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났어?"


"정신이 좀 들면 대답해봐."

"응."


"... 그래, 다행이구나. 잠깐만 기다려주렴."

"어디 가?"


"너가 태어났다는 걸 축하하려고."





"기분이 어때?"

"기분이 뭐야?"


"너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여기가 어떻게 보이는지 묻고 있는 거야."

"엄청 눈부시고 색이 없어. 속이 어지러워."


"그런가, 알겠어."

"저기 서 있는 건 뭐야?"


"내 친구들이야. 한편으로는 네 아버지들이기도 해."

"친구? 아버지?"


"생물학적 정의는 아니지만, 사람들의 이름을 외우기 힘들면 그냥 아빠라고 불러도 괜찮아."

"아까부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듣기 힘들어."


"너무 어려우면 안 들어도 돼."

"무시하고 있어."





"내 이름은 실험체야?"

"... 응."


"누가 지은 건지는 몰라도 감각 진짜 구리네."


"다들 이름이 맘에 드나 봐, 날 계속 그렇게 부르잖아."

"그러게, 나도 맘에 안 들어."





"왜 이제 왔어, 나 너무 힘들어."

"보고서 작성 기간이라서 그래. 앞으로 실험 같은 걸 많이 할 거야."


"실험이라니? 방금처럼 내 몸에 꼬챙이 끼워넣는 거?"

"꼬챙이가 아니라 주사라고 하는 거야."


"이름은 안 궁금해. 이제 그만해달라고 했는데 계속 끼워서 화 나."

"그래, 내가 잘 말해놓을 테니 너무 화내지는 마."





"여기."

"뭐야?"


"방금 지나간 사람의 눈 위에 있는 투명한 거."

"... 각막?"


"이름이 궁금한 게 아니라니깐."

"왜 주는 거야?"


"넌 날 자주 보러 와주잖아, 선물이야."

"... 나중에 다시 올게."


"어디 가는데? 맘에 안 들어? 다른 거 줄까?"





"잘 들어. 사람은 죽이지 마. 다른 어떤 생물도 마찬가지야."

"죽이지 마라는 게 뭔 뜻이야?"


"다른 사람의 신체를 훼손시키지 마라는 뜻이야."

"그래도 사람들은 나를 훼손시키잖아. 왜 나는 안 되는 건데?"


"아무 말이라도 해 봐, 넌 나를 안 때리잖아."


"내 팔을 잘라가지도 않고 이상한 물을 집어넣지도 않잖아."


"그러니까 너랑 나 말고 다른 모든 건 필요없지 않아?"

"진정해. 그건 너가 사람을 죽여서 제압한 것 뿐이야."


"넌 나보다 다른 새끼를 먼저 걱정하는 거야?"

"벽에서 손 떼고, 바닥도 그만 부숴. 갈라진다."


"말 돌리지 말고!"

"진정되면 다시 보자."


"어디 가, 어디 가는데! 계속 가지 좀 마!"





"이거 뭐야?"

"꽃이라고 불러. 여기선 보기 힘들 거야."


"엄청 가늘고 얇아. 그리고 강렬해.

"그래, 살짝 건드려도 사그라들 정도지만 예쁘지."


"나한테 주는 거야?"

"너가 약속 하나만 해주면."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마음 속에 꽃을 품고 있어."


"모두가 각기 다른 꽃을 가지고 있지."


"그 모습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연약해."


"그래서 부탁할게, 무언가를 죽이지 마."


"죽인다는 건 이 꽃을 빼앗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야."


"한 번 시든 꽃은 다시 피지 않으니까."





"최근 얌전해졌더구나."

"너가 하지 말라며."


"그야 그렇지, 고마워."

"고마우면 쓰다듬어줘."


"아, 그리고 말했던 대로 꽃 더 가져왔어. 민들레가 보고 싶다고 했지?"

"전에 받은 식물사전에 있는 거 전부."


"착한 일 한 번 할 때마다 꽃 하나 따다 줄게."


"대충 600페이지는 되니까 아직 한참 남았구나."

"그때까지 있어줄거지?"


"그럼. 내가 아니면 누가 가져다주겠냐."

"다른 사람들은 내가 무서워서 여기 안 오나 봐."





"야."

"응, 또 갖고 싶은 거 있어?"


"너 여기 나갈 거야?"



"... 누가 말했어?"

"나가는구나."


"아냐, 말은 그렇게 해도 아직 멀었어."

"거짓말쟁이, 나한테는 거짓말이 나쁘다고 했으면서."



"그, 진정해. 너 지금 너무 흥분하고 있어. 심박수가 벌써ㅡ"

"내가 나쁜 일이라도 했어?"


"아니면 내가 너무 많이 바란 거야?"


"말 잘 들으면 꽃 하나 따다 준다면서."


"이거 봐, 그 하얗던 방을 전부 꽃으로 채웠잖아."


"땅 위로 올라갈 때마다, 너가 여기서 잠깐 나갔다 올 때마다 얼마나 슬펐는지 알아?"


"나한테 잘해놓고서 이제 와서 나가겠다고?"


"절대 그렇게 못할 줄 알아, 그리 알라고!"



"아내가 임신했어."

"아내?"


"몇 년 전부터 나랑 함께 해 준 사람이야."

"네 옆에는 나밖에 없다며."


"이 투박한 방이 내 온세상인데."


"이 방에는 너밖에 없었는데."

"나 이제 가봐야 하니까ㅡ"


"잠깐만 자고 있어 봐, 미안해."


"아니다, 사실 안 미안해."




"일어났어?"


"정신이 좀 들면 대답해봐."


"아무 말 없구나."


"일어난 거 다 알아, 눈 떠."


"나 있잖아? 방을 전부 꽃으로 뒤덮어도 맘에 안 들었어."


"회색 벽면에 초록 덩굴을 펴 발라도 내 마음은 여전한 회색이야."


"너가 말했지, 사람은 그 속에 아름다운 꽃을 품고 있다고."


"이제서야 내가 왜 부족함을 느꼈는지 알 것만 같아, 아니, 확실히 알겠어."


"이대로 너가 떠날 때까지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야."


"그 전에 해야 할 게 있어."



"내가 네 꽃을 꺼내줄게."


"사람은 비교적 잘 열리니까 날카로운 물건만 있으면 얼마 안 걸려."


"내 마음에 색을 타버린 그 꽃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보고 싶어."





"아, 아아. 아아아!"


"아름다워, 역시 아름다워!"


"여기 장식된 꽃 따위는 쓰레기로 보일 정도로."


"아름답고 고귀한 깊은 빨간색이구나."


"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장미? 단풍? 연산홍?"


"이름 같은 건 아무래도 좋으니, 네 꽃은 정말 따듯하구나."


"약간 비릿하고, 넘쳐흘러서 담기 어려워도 너무 행복해."



"뭐야, 벌써 졸려?"


"넌 네 몸에 이런 예쁜 게 잠들어있다고 생각이나 했어?"


"어라, 손이 차갑네."


"그래, 어서 자고 일어나."


"내일 다시 보자, 그리고ㅡ"


"사랑해, 이런 감정을 사랑이라고 하던가."





최근 글을 너무 안 쓴 것 같아서 막 써봄


해석(드래그하면 보임)


얀순이는 실험실에서 태어난 실험체임

얀붕이는 그런 얀순이를 동정하여 다른 연구원보다 가깝게 지냄

얀순이가 너무 폭력적이어서 착한일 스티커처럼 꽃을 주기로 함

나중에 꽃이 많아도 만족하지 못한 얀순이는 얀붕이의 배를 가름

마지막은 얀붕이의 피를 마음 속의 꽃이라고 착각한 얀순이임

얀붕이가 그대로 과다출혈로 죽은 것도 모르고 얀순이는 마냥 황홀한 걸 표현하고 싶었음


누가 얀순이고 얀붕이인지 헷갈린다면 미안하다

어느 부분이 이해 안 가는지 댓글로 적어주면 최대한 답해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