸와 린스로 긴 흑발 머리를 감고, 바디 워시로 몸 구석구석을 깨끗이 닦았어. 그리고 세안과 양치,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머리를 말리는 마지막 일까지 완벽하게 끝낸 얀순이는 교복을 옷장에서 꺼냈어.


 “드디어 이걸 입어 보는구나.”


그 교복은 얼마 전에 산 고등학교 교복이었어. 세련되고 현대적인 스타일의 블레이저로 된 교복을 발 끝부터 위까지 천천히 입은 후, 얀순이는 마지막 점검을 했어. 


 “가방, 안내서, 필기구, 폰, 지갑, 교통카드... 다 챙겼어. 남은 건...”


준비물은 미리 다 챙겨 두었고 이제 남은 것은 얀붕이를 데리고 학교에 가는 것뿐이었지.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으니 조금 여유를 두고 출발해도 늦을 일은 없었지만 얀순이는 기다리지 않고 바로 물건들을 챙긴 후 얀붕이네 집으로 향했어.


 “얀붕이 교복 입은 모습 정말 귀여울 거야. 얼마나 잘생겼을까. 어쩌면 좋아, 심장이 너무 뛰잖아...”


하아, 하아.. 얀순이는 숨을 가쁘게 내쉬면서 얀붕이네 집 현관문 앞까지 천천히 걸어 갔어. 얼마나 잘생기고 귀여울까. 얀붕이라면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쁘니까 분명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면서, 얀순이는 호흡을 가다듬은 후 초인종을 눌렀어.


-딩동.


 “얀붕아, 준비 다 했어?”


얀순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초인종 밑의 인터폰에 대고 말했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답이 들려 왔어.


 “응, 지금 나갈게!”


평소와 같이 쾌활하고 귀여운 얀붕이의 목소리에 얀순이의 심장은 더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어. 진정해야 해. 진정해야 해- 혼잣말로 되뇌이며 얀순이는 얀붕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


이내 도어락이 열리는 신호음과 끼이익 하고 무거운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어. 곧 문이 열리고 얀붕이의 모습이 보였어.


“얀순아.. 어때? 잘 어울려?”


얀순이는 잠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어. 얀순이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검은 블레이저 코트와 흰 셔츠, 아이보리색 조끼- 붉은 넥타이, 어두운 회색 바지와 희고 깔끔한 스니커즈 운동화. 그리고 살짝 붉어진 흰 볼과 아래로 내려보는 검은 눈동자, 단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는 짧은 흑발.


잘생겼어. 그 말만이 얀순이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 어쩌면 저렇게 무슨 옷을 입어도 귀여울 수 있을까? 사랑스러워. 이 사람이 내 남자친구라 너무너무 다행이라는 온갖 생각을 하며, 얀순이는 거리낌 없이 대답했지.


 “정말 잘 어울려, 잘생겼어!”


얀순이는 얀붕이의 손을 잡고 밝게 웃었어. 얀붕이도 그 미소가 귀엽다고 느꼈는지 살짝 미소 지었지.


 “얀순이도 교복 잘 어울려, 예뻐!”


응? 그 말을 무의식적으로 내뱉고선 얀순이는 얼굴을 붉혔어. 얀순이도 신체적 조건이나 외모는 평균 이상이었기에 교복이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이렇게 예쁘다고 하면 어떡하자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얀순이는 쌍커풀이 진 검은 눈동자를 부끄러운 듯 밑으로 내렸지.


확실히 얀순이가 교복을 입은 모습도 예쁘다고 하기에 충분한 모습이었어. 단정한 긴 흑발과, 얀붕이와 같은 검은 블레이저 코트와 흰 블라우스, 아이보리색 조끼와, 붉은 리본 장식과 체크무늬 주름 치마와 - 무릎까지 올라오는 길이의 검은 스타킹까지 어울리지 않는 데가 없었지.


 “고, 고마워...”


얀순이는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떨구고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어. 정말 사랑해. 그 말을 마음 속으로 수천 번이나 되뇌이며, 이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겨우 마음을 다잡고선 말했지.


 “이제 출발하자. 지금 가면 딱 맞춰서 도착할 수 있어.”


얀순이는 그렇게 말하고선 얀붕이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와 아파트에서 나온 다음 손을 잡고 지하철역까지 걸어 갔어. 아직 3월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오늘따라 날씨가 더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


역에 도착한 후 개찰구를 통과해 둘은 승강장에 섰어. 출퇴근 시간이라 그런 것인지 역에는 사람이 가득했어.


 “지금, 대림 방면으로 가는 외선 순환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고객 여러분께서는-”


이내 곧 열차가 승강장에 도착해 문이 열렸어. 얀붕이는 얀순이의 손을 잡고 말했지.


 “가자. 오래 안 걸릴 거니까 늦을 걱정은 안 해도 돼.”

 “응.”


미소 지으며 말하는 그 모습에 얀순이는 더욱 더 집착을 느꼈어. 날 안심시키려고 일부러 그러는 건가.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저렇게 미소 짓는 게 귀여워서 참을 수가 없어. 하아, 사랑해주고 싶어. 잔뜩, 잔뜩- 그런 생각을 하며 얀붕이의 말에 따라 지하철에 탔지.


이내 사람이 엄청나게 밀려 들어왔어. 출퇴근 시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많을 거라고는 얀순이도 알지 못했지. 사람들에게 치이며 얀붕이와 얀순이는 조금씩 벽으로 밀렸어.


출입문이 닫히고 출발했을 때, 얀순이는 출입문 구석 벽으로 완전히 밀려나 있었고 그 바로 앞에 얀붕이가 벽을 손으로 짚은 자세로 서 있었어. 마치 벽쿵을 하는 자세가 되자 얀붕이는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혔지.


 “사람이 많으니까, 내릴 때까지만 이러고 있자..”


얀붕이는 한쪽 손을 내리고 얀순이가 흔들리지 않도록 꽉 껴안았어. 얀순이는 얀붕이를 꽉 붙잡고 가슴께에 얼굴을 묻고선 작은 목소리로 말했지.


 “응...”


공공 장소에서 꼬옥 껴안아 보는 게 꿈이었는데 이렇게나 빨리 이루어지다니. 신님, 감사해요. 얀붕이 향기 좋다. 얀붕이 품 따뜻해. 떨어지기 싫어. 너무 좋아.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얼굴이 붉어진 채로 온갖 생각을 하며 얀순이는 얀붕이에게 안긴 채로 역에 도착할 때까지 오랫동안 그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어.


 “이번 역은 강남, 강남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얀순아, 도착했어. 내리자..”


마침내 역에 도착하자 얀붕이는 얀순이를 품에서 놓고 손을 잡았어. 얀붕이도 그 자세가 조금 부끄러웠는지 한쪽 손으로 붉어진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 얀순이는 그 얼굴이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평소처럼 미소 지었지.


 “응. 그래.. 안 흔들리게 잡아 줘서 고마워.”


얀붕이는 그 말을 듣고 더 부끄러워졌는지 고개를 푹 숙였지. 얀순이는 그것도 귀엽다며 웃었고.


마침내 역에 도착해 둘은 출입구를 나와 학교로 걸어 갔어. 학교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 세련된 최신식 건물이 보였고, 정문에 걸린 현수막에는 ‘제 XX회 화문 고등학교 입학식’ 이라고 써져 있었어.


“입학식 장소는 분명 신관의 강당이었어. 신관이... 저쪽.”


학교에는 입학식 장소를 친절하게 표지판으로 안내해 주고 있었지. 둘은 강당으로 가 안내서를 받고 2반 자리에 앉았어.


 “이번에도 같은 반이네? 다행이다.”

 “나도 같은 반에 얀순이랑 있을 수 있어서 좋아..”


얀순이와 얀붕이는 고등학교에서도 같은 반이 되었어. 얀순이와 얀붕이는 서로가 같이 있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손을 꼬옥 잡았지.


입학식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어. 간단한 축사와 훈화를 듣고, 각자 교실로 가 담임 교사에게 자리를 배치받은 후 학교에 대해 안내를 받았지. 교과서는 이미 받아 두었고, 본격적인 학교 생활은 바로 내일부터가 시작이었어.


얀붕이와 얀순이는 서로의 옆자리에 앉았어. 가까이에서 얀붕이의 얼굴을 볼 수 있어 좋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학교에서는 사귀는 사이가 아닌 척을 해야 했으니까 너무 빤히 쳐다보는 건 자제했지.


입학식이 전부 끝나고 둘은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어. 그리고 얀순이는 얀붕이에게 이렇게 말했지.


 “나 앞으로가 정말 기대돼, 얀붕아.”

 “기대된다니, 고등학교 생활이?”


 “응.. 그것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사귈 친구들이나, 부활동이나... 너랑 어디까지 갈지? 푸흐흐...”


얀순이는 천진난만하게 웃었어. 얀붕이는 부끄러운 듯 살짝 고개를 떨구고 있었지만 싫은 것 같지는 않았지.


 “얀순이는 참 짖궂은 것 같아...”

 “그러면 얀붕이도 나를 본받아서 짖궂어지면 되잖아?”


 “.....그럴까? 괜찮은 생각인데...”

 “응?”


얀순이는 살짝 불길한 예감을 느꼈어. 얀붕이가 지은 미소가 평소와는 다른, 마치 자기가 얀붕이를 놀릴 때 지을 법한 미소를 하고 있었으니까.


‘아- 얀붕이가 나처럼 짖궂어진다고 해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네.’


속으로 얀순이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얀붕이를 따라 웃어 보였지.


둘은 따뜻한 서로의 손을 잡고 집을 향해 걸어 갔어. 낭만적인 저녁 노을과 서로의 체온을 느껴 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