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소설에 나오는 일부 이름과 기관은 허구임을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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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린 하츠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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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무역의 중심지가 되는 에스테리아 대륙.


그 중에서도 북부 쪽에 위치한 프로스론 제국.


눈 덮인 산맥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으며 가장 추위가 큰 곳으로,

이 곳으로 오는 모험가나 무역 상인들은 며칠동안 만반의 준비를 해야할 정도로 험난한 제국이다.


"허억....허억"


새하얀 눈이 수북하게 쌓이고 앞은 분간하기가 힘들 정도로 어두운 숲 속에서 한 남자가 다급하게 뛰어 가고 있었다.


하늘은 밝은 보름달이 하나의 점처럼 비추고 있었고,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주변에 흩뿌려졌다.


앞으로 나아가고자 눈을 밟을 때면 선명한 발자국이 생겨났고, 매서운 된바람(매섭게 부는 바람)은 그의 뺨을 날카롭게 스쳐 지나갔다.


열심히 앞으로 달려나가는 그의 뒤 쪽에서 똑같이 한 무리들이 그를 쫓고 있었다.


'아오,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인거지? 여관인가? 아니면 정보국?'


'젠장, 난 빚을 진 적도 없다고!'


그는 다급하게 달려나가면서 왜 자신이 쫓기고 있는지 수많은 생각을 하였다.


"시야에 잡혔다! 저기 있다!"


뒤에서 쫓아오던 무리 중 한 명이 소리쳤다.


"이런 제길!"


시야에서 벗어나고자 이리저리 움직이던 그는 속력을 더욱 빠르게 올렸다.


'.......!'


하지만 그는 이윽고 속도를 늦춰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매섭게 눈보라가 치는 광경이 훤히 보일 정도로 텅 비어있었으며,
밑을 내려다보니 아찔한 높이의 협곡이 있었다.

협곡의 경계선을 따라 흐르는 강은 마치 자연이 진하게 그린 캔버스 같았다.


"하필 낭떠러지 쪽으로 와버렸네 하.....여기까지인가....."


마치 자신이 범죄자의 신분이라도 된 듯 그는 이내 고개를 떨구고 뒤를 돌아봤다.


이내 그는 양팔을 올려 항복하겠다는 의미를 보이고는 쫓아온 무리들을 향해 소리쳤다.


"난 누구에게도 원한을 살만한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보낸거지?"


그러자 무리들 뒤편에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보냈사옵니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 누가 들어도 마음이 맑아지는 듯한 깨끗한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잠시 후, 무리 뒤에서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정말 오랜만입니다. 피렌님."


새하얀 눈처럼 하얗고 기다란 머리카락,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인상을 주는 이목구비.


.....그리고 맑은 호수색의 청명한 눈동자.


"....셀린? 셀린 맞지?"


"네, 본좌. 셀린 하츠이옵니다."


수줍어하듯이 볼의 홍조를 띄우며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은 분명, 내가 알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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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 전 -


"후우, 후우.... 조금만 더 가면 산 정상이다!"


나는 살짝 격양된 숨을 내쉬며 호기롭게 산을 올라가고 있었다.


가을 계절이라 낙엽이 조금씩 떨어지며 감성적인 풍경을 비추고 있었지만,

여기는 프로스론, 겨울과 차이가 별로 없기에 어딘가로 탐험을 나기 위해서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어릴 적부터 난 무언가를 발견하고 새로운 곳을 탐험하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나는 가끔씩 이렇게 산책을 하듯이 산을 올라가고는 했다.


그렇게 산을 올라가다 동굴 같은 곳을 발견하면

그 속에 있는 자수정이나 에메랄드,

운이 좋으면 황금과 다이아몬드를 발견할 수 있기에 금전적인 수완도 제법 된다.


난 장차 위대한 탐험가이자 모험가가 될테니까!


"이번엔 오늘은 이쪽으로 가볼까?"

프로스론 제국의 산맥은 제국의 일부분을 둘러싸고 있어 굉장히 넓었기에 모험할 장소로는 딱이었다.


그렇게 올라갈수록 힘들었지만 더욱 파이팅 넘치게 언덕을 올랐다.


그런데.....


'......응?'


저쪽 멀리서 나와 비슷한 체형의 한 꼬마 여자아이가 앉은 채로 옆 쪽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이 높이를 저렇게 장비 없이 올라왔다고? 그것도 여자애가?'


나는 의아해 하며 그녀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저기..."


"히익-!"


그녀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돌아보았다.


내가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예쁘다' 였다.


모험을 더 좋아해 연애에 별로 관심이 없던 나도 그런 생각이 들 정도의 그녀는

이윽고 어딘가 아픈 듯 무릎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무릎을 자세히 보니, 넘어져서 어딘가에 부딪힌 듯 까진 상처와 살짝 혈흔이 나오고 있었다.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세균 감염이 될 거 같기에 먼저 난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말을 꺼냈다.


"일단 자기소개는 나중에 해줄테니까 그 상처부터 치료하자.

주변에 쓸만한 게 없나 보고 올테니까 여기 가만히 있어!"


그녀는 내 말을 듣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다행히 여기저기 모험하며 얻은 상식들과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 시장에 갔을 때 주워들은 지식을 사용하여 치료물품들을 찾을 수 있었다.


"자, 무릎 좀 대줄래?"


특유의 보라색을 띄는 버섯의 머리를 떼어내니, 이윽고 보라색의 오일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 오일을 그녀의 무릎에 조금씩 발라주었다.


"흐읏....!"


그녀가 아픈 듯 몸을 움츠렸다.


"조금만 참아. 이건 '퍼프릴 머쉬룸' 이라는 건데 찰과상에 효과가 있는 거야."


그리고 난 이윽고 탐험용 가방에서 반창고를 꺼내 붙여주었다.


"이 반창고는 '에멘델리아'라는 풀이 들어간 거라 흉터는 안 남을거야."


그녀는 무릎을 치료해주는 날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수줍게 말을 꺼냈다.


".....고맙습니다. 오빠."


"뭐, 이정도 쯤이야. 탐험하다보면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니까, 그나저나, 너는 나보다도 나이가 어리면서 어떻게 여기에 있는거야?"


".....여기 근처에 저희 집이 있어요....."


집이라고? 이 가파른 언덕이 있는 험한 산에, 집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혼자 살아?"


"아니요....저희 '하츠' 가문은 대대로 '화이트 드래곤'의 힘이 깃들어있는 가문이라.....숲 속에서 조용히 지내야 해서요...."


예? 뭐라고요?


화이트 드래곤이요?


분명....대륙으로 갈라지기 전 판게아의 시절 때,

최고의 강함으로 꼽혔던 생물 중 하나였다고 알고 있는데.........


"그럼.....여기서 계속 살고 있는거야?"


"네....."


"와, 여기 산 속에 있으면 안 추워?"


"저는.....딱히 추위를 느껴본 적이...."


와, 정말 부럽네.


"근데....오빠는 왜 여기 있는거에요? 최근에 여기 지나다니는 동물조차도 없었는데...."


"아 그거, 하하....여기저기 모험하다보니 여기로 와버렸어."


"모험.....? 그럼 용병인가요?"


"아니, 난 그저 진짜 순수한 탐험을 즐기고픈 모험가가 꿈일 뿐이야."


주변인들은 굳이 고생을 사서 한다며 뭐라 했지만....


"아무튼, 자기소개가 늦었지만, 난 '피렌 레스틸' 이라고 해. 너는?"


"저....저는 셀린....'셀린 하츠'라고 해요.


와 얼굴도 예쁜데, 이름도 귀엽네.


그렇게 숨도 돌릴 겸 그녀 옆에 나란히 앉아서 내가 탐험해온 여러 이야기들을 해주다보니,

어느 새 해가 저물고는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슬슬 가방을 챙겨 내려갈 준비를 했다.


"산 속 일수록 빨리 어두워져서, 너도 집에 빨리 가."


"나중에 또 여기로 오시는 건가요?"


"으음.... 글쎄, 나중에 내가 유명한 모험가가 되면 꼭 올게!"


그 말이 산을 내려오며 그녀에게 말한 마지막 말이었다.


내려가는 피렌을 보며 어린 소녀는 생각했다.


'때가 된다면 제 쪽에서.....꼭 찾으러 갈게요.'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불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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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내가 머물었던 마을에 산사태가 일어나 어쩔 수 없이 다른 대륙으로 떠나게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름다운 미모와 특유의 색을 가진 머리카락과 눈동자이기에,


단번에 그녀가 누구인지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아직 저를 기억해주시는 군요. 소녀, 정말 기쁩니다."


".....여러 해가 지났지만 그때와 달라진 게 없네."


그녀 혼자 몇 걸음 앞으로 오더니 어느 새 조금 더 간다면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는 주변에 두꺼운 가죽 털옷을 입은 기사들과는 달리 주위의 추위를 전혀 느끼지 않는 듯,

똑바로 그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피렌은 본인을 지긋이 바라보는 그녀에게 궁금증을 풀어냈다.


"뒤의 기사들은 사용인들 같아보이고.... 그래서 나를 추적한 건, 셀린 너야?"


"네, 이젠 하츠 가문의 당주인 제가 당신을 만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다른 대륙에 떠돌이처럼 다니는 나를 어떻게 추적한거지?"


"후훗, 사랑을 바라보는 소녀가 못할 건 없답니다."


"보다시피 난 떠돌이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


"괜찮아요. 당신이 존재하면 그걸로 끝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웃음을 지어보인 그녀가 갑자기 왼손 검지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을 갖다대었다.


"......그게 무슨....."


이윽고 그녀의 오른쪽 눈이 황금빛으로 바뀌더니,

먹이를 발견한 맹수의 눈빛처럼 날카롭게 바뀌었다.


피렌은 이내 휘청거리더니, 그대로 그녀의 품에 넘어지듯 안겼다.


"으읏.....하아..... 역시 오빠의 온기는 정말 따뜻하네요."


그녀는 그를 꼬옥 껴안고는 그의 체온을 만끽했다.


"누구도 만나지 못해 외로웠던 저에게 먼저 다가온 사람.... 저를 치료해줄 때의 그 상냥함....."


"걱정마시길. 본좌가 누구보다도 따뜻하게. 저에게 체온을 나눠주신 만큼, 자도 나눠드리겠사옵니다♥"


그녀는 이내 뒤에 온 용병에게 말했다.


"상처 하나 없이 고이 모셔서 데려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를 넘겨받은 사용인들 중 한명이 그녀에게 물었다.


"근데 그를 '권능'을 사용하실만큼 가치가 있......"


셀린은 그 말을 듣자마자 발걸음을 멈추고는 들어본 적 없는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그는."


주변 공기가 얼어붙을 느낌이 들 정도로 셀린은 그에게 말했다.


"저를 녹여줄 수 있는 유일한 '낭군님'이십니다. 말조심하시길."


"......말실수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이윽고 다시 미소를 지으며 피렌을 바라보았다.


마치 5년 전, 무언가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의 한 소녀의 눈빛과 똑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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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번째 소설.

역시 얀데레는 순애가 답.

오늘 사료는 비빔밥 입니다.

오타 지적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