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https://arca.live/b/yandere/8815979


나의 유일한 가족은 엄마였다.


너무 어렸을 때라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반쪽짜리 핏줄이란 이유로 마족 사회에서 버려졌다.


나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엄마는 나를 안아 들고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어느 정도 성장하자 정착할 필요성을 느낀 엄마는 던전이 근처에 있는 빈 오두막에 정착했다.


그 던전은 어느 순간부터 인적이 끊긴 곳이었다.


엄마는 모자를 주면서 밖에 나갈 때는 모자를 쓰고 나가라고 말했다.


마족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되도록 한밤중에 생활하고 이웃과도 대화하지 않다 보니 마을 주민들은 우리를 수상하게 보기 시작했다.


엄마를 보고 마녀. 아니면 중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쳐온 범죄자라는 헛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어느 날 이 소문에 불을 붙일 사건이 터졌다.


한 아이가 실종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수상쩍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를 범인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당연히 우리는 극구 부인했지만 소문 때문인지 마을 사람들은 전혀 듣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린치를 가할 듯한 분위기가 되자 한 아이가 울면서 실토했다.


던전에 담력체험을 하러 같이 들어갔다가 너무 무서워 아이를 버리고 도망쳐왔다는 것이다.


엄마가 나서서 던전에 들어가려 했지만,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게 아니냐며 막아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묻자 마을 사람들은 나를 지목했다.


엄마는 살기를 내뿜기 시작했지만, 엄마를 어떻게든 말리고 내가 던전에 들어갔다.


발이 엄청 빠른 편이었던 나는 금방 구석에 겁에 질려 기절한 아이를 찾는 데 성공했다.


아이를 둘러업고 나오는 길에 고블린의 기습을 받아 그만 엄마가 준 모자를 떨어트려 놓고 나와버렸다.


일단 아이가 급선무니 모자는 나중에 되찾아 오기로 했다.


나는 자랑스럽게 웃으며 아이를 마을 사람에게 돌려줬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아이만 빠르게 돌려받고 겁에 질린 채 집 안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의아하게 여긴 나는 엄마한테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내 말을 들은 엄마는 사색이 되었다.


엄마가 내게 줬던 모자는 평범한 모자가 아닌 나를 평범한 인간 아이로 보이게 하는 인식저해 마법이 부여된 것이었다.


그런데 본 모습을 보여줘 버렸으니 마을 사람들은 곧바로 마족을 보았다고 성 기사단에 신고했을 것이다.


엄마는 결심에 찬 표정으로 나를 무장시키기 시작했다.


준비를 마치자 먼 곳에서 큰 빛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한밤중이었음에도 성 기사들의 휘광은 찬란하게 빛났다.


엄마는 나를 끌어안았다.


"네 잘못이 아니야 헬렌. 잘못된 건 마족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죽이려 드는 성기사들이지."


"뒤에서 어떤 소리가 나던 앞만 보고 도망치렴."


그 말을 끝으로 엄마는 내게 각종 마법을 걸었다.


다리가 빨라지고 몸이 투명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너마저 죽는다면 저승에서 너를 볼 낯이 없구나."


엄마의 마지막 말에 나는 뒷문을 열고 미친 듯이 뛰었다.


내가 간신히 던전안에 들어서자 오두막에서 엄마의 비명이 들렸다.


움직이지 않는 몸을 겨우 이끌고 구석에 숨었을 때 두 성기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설마.."


"그래. 교단의 성기사단 한 분대가 여기를 토벌하러 들어갔다가 다신 돌아오지 못한 곳이지. 그 악마의 자식도 얼마 버티지 못할걸? 입구만 며칠 지키다 돌아가자고."


그렇게 두 성기사는 몸을 돌려 돌아갔다.


그 녀석들은 두 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2층까진 그리 위험하지 않단 것을.


내가 2층까진 놀러 다닐 만큼 어느 정도 강했다는 사실을.


나는 강해지기 위해 던전에서 몬스터들을 닥치는 대로 살해하기 시작했다.


5층의 가장 강한 몬스터 강철트롤을 죽이는 데 성공한 뒤 나는 던전 밖으로 나왔다.


성기사단은 철수한 지 꽤 되었고 나와 엄마가 살았던 오두막은 불타서 탄 흔적만 남아있었다.


증오스러웠다.


마족이라는 이유로 우릴 죽이려는 성기사들도.


마족이라는 이유로 우릴 미워했던 마을 사람들도.


그래서 되갚아주기로 했다.


그 날 밤 나는 우릴 미워했던 마을 사람들을 모두 살해했다. 애들만 빼고.


자비는 아니다.


부모를 잃은 내 슬픔을 똑같이 겪어보란 뜻이었다.


그 뒤 나는 숲에 은거하며 지나가는 성기사를 살해하기로 했다.


성기사 한 명을 상대해본 느낌은 트롤 여러마리를 동시에 상대하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버거웠다.


내 특기였던 투명화는 휘광에 무효화되었고 신성한 분노가 담긴 무기는 닿기만 해도 치명적이었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처음으로 성기사를 살해하는 데 성공했다.


상대하고 나니 느낀 점이 있었다.


신의 권능을 빼면 약골인 애들이란 것.


살해한 성기사 숫자가 5명을 넘길 때쯤 한 성기사가 나를 죽이러 왔다.


이름은 샤를이라고 밝혔고 만났던 성기사 중 유일한 여자였다.


그 년은 지금까지 싸웠던 성기사 중 가장 강했다.


큰 중상을 입고 다리 한쪽을 걸레로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달려드는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죽어라 도망치다 기력이 거의 다해 자포자기한 상태일 때 한 여우 수인이 내게 다가왔다.






"일어났어?"


무심한 듯 다정한 목소리.


포근하고 따듯한 이불.


푹신한 침대.


"..엄마?"


"난 남잔데 아빠도 아니고 엄마?"


눈을 뜨자 나를 구해준 여우수인이 눈앞에 있었다.


"다행이야. 많이 나아진 거 같아서."


정말로 몸을 확인해보니 많이 나아져 있었다.


여우 수인은 나를 보며 웃었다.


날 보고 웃어준 사람은 엄마 말고 처음이었다.


기분이 묘해졌다가 지팡이로 통수 맞은 게 생각났다.


"이 개새끼 나를 때렸겠다!!!!"


"너 구해 주려다 그런 건데 좀 봐주라. 미안해."


고개 숙여 사과하자 신기하게 바로 짜증이 풀렸다.


"아직 이름도 모르네. 내 이름은 아이작이야. 네 이름은 뭐야?"


"헬렌."


생각해보니 마족인 나를 구해준 게 신기해졌다.


"내가 무슨 종족인지 알아?"


"성기사한테 쫓기고 있었다며. 마족이겠지."


"날 봐도 아무렇지도 않아? 다른 녀석들은 나를 무서워하거나 죽이려 들던데."


"마족은 네가 처음이라 잘 모르겠고 난 성기사들이 제일 싫어. 권능만 믿고 깝치는 새끼들밖에 없거든. 지들이 무슨 고결한 새끼인 줄 안다니까?"


성기사 욕에 공감된 나는 피식 웃었다.


웃어본 것도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살려줘서 고마워.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


이 말을 끝으로 나가려는 순간 아이작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어디가?"


설마.


나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부탁이야. 성기사단에 신고하지 말아줘."


"뭐래. 돈 내라고. 너 치료하려고 쏟아부은 물약이 몇 개인데."


생각해보니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 없었다.


열심히 구해줬는데 차마 돈이 없단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망연자실한 표정에 돈이 없단 걸 알아차린 아이작은 얼굴이 잠깐 썩었다가 다시 돌아왔다.


"알겠어. 주인님한테 일단 말해볼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봐."


아이작은 뚱한 표정으로 방을 나갔다.


아이작은 그렇다 치고 주인이 성기사단에 신고하는 거 아니야?


불안해진 나는 아이작을 몰래 뒤따라갔다.




---------(아이작 시점)




"몇 번을 씨부려야 알아 처먹을 거냐? 안된다고."


"집안일이라도 맡기죠. 제가 열심히 가르쳐 보겠습니다."


"계집 노예 필요 없다고. 집안일 니가 다 하잖아. 남은 용도는 노리개질인데. 내가 레즈로 보이냐?"


"제 봉급으로 어떻게 안될까요? 식사도 둘이서 나눠 먹고 침대도 둘이서 같이"


"이 씨팔새끼 내가 오냐오냐하니까 개좆으로 보이지?"


예상했던 상황이랑 다르다.


마족을 들이는 걸 설득시키는 게 가장 큰 난관이라 생각했는데 그건 둘째치고 주인님께선 여자를 들이는 게 가장 싫으신 것 같다.


일단 다짜고짜 물약을 가져다 쓴 건 나니까 내 책임이 크다. 그렇다고 사람이 죽어가는데 모른 척할 수도 없고.


일단 살리고 보자라는 심정이었는데 뒷감당이 안 된다.


역시 그 수밖에 없나.


나는 주인님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주인님."


"전에 부탁해주신 밤시중 오늘부터 하겠습니다."


"오 정말? 무리하지 않아도 돼. 괜찮아."


괜찮기는. 내가 안 괜찮은데요.


것보다 말투 변하는 속도가 장난 아니시네.


"주인님을 하루라도 빨리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졌어요."


"내 맘을 알아주니 기쁘네. 대신 저 마족계집 건드릴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 알겠지? 네 말대로 돈만 청산하면 내보낼 거니까."


"제 몸은 주인님만의 것입니다. 주인님이 저를 구원해 주셨으니 미천한 몸으로나마 보답해야지요."


고마운 마음은 진심이지만.


저렇게 좋아하는 주인을 처음 보니까 기쁘기보단 두렵다.


"후후 말 예쁘게 잘하네. 좋아. 마족계집은 너 알아서 해."


"감사합니다. 주인님."


"그리고.."


꿀꺽.


"오늘 밤에 기대할게♥"


마족은 공포의 대상이라고 했다.


마족을 아까 본 입장으로서 진짜 공포는 지금 여기에 있었다.


힘겹게 대답을 마치고 나오자 헬렌이 옆에 있었다.


"어.. 어디까지 들었어?"


헬렌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중간에 말이 끊기던데 역시 설득이 잘 안 됐나 보네."


"아니 설득은 했어. 갚을 때까지만 지내면 돼."


그래 설득은 했지.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


헬렌은 생각했던 것보다 고마워해 줬다.


"너희 주인님 신기하다. 마족인 건 신경도 안 쓰고."


좋은 사람이지만 약간 맛이 가 있어서 문제지.


"나한테 안 고마워해 줘도 돼. 널 받아준 건 주인님이야."


"마족인 날 살려주고 설득시켜 준 건 너인걸? 고마워."


쪽.


어?


헬렌은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그, 감사의 표시야.."


건드리지 말라 그랬는데.


내가 안 건드렸으니 상관없나?


본 건 아니겠지?


아니 좋긴 한데 무섭다.


걸리면 끝장이니까.


혼란스러워하다 곧 밤시중을 하게 될 생각을 하자 속으로 절규했다.


얘 걱정할 때가 아니지 시발.


아무나 저를 보게 된다면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응?"


"무슨 일 있으십니까? 샤를 부단장님."


"아아 별거 아니에요."


그러고 보니 그분이랑 헤어진 지도 1년 되었구나.


저를 구원해주시고 곁에 있어 주시다 인간관계가 회복되자 조용히 떠나가주신 분.


어째서 떠나셨을까요.


그런 쓰레기들 한 무더기보다 오직 당신만 내 곁에 계셔주시면 되는데.


어째서 난 떠나고서야 알았을까요.


그 악마들이 당신을 괴롭히고 있었단 것을.


그 수도원에 있던 모든 악마의 목을 싸그리 잘랐음에도 당신은 돌아오지 않았죠.


제 잘못이에요.


악마들을 당신 곁에 두는 것이 아니었는데.


다시 돌아와 주실 때까지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을게요.


저만 바라봐 주시고 저만 섬길 수 있는 나만의 유일한 신님♥


-계속



소설쓰다가 남이 쓴 글 보면 안되는듯

필력차이때문에 현타와서 글이 안나왔음

부족한 글 봐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