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180년. 수인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 

아니, 공존이라고 말하기엔 애매하지. 공존을 가장한 인간들의 인간중심적인 욕구 해소가 일어나는 세상. 


어느새부터 동물들은 점차 현대 문화에 살아남기 적합한 인간의 모습으로 진화했고, 당연히 인간들이 그들을 가만 둘 리가 없었다.

그들은 아무리 인간의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들 인권을 보장 받지 못했고, 인간의 노리개로서 버려지지 않도록 노력하며 삶을 이어갈 뿐이었다.


수인들이 등장하게 된 지는 100년이 넘어가고, 이젠 고양이, 개와 같은 흔해 빠진 수인들은 인기가 없어서 유기 당하기 일쑤였다.



"제발 도와주세요.."


길거리에서 수인들의 절규와 울부짖음을 듣는 것도 이젠 일상.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철컥


버려지고 음식과 공간만 차지하는 쓸모없어진 수인들은 모두.

'수인보호단체'에서 안락사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아.. 아아 제발 살려주세요..!"


수인보호단체가 나타나자 내 앞에 있던 고양이 수인이 목숨을 구걸했다.

하지만 울부짖어도 소용 없다. 나 역시, 혼자 먹고 살기에도 힘든 상황이기에.


이제 곧 그녀의 차례가 되겠지.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

살 사람은 살아야..




그녀가 나의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그녀의 반대편 손에 들려 있는, 아기 고양이를 살리기 위함이었다.



"이 아이만이라도 살려주세요.. 제발.."


난감하다..















".. 이름이 뭐야?"


나의 물음에도 그저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직 말을 배우지도 않은, 말 그대로 새끼 고양이.


내 식비까지 줄여가며 그녀의 식사를 제공해야 하겠지만, 이 아이의 엄마의 간절한 눈빛이 생각나 목숨 하나 구하는 셈 치고 키우기로 했다.


마트에서 '아기 호랑이 우유'와 '아기 수인 기저귀' 따위를 사서 돌아가니, 이불 속에 숨은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여러가지를 인터넷에 검색해보며 바쁜 하루를 보내고, 겨우 침대에 누워 일과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러자 그녀도 졸린 듯 눈을 비비며 내 옆에 총총총 걸어와 붙어서 잠을 청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어느새 다섯 달이 지났다.


잘 먹고 잘 자란 덕인가? 분명 태어난 지 6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몸이 나 만큼이나 커졌다.

여자 고양이 수인들은 아무리 자라봐야 160 이상 자라지 않을 텐데.. 


나와 키가 거의 같아서, 이젠 같이 자는 것 또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기처럼, 나를 껴안고 잠에 들었다.



"아앗! 아파.."


..또한 그녀는 이갈이를 시작했다.






.

.

그리고 다섯 달이 더 지났다.

이젠 몸이 200cm를 훌쩍 넘어섰고, 울음소리도 조금.. 아니 많이 다르다.

아기 때는 얌전해서 몰랐지만 가끔 잠을 자거나 기분 좋을 때, 마치 호랑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기분이다.


내 옆에 붙어서 골골 거리며 붙어자던 그녀는 어느새 거대해진 몸으로 나를 둘러쌓듯이 안고 자며,

더 이상 이갈이는 하지 않지만 계속 내 몸을 그루밍 해주곤 한다.


고양이의 그루밍이야 친근감의 표시겠지만.. 인간의 몸을 하고 있는 지라 기분이 조금 묘하다.

게다가 그녀는.. 나보다 훨씬 크고 힘도 세졌기 때문에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마치.. 서열 정리처럼 느껴졌다.




또한 그녀는 어느 정도의 말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 사랑 해."


.. 내가 저런 말을 가르쳐준 적이 있었나?









다섯 달이 더 지났다.

분명히 성체가 될 나이는 지났는데, 아직도 성장하고 있다.


크기는 둘째치고, 발정기가 찾아왔다..

몸을 배배 꼬며 괴로워하고, 엉덩이를 세운 체 고양이 자세로 고통을 참는 일이 잦아졌다.


"아파.. 너무 아파..!"


그녀가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에 나는 그저 옆에 있어줄 수 밖에 없었다.




..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같은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새벽.

들썩거리는 침대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녀가, 내가 딸처럼 키운 그녀가. 자신의 다리 사이에 나의 다리를 끼우고 들썩거리고 있었다.

그녀를 저지하기 위해 눈을 떴을 때, 반 정도 미쳐버린 그녀의 눈을 보자마자 그녀를 말리는 것을 포기했다.


여기서 그녀를 저지하려고 한다면, 오히려 덮쳐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최대한 눈을 꼭 감고 그녀가 멈추길 기다렸다.

몇 분이 지나고, 그녀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축 늘어져 잠에 들었다.


나는 깊은 잠에 든 그녀에게서 빠져나와 냉장고에서 술을 꺼내 마시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약간의 술김에 얻은 이성적인 판단으로 도출해낸 결과는, 그녀가 잡종이라는 가설이었다.

확실히 그녀는 고양이인 엄마에게서 태어났다. 하지만.. 내가 그녀의 아버지를 본 적이 있는가?


고양이라기엔 너무 크고, 강하다.

하지만 그녀에게.. 강하고 거대한 호랑이의 유전이 흐르고 있다면..?





쾅!


방에서 난 소리였다.



"어디 갔어..? 주인 님.."


그녀가 어색한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며 풀린 눈으로 나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눈이 마주친 순간, 그녀는 호랑이처럼 네 발로 뛰어 나를 덮쳤다.



"어흥..!"


인간의 나이로는 3살도 되지 않았지만, 고양이 수인의 나이로 계산하면 이미 성체, 20살 정도의 성인이었다.

그런 그녀가. 몇 달이나 자신을 길러준 주인님을 못 알아본다.


입고 있는 옷은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반항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애초에 키부터 나보다 50cm는 큰 그녀였다.



인간다운 대우는 바랄 수도 없었다.

이리 저리 그녀의 욕구를 채우는 노리개로 사용 당하다가, 질질 끌려 장소를 이동하고, 다시 반복했다.


그녀가 내 목을 핥아주며 긴장을 풀어주었지만, 역효과만 잔뜩 났다.




기절한 것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로 다음날이 되었다.

어색할 것 같던 그녀는 오히려 우두머리가 된 듯 거만하게 굴었다.


막 일어난 나를 발견하고, 다가와 그루밍을 해주며 서열을 정리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의 발정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 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나고 발정기는 멈췄다.


하지만 나는, 점점 더 불룩해지는 그녀의 배를 토대로 발정기가 멈춘 이유에 대해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