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네 번째 남자를 들여라!"


"..."

도깨비들에게 붙들려, 네 번째 남자가 저승사자 앞에 선다.


"알고 있겠지? 거짓말 하면 지옥행이다."


"..."

남자는 저승사자를 바라보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자네는 아내 몰래 몇 번이나 바람을 피웠지?"


앞선 세 사람에게 주어진 같은 질문

천국과 지옥행이 신실함이나 선행으로 판가름 되는게 아니라

꼴랑 부부관계나 외도사실로 결정된다니,


이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자가 죽어서 저승사자 앞에 서 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

헌데,

남자는 저승사자를 빤히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하. 묵비권이라니, 고얀 것. 이 곳은 지상의 법정처럼 그깟 자비가 있을줄 알았더냐?"

저승의 심판관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남자를 겁박한다.


"..."


"그래, 거짓말을 하면 지옥행이다.

 허나,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저승도 지옥도 천국도 가지 못한다.


 나야 시간이 많지,

 그리고, 너의 행실을 살펴보아 진실을 캐내는 것도 어려운 일도 아니지.

 나와 자존심 싸움을 하자는게냐?"


"..."


"이런 고오오오오얀 놈

 그래, 정녕 그것이 네 대답이라면

 네 너의 지상에서의 행실을 샅샅히 파헤쳐주마"


남자같은 녀석이 지금까지도 수없이 많았다.

대답을 해도 좋을 게 없고

거짓말을 해도 지옥행이라면

차라리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는

얄팍한 생각을 하는 치들이야 차고 넘쳤다.


시간이라도 질질 끌면서 판결을 늦춘다.

다음 일은, 다음에 생각한다.

설령 바뀌는게 없더라도, 선택을 미루며 살 길을 도모하는 머저리들.


이런 어리석은 자들을 심판하는 것이, 저승사자의 유희거리중 하나다.



"여봐라!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의 머리를 열어라!"

과거를 보는 방법이야 여러가지가 있다.

신의 권능으로 직접 과거를 둘러보아도 되고

지상의 사이비 사기꾼이나 쓰던 수정구술에, 남자의 과거를 비춰보아도 된다.


그래도, 역시

가장 화질이 좋고 생동감이 넘치는 것이

죽은 사람의 머리를 열어, 직접 과거를 살펴보는 것이다.


저승사자의 명을 받은 도깨비들이 커다란 톱을 들고 나온다.

남자를 묶어놓을 수 있는 형틀도 같이 딸려나온다.


고문기구와도 같은 저승의 물건들을 바라보며

남자가 두려움에 떤다.


"어떠냐, 이제라도 진실을 말하겠느냐?"


"..."

남자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도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래. 네가 이기는지, 내가 이기는지 한번 겨루어 보자꾸나."


남자의 몸이 형틀에 묶여 눕혀진다.

그 위로, 거대한 톱날을 좌우로 들고, 도깨비들이 춤을 춘다.


명령만 내려진다면, 즐거운 듯이 남자의 머리를 썰어내고, 열어제낄 것이다.

저승사자는 그의 머리속을 직접 살펴보며

과거의 죄에 대해서 샅샅히 뒤져보리라.


그럼에도 남자는, 끝까지 말을 하지 않는다.


"잠깐만요!"


남자의 재판에 여자가 한명 끼어든다.


"감히 신성한 판결에 끼어들다니, 왠 놈이냐!"

저승사자임에도, TV속 3류 악당이나 내뱉는 대사를 한다.


"그 남자의 아내입니다."


"호오, 그래? 안 그래도 자네 남편의 외도를 살펴보고 있었지.

 곧 죽어도 말을 하지 않으려기에 직접 머리를 열어 살펴보고자 했건만.

 어디, 같이 볼텐가?"


역시 인간은 즐겁다.

2천년이고 2만년이고, 인간의 희로애락과 감정은 저승사자를 참으로 즐겁게 한다.

지금 이 부부는, 어떠한 재미를 느끼게 해줄까?

누가 바람을 피고, 누가 외도를 펼치고, 누가 누구를 사랑하긴 했을까?

저승사자가, 남자의 침묵에 기대감을 품고서 여자를 떠본다.


물론, 남자의 심문이 끝나는 대로, 저 여자도 살펴볼 것이다.


"당신, 바람피웠어?"

순간, 여자가 남자를 쏘아본다.

도깨비보다 더 도깨비 같은 눈빛으로.

저승사자보다 더욱 서슬퍼런 눈빛으로.

지옥의 고문관들보다 잔학한 기운을 내뿜으며,


남자에게 질문을 한다.


"하. 저 겁쟁이같은 남자는 외도사실을 숨기고싶어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네.

 자네가 묻는다고 해서 저 겁쟁이가..."


"아...아냐! 나 바람같은거 안피웠어. 당신밖에 없단말야!"


남자가 입을 연다.

저승사자의 심문에도

고문의 압박에도

도깨비가 머리통을 열어제낄 톱을 들고 춤을 추어도

절대 열지 않던 입을


여자의 질문에 단박에 열어버린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정말이지?"

아직, 귀면상을 하고 있는 여자가 저승사자를 쏘아본다.


"....진짜군. 이 남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않아. 헌데 왜..."

저승사자의 판결이 내려진다.

남자는 평생 외도따위 하지 않았고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지도 않다.


"뭐야. 깜짝 놀랬잖아. 금방 풀어줄게"


저승사자의 대답을 들은 여자의 얼굴이, 

귀신의 얼굴에서 평범한 여인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도깨비들을 직접 밀치고

형틀에 묶인 남자를 풀어낸다.


"자...잠깐 기다리게, 자네는 평생 살면서 외도를..."

저승사자가, 구태여 여자를 붙잡고 다음 심문을 진행한다.


"없어요. 이 남자 뿐이에요. 다른 남정네들 한 트력을 가져다준다해도 관심없어요"

저승사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대답을 전한다.


여자는 남자를 풀어내고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살펴보고

손목에 생긴 밧줄자국을 쓰다듬는다.


저승사자는 바라보지도 않는다.


"지...진실이군. 저승은 저쪽이라네. 자네들이 타고갈 차량은..."


"괜찮아요. 필요없어요"

여자는 남자의 팔짱을 끼고, 

저승의 방향을 향해 남자와 걸어나간다.


"하지만 규칙이..."


"괜찮으니까, 좀 내버려두지 않을래요?

 오랜만에 남편이랑 걸으면서 데이트좀 하려는데요"


여자가 그제서야 저승사자를 쏘아본다.

도깨비들도, 저승사자도, 여자의 패기에 짓눌려 움츠려든다.


"문을, 열어드려라."

저승사자가 도깨비들에게 명령한다.

도깨비들이 저승의 문을 열고, 

남자와 여자가 가는 길을 비추어준다.


"그럼, 오랜만에 걸으면서 데이트라도 해볼까?"

여자가 남편을 바라보며 웃는다.


"저 스포츠카 좋아보이는데. 괜찮겠어?"

남자가, 자신들을 위해 준비된 고급 스포츠카를 가리킨다.


"됐어. 젊을 때 생각나서 좋잖아.

 당신이랑 이렇게, 한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곤 했는데.

 그땐 기운도 좋았어 정말"


"무릎은 안아파?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지금은 하나도 안아파"


두 남녀가. 저 멀리 보이지 않는 저승을 향해

오랜만의 도보 데이트를 즐긴다.


"그래도, 약속 잘 지키고 있었네. 잘했어 잘했어"

여자가, 다른 손으로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두 남녀사이에 약속이란건 별거 아니다.

으례 어린 아이들에게 부모가 하는 그런 것들이다.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어도, 함부로 대답하지 않는다.]


남자는 저승사자보다, 도깨비보다. 거대한 톱날보다.

여자와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 더 두렵다.


두 남녀가 문턱을 지나친다.

도깨비들이 문을 닫는다.


형틀을 챙겨들고, 톱날을 정리한다.


신이기에 살아있는 것도 아니지만

생전 처음보는 부류의 두 남녀를 보며, 저승사자가 허탈해한다.


저승사자에게서 멀리 떨어진 도깨비들이, 뒷담화를 한다


"어휴 저 NTR충 새끼. 꼬시다 꼬셔"


"세상에, 부부가 바람핀거 보면서 희희낙낙거리는게 무슨 유희거리라고"


"천 년을 저러고 지랄하더만, 당분간은 잠잠하겠지?"


"지 얼굴에 똥칠을 하고도 그 지랄을 또하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