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일들을 제거하고 나면 아무리 불가능한 것일지라도 무엇이 남든 그것이 진실이다.


셜록 홈즈에 나왔던 그 한마디가 머리 속을 맴돈다.


잔뜩 어질러진 쓰레기통 마냥 머리 속이 뒤죽박죽이다.


자세한 건 그녀를 만나면 알 수 있으리라.


나는 휴대전화의 단축번호를 눌렀다.



***



지금으로부터 일 년전까지만 해도, 나는 제법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대학을 나와 취업을 위해 전전하던 나는 주변 지인의 도움으로 작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다소 어리숙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에 익숙해졌고 사회생활도 나쁘지 않게 하고 있었다. 아쉬운 점은 부하직원이 없어서 내가 제일 막내라는 사실.


그럼에도 좋았다. 나는 그 평범함이 좋았다. 세끼 식사를 하고, 열심히 일을 하고, 편안하게 잘 곳이 있는 삶. 누군가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이라고 할 지도 모를 그런 삶.


그 평범한 삶이 뒤흔들린 건 한 여인 때문이었다.


이유나.


나보다 한 살 어린, 눈가의 눈물점이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그녀는 쉽사리 일에 적응하지 못했다. 이 회사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를 정도로 컴퓨터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했고, 그녀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보거나 야근을 하는 건 빈번한 일이었다. 그나마 사회생활이라도 잘한다면 괜찮았겠지만, 그녀 특유의 음침한 분위기와 꾹 닫힌 입은 사람들에게 반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녀는 곧 사내 왕따가 되었다. 


그녀를 욕하거나 험담하는 말은 쉽게 들려왔고, 노골적인 무시도 존재했다. 그녀가 사내에서 다른 이들과 떨어져 혼자서 밥을 먹는 건 지극히 흔한 일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내버려둘 수 없었다.


그녀가 내 부하 직원이여서인지, 외모에 끌려서인지, 동정심이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건 나는 그녀에게 많은 시간을 쏟았고, 그녀와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이유나와 전화가 많아진 건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회사가 끝나면 밤중에도 2,3 시간씩 연락을 하거나, 같이 술을 먹자고 하는 경우가 늘었다. 어떤 날에는 분위기에 취해서 잠자리를 가지거나, 데이트 비스무리한 걸 하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힘들었지만, 그녀는 처음 봤을 때에 비해서 확연히 밝아진 얼굴이었다.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그 얼굴을 보면, 도저히 힘들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




 "오빠, 왜 어제는 전화 안받았어."


 "응? 오빠?"


나는 거의 이골이 날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어찌어찌 버텼지만, 그녀의 집착은 좀 더 심해져갔다. 어떤 날은 전화로 인해서 밤을 지새우는 일도 있었고, 위험일임에도 억지로 잠자리를 가지자거나, 편히 쉬고 싶은 주말에 우리 집에 찾아와 쉴새없이 나를 불러대는 건 흔한 일이었다.


나 또한 웃으면서 넘어가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피곤했다. 내 생활은 어느새 그녀를 위한 것이 되어있었고, 내 삶에 '나' 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 모든 걸 알고 싶어했고, 조금이라도 나와 떨어지고 싶어하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가 미쳐가는 걸 느꼈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이 말을 꺼낼 수 밖에 없었다.


"우리 그만하자."


"응...?"


그녀는 도저히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두 눈을 껌뻑였다. 나는 다시금 그녀에게 이별을 고했다.


"미안하지만, 난 이제 못버티겠어. 지긋지긋해."


"오빠... 왜 그러는거야..."


내 단호한 말에 그녀는 말을 흐렸다. 그러나 내가 더 할 말은 없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물점을 따라 흐르는 그 눈물은 지독히도 슬퍼보였다.


"제발... 흐윽... 나... 버리지 마... 흐윽... 이젠... 안... 그럴테니까...."


"유나야."


그녀와 정이 많이 들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마음 한 구석의 감정을 최대한 짓누른 나는 현관으로 손가락을 가르켰다. 그녀는 울고불고 매달렸지만, 내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남이 되었다.



***



그 일이 있는 직후, 그녀는 회사를 떠났다.


문자나 전화도 오지 않았고, 우리 집에 들린다거나 하는 일도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나 또한 먹먹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감정이 무덤덤해져갔다.


이제 곧 모든 게 원래의 자리를 찾을 것이다.


지루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나의 삶.


 그러나 그건 내 소망에 불과했다.



***



 "이런 성범죄자 자식!"


 "네놈 덕에 회사에 얼마나 큰 손실이 난 줄 알아!"


 "당장 이 회사에서 나가!"


 모든 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다.


 어느 날 회사에 돌아와보니 나는 여자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한 성범죄자가 되어있었다.


 나는 해명의 기회를 요구했지만, 증거들은 모두 나를 범인이라고 지목하고 있었다. 하루 아침에 여러 죄목을 뒤집어쓰고는 붉은 줄까지 그였으며, 사회적 낙인이 찍힌 탓에 부모님조차도 날 받아주지 않았다.


마치 이 사회가 나를 배척하듯.


나는 혼자가 되었다.


수중에 돈은 금방 떨어져갔고, 바깥에 나가면 무수한 손가락질이 이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방 안에서 홀로 떨면서 이 모든 게 꿈이라고 비는 것 뿐이었다.


그런 나날을 살면서 죽음을 생각하던 때에, 나를 찾아온 사람은.


"오빠, 괜찮아요?"


그녀였다.




***





나는 정신병자마냥 모든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내가 뒤집어쓴 억울함. 이 터무니 없는 사태. 그리고 절망적인 상황 그 자체까지.


말의 앞뒤도, 내용도 맞지 않는 말들이었음에도 그녀는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내 이야기가 끝나자, 그녀는 문뜩 나를 안아주었다.


 "걱정마세요, 오빠.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빠를 믿어요."


 "유나야..."


 나는 미안함을 지울 수 없었다. 그녀를 매몰차게 내버린 내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에게 구원을 받고 있었다. 이 지긋지긋한 지옥에서 나를 믿어주는 유일한 사람. 내 이해자.


그 후 그녀는 내 집에 동거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나 때문에 손가락질 받기를 원치 않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생활했고 단 한번의 구김살 없이 모든 일을 해냈다.


나는 그녀에게 강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는 괜찮다면서 나와의 동거 생활을 유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통의 전화가 내게 걸려왔다.



 ***



 그녀가 돈을 벌기 위해서 바깥에 나갔을 때의 일이었다.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에 반쯤 발작하던 나는 전화를 끊었지만, 계속해서 걸려오는 전화에 그녀가 아닐까해서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목소리의 주인은 내가 회사 생활을 할 때 알던 한 사람이었다.


 설마 내게 욕이라도 하려고 이리 전화를 건 걸까.


 즉시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에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 죄송해요."


 물기에 젖은 목소리. 그 사람은 내게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전했다. 내용의 본질은 간단했다. 누군가에게 협박을 당했다. 나를 성범죄자인척 몰고 가게 하고, 증거를 심지 않으면 가족을 죽이겠다. 


 처음에는 허구성 협박인줄 알고 무시했지만 뒤이어 집 안의 애완동물이 죽고 부모 중 한분이 위급해지자, 울며 겨자먹기로 이런 일을 저질렀다.


 머리가 아파왔다.


 전기 회로가 끊어지듯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고,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희미하게만 들려왔다.


 나를 성범죄자로 만들어 평판을 끌어내리고, 내가 망가지기를 기다렸으며, 그 순간을 가장 잘 이용한 사람은 누구지?


바보가 아니라면 쉽게 연관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믿고 싶지 않았다.


 대체 무엇 때문에?





 내가.


 내가 대체.


 내가 대체 뭘 잘못했기에.




수화기를 내려놓고 한참을 멍히 서있던 나는 휴대전화의 단축번호를 눌렀다.



***



 그녀가 집까지 도착하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달뜬 숨을 내뱉은 그녀는 나를 걱정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오빠, 무슨 일이야. 괜찮아?"


 "..."


 "오빠...?"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할지 모르겠다. 제대로 된 언어를 잊은 것마냥 입에서 말이 튀어나오지 않는다. 그녀의 표정이 너무나도 가증스러워서. 나를 위한다는 저 표정이 너무 역겨워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몸이 아픈 거야? 그럼 일단 병원으로..."


 그녀가 자연스레 내 팔을 끌어당기자, 나는 그녀의 손길을 쳐냈다. 그러자 곧 그녀의 표정이 울상이 되어갔다.


 "오빠,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도대체."


 "...어?"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길래 이렇게까지 하는거야."


"오빠ㅡ"












 "왜 그랬냐고!!!!!"












 거의 모든 감정을 짜내어서 외친 그 한마디에 그녀는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이윽고 덤덤하게 말을 내뱉었다.


 "좋아하니까."


 "뭐?"


 "사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었는데. 좀 있으니까 알겠더라고. 오빠가 나를 싫어한다면 어쩔 수 없이나를 좋아하게 되는 환경을 만들면 되잖아."


 좋은 생각이지, 라고 대답하는 그녀의 말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내 인생이 망가져버렸는데.


 그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아니 오히려 좋다는 듯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흉악했다.


 "그래도 잘 됐잖아. 이젠 오빠가 바깥에 나돌아다닐 일도 없고, 내게서 도망칠 곳도 없어. 오빠에게는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직장도, 사회적 지위도, 돈도 아무것도 없는 걸. 그럼 내가 집에 와서 오빠를 사랑해주는거지!"


 "완전히 미쳤구나."


 "이제와서 사람들한테 변명이라도 해보게? 사실 나는 범죄자가 아니고, 이 여자가 했다. 난 억울하다. 이런 식으로? 글쎄, 사람들은 별로 오빠의 말을 안들어줄거 같은데."


 머리 속이 하얘져간다.


 외통수.


 체크메이트.


 끝.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는거지?


"이런 짓을 하면 내가 널 사랑할 것 같아? 아니, 천만에. 널 영원히 증오할거야."


"오빠, 사랑은 생각보다 짧다고 해. 물론 나는 오빠를 영원히 사랑하지만, 오빠는 그렇지 않잖아. 그래서 많이 고민을 했어. 어떻게 하면 좋을까ㅡ?"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박수를 치면서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그런 생각을 했어. 사랑은 식어도 증오는 평생 간다고 하잖아? 오빠가 나를 증오할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더 내가 생각날거고. 더 깊이 새겨지겠지?"


 "..."


"그렇게 살다보면 결국 정이 들거야. 오빠는 이제 집 바깥으로 나가서 아무것도 못할테고. 의지할 사람은 나뿐이니까. 그러면 모든게 완벽하지 않아? 어때?"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미래를 직감할 수 있었다.


모든 게 끝이라는 사실을.











예전에 어디서 본 플롯 가져와서 썼음


다 써놓고 나니까 너무 창피한 데스우웅


ㅎㅎ;; ㅈㅅ...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