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yandere/9277436

2편  https://arca.live/b/yandere/9278967

3편 https://arca.live/b/yandere/9300019








아서 레이튼. 영국 출생,38세.  독일군에게 가족을 잃고 레지스탕스로 전향,후열 보급로 기습 등 다양한 방해.


폴 매이튼. 미국 출생, 56세. 평범한 직장인이었으나 연합군에 동참. 다수의 게릴라전 참전.

루크 팀버트. 21세. 영국 대학생. 대학생의 신분을 이용한 다양한 정보 공작. 나치 사상에 심취한 척 연기를 하며 레지사탕스의 정보책 역할을 수행.




내가 제출한 서류에는 그런 정보밖에 적혀있지 않았다.
이들이 조국에 어떠한 해를 끼쳤고 또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그러나 나는 결코 그들을 만난 적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한데 엉겨 늘어붙은 그들의 시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강한 화염때문에 얼굴을 포함한 신체 일부가 타 있었지만 남은 일부라도 그들을 식별하기에는 충분했다.


계속해서 둘러보던 중 나에겐 한 가지 생각만이 점점 더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그만두리라. 이제와서 무슨 말이냐고,더러운 위선자의 변명이라 해도 좋다.


이런 건....미친 짓이다.


내가 아무 생각없이 써왔던 서류의 이들은 이렇게 죽어나갔던가.




이 마을에 대규모의 병력을 집중시켰다고 한 장군에게 전해들었었다.

소규모의 병력을 조금씩 보내는 것보다 한 번에 싹 쓸어버리는 것이 낫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현명한 전략이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개소리다. 웃기지 마라. 전부 탁상공론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 떠드는 머저리. 병신.



입에 발린 말을 하는 이들을 혐오했었다. 스스로 유능하다 믿는 이들을 혐오했었다.
전쟁의 광기에 휩쓸린 이들을 무시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나보다는 정직한 이들이었다.


어쩌면 스스로 눈을 돌려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형 집행이 내려질 때 갈 수 있었으나 가지 않았다.

군대의 출병식이 있을 때 참석하지 않았다.


급한 전보가 들어와도 먼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스스로는 나라를 위한 일이야,금방 안정을 찾을거야 라면서 되도 않는 변명으로 나를 속이고 기만하고 면죄부를 만들고 있었다.





"하하하....."



실소가 흘러나왔다. 겨우 나 같은 것이 보낸 종이 한 장 때문에,확실하지도 않은 그 서류때문에 이들은 죽어야만 했던 건가.



죽고 싶었다. 정말이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머리가 핑칭 도는 것만 같았다.



그 때 나는 거기서 망가졌어야 했다. 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조삼스레 죽은 군인의 시체에서 권총을 꺼내 관자놀이에 갖다댔다.


철컥-



무기질적인 소리가 내 귓가에 울렸다.



 불길은 여전히 타닥타닥 타오르고 주변은 뜨거웠지만
내 얼굴에 닿아있는 권총의 총구만큼은 무서울 정도로 서늘했다.




그렇게 몇 초간 가만히 있었다.


쏴야 한다,속죄해야 한다.



그런 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스스로는 여전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덜덜 떨리는 손을 반대쪽 손으로 꽉 잡아 겨우 진정시켰다.




"후우....."



마지막 순간의 끝에서야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눈을 감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그보다 먼저 내 등 뒤에서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뒷통수에 딱딱한 느낌이 났다.




"움직이지 마."




등 뒤에서 들려온 영어.



적군이다.



그리고 목소리의 느낌으로 보건대 내게 총을 겨눈 건.....젊은 여성??




나는 상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고 거기에는 한 소녀가 내게 소총을 겨눈 채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사정을 알아봐야겠어."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스스로는 끊지 못하는 목숨. 나에 의해 누군가를 잃은 이라면 나를 죽이기에 합당한 사람이리라.




나는 영어로 대답했다.



"죽여줘."


"뭐?"




"미친 짓이지. 고발하거나...죽이거나....

어차피 이런 일인 줄 알고 있었을텐데 그냥 눈을 돌리고.....너무 늦게 알았는지도 몰라. 그러니까 이기적인 부탁이지만....나를 죽여줘."



소녀는 잠시 내 말을 듣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한다면."




나는 권총을 멀리 내던졌다. 이제 내게는 필요없는 물건이니.



뒷통수의 총구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이내 소녀가 숨을 가다듬는 소리가 나고 방아쇠가 당겨졌다-




























1초가 지났다.





















2초가 지났다.












3초가 지났다.



4초가 지났다.


5초가 지나갈 즈음,나는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철커덕!철컥!




소녀는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어라? 이상하네? 왜,왜 안되는 거지? 어제 판 아저씨랑 할 때는 분명히 잘 맞았는데."




살짝 뒤를 보니 정말로 왜 이 총이 쏴지지 않는 거지,라는 얼빵한 표정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잠깐 실례."



"으,응."




나는 부드럽게 몸을 돌려 총을 건네받았다.

 나를 죽일 총을 손질하는 나도 나였지만 건네달라고 건네주는 그녀도 정상은 아니었다.



"총신이 안 쪽에서 휘었어. 화약이 다 나갔다. 이제 그냥 고물이야. 용케 이런 총을 들고 다닐 생각을 하네."




"시,신경쓸 바 아니잖아! 어어,그럼 어쩌지. 어어...."



처음의 냉철한 모습은 어디 가고, 허둥지둥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나는 긴장이 탁 풀리고 말았다.

결연한 의지도 어느샌가 자취를 감추고 겁쟁이같은 마음이 슬금슬금 기어어르고 있었다.





"너,레지스탕스?"



"곧 죽을 사람한테 그런 거 알려줘봤자 소용없잖아."



"아까 판 아저씨라매. 레지스탕스중에 제일 큰 무리 지도자이야기 아닌가? 판 단."



"너 아저씨를 알아?  아차!"



"......"



"바,방금 건 못 들은 걸로 해!"




"......투항할게."



"어?"




나는 두 손을 어깨 위로 들었다.




"투항한다고. 뭐랄까 그냥 다 어찌되든 상관없는 느낌이야. 안정이니 뭐니,바보같다.

그리고 나는 이래보여도 꽤나 쓸 만한 정보가 많거든. 죽이면 손해일걸?"



"그,그래?  그렇지만 독일군한테 우리 기지 위치를 함부로 알려줄 수는...."


"나는 혼자잖아? 설마 너희 레지스탕스는 도망치는 포로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할 정도로 허술한가?"




"아,아니거든! 좋아,일단 너를 데려가고 그 이후의 처우는 나중에 생각하지. 자,일어서!"





나는 엉거주춤하게 일어섰다.




"뭐해? 안 일어나고."




"아니,포로인데 밧줄 같은 거나 수갑은 안 채우나 해서."




"우린 그런 비인도적인 처사 안 해!"




"없는 게 아니라?"




"!!!!"




놀란 듯한 표정을 하는 걸 보니 아마도 맞았나 보다.







이것이 나,빌헬름 얀부스트라우스와 현재 내 옆에서 자고 있는 엘리자벳 프랑크의 첫 만남이었다.
















엘리 어째 너무 띨빵해졌는데 괜찮겠지.



레지스탕스 기지편 몇 편 쓰고 계속 진도 나갈겨. 봐주는 챈럼들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