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수들이 들끓는 현대 레이드물 세계관에서 얀붕이는 b급 탱컨대 파티원들은 사신과 계약해서 힘을 받아서 S급이나 S급을 앞둔 A급 미녀들로 모두가 아직 젊은데도 최고를 노릴 수 있는 천재들임.

 얀붕이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인재지만 파티 안에서만큼은 무시당하고 은근히 차별받는 상황으로 객관적으로 봐도 얀붕이의 수준은 파티에 맞진 않았지만 그녀들에게 이런 취급을 버티지 못하고 다른 탱커들은 모두 한 달도 안 돼서 떠나버려서 파티원도 자기들한테 욕먹으면서 버티는 얀붕이를 어쩔 수 없이 쓰고 있었어.


 얀붕이도 자존심도 있지만 욕을 들으면서도 파티를 탈퇴하지 않은 건 파티의 리더인 얀진이를 처음 봤을 때부터 반해서 사신에게 오른쪽 눈을 내준 얀진이를 지켜주고 싶어서였고 한 번 고백했다가 대차게 차였지만 그래도 얀붕이는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어.

 얀진이는 마수들에게 가족이 몰살당한 복수에 미쳐있으나 연애 따위엔 관심이 없어서 얀붕이가 한심했지만 그래도 한 번 찬 이후론 알아서 자제하고 있었기에 얀붕이를 해고하지 않았고.

 

 그렇게 승승장구를 이어가던 파티는 어느 날 처음 보는 거대한 마수를 만났고 5명 모두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철저하게 유린당해서 하나둘 쓰러지고 어느새 상대적으로 몸이 튼튼했던 얀붕이만이 겨우 서 있고 다른 파티원들은 치명상을 입고 쓰러져 죽어가고 있었어.

딜러인 얀진이도 상처 하나 못 입힌 마수를 얀붕이가 이기는 건 불가능했어.

 

 가족의 원수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죽을 수 없었던 얀진이는 얀붕이를 미끼로 파티원들과 함께 후퇴해야하나 고민하던 찰나, 갑자기 파티원들이 있던 자리에 결계가 펼쳐지더니 낡은 거죽을 두른 음침한 여자, 얀붕이를 제외한 파티원들에게 계약으로 힘을 내려준 사신, 얀순이가 내려오더니 얀붕이랑 파티원들의 가슴을 사슬로 이었어.

 

저 괴물은 내 힘을 탐낸 다른 사신의 권속이다. 본래라면 힘을 내려줬다 한들 피조물들이 죽건말건 알 바 아니지만, 저 괴물에게 잡아먹히면 너희에게 준 내 힘은 돌아오지 않고 그대로 그 사신에게 흡수되서 어쩔 수 없이 왔다.”

 

 원래는 마수를 없애주거나 얀붕이를 제외한 피조물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킬 생각이었던 얀순이는 이미 모든 피조물들이 이대로 두면 죽을 정도로 약해져 있고 얀진이 만큼이나 맛있어 보이는 영혼을 가진 얀붕이를 보고 욕심이나 얀붕이에게 계약을 권유했어.

 

너에겐 특혜를 줄게. 지금 너희 전원의 영혼을 연결시켜뒀으니 원래라면 너가 바쳐야 할 제물을 죽어가고 있는 주위의 피조물들이 대신 내게 해줄게. 그 대신 너가 죽게되면 니 육체와 영혼을 전부 나에게 바쳐.”

 

 그 말에 파티원들이 모두 반발했지만 사신인 얀순이는 피조물들의 아우성 따윈 알 바 아니었고 오히려 얀붕이가 그들의 외침에 선택에 방해받지 못하도록 작은 결계를 추가로 만들어 소음을 차단했어.

 

 얀순이와 자신 빼곤 아무것도 없는 검은 공간에서 얀붕이는 몇 분간 고민하다 얀순이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어.

 

나한테 줄 수 있는 힘들이 얼마나 있어?”

저 피조물들에게 준 것보다 훨씬 많이.”

많이 바치면 바칠수록 힘도 더 많이 주는 거야?”

물론?”

알았어, 계약할게.”

이제 이 결계부터 풀어, 답답해 미치겠으니까.”

 

 자기들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결계로 들어간 얀붕이를 불안해하며 기다리던 파티원들은 싱긋 웃는 얀붕이를 보며 그가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해 절망했어.

 

나쁜 놈! 배신자! 자기가 살겠다고 동료를 팔다니! 쓰레기!”

 

 특히 복수도 이루지 못한데다, 어렸을 적 마수에게 잡아먹힐 뻔한 공포가 되살아난 얀진이는 자신이 얀붕이를 버릴 뻔한 것도 잊고 울면서 고함을 쳤고 얀붕이는 말없이 얀진이에게 다가가 사신에게 바치면서 비어버린 눈을 가린 안대를 벗겼어.

 

날 좋아한다며! 살려줘… 제발… 뭐든 할게!”

여전히 좋아해. 그리고 뭐든 할 필요 없어

 

 기어코 자존심까지 버린 얀진이가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얀붕이는 얀진이의 이마에 입을 맞췄어.

 

나중에 성추행했다고 고소 하지마, 너가 이제 받을 게 얼마나 많은 데 이정돈 받을 수 있잖아.”

?”

빨리 이행해, 이제 미련 없으니까.”

알았어, 이해할 수 없는 인간

잠깐, 얀붕이 너

그래, 뭘 바칠 거지?”

내 눈.”

눈을 바치겠다고? 그것도 니걸? 그래선 그렇게 큰 힘은 못 받을텐데? 저 피조물들의 몸도 쓰는 게 어때?”

,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

 

 얀진의 텅 빈 오른쪽 눈을 가리킨 얀붕이는 그 손가락을 그대로 자신의 오른쪽 눈으로 옮기며 말했어.

 

내 오른쪽 눈을 제외한 모든 걸 바칠게. 그리고 이 남은 눈은 얀진의 눈에 이식해줘.”

?”

 얀붕이가 내건 계약의 조건에, 절규하던 파티원들은 물론이고 졸 듯 눈썹을 반쯤 감고 있던 얀순이까지 눈을 크게 뜨며 경악했어.

 

, 눈에 영혼을 담고 그 여자의 육체를 차지하겠다는 거지?”

 

 사람의 감정, 특히 애정이란 것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다른 사신들과 다르게 오직 계약자 자신의 신체나 재산만은 계약조건을 삼았던 얀순이는 몇 백년만에 당황했어.


'분명 자신보다 강한 육체와 저 피조물의 명성을 차지하고 싶어서겠지'


 다른 피조물들이 자신에게 느꼈던 것처럼 이해할 수 없는 미지에서 오는 공포와, 그걸 뛰어넘는 무언가의 기대를 무시하고 얀순이는 얀붕이의 결정을 자신의 기준에 맞춰 재해석 했어.

하지만 얀붕이는 도리어 어이가 없다는 듯 얀순이에게 중지를 날렸어.

 

사신이란 것들은 원래 사고가 이렇게 꼬였어? 말했잖아, 모든 거라고!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 자아, 니가 바라는 건 다 줄게! 그러니까 내 눈으로 얀진이의 눈을 채워줘! 그리고 내가 받은 힘들을 얀진이와 다른 동료들에게 적당히 나눠주고.”

도대체 왜?”
안돼?”

, 이해가 안돼

사랑하니까. 날 사랑해주지 않아도 얀진이는 안 죽고 행복했으면 하니까. 빨리해.”

 

 당당하게 사랑을 외치며 계약을 이행하라는 얀붕이의 적반하장의 태도에 얀순이는 불쾌하긴커녕 처음 느끼는 감정에 머릿속이 더더욱 혼란스러워졌어.

 

가슴이 뜨거워, 이 감정은 뭐지?’

왜 저 피조물, 아니 저 얀붕이라는 아이는 충성심도 없는 저 피조물에게 헌신할 수 있는 거지?’

이게 사랑?’

가지고 싶다.’

 

이해했어.”

이게 감정, 이게 사랑!’

 

 이때까지 느껴본 적 없던 강력한 욕망이 얀순이를 덮쳤고 얀순이는 살면서 가장 큰 미소를 지으며 얀붕이에게 검은 마력을 날려 고통 없이 오른쪽 눈을 뽑았어.

 

특별히 원래 받아야 할 힘의 배를 줄게.”

 

 그리고 얀붕이가 바라던대로 얀진이의 눈에 얀붕이의 오른쪽 눈을 이식한 후, 얀순이는 얀진이를 비롯한 4명의 파티원들에게 자신의 힘 대부분을 퍼줬어.

 

, 계약은 완수했어. 그러니 대가를 바쳐.”

가져가.”

 

 몸을 두르고 있던 로브를 펼친 얀순이는 그대로 얀붕이를 덮쳤고 죽어가던 파티원들이 어느새 쌩쌩해져 일어나는 걸 본 얀붕이는 얀순이를 거부하지 않았어.

 

잠깐, 얀붕아… 너 정말 나를!”

사랑했다, 행복하게 살아.”

기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이렇게 커다란 줄 몰랐던 얀진이는 뒤늦게 얀붕이가 자신이 증오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리워하던 애정을 쏟아주던 존재라는 걸 깨달은 얀진이가 얀붕이의 손을 붙잡으려 달려들었지만, 그 모습을 본 얀순이는 얼굴을 찌푸려 얀붕이가 얀진의 사죄를 듣기도 전에 얀붕이를 완전히 로브 안으로 흡수해버렸어.

 

이 아이는 이제 내 거야. 육체도, 자아도. 그리고 이 커다랗고 아름다운 애정도 이제 오롯히 나만을 위해 쏟게 될 거야.”

잠깐, 안 돼… 돌려줘… 얀붕이를 돌려줘… 뭐든 줄게… 계약해제발

 

 이 세상에 눈을 뜬 이후 줄곧 바랬던 자유로운 육체 따위보다 훨씬 값진 것을 얻은 얀순이는 태어나 처음으로 소리내서 웃으며 떠났고, 반대로 얀진이는 옆에 있는 줄 모르고 그것을 버릴려고 했던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망가진 얼굴로 사라져가는 얀순이에게 손을 뻗었지만 얀순이가 돌아오는 일은 없었어.

 

 

 

 

내가 왜 살아있는 거냐?”

 

 그리고 사신에게 자아마저 바쳐 지옥 같은 곳에서 얀순이의 고문용 장난감이 되거나 먹혀서 완전히 소멸할 거라 생각했던 얀붕이는 나라만 다를 뿐 자신이 살던 세계에서 일어났어.

 깨어난 몸은 원래보다 훨씬 강해져 있었고, 얀진이에게 넘겨줘 비어있어야 할 오른쪽 눈엔 안구 대신 얀순이의 마력과 같은 검은색의 구체가 끼워져 있고, 그것을 통해 어째선지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 호의와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얀순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받지 못했어.]

.”

[사랑, 너가 가진 사랑, 너가 나한테 주겠다는 것 중 가장 소중한 거.]

?”

[아이야, 아니 얀붕아. 내가 너에게 뭘 줘야 그 피조물년보다 날 사랑해줄 수 있어? ? 뭘 바래? 내가 준 게 부족하면 더 줄게. ? ?]

너 원래 이런 성격이었어?”

[알아, 내가 생각해도 사신의 힘 같은 흔하고 볼폼없는 쓰레기론 사랑을 가질 순 없지.]

내가 잔 사이에 사랑이란 게 인플레이션을 심하게 겪었냐?”

[그러니까 우리 계약하자. 내 사랑과 헌신을 바칠게, 그러니까 너도 나한테 사랑을 줘. 이건 선금이야. 내가 이제까지 모은 힘과 육체를 전부 바쳐서 너의 눈이 되줄게. 그러니까 영원히 함께해줘. 천천히라도 좋으니까, 그 사이에 날 사랑해줘.]

참고로 거부권은

[얀붕이의 육체와 자아는 이미 내 거야!]

없단 거군

 

 사신의 집착은 무섭다고, 갑작스럽게 여행을 하게 된 얀붕이는 생각했어.




***

작년 쯤에 머릿속에서 연재할 소설 소재로 떠올렸다가 그대로 까먹었다 어제 떠올라 단편으로 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