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해?"



지겹도록 매일 듣는 소리에 체념한 나는 안순이를 바라본다



"이번에는 또 뭔데"


"수학문제를 모르겠어"


"아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 연필 줘봐"



내 앞에 있는 여고생 안순이는 내가 어릴때 부터 부모님을 통해서 알게 된 내 소꿉친구다



안순이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나랑은 마음만 먹는다면 나 한 명 정도는... 어쩌면 몇십 명 정도는 먹여살려도 지장이 없을 정도로 부유한 집안이다



"그런 애가 모르는 게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응?"



어렸을 때부터 안순이의 부모님은 항상 바쁘셨다 집에 홀로 있는 안순이가 걱정되셨던 걸까 안순이의 부모님은 내가 집에 놀러 오는 걸 매우 좋아하셨다 내 방이 있을 정도니 뭐...



"오늘 집에 올 거야?"



"너 혼자 있으면 할 줄 모른다고 밥도 안 먹잖아 조금 늦을 것 같지만 저녁 먹기 전에는 들어갈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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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학생들이 없는 고요한 시간대의 학교

나는 옥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얀진이에게 연락이라니 평소에 말도 안 하던 사이인데"



같은 반의 얀진이는 귀여운 얼굴에 밝은 모습으로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다만 노는 무리가 다르니 서로 엮일 일이 없기도 하고 교실에서는 대화도 안 하는데



옥상 문을 열자 평소에 잠겨있을 문이 열린다



"아 왔구나 얀붕아"



"응 근데 이런 시간에 부르고 무슨 일이야?"



"응 별건 아니고..."



얀진이는 붉게 물든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우리 사귈래?"



갑작스러운 고백에 잠시 당황한다



"장난이지?"



"아니야 몰래카메라라던가 벌칙 같은 게 아니야 전부터 널 좋아했어"



"...솔직히 갑작스러워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줄래?"



그 뒤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살면서 저런 여자한테 고백을 받다니 솔직히 얀진이에게 받은 고백은 거절할 이유가 없다 오늘이 금요일이니 월요일에 내가 고백하자



"다녀왔어"



문을 열자 불이 다 꺼져있었다



"뭐야 앤 아직도 안 왔어?"



소파에 앉으며 적막한 거실에서 생각에 잠긴다

얀순이는 그러고 보니 어릴 때부터 나에게 항상 무언가를 물었다


'어떻게 씻어야 해?'

'그건 알아서 씻어!'


'어떻게 자야 해?'

'니 이불 덮고 자라'



'같은 학교에 입학하려면 어떻게 해야해?'

'니 성적으로는 힘들 텐데 너 공부 못하잖아 성적을 올리면 몰라도'


그 뒤로 거짓말같이 성적이 올랐지 목표로 한 고등학교는 눈 감고도 들어갈 정도로



"뭐해?"



갑작스럽게 들린 목소리에 눈을 뜬다

무언가 기분이 안 좋은 걸까

눈매가 사나워진 얀순이가 나를 바라본다



"니 기다리고 있었어 넌 뭐하다가 지금 오냐"



"산책 그보다 밥은?"



"지금 할 테니깐 기다려라"



자연스럽게 주방으로 들어간 나는 저녁을 준비한다 마침 고기가 있으니 제육볶음으로 할까 다만 여자들은 제육볶음 별로 안 좋아한다던데



"제육볶음 할 건데 괜찮아?"



"좋아해"



"그래"



재는 음식 안 가리니깐 괜찮겠지

그런 생각으로 나는 저녁을 준비했다



"잘 먹었어"



"오냐 설거지하게 그릇만 가져다 놔"



"자고 갈 거야?"



"아니 부모님도 걱정하실 거고 집이 가야지"



"그거라면 어머님이 괜찮다고 하셨어"



폰을 보여주는 안순이

채팅창에는 부모님이 외박을 허락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걍 집에 가면 안 되니? 옷도 없는데"



"방에 다 있어 자고 가"



그 말을 끝으로 자기 방으로 도망간 얀순이는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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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순이네 집 샤워실은 마치 호텔 스위트룸 샤워실에 온 것 같다

물온도도 좋고 욕조도 크고 거울도 엄청 크다



"아 따뜻해"



거품이 풀어진 욕조에 몸을 담그고 흐물흐물해질 때였다



"뭐해?"



"야..야! 안에 나있어!"



갑작스러운 얀순이의 입장에 당황한 나는 소리를 지른다 그나마 거품 덕분에 내 몸이 안 보이는 게 다행이지



"알아"



"맨날 이런 식이지...그래서 왜"



"궁금한게 있어"



"뭔데"



"사람을 가두려면...어떻게 해야 해?"



갑작스러운 질문 내용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게 왜 궁금한데"



"...추리 소설에서 도망가려는 사람을 가두는데 방법을 모르겠어"



"그런 거냐..."



항상 묻는 어이없는 이유의 질문에 안일하게 생각한 나는 얀순이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 판단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르고



"일단은 밧줄이랑 기절시킬 수단이 필요하겠지 어딘가로 데려가려면"



"응 그리고?"



"납치에 성공했다면 가둘 공간이 필요하겠네 지하실이라던가 방이라던가 소리다 새지않는 공간이 좋을거고"



"그 정도는 괜찮겠네"



"그것 외에는 딱히 없을 것 같아"



"그렇구나"



"근데 너 언제 나가냐?"



"...같이 씻을래?"



"나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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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비추는 아침

잠에서 깬 나는 침대에서 나온다



"아 맞아 여기 얀순이네지"



문을 열고 거실로 나오자 얀순이가 날 바라본다



"좋은 아침"



"그래 잘 잤다"



"있잖아"



"왜 아침 해 달라고?"



"좋아...ㅎ" "알겠다 기다려라"



아직 잠에서 덜 깬 정신으로 주방으로 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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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었습니다"



"그러면 나도 집 간다"



"응 이따가 저녁에 잠깐 와 줄래?"



"귀찮은데...알겠다 너 혼자면 또 뭐 사고칠지도 모르고"



"같이 나가자"



지갑을 챙긴 얀순이와 같이 집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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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붉게 물든 저녁

얀순이의 부탁으로 다시 얀순이의 집으로 향한다



"갑자기 무슨 일인지 엄마도 행복하라고 그러고"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가자 불이 다 꺼진 집 안이 보였다



"애는 불러놓고 어디 갔어"



거실로 향해 전등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목 뒤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과 섬광 속에서 난 쓰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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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머리야"



정신을 차리니 보이는 건 얀순이의 방

커다란 방에 나 혼자 있으니 어색했다



"얀순이가 데려다준 건가"



문고리에 손을 가져다 대보자 찌릿한 고통과 함께 넘어진다



"악!"



넘어지려는 나를 무언가 부드러운 게 뒤에서 잡아준다



"조심해야지"



"뭐야 얀순이냐? 집에 전기가 누전된 것 같은데"



"일부러 그런 거야"



침대에 날 눕히곤 내 품에서 안기는 얀순이

냄새를 맡는 콧내음에 목이 간지럽다



"야 간지러워 비켜"



"싫어"



"뭐?"



"벌레가 꼬이면 어떻게 해야 해?"



"그야...벌레가 꼬이면 살충제를 뿌리든 죽이든 하겠지"



"그렇치? 역시 벌레는 죽여야 해"



"보물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해?"



"아니 이 상황에서 질문이나 하고 있고..."



대답을 하지 않자 더욱 꽉 껴안는 얀순이



"야 아파! 어휴...다른 사람이 못 찾는 곳에 숨기거나 하겠지"



"소중한 걸 숨기는 건 잘못된 게 아니야?"



"아니긴 하지?"



"그렇구나 그러면 나랑 영원히 있자"



"헛소리 그만하..."



"사랑해 좋아해"



"야 그만하고"



"얀진이었나 그 벌레가 꼬일 때도 괴로웠지만 몰랐으니 참았어"


"그래도 잘못된 행동이 아니었구나"


"너 이제 못 나가 부모님도 내가 너랑 산다고 했어"



"야 무슨 헛소리를"



화를 내려고 했다 그전에 내 입이 얀순이의 입으로 틀여 막히기 전까지는



"너랑 같이 있고 싶어서 공부도 열심히 했어 너랑 같이 살고 싶어서 부모님께 너랑 살고 싶다고 말했어"


"예전에 그랬잖아 보물은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고"



"그랬었지"



"그러니까 다치게 하지는 않을 거야"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내 손에 수갑이 채워졌다



"준비물은 다 챙겼으니까 모르는 게 있어도 너가 있으니까 괜찮아"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사랑해 얀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