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은 대충 중세시대에 스팀펑크를 살짝 섞은 거. 한 마을에서 얀붕이와 얀순이는 함께 대장장이 일을 하고 있어. 당연히 가족은 아니고, 어릴 때부터 고아였지만 재능이나 아이디어는 참 뛰어났기에 동네 주민들의 농기구, 경비들의 무기 등을 만들면서 살고 있는거지.


그들은 도구를 만드는 것도, 무기를 만드는 것도 좋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가지만 반복하다보면 금세 지치고 질리기 마련이지. 게다가 얀붕이랑 얀순이 둘 다 지루한 건 절대 못 참는 성격이었고.


그래서 그들은 여러 기상천외한 일들을 벌여. 마을에 저수지를 만들겠다고 소형 증기 폭탄으로 땅을 파다가 지하수가 터져 온 동네가 젖거나, 도우미를 만들겠답시고 팔뚝만한 로봇을 만들었다가 자가복제한 그것들에게 깔려 죽을 뻔하거나, 자신들만의 비행기를 만들려고 증기를 모으다가 뒷산을 태워버리기도 하지.


주민들도 하루가 멀다하고 사고를 치는 둘을 귀찮아하지만, 잘못을 저지르면 확실하게 사과와 배상을 하고,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에 활기를 되찾아 줬기에 뭔 짓을 해도 그냥 꾸짖거나 무상으로 도구만 가져갈 뿐 벌을 주진 않지.


그러던 중, 왕국의 수도에서 한 젊은 여성 대장장이가 왔어. 2인조가 하도 사고를 친 게 결국은 수도까지 흘러 들어갔고, 둘에게 흥미를 가진 왕립 기술 • 대장장이 기관에서 허가를 받고 온 것이었지. 마을의 주민들은 능력있는 아가씨가 왔으니 좋아하는 편이었고, 얀붕이도 자신들과 비슷한 나잇대의 기술자가 와서 환영하는 심정이었지.


허나 유일하게 얀순이만큼은, 그녀를 환영할 수 없었어. 얀순이는 어릴 때부터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얀붕이를 내심 좋아했고(어르신들이 둘의 관계에 대해 말하면 얼굴을 붉히며 그런 사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말야), 또 마을에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라곤 자기밖에 없었는데, 자신보다 훨씬 아름답고 머리의 윤기나 몸매도 좋고 능력까지 있자 초조해졌지.


'얀붕이가 저 사람을 좋아할 리는 없겠지? 나랑 보낸 시간이 몇 년인데, 고작 저런 년이 왔다고 눈을 돌릴 리가 없어. 절대로절대로절대로절대로절대로...'


얀순이의 예상대로, 얀붕이는 수도에서 온 기술자에게 연애감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어. 그는 그저 능력있는 기술자에게 호기심과 호감만 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지. 그건 기술자또한 마찬가지였고.


그러나 얀순이에겐 둘이 같이 있는 모든 순간이 힘들고 괴로웠어. 시제품을 시험하는 중에 터져서 몸에 파편이 좀 박혀도, 톱니가 돌아가다가 손가락이 찍혀도 아무렇지 않게 툴툴 털고 일어났는데-


둘이 같이 얘기를 하거나


둘이 같이 술이나 밥을 먹고 마시거나


둘이 같이 나사를 조이거나


얀순이는 그 광경을 보고만 있어도 아리고 슬펐지. 얀순이는 이 슬픔을 창조에 대한 영감으로 바꾸기고 실행으로 옮겼어. 주민들과 얀붕이 몰래 금속을 대량으로 구매하고, 마을의 증기 발전소에서 몇 갤런이 되도록 빼오고, 경비 몇 명만이 졸린 눈으로 있는 새벽에 설계도를 가지고 예전에 불탔던 뒷산으로 갔지.


시간은 지나 푸르러던 논밭이 황금이 자란 것처럼 빛나 서쪽을 향하는 바람에 흔들리던 가을의 어느 날. 기술자는 얼마 전부터 기관에 약속했던 체류 기간이 끝날 때가 돼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어. 얀붕이는 더 이상 그녀와 학문을 토론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왕국의 명령에 거스를 수는 없으니, 떠날 날에 맞춰서 작은 선물을 만들고 있었어.


그런데 떠날 날이 되자, 기술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떠난 건가, 조금 섭섭한 감정응 느끼며 집 겸 공방에 들어가자, 자신의 탁자 위에 한 쪽지가 남아 있었어. 조금 삐뚤어지긴 했지만 기술자의 글씨체였지. 내용은 할 말이 있으니 뒷산으로 와달라는 거였지. 얀붕이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산을 향해 갔고-


•••


"으... 머리가 깨질 거 같아.. 여긴 어디지?"


얀붕이가 있던 곳은 황동과 강철로 이루어진 어느 방이었어. 황동이 있어 전반적으로 따뜻한 분위기였지만, 군데군데 기괴할 정도로 강하고 괴상하게 박힌 강철 볼트때문에 차가움도 느껴졌지. 그리고 자신이 손목과 발목이 묶인 채로 앉아있다는 것도. 그리고 유일한 방문이 열리며 얀순이가 들어왔어. 햇빛을 거의 안 맞았는지 검었던 피부가 하얗고 눈의 흰자는 실핏줄이 다 빨갛게 터져 흡혈귀처럼 보였지.


"얀붕아, 일어났구나? 머리 쳐서 미안해. 그래도 이렇게 살아있으니깐 다행이잖아? 후후.."


얼마 만에 듣는 건지, 얀순이의 목소리였어. 기술자가 오고 지난 몇 달간 얀순이는 재료나 도구를 달란 말을 빼면 거의 아무런 말도 안 했거든. 주민들이 말을 걸어도 무시하고, 기술자가 말을 걸면 노골적으로 싫다는 표정을 하며 지나치고. 얀붕이가 말을 걸 때만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응시하곤 했어. 아무래도 능력있는 기술자가 질투하나보다, 이런 생각만 했었는데.


"얀순아, 일, 일단 이것부터 퓰어주면 안 될까? 갈수록 손이랑 발을 조이는 거 같아."


"아, 그거 말야? 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조이는 게 맞아, 한 10분만 지나면 완전히 으스러뜨려서 부서질 껄?"


그 말에 얀붕이는 놀랐지. 대장장이로서 일을 못한다는 걸 넘어서서, 누군가에게 해를 주는 걸 정말로 싫어하는 얀순이가, 거짓말도 못하는 얀순이가 피만 안 섞인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자신에게 그런 말을 했으니깐.


얀붕이는 대체 왜 이러냐며 소리쳤지만, 얀순이는 희미하게 있던 웃음기마저 지우고 대답할 뿐이었지.


"그러는 얀붕이 너는? 왜 그 년한테 눈길을 줘? 내 화목하게 대화를 나눠? 왜, 왜 그렇게 행복하게 그 년이랑 웃은 거야?"


일방적으로 자신의 감정에 아픔을 드러내는 얀순이, 얀붕이는 어떻게든 해명하기 위해서 입을 열려고 했지만, 급격하게 조이는 볼트때문에 고통에 찬 신음만 내뱉을 수밖에 없었지. 얀순이는 갑자기 손가락을 튕겼어. 그러자 방문 너머에서 기어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며 다가오고 있었지. 그저 소리만 들었음에도 얀붕이는 공포에 찼지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것의 실체에 모든 감정이 폭발했어.


기술자였어. 하지만 모두가 잘 아는 그녀의 모습이 아니었지. 길쭉하게 뻗은 팔과 다리는 잘려서 갈퀴처럼 생긴 것이 달린 강철의 의수와 의족이 대신하고 있고, 옷은 다 찢어져 원래라면 풍만한 가슴을 내비치고 있을 테지만 대신에 고무 꼭지가 달린 황동으로,


마지막으로 머리엔 윤기넘치는 긴 적발이 다 밀리고 바늘이 수북히 박혀 있었지. 죽은 눈으로 침을 질질 흘리며 얀붕이를 응시하고.


"하하, 그 아름다웠던 기술자께서 고작 3시간만에 이렇게 변하다니, 조금 아깝네?"


얀붕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어제까지의 그녀와 지금 자신의 눈 앞에 있는 그녀의 모습에 인지부조화를 느끼며 미치광이처럼 울부짖을 수 밖에 없었지. 그런 얀붕이조차 사랑스러웠는지, 얀순이는 자신의 젖은 음부에 손가락을 비볐지만 말야.


"아 참, 얀붕아. 네 가방에서 이걸 발견했어."


얀순이는 품에서 네모난 상자를 꺼내 흔들었어. 바로 기술자에게 줄려던 선물이었지. 물론 얀붕이는 지금도 계속 울고 웃고 있어 무슨 말도 안 들렸지만. 얀순이가 뚜껑을 열자 작은 루비로 장식된 반지가 있었어. 얀순이는 그걸 멍허게 있는 기술자의 눈 앞에서 흔들더니, 바로 자신의 왼손 약지에 끼웠어.


얀순이는 기운이 빠졌는지 고개를 숙이고 침묵한 얀붕이의 턱을 조심스레 올리고, 왼손을 가볍게 흔들었어. 그리고 얀붕이의 바지와 자신의 바지를 벗고, 한번도 쓴 적이 없는 서로의 성기를 너트에 볼트를 박듯이 교합했지.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에 얀붕이의 그곳은 커지고, 얀순이는 교셩과 황홀한 표정을 전혀 감추지 않고 내뿜었지.


그걸 지켜보는 기술자의 눈은 너무 오래 뜨고 있었는지, 눈물이 흐르고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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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와 매트 보다가 쓴 건데 생각보다 별로네. 그거랑 별개로 배신의 기억이 늦는 이유를 변명하자면 학교 과제도 있고 학원도 가고 플롯을 생각보다 많이 고쳐서 그럼... 일단 이틀안엔 다음화 올려 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