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실리아와 만남 이후 난 에리카의 방에 7일간 갇혔다.

우려했던 독점욕이 벌써부터 시작한 느낌이다.

방에 갇히고 한 일이라곤 많지 않았다.

방을 청소하고 내일 입을 옷을 정해주고…

가장 중요한 건 격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밤이었다.

 

“…으흣. 거, 거기다. 요한… 하아.”

“여깁니까? 에리카님의 가장 약한 곳이?”

“…자, 잠깐만 그렇게 쌔게 하면 나, 난…! 으갹!”

 

에리카가 귀여운 소리를 내며 몸을 덜덜 떨었다.

반가운 소리가 뜬 것도 이때였다.

 

[놀라운 업적! 처참한 손재주와 스킬 없이 여제 에리카를 만족시켰습니다!]

[칭호 『시작이 남다르다』를 획득하였습니다. 손재주 +1]

[칭호 『여제를 만족시킨 남자』를 획득하였습니다. 손재주 +2]

[마사지 스킬을 획득하였습니다!]

 

『마사지』Lv.1 : 섬세함이 전혀 없는 우락부락한 단계. 상대를 만족시킬 시 피로도를 감소시키며 호감도가 상승한다.

 

 

“음.”

 

스킬은 자력으로 익히기 힘들다.

가장 쉬운 건 스승에게 사사받는 것이고 그다음이 책이다.

하지만 단 일주일만에 내게 유용한 스킬을 자력으로 익혔다.

 

‘마사지가 아니라 뭔가 느끼는 것 같은데…’

 

엄마 손이 약손이란 말이 있다.

어렸을 때 그렇게 배가 아파도 엄마가 쓰다듬어주면 낫는 놀라운 경험!

그것을 에리카가 느끼고 있지 않을까하는 추측이다.

 

“에리카님.”

“…하아. 으응?”

“이제 하는 법을 알았습니다. 다음은 발마사지를 해드리겠습니다.”

“뭐, 뭣이?”

 

에리카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내게 멀어졌다.

 

“아, 안 된다. 지, 지금도 충분하건만 주,중독되어 버린다….”

“예?”

“당분간 마사지는 금지다! 알았느냐?”

“아, 예.”

 

아깝다.

경험치 덩어리가 눈 앞에 있는데 말이다.

에리카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불을 꺼라. 이제 잠을 자겠다.”

“…예.”

 

고문의 시작이다.

침대에 놓인 베개는 없다.

내 팔이 에리카의 전용 베개인 셈이다.

앞으로 8시간 동안 팔이 무감각해지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잠자는 것도 어렵거니와 내 잠꼬대가 심해 에리카의 숙면을 방해할 수 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지금의 난 시종인 셈이다.

에리카가 팔에 머리를 놓자 씻고 온 향긋한 향이 풍겼다.

 

“요한.”

“예.”

“난 이 시간이 가장 편안하고 좋다. 왜 그런지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난 악몽을 꾼다. 10번 중 5번은 내가 죽는 꿈이고 나머지 5번은 죽은 가족이 나타난다. 그런데 네가 나타나고 나서부터 악몽이 사라졌다. 불면이 사라졌다. 고맙다. 요한.”

 

죄송합니다….

그런 설정을 넣는 게 아닌데 괜히 리얼리티를 추구하겠다고.

 

“…도움이 돼서 다행입니다. 에리카님.”

”요한.“

”예.“

”짐이 미운가?“

 

반란의 애기인가.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솔직히 그렇습니다.“

 

주루룩.

달빛이 창문을 비추는 감성에 젖어서 그런 탓일까.

팔에 눈물이 닿아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에리카는 순간 당황해 팔에서 벗어나 고개를 숙였다.

 

”하하. 나도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다. 예상은 했다만 직접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다.“

“…….”

“황제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짐에게 실망한 것을 이해한다. 내 옆에서 제국이 점차 번성하는 걸 지켜봐라. 지금은 그저 약속밖에 하지 못하겠다.”

“예.”

 

[호감도가 하락했습니다!]

 

에리카는 상체를 일으켰다.

 

“오늘은 네 방으로 돌아가라. 7일간 내 투정을 들어줘서 고마웠다. 내일부터 네게 자유를 주마.”

“예. 알겠습니다.”

 

나는 순순히 일어나 문을 열려고 할 때

에리카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요한. 날 배신하지 마라. 지금처럼 내 옆에서 날 잘 따르면 사형은 물론이고 네 부하들에게도 면죄부를 주겠다. 알겠느냐?”

 

뭐야?

아직도 안 죽였어?

나는 속내를 감추고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예. 알겠습니다. 에리카님.”

 

달빛이 날 비추자 에리카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생겼다.

 

 

 

 

*************

 

 

 

다음 날 아침.

황명이 내려졌는지 집무가 시작되기 전 복도를 쏘다녀도 아무도 날 제지하지 않았다.

이상한 건 병사들도 지나가는 메이드도 그저 날 불쌍하다는 뜻 쳐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뭐지?’

 

마침 입궁한 재상 셰플러에게 잡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일주일간 방에 가둬놓고 잠도 안 재웠다는 게 사실이었구만!”

“예?”

 

셰플러는 피곤해보이는 내 얼굴을 보며 확신한 듯 얼굴을 끄덕였다.

잠을 못 자긴 했지.

팔이 저리는데 어떻게 자.

 

“사람이 일주일을 버틸 수 있다니. 역시 보통 놈이 아니군.”

“예예…. 폐하께서 절 불쌍히 여겨 잠깐 자유를……”

”자살하러 가는 겐가? 황궁에 눈이 없는 곳은 없네! 차라리 내가 사형을 건의하겠네! 아무리 반란군의 수괴라도 보는 사람 입장도 생각해야지. 쯧쯧…. 

 

에리카의 이미지가 얼마나 악독한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황권이 강하다고 하나 반란을 용서하는 정치체제는 없다.

만일 그랬다간 내부에 불만의 목소리가 생길 것이다.

이렇게 착각하게 놔두는 게 내 목숨과 더불어 에리카에게도 이롭다고 생각했다.

 

“아닙니다. 저는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계속 버티면서 최대한 속죄하겠습니다.”

”쯧쯧. 건실한 청년 같은데 왜 잘못된 생각을 해가지고….“

“그렇습니다. 매우 후회하고 있습니다.”

“이미 늦었네! 에리카님께 용서란 단어는 없어! 고통이 빨리 끝나냐 늦게 끝나냐 그 차이란 걸 왜 모르나! 에잉.”

 

셰플러는 답답한 듯 나를 지나치고 복도를 지나쳤다.

나는 그대로 지하감옥으로 향했다.

에리카가 자유를 주겠다는 말은 정말 허언이 아니었는지 엊그제만 해도 반란군의 지휘부였던 내게 면회가 허락됐다!

얼떨떨하는 내게 창을 든 간수가 속삭였다.

 

“여기서 조사를 받는다는 구실입니다. 폐하의 밀명이니 오랜 시간 지체하시면 안 됩니다.”

“아. 알겠다.”

 

그렇게 엄중한 죄를 지은 사람들만 가둔다는 지하 7층 쇠창살에 도착하자 죄수들이 일제히 고개를 든다.

모두 나를 따라 반란을 한 부하들이었다.

 

“대, 대장님! 사, 살아계셨군요!”

 

헐.

꼴이 이게 뭐야?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는 거야?

 

“사형장에 갈 바에 굶어 죽겠다는 게 저희의 입장입니다! 그런데… 그 시종복은 뭡니까?”

 

나는 자초지종 설명했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황궁에 떠도는 소문을 각색해 내게 유리하게 말했다.

그러자 부하들이 아무 말 없이 날 쳐다봤다.

 

‘역시 안 속나… 하긴 반란군 지도자를 여제가 고문하겠다는 명분으로 시종으로 삼는다니, 독자들이 보면 온갖 악플을……

 

“역시 그런 고초를…! 단식 따윈 아무것도 아니었군요! 부끄럽습니다. 대장.” 

”엥?“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

 

아니. 그렇게 쳐다 보지마.

잠만 좀 못 잤을 뿐이지 신X 호텔에도 안 나오는 호화로운 음식은 다 먹고 있다고!

너무나도 양심에 찔렸다.

사실 에리카가 말한 면죄부는 정치적으로 약점이 될 공산이 커서 거절하고 마지막으로 부하들을 눈에 담을 겸 내려온 것 뿐이다.

얼굴만 보고 올라가려고 했는데… 그렇게 쳐다보면 아무리 일면식이더라도 가슴이 쿡쿡 찔린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품에 숨겨둔 바게트 빵을 꺼냈다.

방에 올라가서 먹으려고 한 건데.

 

”…대장? 이건….“

 

부하들이 감동하려 하자 나는 얼른 말을 꺼냈다.

 

”그… 미, 미안하다. 단식은 바보 같은 짓이니 당장 그만 둬라. 고문받는 건 나로 충분하다. 너희들을 살릴 방도를 찾는 중이니 밥 꼭꼭 씹어먹고 건강히 있어라. 알겠나?“

 

부하들은 바게트 빵을 한 조각씩 떼어내며 울음을 삼키고 꼭꼭 씹었다.

요한. 너 엑스트라 주제에 그래도 부하들에게 신임받는 지도자였구나.

마음이 켕겨 더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이만 올라가겠다. 다음번 만남은 오래 걸릴 것이다.“

”대장…“

 

사실은 내일이라도 내려올 수 있지만 무슨 낯으로 이 충직한 부하들을 만난단 말인가?

번거롭다.

반란군의 수괴라는 자리가.

 

내가 자리를 벗어나려 할 때 스토리에서 벗어나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대장. 조금만 버티십시오. 노아님이 대장이 살아있단 소문을 들으셨을 겁니다. 그러면 황궁을 덮치… 대장?“

 

아.

노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요한이 금방 퇴장하고 그 뒤를 이어 반란군을 수습해 다음 지도자가 되는 요한의 배다른 동생! 노아.

오빠를 잃었단 복수심으로 노아의 캐릭터를 생생하게 만들려는 그런 설정이었는데…

난 지금 살아있잖아?!

 

”헐.“

 

난 헐레벌떡 계단을 올랐다.

 

 

 

 

**********

 

 

 

 

제국의 수도. 어느 한 음습한 먼지가 풍기는 건물에 흑발의 여자가 사진을 쓰다듬었다.

어린 시절을 공유하는 유일한 가족.

요한과 자신이었다.

 

반란은 실패했고 요한은 자신을 대신해 사로잡혔다.

피끓는 애절한 감정이 지금도 절절 흘러넘친다.

그러나 참으려고 했다.

오빠가 죽으면 반란군을 지도할 사람은 나밖에 없을 테니깐.

 

그런데 제국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피도 눈물도 없는 에리카가 자신의 오빠를 시종으로 삼아 죽느니만 못한 무자비한 고문을 가하고 있다는 믿을 수 없는 소문.

이미 죽었겠거니 피눈물을 참고 반란군을 수습하여 복수를 다짐하려 했지만 살아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지금도 하루하루가 지옥일… 오빠를 위해 이 한 몸 바쳐 반드시 구해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에리카. 널 반드시 죽여버리겠어..“

 

그리고 달을 보며 애절한 감정은 푼다.

 

”오빠… 조금만 버텨줘. 지금 갈게.“

 

노아는 죽은 눈으로 건물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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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있으면 알려주면 고맙구..

어제 제목도 그렇고 율리아도 그렇고 왤케 착착 붙지 했는데

폭군이 날 너무 좋아한다 너무 인상깊게 읽었나 봄. 뇌리에 남은 듯

이름까지 똑같은 건 아니다 싶어서 에리카로 변경함.

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