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붙어 있는 사진들을 보니 고등학생일 적 생각이 난다. 정확히 언제였는지 모르겠고, 기억하기도 싫은 일이다. 


우리 집은 유복했던 가정은 아니었지만 화목한 가정이었다. 부모님의 부부 금슬은 매우 좋아서 주말에는 꼭 본인들끼리 놀러 가서 노실 정도였다.


그렇다고 나에게 무관심한 것도 아니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인 나와 자주 대화도 나누고 여러 번 가족여행도 같이 갔다. 단언코 말하건대, 그 어느 가정보다도 훨씬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날은 아마 1학년 첫 시험을 보고 집에 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모르는 문제도 없었고 생각보다 쉬운 시험이었기에 그 어느 때 보다도 들떠 있었다.


집에 다 와 가니 안방과 거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사실 이 때부터 낌새가 이상하긴 했다. 부모님은 항상 거실이랑 안방의 불을 모두 켜는 일이 없었으니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수상한 게 더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기분도 좋고 그래서 수상한 것을 눈치 채지 못 한 것 같다.


그렇게 그 때의 나는 부모님에게 자랑해서 맛있는 거라도 얻어 먹을 심산으로 당차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광경을 보고 말았다.


아버지는 배를 움켜 잡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피가 웅덩이처럼 있었으니 아마 그 때 이미 사망하셨을 것이다.


"누님, 이건 어떻게 할까요?"


사시미 칼을 든 거구의 사내가 위협적인 눈으로 날 노려 보며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누님이라는 여자에게 물었다.


"흠...그새 새끼를 쳤다 이거지...?"


여자는 소파에서 일어나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내게 다가 왔다.


나보다도 큰 키와 알 수 없는 위압감에 압도 당해 그 자리에서 완전히 얼어 버렸다.


"가까이서 보니 좀 귀엽네?"


여자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연락을 했다.


"네, 아버지. 그 새끼들 처리했고 뒤처리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여자는 히히덕거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근데 여기서 전리품을 하나 얻었지 뭐예요?"


순간 내 어깨에 손이 올라 왔다. 갑작스럽게 손이 닿자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을 뻔 했다.


"이 새끼들 쥐새끼처럼 숨어 살아도 모자를 판에 애까지 가졌더라요?


나이요? 아, 네, 대충 보니까 고1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여자가 통화를 하는 동안 정장을 입은 거구의 사내들은 혈흔과 파편 등을 깔끔히 치우고 있었다.


저들이 언제 날 죽일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여 그저 인형처럼 내 운명을 기다렸다.


"이거, 제가 가져도 되겠습니까?"


여자는 날 툭툭 치면서 물건 대하듯이 말했다.


"제 2의 안젤리카로 만들 자신 있는데 말이죠. 아, 된다고요? 하하, 감사합니다, 아버지. 제가 아주 잘! 교육시켜 보이겠습니다."


여자는 전화를 끊고 정장을 입은 사내들에게 무언가 지시를 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곧 사내들은 밧줄을 가져와 내 손을 뒤로 한 채 묶었고 내 입에 재갈을 물린 뒤 안대로 내 눈을 가렸다.


너무 충격적인 탓이었던 걸까, 난 도저히 그들의 구속에 저항할 여력이 없었다.


"말은 잘 듣는 것 같네. 얘는 일단 내 방에 넣어 놔. 그리고 처리팀 불러서 현장 청소 완벽하게 시키고."


그 말을 끝으로 나는 그 남자들의 손에 이끌려 차에 탔고 어딘가로 향했다. 


차에 태워져 가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신 부모님, 우리 가족을 습격한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의 내 운명. 슬픔, 걱정, 절망 등의 다양한 감정이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것만 같았다.


나로서는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내 인생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