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순이는 아름답다.


누구나 그녀를 지나칠때마다 홀린 듯 그녀를 쳐다보고는 탄성을 자아낸다.


그녀의 외모는 단순히 미의 기준을 넘어 사람을 홀리는데 특출났다.


그런데도 얀순이는 자신을 뽐내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언제나 활기찼기에 남녀노소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누구나 그녀를 보며 감탄했고, 칭찬했다.


그랬기에 언제나 조용히 지내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언제나 먼 사람 같은 그녀였기에..



"얀붕아 안녕?"


얀순이가 처음 말을 걸어 주었을 때는 심장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쿵쾅거렸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데 얀순이는 그저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줄 뿐이었다.


그녀의 미소는 나를 언제나 설레게 했고,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다.


그랬다. 얀순이는 나에게 어렵게 찾아온 첫사랑이었다.


참 과분한 사랑이었다.


어렵지 않은 첫 만남에 계속되는 만남은 그녀와 나를 더욱 긴밀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녀는 존재감이 없는 나를 볼 때마다 잊지 않고 말을 걸어 주었고, 나에게는 그 짧은 시간이 가장 행복한순간이 되었다.


그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명확히 알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그녀와의 대화는 언제나 즐거웠다.


얀순이는 다른 사람을 맞춰줄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런 그녀에게 나는 언제나 기대어 관계를 이어 나갔다.


얇지만, 언제 끊어질지 모를 정도로 약한 인연이었지만, 나는 그것에 만족했다. 만족해야만 했다.


"저 새끼 뭔데, 얀순이랑 대화하냐?"


"쟤 개찐따 아님? 분수를 모르고 설치네."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 주변의 시선과 오가는 말들은 언제나 나를 찔렀다.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 이렇게 행복한 시간이 흐트러질까 언제나 얀순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모르는 척, 안 들리는 척을 하며 귀를 막을 뿐이었다.


그것이 그녀와 나의 관계를 이어 나가게 해 줄 것이 분명했으니까 말이다.


그녀와의 관계가 이렇게 이어지기만 한다면 나는 만족했다. 정말로..


"얀붕아.. 혹시 여자 친구 있어..?"


하지만 그녀는 아니었나보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녀가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얀붕아, 하이!! 머리 했네? 귀엽다!!"


"옷에 뭐 묻었다. 일로 와바"


"얀붕이 손 생각보다 크네! 나랑 한번 재보자!"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고, 함께 있을 때마다 그녀는 나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행동을 자주 하였다.


부담스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었겠지만, 첫사랑이었다.


부담스러운 마음은 점점 마음 한구석으로 밀어 넣고 그 순간의 행복을 즐기기로 본능적으로 택했다.


얀순이의 스킨쉽은 갈수록 수위가 높아져갔고 더 이상 그녀가 나에게 가지는 마음은 모르는 척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무서웠다. 그녀가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아님 그녀가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놀리는 게 아닐까.


그녀에게 내 마음을 전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어떨까.


주제파악을 못 한다고 욕하겠지.


찐따새끼가 나댄다고 하겠지.


이런 마음이 나를 괴롭히고 옥죄여서 내 입에서 결코 고백이라는 단어는 나올 수 없었다.


그녀의 보증되지 않은 사랑이 다른 곳을 향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했으니깐.


더 욕심을 부리다 이 시간을 잃고 싶지 않았으니깐.


그렇게 단념하며 그녀와의 시간을 그저 흘려보냈다.


나는 그것에 만족했다.


하지만 또 그녀는 만족하지 못했나보다.


"얀붕아.. 그렇게 눈치를 줘도 어떻게 아직도 그러니?"


둘이서 바다를 놀러간 날 벤치에 앉아 맥주를 까고 어두컴컴해진 바다를 등이 비추는 그 시간에 그녀가 나한테 말했다.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지 모를리는 없었다.


하지만 나에겐 용기가 없었다.


"...무슨 소린데..?"


알고 있었지만.. 나에겐 고백할 용기가 없었고, 처참한 마음으로 그녀가 먼저 나에게 다가와주길.. 마음속으로 바래 왔을지도 모른다.


얀순이는 그 마음을 알고 있었는지 내게 속삭였다.


"내가 너 좋아한다고."


너무나 달콤한 목소리에 나는 알 수 있었다.


나의 첫사랑은 이루어졌음을.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을.


...


캠퍼스에서는 일찍이 소문이 났다.


"야야, 얀순이랑 얀분이랑 사귄다는데?"


"지랄하지 마. 존나 안 어울리는데?"


모두의 반응은 예상했듯이 부정적이었다.


우리의 만남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은 대다수였다.


누군가는 지나가다 말하기도 하였다.


"쟤랑 얀순이랑 사귄다고? 존나 웃기네."


"야야 듣겠다."


"들으라 하던가."


그녀와 사귀고 난 이후 나에게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나만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얀순아! 너 얀붕이라 사겨?"


"어! 얀붕이 이제 내 남자야!!!"


"헐.. 대박.."


"걱정 마 아무도 안뺏음."


"인정"


그녀들의 친구들 또한 나와의 관계를 그리 좋게 보고 있진 않은 듯했다.


"야 너 얀순이랑 사귄다매? 니 꼴에..어휴 아니다."


"좀 얀순이랑 사귀면, 얀순이 욕 안 먹게 옷 좀 잘입어. 맨날 후드티에 어휴.."


지나칠 때마다 그녀의 친구들은 나에게 한마디씩 거들었다.


평소라면 그냥 모르는 사람이기에 지나쳤을 테지만..


얀순이와 사귀게 된 시점부터 그녀들은 나와 모르는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점차 순간이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첫사랑이었다.


그녀와 있었던 모든 시간이 나에겐 소중했고, 아름다웠다.


그녀를 사랑했다. 진심으로


하지만.. 


그녀와 있는 그 시간의 행복보다 점차 그녀가 없는 시간의 불행이 더 커지고 있음을 느꼈다.


돌아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처음으로 그녀와 그저 대면한 사이였던 그때로..


그저 멀리, 손에 닿지 않는 꽃이었을 그때로..


그래서 그녀와 있던 시간들이 더 이상 예전만큼 소중하지 않게 되었다.


그녀와의 만남에서 더 이상 미소 짓지 않게 되었고,


그녀와 있는 시간에서 행복함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우리의 시간이 점차 끝나감을 느꼈다.


"얀붕아.. 요즘 어디 아파? 안색이 안좋아 보여서.. 혹시 안 좋으면!! 우리 어디 좋은데 놀러 갈까? 이번에 내가 좋은데 알아봤는데!! 여기가.."


"우리 이제 그만 만날까?"


그녀는 노력했는데.. 나는 더 이상 안됨을 느꼈다.


그래서 이별을 고했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그만하고 싶어서..


"왜, 왜.. 내가 어디가 부족했을까..? 부,부족한 게 있으면 고칠게.. 말해 줘.. 내가 뭐 잘못했어..?"


그녀가 매달렸다.


그녀는 잘못한 게 없는데.


그저 주위의 시선에 견디지 못한, 담을수 없는 꽃을 꽂은 내 잘못인데.


나는 그녀에게 끝끝내 상처를 줄 뿐이었다.


고백을 전할 용기는 없어도, 끝을 고할 용기는 있다는 것이 참 역겨웠다.


그렇게 붙잡는 얀순이를 뒤로하고 나는 내 자취방으로 향했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애원했다.


'제발.. 제발 다 고칠게. 응? 뭐 때문에 그러는데.. 헤어지기 싫단 말이야..'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미소를 잃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내 욕심 때문에 그녀가 운다는 것이 나의 심장을 후벼 팠다.


더 이상 그녀와의 시간이 나에겐 존재하지 않는 것에 심장이 찢어질 듯했다.


하지만.. 찢어지고 후벼 파인 심장은 이유 모르게 후련했다.


더 이상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서 였을까..


내 예상대로 그 이후의 캠퍼스에서는 나를 보고 술러이기는 했으나 더 이상 중심에서 밀려난 나였기에 이후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편해졌다.


무엇도 나를 건드리지 않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 과거가 나의 주제를 알게 하는 시간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얀붕아.. 우리 잠시만 볼까..? 정말 조금이면 되는데.."


"...나 약속이 있어서.."


"어,없는 거!! 알고 있어.. 그러니깐 조금만 시간을 내줘. 부탁이야."


그녀가 어떻게 나에게 약속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지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 순간에는 그저 스쳐 지나갔다.


그저 눈앞에서 애원하는 첫사랑인 얀순이가 너무.. 처량해 보여서 나는 주제를 알았음에도.. 


"알았어"


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아! 고마워..! 정말로.. 고마워.."


그렇게 그녀는 사람이 없는 곳.. 그녀의 집에 가까운 곳에 나를 끌고 갔다.


"그래서.. 할 이야기가 뭔데..? 그 일에 관해서는.."


"우리 다시 시작하자. 그때 이후로 정말 많이 생각했어. 나한테 뭐가 부족했는지 너가 나한테 바란 게 뭔지, 우리가 다시 시작하려면 내가 뭘 해야 할까도 생각하고.. 앞으로 어떻게 사는 게 좋을지도 정말 많이 생각해봤어. 나는 너가 없으면 안 돼. 너도 마찬가지 잖아. 내가 필요하잖아. 날 사랑하잖아. 우린 서로 사랑하는데 헤어지는 게 이상한 거잖아. 미, 미안 너무 떠들었지. 그, 그런데 난 우리가 다시 시작했으면해서.. 우리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아직 서로 사랑하니깐. 응?"


그녀의 표정이 무언가 이상했다. 쾌활했던 내가 사랑했던 그녀의 눈은.. 퀭하게 죽어 있었다.


"얀, 얀순아.. 왜 그래. 우린 이미.."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괜찮아. 한순간이었어. 우린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깐. 난 준비됐어. 괜찮아. 힘들었지? 내가 다 이해해 줄 수 있어. 그러니깐 끝났다는 말은 하지 말아줘.. 부탁이야."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아직 그녀를 사랑했기에 그랬던 걸까.


하지만 더 이상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음을 현재의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너와 사귀었을 때.. 주위 모두가 나를 욕했어. 너는 몰랐을지 몰라도.. 정말로 힘들었어. 나는 지금이 편해. 너와 사귀었을때보다.. 그러니깐 미안.."


"아, 아 그게 이유였구나. 그러면 친구들은 다 필요 없어. 그딴 년들 없어도 돼. 나는 너만 있으면 되니깐. 그러니깐 그것만 해결하면 더 이상 없는 거지? 아 지금, 이런 시간 너무 좋다. 우리가 가까워지는 단계인 거야. 나는 고칠 수 있어. 너만 있어 준다면.. 너가 내 전부가 되어 준다면 아무 상관없어."


"야, 얀순아... 음.. 미안 해 안될 거 같아."


내가 끝끝내 거절하자.. 그녀의 표정이 흔들렸다. 앞머리에 가려 걱정되는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입 만은 간신히 보였다.


그녀는.. 


웃고...


-콰지직!!


"시, 시발아.. 사랑한다고. 응? 사랑한다니깐? 내가 사랑한다 했잖아. 근데 왜 계속 이상한 소리를 쳐 해대는 거야. 그냥 사랑한다 해주면 되는 것을.. 왜 일을 이렇게 만들어. 응? 그냥 좋게 지내면 좋았잖아. 내가 다 포기할 수 있다니깐.. 정말로 사랑해 줄 수 있다니깐 계속 그러면 못 쓰는거야. 응? 자 아팠지..? 응.. 미안해. 하지만.. 너도 나빴으니깐. 벌이니깐.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줘.."


그녀의 손에서 빛나는 무언가가 내 몸에 닿았을 때 나는 몸에서 힘이 빠짐을 느꼈다.


그녀가 팔로 나를 받칠 때 머리칼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그녀의 눈이 보였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분명 울고 있었다.


"괜찮아. 음.. 괜찮아. 내가 다 이해해 줄게. 많이 힘들었지? 난 다 아니깐.. 네 맘 다 이해하니깐 우리 좀 쉬면서 생각하자. 괜찮아 그렇게 오래 안 걸려.. 여긴 우리 집이랑 가까우니깐. 집에서 쉬면서.. 우리 다시 생각해 보자..?"


"정말로.. 괜찮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