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자 사업은 무난하게 시작했다. 나는 만나자 사업을 하면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는 사무업무를 맡게 되어서 아침 일찍 출근을 해서 밤 늦게 퇴근을 하는게 일상이 되었다. 아무래도 국가에서 돈을 지원해주는 사업이니까, 꼼꼼하게 최대한 쓸데 없는 곳에 돈을 쓰는 일이 없도록 예산안을 작성하느라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을 해야하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괜찮지.


세상에는 돈을 더 많이 버는 것보다 더 가치있고 대단한 일이 많이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입장이 달랐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나에게 있어서 일은 생계의 목적이 아니라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자아 실현의 수단에 가깝다. 회사에서 주는 월급을 받지 않아도 생활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봉사 활동을 하면 최소한의 교통비와 식비를 지원해주는 것처럼 내가 받고 있는 월급도 그런 느낌이니까.


-타닥..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리다 잠시 목이 뻐근해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옆을 바라본다. 


준현의 자리는 비어있다. 이번에 준현이는 강당에서 만나자 사업 관련해서 교육을 듣는다고 했었나..?


"세희 선생님, 오늘도 일찍 출근하셨네요? 요즘 만나자 사업 때문에 하루종일 회사에 붙어 계시는거 아닌가 몰라?"


점심이 다되는 시간에 국장이 회사에 찾아왔다. 연말이 다가오고 있어서 후원금 문제와 관련해서 하루 종일 구청과 복지센터를 돌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아무튼! 저는 또, 어디 나가봐야하는데, 세희 선생님도 적당히 시간 되시면 알아서 퇴근하고 그러세요?"


오늘도 나만 여기에 있을 것 같다.


"네"


-타닥타닥


국장님이 나갔다.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쿵!


사무 업무를 보고 있는데 머리가 너무 복잡하고 짜증이 나서 도무지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 잔뜩 꼬여버린 실타래를 내 머리 속에 집어 넣고 마구잡이로 뒤흔든 느낌이다.


준현이는 잘하고 있을까?


일단은 정민아도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강당에서 준현이랑 같이 교육을 들으러 갈게 분명한데, 거기서 또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까? 나는 그게 걱정이다. 내가 옆에 있었을때도 정민아가 옆에서 준현이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혼자 있으면 더 심하게 당하지 않을까? 준현이는 생긴것처럼 소심하고 겁도 많아서 놀려먹기 좋은 부류의 사람인지라, 혹시 정민아가 선을 세게 넘어서 준현이가 마음의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대체 정민아랑 준현이는 무슨 사이인거지?


내가 알기로는 두 사람은 사회적 기업 교육을 들으면서 처음 만나게 된 사이로 알고 있는데, 겨우 한,두달 전에 만난 사이 치고는 정민아가 준현이를 대하는 태도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를 본것처럼 서스름이 없었다.


-꾸욱...


그리고 나는 그게 굉장히 불쾌했다.


손바닥에 새겨진 손톱 자국을 말 없이 쳐다봤다. 왜..? 그냥 기분이 나빴다. 저번에 만나자 사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준현이가 내 차를 타고 집으로 안 가고 정민아와 함께 버스 정류장에 남아있을 때 정민아가 내게 보여준 미소가 기분 나빴다. 그때 느낀 이유 모를 불쾌한 감정이 아직도 내 마음 속에 남아있다. 나는 준현이랑 아무 사이도 아닌데, 나도 모르겠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가끔 카카오톡의 연락처를 뒤지면서 준현이의 프로필 사진을 보거나 아니면 SNS에서 김준현의 이름을 검색하기는 했다. 몇번 동창회를 열어서 준현이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그건 그냥 평범하게 있을 수 있는 일이잖아. 동창의 근황을 궁금해하는건 당연하니까. 조금... 이 회사에 들어오면서 준현이가 내게 먼저 아는척을 안하고 이를 악물고 나를 모르는척 할때는 화도 살짝 났지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는 김준현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다고.


나는 김준현에게 어떤 마음도 없어. 어렸을 때 준현이가 내게 쓴 동화가 인상에 깊게 남았을뿐이지.


작업을 하고 있는 서류창을 닫고 인터넷을 켰다. 그러고보니 저번에 술자리에서 준현이가 소설을 쓰는게 취미라고 했었다. 그러고보니 어렸을때부터 준현이는 공책에 대고 이것저것 자기 망상을 적어놓는걸 좋아했었다.


어느 정도로 좋아했었냐면... 그래 그런 일도 있었지.


고등학교 때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공책에 소설을 쓰다가 그걸 들켜버려서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자기가 쓴 소설을 읽게 된 일이 있었다. 그 당시의 일을 생각하면 나는 준현이에게 미안했다. 준현이가 글을 적고 있는 걸 몰래 옆에서 지켜보다가 나의 그런 행동을 수상하게 여긴 자율학습 감독 선생님이 준현이의 공책을 빼앗아갔거든. 그 날 이후로 한동안 준현이는 사람들에게 음습한 소설을 쓰는 변태로 낙인이 찍혔지만... 몇번 애들 사이에서 놀림감이 되기는 했지만 심각한 수준의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 일의 책임은 나한테 있으니까, 내가 책임지고 준현이를 괴롭히려던 애들을 막아줬었거든. 


준현이의 메일 주소를 인터넷에 검색을 한다. 준현이때문에 그런건 아니지만 나는 웹소설을 읽는 취미가 있다. 많이 읽지는 않고 가끔 한편씩 소설을 읽는데 보통의 웹소설 플랫폼은 한편당 100원씩 결제를 해야하는 편당 결제 방식이지만, 내가 자주 사용하는 플랫폼은한달에 한번 월 정기권을 결제하면 한달동안 수백, 수천편을 읽어도 되는 구독제 방식이라서 나는 그 플랫폼을 주로 애용했다.


...내 와이프는 얀데레


메일 주소가 똑같다고 해서 준현이랑 같은 사람이 쓴 소설이라고는 할 수 없다. 준현이의 메일 주소는 어떤 게임 케릭터랑 이름이 똑같았거든. 그러니까 그 게임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도 있는 그런 닉네임이고 이 소설을 쓴 사람이 준현이가 아닐 수도 있잖아. 생각보다 등수가 높았다. 하루에 수백편씩 쏟아져나오는 소설 속에서 7~80위권의 등수에 들어갔더라면 상위 20%의 재미는 보장하고 있다는건데.


당장 오늘까지 처리해야하는 일들은 전부 다 정리 했으니까, 아주 잠깐 휴식 시간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최근에는 일이 바빠서 소설을 못 읽은지 좀 됐거든.


2)


어어... 왜 점점 올라가는거야..? 


-아름이가 예진이한테 깔리는게 너무 재밌습니다...!!!


-강한 여성... 왜곡된 성욕...눈나 나 죽어...!


-건설 소장은 얀데레에서부터 쭉 작가님을 따라왔습니다. 늘 그렇듯 안정적인 얀데레의 맛이 좋네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소설을 연재했다. 그냥 15화까지 연재를 하면 커피 쿠폰도 주고 15일 구독권도 준다니까, 그걸 받을 생각으로 소설을 연재했지만, 생각보다 내가 쓴 소설이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웹소설 커뮤니티에도 내가 쓴 소설이 언급이 되는 일이 많이 생겼고, 본격적인 유료 연재를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조회수가 네자리 숫자를 돌파하였다. 만나자 사업과 관련되서 술자리를 가지지 않고 계속 꾸준히 1일 1연재를 유지했더라면 더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겠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비축분으로는 더 많은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플랫폼에서는 이제 막 아름이와 예진이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까지밖에 진행되질 않았다. 본격적인 소설이 진행되기 전에 밑밥을 깔아놓는 빌드업 단계인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소설을 보고 있었다. 이야기의 절정 부분까지 오게 된다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소설을 보게 될지... 예상이 되질 않았다.


랭킹 80위권만 되어도 무난하게 200만원씩은 챙겨가는 것 같던데. 


하루에 두편씩 연참을 한다는 가정하에서지만... 그래도 나 소설 한편을 쓸때마다 3,4시간씩밖에 안 걸리니까. 직장 생활을 한다고치고 하루에 8시간만 컴퓨터에 앉아서 소설을 쓴다고 생각하면, 정말 어쩌면 지금 하는 일은 그만두고 전업작가의 꿈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LSH- 1000딱지를 후원하였습니다.


-랭킹에 올라와서 한번 프롤로그부터 최신화까지의 연재분을 전부 다 읽어봤습니다. 살짝 맵기는 하지만 왜 예진이가 아름이에게 그런 집착을 하게 된건지 둘 사이에 어떤 과거가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살짝 쓸데없는 묘사나 내용 전개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부분이 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떡밥을 뿌리는 방법이나 남녀역전이라는 세계관을 잘 모르는 독자분들을 위해서 아름이의 시점으로 보고 있는 변화된 생활상을 표현하는 방법이 참신합니다. 앞으로도 작가님이 열심히 소설을 써주셨으면 좋겠고...


1000딱지면... 10만원이잖아...?


전업작가 할 수 있을까? 해도 되지 않을까? 그걸 고민하던 찰나에 장문의 댓글과 함께 10만원 가량의 후원금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요즘에는 하는 일이 많지만, 나 보통 회사에서 매일 설거지나 하고 바닥이나 청소하는 그런 일만 하잖아. 그런 쓸데 없는 일로 시간을 허비하는것보다 내가 진짜 잘 할 수 있는 일에 내 모든걸 쏟아붓는게 좋지 않을까....?


-우웅우웅...


전화가 울린다. 정민아였다.


퇴근까지 했는데, 무슨 일로 연락을 한 걸까..?


왜 전화를 했는지 궁금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새로운 댓글이 올라오지 않았을까? 또 누군가 후원을 하지는 않았을까? 그걸 보고 싶은


그래서 다시 한번 새로고침을 했다.


-ㅋㅋㅋㅋ준현아, 글 쓴다더니 이런걸 쓰냐...?


나는 가슴이 주저 앉았다.



-크큭... 이걸 회사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으면 내 말을 순순히 따르라고?


나도 금태양한테 그렇게 협박 당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