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을 들고 다녔던 건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야.”

 

레온이 말했다.

 

“아이템?”

 

“응. 혹시 노멀,매직,레어,에픽,전설,신화,유일. 알고 있어?”

 

캐릭터가 게임 시스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알고 있는지 순수하게 궁금했다.

세나가 등에 맨 수호검을 바라봤다.

 

“그 정돈 상식이잖아? 맨눈으로 봐도 수호검이 레어등급인 건 알 수 있어.”

 

검을 꺼내 작게 일렁이는 초록빛을 바라봤다.

그렇다면 애기가 빠르다.

다른 걸 실험해 볼 차례다.

 

“자 받아.”

 

가까이에 있는 세나에게 검을 툭 던졌다.

갑작스러운 행동에도 세나는 손에 든 도시락통을 내려 놓고 날아오는 검의 손잡이를 잡아챘다.

그 침착함과 재빠름이 과연 높은 민첩을 실감하게 했다.

나로썬 아직까지 꿈도 못 꿀 행동이다.

내 상태창을 열고 직업란을 봤다.

무기를 넘겨줬음에도 노파가 내게 검을 내줬을 때처럼 직업이 바뀌지 않았다.

직업 퀘스트를 해결하지 못하면 무기의 소유를 자의적으로 포기해도 무직으로 못 돌아가는 건가.

세나가 검을 구경하며 웃었다.

 

“후후. 은은하게 일렁이는 게 참 예쁘네. 낡은 것만 빼면 레온에게 딱인데?”

 

세나가 검을 레온에게 비추며 그 모습을 상상한 듯 입이 헤벌쭉 해졌다.

레온이 말했다.

 

“혹시 네가 찾던 아이템이란 게 이 수호검이야?”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했지만 별 다른 변명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맞아. 3개월이나 고생했는데 결국…….”

 

설명하려는데 옆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세나가 배를 움켜잡았다.

 

“아하하하하! 아템 진짜 바보야? 촌장님이 갖고 있는 걸 왜 땅을 파서 찾아?”

 

세나는 바닥을 떼굴떼굴 굴렀다.

그 비웃는 웃음소리마저 뭔가 감미롭게 들렸지만 나는 이 말괄량이를 무시하기로 했다.

레온이 말했다.

 

“전 촌장님이 어째서 검을 맡기신 거야?”

 

검은 촌장을 뜻하는 상징물이다.

이 물음에도 별다른 변명이 떠오르지 않아 솔직하게 말했다.

 

“내가 마음에 들었다는 것 같은데.”

 

“음.”

 

레온이 대답이 되지 않았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다음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 바톤을 세나가 이어받았다.

세나는 아직도 배를 움켜쥐고 있었다.

 

“풋. 그건 더더욱 말이 안 돼. 아침에 왜 우리가 자유로웠는지 알아? 놀라지 마……. 할머니가 앓아누우셨어. 너한테 촌장직을 맡긴 게 너무 후회된다고. 그러니깐 숨기지 말고 말해. 말 못할 다른 이유가 있는 거잖아?”

 

세나는 흥미진진한 듯 귀를 쫑긋거렸다.

세나가 하는 말로 미루어보아 퀘스트창 같은 시스템은 역시 캐릭터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아까 검을 쥐었을 때도 외면에 대해서만 말할 뿐 독니나 공격력같은 것에 대해선 모르는 눈치다.

아직 이 세계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많지만 하나 둘씩 알아져가고 있다.

그건 그렇고 호감도가 얼마나 떨어졌길래 앓아누울 정도가 됐지?

그냥 군말없이 검이나 받을 걸.

 

“그건 검을 받고 까불어서 그래. 그전에는 호감도가 착착…… 아.”

 

“호감도?”

 

레온이 고개를 기울었다.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는 안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빙의가 됐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나조차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를 게임 속 캐릭터가 이해해 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현실 세계로 돌아가게 되면 그때나 넌지시 한번 말해볼까.

근데 어떻게 돌아가지?

내 말을 비웃을 것 같던 세나가 의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맞아. 항상 아템의 집에 갈 때마다 그 할머니가 웃으시더라. 본 것 같아. 음.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하시다니. 대체 얼마나 까분 거야?”

 

대충 이야기는 수습됐다.

내부의 호감도는 현명하게 이용만 한다면 내겐 편리하고 강력한 시스템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 게임과 얼마나 괴리성을 띄는지는 잘 모른다.

프롤로그가 시작되고 본편이 시작 되어야지만 내가 아는 퀘스트와 대조해 볼 수 있다.

할 일은 간단하다.

본 편이 시작될 때 까지 최대한 강해지는 것.

도시락을 반 정도 까먹고 젓가락을 내려놨다.

청소하고 떠드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밤이 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되도록 빨리 출발해야 한다.

내가 일어서자 레온과 세나도 젓가락을 내려놨다.

 

“아니 천천히 먹고 가. 난 가봐야 할 데가 있어.”

 

구석에 놔둔 가방을 매러 걸어가는데 세나가 날렵한 움직임으로 내 등에 그대로 올라탔다.

미,미친…….

세나가 등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팔로 목을 감쌌다.

아침에 씻고 나온 듯한 향긋한 향기, 등에서 느껴지는 부푼 감촉, 피부에 닿는 찰랑이는 머리카락까지.

모든 게 다 갑작스럽다.

세나는 등 뒤에서 몸을 들썩였다.

 

“어디 가. 어디. 또 혼자 무슨 꿍꿍이를 필려고? 오늘은 레온과 내가 따라 다닐 거야. 그러니 순순히 항복하도록. 후후.”

 

세나가 목을 장난스럽게 죄여올수록 내 몸의 다른 곳이 부풀어 올랐다.

여자라고 인식 되지 않는다는 말은 취소다.

아템의 몸은 활력이 느껴지는 건강한 10대의 몸이다.

잔병치레로 몸이 썩어가던 현실의 몸과 달랐다.

조그만 접촉에도 몸에 전율이 돋았다.

나는 빨개진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아 고개를 숙여 세나의 몸을 잡고 그대로 땅바닥에 내던졌다.

세나가 거꾸러진 상태에서 가볍게 바닥에 손을 짚고 공중을 돌아 자리에 착지했다.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허리에 손을 짚었다.

 

“아템은 여전히 나한테 안되네. 날 이길려면 백만년은 수행해도 부족하겠어. 후후.”

 

레온이 다가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따라가도 괜찮을까? 찾고 있는 게 있으면 도와 줄게.”

 

애초에 이럴려고 기다렸구나.

저 말괄량이와 불행한 미래가 가득할 얼굴을 차례로 쳐다봤다.

 

“……미리 말하는데. 따라와도 재미 없어. 게다가 오가는 데만 6시간이 걸려. 그래도 따라 올거야?”

 

세나가 말했다.

 

“어디로 가는데?”

 

“해안가.”

 

“어? 이 마을 근처에 해안가가 있었어? 잠깐만,잠깐만. 안에 수영복 입고 갈 테니깐, 가지 말고 기다려.”

 

세나는 대답도 듣지 않고 전광석화로 문을 열고 나갔다.

신났네. 난 놀러가는 게 아닌데…….

레온이 말했다.

 

“해안가에서는 뭘 하는 거야?”

 

나는 고개를 돌렸다.

잘 다듬어진 검은 머리와 준수하다 못해 광이 나는 얼굴이 나를 쳐다봤다.

외면도 이렇게 호감이지만 내면은 순수하고 착하기 그지 없다.

3개월을 같이 다니면서 레온이 화를 내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늘 자신보다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든다.

얼굴엔 늘 여유로운 미소를 가지면서도 눈동자는 깊게 침착되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강렬함이 담겨져 있어 바라볼수록 그 깊은 바다에 멍하니 빠져든다.

왜 히로인들이 레온에게 푹 빠져서 미쳐버리는 지 납득이 가게 캐릭터를 만들었다.

이 게임에서 극히 드문 정상인이 그렇게 불행한 일들을 겪게 되다니 나도 모르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불쌍한건 나일텐데.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멍하니 쳐다보는 나를 레온이 훗하고 웃었다.

그 말에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요즘 들어 자주 이런다.

게임 속 캐릭터에 불과한데 마치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애잔함을 느끼고 감정을 느낀다.

생각도 몸도 점점 이 세계에 빠져드는 것을 느끼고 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진지하게 대한다고 해도 결국 캐릭터는 캐릭터. 인간이 아니다.

애착을 갖게 되면 머리가 굳어버린다.

게임 클리어를 위해서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나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별거 아니야. 아까 뭐라고 했어?”

 

레온의 눈에 수심이 깊어졌다.

고개를 한번 젓고 쓴웃음을 지었다.

 

“고민이 있으면 뭐든 말해. 난 언제나 네 편이니깐.”

 

“……어? 어,그래. 고맙다.”

 

문이 발칵 열린다.

세나가 수영복만 입은 채 레온에게 달려들었다.

레온이 슬쩍 몸을 피하자 세나가 균형을 잃고 얼굴을 바닥에 박았다.

 

“아야……. 레온…….”

 

슬픈 눈으로 레온을 올려보자 레온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놀러가는 게 아니니깐. 그렇지?”

 

그 물음은 내 귀에 닿지 않았다.

뇌쇄적인 자태를 뽐내는 수영복을 감상하느라 잠깐 뇌정지가 왔다.

스크린샷 기능이 있으면 진작에 찍었는데 그게 아쉬웠다. 

후…….

 

[스크린샷 1번 칸에 저장되었습니다.]

 

“어?”

 

갑작스러운 메시지에 내가 단발마를 내자 세나의 눈이 게스츠름해졌다.

 

“뭐야? 레온이 아니라 아템이 반했어? 풉. 미안하지만 아템은 내 취향이 저어어어어어언혀 아니야. 후후후.”

 

나를 놀리는 세나를 무시하고 가방을 맸다.

스크린샷이라.

생각지도 못한 시스템 구현에 머릿속이 차가워진다.

스킬창도 도감창도 열리지 않았는데 이게 왜 있는 거지? 

그나저나…… 이게 쓸모가 있을까?

한눈 팔 떼가 아닌데 자꾸 한눈이 팔려진다.

나는 굳은 얼굴로 세나를 내려봤다.

 

“빨리 옷 입어. 시간 없으니깐. 그리고 간단히 먹을 것도 챙겨. 레온 너도.”

 

레온이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나갔다.

세나가 다소곳이 몸을 일으켰다.

 

“갑자기 냉정하네……. 숙녀의 몸을 봐놓고 하는 말이 고작 그거라니……. 너도 레온도 참 정없다.”

 

세나가 혀를 내밀고 문 밖을 나갔다.

스크린샷이 저장된 거라면 불러오기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스크린샷,스크린샷 1번,스크린샷 1번창,스샷,스샷 1번,스샷 1번창…….

스크린샷 창.

그러자 눈앞에 스크린샷 창이 떠졌다.

닫기를 되뇌이자 창이 꺼진다.

 

“음……. 잘만 쓰면 의외로 쓸만하겠는데.”

 

그것도 나중 일이다. 지금 당장은 크게 쓸 일은 없을 것 같다.

스크린샷 창을 다시 열어 1번에 저장된 세나의 수영복을 지그시 바라봤다.

적당히 탄 피부와 흰색 수영복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세나가 앉은 자세에서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고 있다.

아까 전 스크린샷을 되뇌일 때 찍혔던 장면 그대로였다.

사진은 내가 보는 시야에서 그대로 따오는 듯 했다.

흠. 아주 잘 찍혔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나는 문 밖을 나섰다.

 

 

 

****

 

 

“와……. 바다다!”

 

세나가 모래사장을 뛰어가며 옷과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었다.

사방에 깔린 노란 거북이의 등을 발판 삼아 뛰어오르며 해안을 향해 몸을 던졌다.

풍덩.

해안에 몸을 깊숙이 잠영한 세나는 혼자 깔깔 웃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푹 젖은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우리를 향해 팔을 휘젓는다.

 

“빨리 와! 엄청 깨끗해.”

 

“놀러 왔냐? 아, 놀러 왔구나…….”

 

나는 참담한 미래를 알고 있으니깐 매사에 진지해질 수 밖에 없다.

오히려 저렇게 놔두는 게 나을 거다.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야.

그래도 물에 흠뻑 젖어 상큼한 미소를 띄는 그 모습이 화보의 한 장면 같았다.

한번 보기 아까워 그대로 눈에 담아 저장했다.

 

[스크린샷 2번 칸에 저장되었습니다.]

 

레온이 모래사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게 몬스터구나.”

 

세나의 발에 찍힌 노란 거북이들은 등껍질에 숨어들었다.

 

“맞아. 위험하진 않지만 잡기가 까다로워. 물리 공격에 면역이니깐.”

 

“물리? 아, 마법만 통한다는 애기구나……. 마법이라…….”

 

레온이 손가락을 튕기자 불꽃이 그 위로 솟아올랐다.

그 모습에 내 입이 딱 벌어졌다.

내 시선을 눈치 챈 레온이 오히려 당황한 듯 말했다.

 

“아, 이거? 어느 순간 되더라고. 이게 마법인지 긴가민가 해서 말하지 않았었어. 미안.”

 

레온이 정말 미안한 듯 고개를 숙였다.

 

“……아니 그것보다.”

 

어떻게 마법을 배운 거지?

급한 마음에 레온의 상태창을 살폈다.

 

 

[레온 LV.1]

 

카르마 : 선

종족 : 인간족

나이 : 17

직업 : 무

 

힘 : 3.5/100 [적성 A-]

민첩 : 3.5/100 [적성 A-]

마력 : 3.5/100 [적성 A-]

신력 : 3.5/100 [적성 A-]

정신력 : 3.5/100 [적성 A-]

행운 : 3.5/100 [적성 A-]

 

고유 스킬

 

없음.

 

 

처음 상태창을 살펴봤던 그대로다.

레벨도 1이고 용사로써 각성되지 않아 고유 스킬도 없다.

용사는 적성이 모두 높으니 뭐든 클래스 체인지를 할 수 있지만 마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스크롤이 필요하다.

거기다 처음 배우는 마법은 레벨이 최소 5를 넘어야 한다.

용사로 각성하는 시작부분조차 기본 스킬은 베어넘기기가 전부였다.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 게임과 다른 부분들이 이미 몇 번이나 일어났다.

납득하기 어렵지만 납득해야 한다.

스킬창을 볼 수 없는게 참 답답하다.

레온이 걱정스러운 듯 바라봤다.

 

“왜 그래? 오늘 자주 멍 때리네.”

 

혼란스러운 머리를 잠재우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오히려 좋아. 네 마법으로 몬스터를 처치하자. 그러면 레벨……이 아니라 강해질 수 있으니깐.”

 

“응. 알겠어. 해볼게.”

 

파티 효과는 그대로일까?

그것이 궁금했다.

레온의 뒷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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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어제 댓글 달아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스트레스 잘 관리해서 멘탈 안 흔들리고 열심히 써볼게요.

좋은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