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실례합니다."


꽤 시간이 오래지난 듯이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열린 문 안쪽은 아직 사람이 없는 듯, 인기척 하나 드러내지 않은채 어두컴컴하였다. 내부로 들어서서 주변을 둘러보던 소치는 바닥에 흩뿌려진 액체들을 보고서는 액체를 따라 고개를 올렸다. 



쯔걱, 쯔걱.



액체가 주변에 흩뿌려지는 소리. 여성의 작은 신음, 끈적거리는 듯 한 액체 특유의 소리가 들렸고 소치가 분명 인기척을 드러냈음에도 소치 쪽으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윽고 동공이 커지면서 어둠에 익숙해지고 희미한 형체들이 서로 얽혀 마찰을 유도하듯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본 소치는 대충 예상을 하고 인상을 찌뿌리며 바깥으로 나가 문을 세게 닫아버렸다.


"다른데부터 가자."


"왜? 뭔데?"


하고 있으면 문을 잠궈두던가. 역겨운 걸 본 듯이 인상 좋지 않은채 헛구역질을 하려고 하는 소치의 뒤로 야마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대체 저 안쪽에서 무얼 본건지 궁금해지려고 하였다. 웬만해서는 자신의 구애로 이미 볼것 안 볼것 모두 익숙해져버린 소치일텐데 어떤 걸 보고 저렇게 질색팔색을 하는걸까.


그녀가 이에 궁금해 하며 떠나려는 소치의 뒤를 따라갈 찰나, 소치가 세게 닫았던 잡화점의 문이 굉음과 함께 어떤 덩어리 형체가 문과 함께 박살이 나며 문짝은 3m 정도 날라갔다.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잡화점 근처로 모여들었고, 소치는 눈살을 찌뿌리며 부셔저버린 잡화점의 문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잡화점 안쪽에서 나온 여성이 이 사단의 주인공임을 알아차리는데에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왔으면 인사를 해야지 소치."


키 193cm. 풍만한 가슴을 달고 있음에도 어째선지 그 부분 외에는 모두 단단한 근육이 드러난 모습. 붉은색의 긴 머리는 관리를 하지 않은 듯 쭈뼛쭈뼛 세워져 있었고 양손에는 피가 흥건히 묻은 붕대를 두른 모습을 한 그녀는 이곳 [ 몬센비테 대항로 잡화점 ] 잡화점장 딸이였다. 


과거, 소치와 유년시절을 함께 보내온 소꿉친구라고 할 수 있는 이그니가 자신의 특유의 상어이빨을 씨익 드러내며 소치에게 다가갔다.

덩치는 소치와 40cm 넘게 차이가 나 소치는 이그니를 보려면 고개를 완전히 올릴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을 패고 있는데 거기서 미쳤다고 인사를 하냐."


"응? 사람? 아아, 저기 돼지녀석 말이지, 깝쭉거리길래 손 좀 봐줬다."


형체와 몰골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후두려 패 맞고 있던 사람은 부셔진 문짝 위에서 경련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키는 170 정도이나 살이 어마무시하게 쪄 그 덩어리의 형체가 마치 찌그러진 만두와 흡사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 피칠갑의 모습에 다들 경악했지만, 가장 경악할 문제는 그가 남자였다는 것이다. 


"꺄아아아악! 칼리스님!"

"빨리, 진료실로!"


웅성거리며 경악하던 여성체들 사이로 안드로이드들이 쓰러진 사내를 챙겨 그를 병원으로 이송했고 몇몇의 여성인간들은 이송하는 안드로이드 뒤를 빠른 걸음으로 쫓기 시작했다. 웅성거림이 한껏 줄어들고 이그니는 반 불구로 만들어버린 타칭 칼리스라는 사내를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어디 더러운 혓바닥을 내 배에 내밀고 있어. 쯧."


팰만했다.


"아, 그렇지만 소치 너라면 내 몸 구석구석 핥아도 되니까. 아니 그렇게 해주라. 돈은 내라는데로 낼테니."

"거절하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소치 그는 자신이 그런 취향이 한껏 없다는 듯이 손사래를 쳤고 옆에서 듣고 있던 야마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면서 소치를 안아들었다. 그 미소에는 전혀 밝은 미소가 아닌 한껏 얼굴에 명암을 짙게 깔고서는 자신의 것임을 강력하게 밝히는 듯 한 미소였다.


"그렇지... 소치는 핥는게 아니고 핥음 받는게 취향인걸. 그렇지 소치?"


전혀 아니다.


" .... "


아니라고.


왜 자신의 주변의 여성은 이런걸까. 핥음 받는게 취향인 사람이 대체 세상에 어디있고 그게 왜 나며, 이그니는 왜 또 그걸 긍정하는 시선을 그렇게 보내는 걸까. 일 때문에 주변 인맥관리를 하지 않는 댓가라는 걸까 하는 오만가지의 생각을 접어두고서는 야마나의 품에서 벗어나 소치는 주황색 가방을 이그니에게 건틀렛을 발포해 늘려 전달하였다.


"이거 이번 주 납품. 정산해줘."

"음, 뽀뽀해주면 두배로 정산해줄게."


그 말에 무심하게 떠나려는 소치.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여성에게는 납품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하게 어필하는 듯이 그녀의 말마따나 자리를 훽 떠나버리려는 소치의 행동에 이그니는 울상을 지으며 소치를 잡아 안아들어 가지 말라는 의사를 밝혔다. 


소치는 약간의 파란빛이 섞인 검은 눈으로 이그니를 노려보았고 이그니는 비에 젖은 개마냥 축 쳐저 소치를 안아든채로 문짝이 부셔진 잡화점으로 향했다.  


"어릴 때에는 '다 크면 이그니랑 떨어져 살래'라고 말했던 주제에...아직도 매번 와서 납품을 핑계로 나를 찾아와주고, 그렇게 유혹하면서 결혼 안하려고 하고.."


"유혹도 아니거니와 납품은 너네 어머니의 크나큰 은덕 때문에 하는거고, 결혼은.."
"결혼은 나랑할거야."


소치의 결혼이라는 말에 무섭게 뚝 끊어먹은 야마나는 잡화점 앞에 도달한 이그나의 앞에 서서 생긋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그러나 소치는 그런 햇살같은 미소에 비례해 주변 공기가 너무나도 차갑게도 느껴졌었다. 






이그니는 고개를 숙여 눈을 깜빡여 시선을 야마나에게 맞췄다. 


그리고 그녀를 걷어차는데 까지 2초도 걸리지 않았다.







"야!! 이그니!!"


"아직도 라야의 일족이랑 다니네. 소치, 저건 너를 구원할 게 못 돼. 예언따위 이미 수백년이 지난 시점에서 우리는 믿지 말아야 하는거야."


야마나를 걷어찬 이그니는 그녀가 품고 있던 소치를 안는 힘을 더욱 가중하기 시작했다. 


소치는 이에 힘이 들기 시작하면서 점점 호흡이 가빠짐을 느꼈다.


이그니도 야마나와 마찬가지로 사랑 때문에 뒤틀린 아이였다. 그녀는 소치와 가족 외에 모두 폭력적으로 대하였고 언제나 소치를 소유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다른 여성들이 소치를 탐하면 그 자리에서 즉사 시킬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갈구했고 지금의 이그니에 이르렀다.


그러나 소치는 자신을 갈구하는 그녀의 기대를 져버리는 듯 이그니의 턱을 향해 왼팔의 건틀렛을 발포해 자신을 풀게하고, 오른손의 건틀렛을 발포해 날아가는 야마나를 잡는데까지 4초 11이 걸렸다.


"야마나!"


소치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를 안아주었다. 내상은 거의 없는 듯, 그 찰나의 순간에 팔을 올려 방어기재를 펼친 야마나는 시퍼렇게 멍든 두 팔로 소치의 목을 감쌌다. 찡한 감각이 그녀의 전신에 퍼졌지만 소치의 안아듬 한번에 그녀의 세토로닌이 발산되어 행복감이 고통을 잊게 해주었는 듯, 야마나는 헤실 웃기만 하였다.


그와 반대로 턱을 맞은 이그니는 눈물을 쏟아내며 저 멀리 자신이 아닌 다른 여성을 안아주고 있는 소치를 바라보았다.


턱을 맞은 것 쯤이야 고통스럽기는 커녕 간지러운 축에 속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가장 아픈건 턱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마음이였다.


날 안아줘야하는거잖아, 언제나 같이 오로비오스 비행선에 몸을 같이 두는 것도 허락했는데 그러면 마음은 나에게 있어야 하는게 아니야? 그 년이랑 뽀뽀도 했을거고, 네가 싫어하는 딥키스도 해보려고 했을거고 가느다래서 널 지켜줄 수 없는 앙상한 팔로 네 목을 감쌌겠지. 


다 용서했는데 한번만 나를 선택해주는게 그리 어려워?


"소치."


이그니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쪽을 봐준건 너무 고맙고 행복하지만 그 눈은 자신이 싫어하는 눈이였다.

소치는 그녀들의 평소 행실에 대해 싫어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저 그건 평소의 싫어함. 특유의 투털거리는 수준의 눈빛이였고 이그니는 그 눈이 매우 좋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였다. 자신을 쓰레기로 보는 듯한 눈빛. 역겨운 눈이 아닌 두려움과 증오가 섞인 눈빛이였다. 

내가 무슨 짓을 벌인거지? 소치가 싫어하는 것을 당연스럽게도 알면서도?


"...정산은 나중에 따로 보내줘."


그의 말마디가 마치자 이그니는 온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증오 뒤에 슬픈 눈망울이 땅바닥 시선으로 옮겨졌다. 


차마 소꿉친구에게 분노를 할 수 없어 슬퍼하는 저 눈망울.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 어머니에게 오해 서린 날카로운 말을 들을 때마다 하던 눈빛이였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밤새도록 어머니와 함께한 추억의 사진들을 구 시대 스크롤러로 흐릿한 스크립트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뒤에는 어머니가 항상 눈물을 흘리면서 오해한 부분에 대해 반성하고 용서를 구했으나  아버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어머니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와, 소치가 겹쳐보였던 이그니는 숨이 가파라지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야마나를 안아들고 떠나려는 발걸음이 더이상 돌아올거 같지 않지만 잡을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를 잡게 되면, 그러다가 그에게서 손을 내뿌리치게 되면, 혹시라도.


"다가오지 말아줘."

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면, 이그니는 더이상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지경에 일러버리게 될 것 같았다.


마왕성에서 구출한 공주님을 안고 가는 듯이 자신을 떠나 멀리 가게 되는 소치의 등 뒤로 눈물을 흘리며 손을 뻗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이그니를 뒤로 한채, 소치는 다친 야마나를 안고 자신의 오로비오스에 태워 예젠하워를 벗어났다.


그 모습을 이그니는 어째선지 더욱이 사랑스럽게 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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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음.."


눈을 뜨면 새하얀 병실, 

입가에 매고 있는 호흡기. 

신식 기계들로 점철된 곳. 


딱 봐도 중환자 병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칼리스는 비척비척한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머리를 잡았다.

분명, 자신은 몬센티베 잡화점에서 잡화점 딸의 배를 핥았고, 그 뒤로는 기억이 없었다. 머리와 전신 곳곳에 묶인 붕대가 갑갑했다. 이렇게 묶어 놓으면 화장실은 어떻게 가라는거야.


"끄응-"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전신으로부터 오는 고통에 몸 곳곳이 부러졌음을 단번에 눈치 챈 칼리스는 몸을 움직이는 것을 포기하고서는 병실을 눈을 굴려가며 파악했다. 점철된 기계들 사이에 자신이 누워있는 침실 앞에 엎드려 기동을 중단한 듯 한 신식 안드로이드 하나가 다시 재활성화를 하는 표시를 보이며 칼리나를 바라보았다.


"칼리나님. 의식이 회복하셨군요."


 신식 안드로이드라서 그런가. 사람과 거의 유사하지만 귀에 달려있는 헤드셋 모양의 인공칩셋의 색깔로 그 활성화를 파악할 수 있었다. 파란색이면 기동 중이고, 빨간색은 기동 불능 상태, 노랑색은 일시 중지 상태.


"ㅇ..어떻게..ㄷ..된거지.."


턱도 부러졌는지 우물우물거리면서 말하는 자신의 모습에 안드로이드는 칼리스의 입 위에 손가락을 가볍게 올려 그에게 말을 하지 않을 것을 권하였다. 그리고서는 신식 안드로이드는 자신의 가슴해치를 열어 물약을 꺼내 자신의 입에 가져다 물약을 머금고서는 칼리나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러나 칼리스는 이를 거부하고서는 간신히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처음보는 안드로이드에게 이상한 약물을 강제로 주입당하는건 사절이였다. 그러나 안드로이드는 그의 반응에도 강제로 그에게 입맞춤을 해 물약을 먹였다.


"으읍..! 읍! 으으읍!"

"곧, 편해질 것 입니다. 칼리스님."


병실 바깥 창문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2편입니다. 남주와 서브남주 시점 둘이 이렇게 나뉠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