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https://arca.live/b/yandere/8843703?category=%EC%86%8C%EC%84%A4&target=all&keyword=&p=1 




식탁에 있던 건 따뜻한 오므라이스와 된장국이었다. 


"따듯할때 먹어! 오므라이스는 내 주특기 요리야! "


그 애는 한껏 기대한 표정으로 어서 먹으라며 손짓했다. 시선이 나에게 고정되어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다. 내가 오므라이스를 한 숟갈 뜬 순간, 그 애가 손에 힘을 주어 쥐는 것이 보였다. 자신이야 있지만 역시 긴장되는 것일까. 나는 오므라이스를 입으로 밀어넣었다. 따듯하고 폭신한 계란 지단의 감촉, 그 아래에서 올라오는 케찹의 산미와 당근의 아삭함, 적당히 익은 고기와 양파의 단맛이 아주 잘 어우러진 오므라이스였다. 무언가 채워지는 맛이었다. 이내 무언가 뜨거운 것이 속에서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선...


"...어? 울어? 내 오므라이스가 그렇게 맛이 없었어..?!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돼. 억지로 먹진 마."


"아니...아냐. 그거 치우지 마."


그렇다. 이 맛은 언젠가 느껴본 맛이었다. 더 어렸을 적에 쓰레기같은 부모들이 있는 답답한 집에서 도망쳐 할머니 집에 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이쁜 손주가 할머닐 보러 왔다면서 따듯한 밥과 재밌는 옛날이야기들을 해 주었다. 그런 할머니가 너무 좋았다. 그러나 갑작스레 할머니가 죽어버렸다. 그 뒤로 나는 마음을 뉘일 곳이 없었다. 어느 곳에 있어도 마음이 편안하지 않고 집을 잃은 채 방황하는 길고양이 같은 마음이었다.  이 맛은 그 때를 떠올리게 하는, 마음을 채워주는 맛이었다. 음식의 맛뿐만이 아니라 이 아이의 사려깊은 마음씨와 집의 따듯한 분위기가 나의 지친 마음을 너무나 달래주었다. 시작한 눈물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고 계속 주르륵 흘러 댔다. 


"아... 다 울었어? 휴지 가져다 줄까?"


"아니... 괜찮아. 옷으로 닦으면 돼."


"어...아니야! 역시 휴지 가져 올게!"


그 애는 옷으로 닦으려는 나를 보곤 파랗게 질린 얼굴로 급히 휴지를 찾으러 달려갔다. 어쩜 저리도 나같은 거에게 마저 이런 배려를 베풀 수 있는 걸까. 이런 가정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내가 더욱 비참해지기도 했다. 문득 이 애의 이름을 아직 묻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금해진 나는 이 애의 이름을 물어보기로 했다. 그 애가 돌아오면 이름을 물어봐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에, 현관문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 애의 어머니도 무언가 일을 하러 나가 버려서, 나밖에 확인할 사람이 없었다. 누군지 확인만 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문을 열었다.


"누구세-"


"얀순, 나와라."


현관문 앞에 있던 것은 쓰레기 아버지였다. 매일 술을 먹고 들어와, 주정을 부리며 가족을 폭행하는, 삼류 악당도 되지 못할법한 그런 쓰레기였다. 그런 아버지에게 맞고 살며 화를 우리에게 푸는 어머니 또한 나는 싫어했다. 어쨌든 아버지가 있었다. 여길 대체 왜 온거지? 오늘은 드물게도 취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렇지만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쓰레기 아버지가 술을 먹지 않았을때는 항상 더욱 불행한 일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박을 해서 빚을 져 집에 압류나 대부업자들이 들어오거나, 정신이 멀쩡해지면 항상 꺼내는 어머니와의 이혼 요구, 그리고 그걸 묵살하는 어머니. 정말 이해되지 않고 이해하기도 싫은 상황들이었다. 그 모든 것이 아버지가 술을 먹지 않은 날에만 일어났다. 어쩌면 이것도 불행의 전조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느그 애미랑 드디어 이혼하기로 했다. 지금 안 나오면 너는 느그 애미 따라가는 걸로 알겠다."


"뭐? 아니 어떻게...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잔말 말고 빨리 따라 나와!"


쓰레기 아버지는 나의 팔을 잡아끌며 나를 강제로 움직였다. 팔이 빨개질 정도로 세게 잡혀서 전혀 저항할 수가 없었다. 나는 쓰레기 아버지의 차에 태워졌다. 그 때, 저만치서 소리를 듣고 오는 그 애가 있었다. 그 애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서둘러 달려왔다. 나는 아버지의 급해 보이는 행동에서, 먼 곳으로 가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적어도 그 애의 이름만큼은 듣고 싶었다. 자동차가 시동이 걸리며 배기음을 내뱉었다. 나는 급하게 그 애에게 물었다. 


"이름을 알려줘!"


"...어? 아! 내 이름은 얀붕이야! 그러는 네 이름은-"


순간 몸이 뒤쪽으로 쏠렸다. 자동차가 가속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아, 얀붕이란 이름이구나. 이름마저 따듯한 느낌이네. 그런 감상에 젖어있다, 순간 아직 내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르게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얀붕이에게 뭐라고 말 하려고 했다.


"내 이름은 얀순이야!"


이미 너무 멀어진 탓일까. 전혀 전해지지 않은 것 같았다. 얀붕이는 머리를 갸우뚱거리다가, 이내 손을 흔들며 내게 뭐라고 말했다.


"...일도 ...므... ...으러 와!"


아마 내일도 먹으러 오라는 말이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말은 이루어질 일이 없겠지. 다시금 생각했다. 아, 이렇게 따듯했던 그 모든것이 끝나 버렸구나. 앞으로도 만날 일은 없겠지. 이젠 안녕.


"미안... 내일은 갈 수 없을 것 같아."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시선을 돌리니 쓰레기 아버지는 뭔가에 홀린 듯 눈가에 핏발을 세우고 앞만 보며 운전하고 있었다. 마치 이 동네가, 이 곳이 미친듯이 싫다는 듯, 누군가에게 도망치는 듯, 그렇게 보일 정도로. 그렇게 나와 쓰레기 아버지는 멀리 멀리 지방에 이사를 갔다. 나머지 가족에 대해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도 뭔가 그 얘기는 하기 싫어서 하지 않았다. 어쩐지 이사간 뒤로는 아버지가 거의 술을 먹지 않게 되었다. 나빴던 혈색도 점점 좋아지게 되었다. 그러던 말던, 알 게 뭔가. 나는 줄곧 아버지와 딸로서 최소한의 관계만을 유지하며 살아갔다. 그러던 중학교 3학년의 가을, 선생님이 나에게 수도권의 학교로 진학하지 않겠냐고 조심스레 말해왔다.


"얀순아, 수도권에 얀데고등학교 알지? 네 정도 성적이면 거기 충분히 지원하고 남을 것 같은데... 어때? 생각이 있니?"


얀데고등학교라... 그러고 보니 이사를 오기 전 옛날의 그 동네가 있던 근처에 그 고등학교가 있었다, ...그 따듯한 오므라이스를 해줬던 얀붕이가 있던 그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사람의 온기를 느끼게 해 주었던 그 집이 있던 곳이었다. 혹시나 얀붕이도 그곳에 다니지 않을까. 불현듯이 그 생각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잃었던 눈의 생기가 돌아왔다. 따듯한 피가 흐르고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나는 선생님께 말했다.


"네!"


회색빛이었던 세계에 일곱 가지 색깔이 돌아오고 있었다. 낙엽을 떨어뜨리던 계절이 지나고 세찬 바람에 떨던 계절을 거쳐 꽃피는 초록색 계절이 돌아오려 하고 있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늦어서 ㅈㅅ

그치만...혼코노가 너무 재밌었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