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나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힘만 쌘 바보한테 촌장님이 왜…?”

 

이런 반응을 기대한 게 아닌데…….

스텟만 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레온도 뭔가 말을 할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 깐깐한 노파가 새파란 애송이한테 촌장직을 맡기다니 놀라는 게 당연했다.

호감도를 최대치로 찍으면 주어지는 보상같은 거니깐.

촌장의 직위로 무언가를 할 수 있을지 궁리해봐야겠다.

반복 노동에 몸이 지쳐버렸기 때문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집으로 돌아왔다.

가방을 털썩 내려놨다.

 

“후우…….”

 

피곤했지만 삽질로 체력이 단련됐는지 무기력해지진 않았다.

……아니, 아마 그런 게 아닐 거다.

체력적인 요소보다는 정신적인 부분이 강해졌다.

등껍질에 이마가 찍히고 불굴 스킬로 한번 되살아났지만 그 자리에서 정신이 꺼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헌데 그 상태에서 내가 생각해도 기이한 정신력으로 언덕까지 기어올라가 검으로 가방까지 떨어트릴려고 했다.

아템의 정신력 적성치는 A등급.

스텟치의 영향력은 내 생각보다 어마어마했다.

그 말은 반대로 골치 아파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F-급 능력치가 세 개나 되다니.

신성력은 포지션 상 큰 상관은 없지만 행운과 민첩 스텟이 내 발을 잡을 것 같다.

 

“자자.”

 

레온네 집에 저녁 밥을 얻어먹으러 가기도 귀찮았다.

눈을 감자 사르르 잠이 든다.

다음날 아침.

부스스한 머리를 긁으며 몸을 일으킨 나는 아침 공기를 마시기 위해 문을 열었다.

 

“후아아아암.”

 

해가 아직 떠오르지 않아 주변은 어둣어둣했다.

이 게임에서 확실히 좋은 점이 있다면 그건 맑은 공기다.

주변이 온통 산과 나무뿐이니 숨을 들이킬때마다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서울 공기가 진짜 나쁘긴 나쁘구나.

잠에서 깨기 위해 마을 안을 걸어다녔다.

누군가 나를 불렀다.

 

“아템! 늘보가 촌장이 됐다고 성실해진 것이냐? 우하하하하.”

 

아침부터 경쾌한 웃음 소리를 터트리는 나무꾼을 바라봤다.

그가 도끼를 들어올리자 왠지 몸이 움츠러들게 된다.

내가 말했다.

 

“그런거 아니예요. 삽들고 돌아다니느라 피곤해서 늦게 일어난 거였어요. 이제 그럴 필요가……”

 

“그런 쓸데 없는 짓 말고 나랑 같이 나무나 캐러 가자니깐? 이 마을에선 레온 다음으로 네가 힘이 쌔잖냐? 움직임은 둔하지만.”

 

 

[노멀 퀘스트. 난이도 최하/최하]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나무꾼이 도움을 권유한다.

 

[오늘까지 캔 나무 0 / 3]

 

[성공 시 : 나무꾼의 호감도 +1]

[실패 시 : 나무꾼의 호감도 –1]

 

 

음. 어쩔까.

지금까지는 보상도 별로고 우선 순위가 있어 거절해왔지만 이제는 시간이 남는다.

호감도가 최대치가 될 때 주어지는 보상이 뭔지도 궁금했다.

한번 물어볼까.

 

“아저씨.”

 

“엉?”

 

“나무를 계속 같이 캐면 주시는 게 있어요?”

 

나무꾼이 도끼로 장작을 내리꽂자 밑둥에 도끼가 박혔다.

나무꾼의 입이 튀어나왔다.

 

“얌마. 뭔 보상을 바래? 그냥 네 집이 다른 집보다 따뜻하게 지내는 거지. 촌장이 됐다고 까부는 거냐?”

 

그 흉흉한 기세에 급히 팔을 휘저었다.

 

“아니, 그냥 물어본 거예요. 마침 아침에 시간이 비니깐 낮까진 도와드릴게요. 어때요?”

 

나무꾼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는 다가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좋아, 좋아. 넌 힘이 쌔니깐 남보다 두 배는 일해야 한다.아니, 촌장이 됐으니깐 네 배는 해야지. 우하하하하.”

 

“하하하…….”

 

거칠고 스스럼없는 이 나무꾼은 상대하기 힘들다.

그건 그렇고 물어보는 건 역시 안되는 구나.

호감도가 최대치가 되면 자동으로 보상이 주어지거나 아니면 없을 수도 있는 건가?

노파의 사례 하나만으로 결과를 예측하기는 힘들었다.

시간도 남고 나무꾼은 적어도 매섭게 노려보는 노파보다 호감도가 높아 보이니 쉽게 끝날지도 모르겠다.

나무꾼이 도끼 서너개를 들고와 내게 내밀었다.

 

“얌마. 들어. 어제 패던 게 있으니깐 그리로 가자. 따라와.”

 

도끼를 들고 산을 올라 가는 나무꾼을 따라갔다.

산을 올라가는 건 익숙해 지치지 않았지만 개같은 민첩 스텟 때문에 걸음이 느렸다.

영약을 먹던 아이템을 차던 빨리 적성을 올리는게 급선무다.

다행히 나무꾼의 뒷모습이 사라지기 전에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허리의 세 배쯤 되는 나무가 서있었고 옆에 도끼에 찍힌 자국이 보였다.

도끼를 바닥에 내려놓고 말했다.

 

“제가 먼저 찍어볼게요.”

 

나무꾼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제대로 중심을 가격해서 찍어야 한다. 잘못 찍으면 날이 날아가니깐.”

 

어제 내 이마로 날아온 등껍질이 떠올랐다.

……괜히 한다고 했나?

도끼날에 찍히면 진짜 아플 것 같은데…….

후회가 됐지만 그래도 전투 상황은 아니니깐 행운 스텟이 발동이 되지는 않을 거다.

그렇게 생각을 하며 도끼를 옆으로 찍었다.

팅.

휘이이이이이이.

 

“…….”

 

딱 한번 팼을 뿐인데 날이 손잡이에서 튕겨져 나와 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걸 지켜 보던 나무꾼의 입이 벌어졌다.

 

“아,아템…… 괘,괜찮냐?”

 

나는 말없이 상태창을 켜서 어제 세리아가 걸어준 버프를 봤다.

 

 

[성녀 후보 세리아의 가호가 깃듭니다.

제한 시간 : 56시 26분 36초. 

행운 F- => D-]

 

 

이 버프가 날 살렸다.

만약 행운이 F-등급이었다면 어제처럼 이마에 꽂혔을 게 틀림없었다.

이마에 뭐 자석이라도 달린 것도 아니고.

어이가 없어 기가 찼다.

스쳐간 날이 이마를 맞췄으면 불굴이 터지는 건 물론이고 정신력이고 뭐고 바로 기절했을 것이다.

옆에 아저씨가 있었으니깐 살긴 했으려나.

……민첩 적성을 올린다는 말은 취소다. 행운 스텟을 먼저 올릴 필요성이 느껴졌다.

현실 게임과는 정반대되는 부분이다.

가만히 생각을 정리하는데 나무꾼이 다가와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아템……. 나도 이런 적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오늘 꿈자리가 사나웠으면 그만 돌아가도 좋다.”

 

그 눈길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제가 너무 힘을 줬나 봐요. 다음에는 살살 칠테니깐 걱정하지 마세요.”

 

실제론 엄청 걱정됐지만 불운이 계속되진 않을 거다.

첫 도끼질에 너무 과한 힘이 들어간 게 틀림없다.

일퀘를 포기하기가 아깝기도 했고.

나무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냐? 아,아까 내가 했던 말은 잊거라. 딱 1인분만 해. 무리하지 말고.”

 

[나무꾼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나는 웃으며 머리를 주억거렸다.

 

 

 

****

 

 

 

[노멀 퀘스트가 완료됐습니다.]

 

[보상 : 나무꾼의 호감도 +1]

 

 

세 번째 나무 밑둥이 쓰러지자 퀘스트 완료가 떴다.

나와 나무꾼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해가 9시쯤 기울어져 있다.

쉬고 싶지만 시간이 여유롭지 않았다.

내일부터는 더 일찍 일어나야겠다.

내가 내려갈려는 채비를 하자 나무꾼이 말했다.

 

“오늘 나무는 모두 쳤으니 나머지는 내가 하마. 수고했다.”

 

“뭘요. 앞으로도 도와 드릴게요. 아저씨.”

 

[나무꾼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나무꾼이 웃었다.

 

“우하하하! 좋아,좋아. 촌장이 되니깐 사람이 달라졌구나. 아템.”

 

“그런거 아니라니깐요. 그럼 이만 먼저 가요.”

 

“그래. 내 집에 주먹밥 쌓아놓은 거 있으니 마음껏 들고 가.”

 

“감사합니다.”

 

나무를 베는 건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해안가까지 갈려면 3시간은 걸어가야 된다. 

주먹밥이라도 든든하게 먹어놔야지.

산을 터벅터벅 내려와 나무꾼의 집을 찾아갔다.

그의 말대로 큰 접시에 주먹밥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 큼지막한 손으로 주먹밥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어제 저녁까지 굶어서 주먹밥을 한 움큼 집어먹었다.

어제 먹은 김밥보다는 맛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배속에 거지가 있어 먹을만은 했다.

가방에 들고 갈 주먹밥을 챙겨 집으로 가는데 오두막 집 앞에 사람 두 명이 앉아 있었다.

 

“아템!”

 

레온이 손을 흔들었다.

산에서 채집을 하는 것이 노파가 맡기는 일이지만 오늘은 쉬는 날인가보다.

나는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세나가 이마를 찌푸렸다.

 

“그 맛 없어 보이는 주먹밥은 뭐야?”

 

“……내 점심인데.”

 

“에휴. 그러시겠지. 자 받아. 우리 엄마가 아템을 위해 싸준 도시락이야.”

 

전혀 시대와 맞지 않는 스탠 재질의 도시락통이다.

세나의 집에는 냉장고도 있는 마당에 이런거는 이제 사소해졌다.

나는 두 손으로 소중하게 도시락을 받았다.

 

“고마워. 잘 먹겠다고 좀 전해줘.”

 

세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네가 직접 말해. 대체 어디를 싸돌아다니길래 모습을 안 보이는 거야?”

 

세나가 고개를 들이밀며 도전적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여자라고 인식되진 않았지만 아름다운 외모가 훅하고 들이미어지니 나도 모르게 당황했다.

레온이 세나의 어깨를 붙잡았다.

 

“세나…….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돼. 하지만 아템도 마찬가지야. 저녁마다 삽을 들고 어디론가 가더니 이제는 아침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아. 촌장은 어떻게 된거고 어디로 가는 건지 친구인 우리한테 말해줄 수 있어?”

 

“하아…… 레온. 넌 정말 상냥해.”

 

세나가 레온의 팔에 얼굴을 비볐다.

……좋지 않다.

쌓인 게 많았는지 둘은 속사포처럼 내게 달려들려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적당히 말만 맞추고 내 할 일만 집중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캐릭터의 감정은 훨씬 세밀하고 입체적이였다.

아까 전 나무꾼의 내부 호감도가 올랐듯이 불만이 쌓이면 둘의 호감도가 내려갈 수 있다.

관계에 대해서 좀더 진지한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안되겠네.

레온과 그 팔에 기대며 바라보는 세나의 시선이 강렬하다.

 

“그…… 일단 집에 들어가자. 밥 먹었어? 세나의 어머니가 해준 도시락. 같이 먹자.”

 

세나가 말했다.

 

“좋아. 근데 그 주먹밥은 안 먹을거야.”

 

누가 준대?

그래도 내 밥을 챙겨주는 거 보면 나쁜 애는 아닌데 참.

머리가 레온으로 가득차서 그런가.

이래서 인기 없는 남캐는 서럽다.

현실도 게임도 동정 모쏠이구나.

서럽다. 서러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세나가 얼굴을 찡그렸다.

 

“여기서 밥을 먹자고? 청소 좀 해. 청소 좀!”

 

그러면서 나도 있었는지 몰랐던 빗자루를 찾아 방안을 쓸기 시작했다.

진짜 행동은 이뻐 죽겠는데. 

말이 문제다 말이.

레온도 세나를 도와 내 집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이러니 집주인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내 팔자에도 없는 청소를 한지 10분이 넘었을까.

세나가 창문과 문을 닫고 한숨을 쉬었다.

 

“후……. 이제 좀 앉을 수 있겠네. 봐봐. 깨끗하니깐 얼마나 기분 좋아?”

 

세나는 고혹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좀 감동 받았다.

나도 치우기 싫은 집을 친구가 직접 청소해주다니…….

저 둘의 호감도를 올려야 하는건 나인데 오히려 내가 올라가버리고 말았다.

레온이 말했다.

 

“……심각하긴 하더라. 가끔 청소하러 와줄게.”

 

우리 셋은 자리에 앉았다.

삼단으로 된 도시락통을 나눠주며 고민했다.

어디부터 말하고 숨기는게 좋을지.

그렇게 고민하는 내 모습을 레온과 세나가 꿰뚫어볼 듯 노려보고 있었다.

……숨기는 건 좋아보이지 않았다.

관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거짓이 없어야 한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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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가 너무 느린가요?

요새 글쓰기 고민이 많아져서 감평 받으면 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쓸때는 재밌는데 쓰고 나면 너무 못쓴 것 같아서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평소에 그냥 생각을 비워두는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