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중고차 보려고 왔는데..푸훕”


들어오는 손님 한 명이, 남자를 보자 마자 웃음을 참지 못한다.


“어서오세요~. 어떤 차량을 찾으시나요?”


남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손님을 맞이한다.


한 겨울에도 발목이 훤히 들어난 9부 바지

포기할 수 없는 페이크 삭스와

어울리지 않는 광택 가죽 구두

겨드랑이와 가슴이 꽉 조여보이는 화려한 무늬의 상의

깊게 파인 목에 걸린 금목걸이

큼지막한 45mm 시계를 차고

긴팔 상의에도 가려지지 않는 문신이 군데군데 보인다.


전형적인 고정관념 그대로의 중고차 매매업자.

보이지 않아도 가방은 클러치백에

차키는 일부러 책상 위에 올려둘 것 같다.


“어…저..푸흡..큽.. 아반떼 중고차 구매하려고 하는데요”

손님이 겨우 웃음을 참는다.


전날 범죄도시 영화를 보고 온 탓일까

아니면 이 중고차매매단지에서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을 많이 보았던 탓일까


양아치 문신남의 표준을 보니 

무섭기보단 웃음이 난다.


손님을 응대하는 남자는 화 한번 내지 않는다.


“아반떼..아반떼라…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남자는 손님을 자리에 앉히고

태블릿과 여러 파일철을 챙긴다.


손님에게 내어드릴 커피 한잔까지 마저 챙긴 뒤에

맞은 편에 앉아 상담을 시작한다.


“먼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원하시는 사양이나 주행거리가 있으실까요?”


“음… 주행거리는 5만km 안쪽이면 좋겠어요.

 열선시트랑 주행보조옵션이 있는걸로

 단순수리 정도 까지는 괜찮아요.”


“많이 알아보시고 오셨네요.

 어디보자… 저희가 확인 한 비슷한 사양의 차량이…

 여기 있네요.”


남자는 파일철을 뒤져 차량의 사진과 성능기록부를 보여준다.

 

“이 차는 2018년 식이고, 말씀하신 옵션에 순정 네비게이션도 모두 장착되어 있습니다.

 이 차는 색깔이 좀 튀는데, 주행거리가 짧아서 추천드려요”


“가격은 어떻게 되나요?”


“밑에 적혀있습니다. 첫 번째 보신건 1,680만원, 두 번째건 1,500만원…”


“...오….”


드디어 손님이 감탄을 한다.

이 중고차 매매업자. 생긴 것과 다르게 손님 응대가 깔끔하다.


지금까지 봐왔던 유튜브 영상과

방금까지 둘러봤던 다른 ..그래 차팔이라고 말할 정도로 

어이없는 쓰레기들과 확연히 비교된다.


손님의 호주머니 사정을 조사하려 들지도 않고

무턱대고 매물이 없다고 잡아떼지도 않고

성능기록부를 숨기거나 보험이력을 보여주지 않으려 하지도 않고

가격을 빙빙 돌리며 숨기지도 않는다.


거들먹거리며 자기자랑을 하지도 않고

딱 손님이 원하는 사안들만

자신이 준비한 대로 착착착 보여준다.


단 5분만에 인터넷에서 보는 것 마냥 자신의 원하는 매물들을 비교한다.

다른 차팔이들은 여기까지 오려면 족히 30분은 걸린다.

그리고, 기껏 받은 가격은 터무니 없이 비싸다.


차 값이 싼거 같으면 중개수수료네 뭐네 붙는 잡비용이 많고

잔 비용이 없으면 차 값이 비싸다.


헌데 이 가게는 유리 책상 아래쪽으로

중개수수료, 대납비용, 취등록세가 명확히 명시되어있다.


“살펴보고 싶은 차량이 있으세요?”


“바로 볼 수 있어요?”


“그럼요. 주변 주차장에서 가져오는데 5분 정도면 됩니다.”


이제 가게에 들어온지 7분 지났다.


7분 만에 원하는 옵션이 모두 갖춰진 천만원 중반대

아반떼 중고차 실 차량을 보여준다는 업자가 나왔다.


뭐지?


바짝 긴장하고 중고차 공부를 많이한 손님은 의문이 든다.


이래놓고 매물이 없다며 소나타를 구매 하라는게 아닐까


이왕 사는거 보태보태 하다가 자신의 눈 앞에 아우디 A5를

그것도 접합부위를 교묘히 가린 사고차량을 가져오는게 아닐까 의심을 한다.


“어… 이거 보여주세요”


손님은 남자가 맨 처음에 보여준 1,680만원 아반떼를 가리킨다.


“네. 성능기록부랑 보험이력 보시면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남자는 잠시 매장을 나서고

3분만에 다시 매장에 들어온다.


“차량 앞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보실까요?”


“어…네”


손님은 아직도 사실을 믿을 수 없다.

사무실을 나서자 사진과 똑같은 차량이 자신의 눈 앞에 서있다.


남자는 고객을 차량 안쪽이 아닌. 앞으로 데려와 본넷부터 열어제낀다.


“엔진오일은 제가 매입 하자마자 교체했으니 괜찮아요.

 브레이크유도 수분함량 적정선 이내라 신경쓰실 필요 없고

 다른 소모품들도 아직 교체주기는 안온 차량이에요

 벨트류도 장력 짱짱하고, 브레이크 패드도 많이 남았구요”


“어…여기 보험이력이 있는데…”


“전 차주분이 주차하면서 뒤쪽 범퍼하고 사이드미러를 긁었나봐요.

 뒷 범퍼 교체하고, 사이드미러도 모듈 째로 교체했습니다.”


“그.. 제가 말씀드린 옵션은…”


“운전석에 앉아보실게요~”


그제서야 남자는 손님을 차량 운전석에 앉힌다.


“차량 옵션은 아반떼 2018년식 모던 등급입니다.

 따로 튜닝한 것 없는 순정이고

 어디보자.. 이쪽에 보시면 차로유지보조. 크루즈 컨트롤, 후방카메라 모두 있구요.

 여기 열선시트 버튼. 통풍시트 버튼이 있습니다.”


차량 내부는 방금 세차한 것 처럼 깔끔하다.


남자는 차량의 제원과 부가옵션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손님은 안전벨트를 모두 잡아당겨보고

바닥 시트를 들춰보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당겨본다.


혹시나 관리가 안되서 미흡한 부분은 없는지

침수차량이거나 말하지 않은 사고부위가 있는지

유튜브에서 본 대로 하나씩 살펴본다.


남자는 손님이 이것저것 들춰보고 당겨보고, 빼보고, 눌러보는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잠깐이나마 주차장을 돌아보고, 후진기어도 넣어본다.


“어…진짜로 이게 1,680만원이에요?”


“네. 소정의 수수료는 별도이지만, 차량가액은 1,680만원 입니다.”


믿기지 않는다.

남자의 설명도, 차량의 계기판도, 자신이 살펴본 그 모든 것도

너무나 깔끔하다.


꼴랑 주행거리 39,555km짜리 아반떼 중간옵션이 1,680만원이다.

인터넷 허위매물보다 싸다.


“저…. 이 차는 뭐 부족한게 있나요?”

도저히 이 차량의 모자란 부분을 찾을 수 없어서

오히려 이 물건을 파는 사람에게 단점을 묻는다.


“4만km 탄 차량이라 타이어가 좀 닳았어요.

 아직 교체할 정도는 아니지만, 주기적으로 확인하셔야 해요


 그리고 하이패스 단말기 미부착 차량이에요

 단말기를 하나 사시고, 카드는 편의점에서 자동충전식으로 구매하시면 됩니다.”


별 것 아니지만 차량의 미흡한 점을 남자가 열거한다.


지금까지 가게에 들어온지 24분이 지났다.

방금 전에 들렀던 다른 가게는

30분 만에 말 한것과 다른 차량을 가져오곤, 

그나마도 안전벨트를 당겨보려 하니 협박을 했다.



단 30분도 안되서, 자신이 원하는 차종, 옵션

주행거리, 거기다 가격까지 저렴한

마음에 쏙 드는 중고차를 찾아냈다.


손님이 채 30분이 되기 전에 남자에게 말한다.


“이 차, 제가 살게요”


“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이쪽으로 오실게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많이 파세요~~~”


2018년 아반떼가 매매단지 밖으로 향한다.


손님이 계약서를 작성하는동안, 남자가 위임장과 각종 서류를 챙겨

차량명의를 이전한다.


다이렉트 보험으로 저렴하게 자동차 보험을 가입하고

자신이 소유한 간이 정비소에서 차량 하부도 보여주었다.


기다리는 시간, 이동시간, 작성하는 시간 다 해도

1시간도 안되는 사이에 구매자가 차량 구매를 마쳤다.


오히려 팔아줘서 고맙다며 인사를 건넨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남자는 팔을 들어 손님에게 손을 흔든다.

긴팔 셔츠 사이로 문신이 보이는게 흠이지만

그런 건 상관하지 않을 정도로 남자의 일처리는 완벽하다.


저렇게 만족하여 돌아가는 손님은 

그 자체로 걸어다니는 광고판이 된다.


중고차든 새 차든

챠랑을 구매한 사람들은 주변에 자랑하기 바쁘다.

필시, 저 손님은 다른 손님을 끌어당긴다.



남자가 장사하는 방식은 

여타 중고차 매매업자들과 다르다.


정직? 신뢰? 

그런 수준의 이야기를 논하며 손님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자영업의 기본으로 돌아가서

적정 마진률을 정하고

손님이 필요로 하는 바를 생각해서 준비한다.


손님이나 판매업자나 가격만큼 중요한 것이 시간이다.

최대한 적은 시간 내로, 여러 차량을 비교하고 여차하면 시승도 해야한다.


허위매물로 미끼상품을 걸어놓을 시간에

자신이 가진 차량을 정리해서 파일철에 추려놓는다.


바로 옆에 정비소를 꾸리고 간단한 경정비는 자신이 직접 한다.

차량을 매입하면 엔진오일부터 교체한다.

교체주기가 긴 브레이크 오일을 점검하고

브레이크 패드와 타이어의 마모도 점검한다.

10만 km가 넘어가는 차량이면 미션오일도 교체한다.

망가진 등화류가 없는지 체크하고

벨트의 장력을 확인한다.


타이어를 제외한다면 이런 소모품들의 원가는

다 합해도 십만원 조금 넘을 뿐이다.

차량 가격에 얹어도 티가 안난다.


자동차 정비료의 반은 인건비다.

자신이 직접 배워서 교체할 수 있다면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


명의이전에 필요한 것도 마찬가지다.

대행업체에 넘기지 않고 자신이 직접 서류를 챙기고 작성한다.


할 줄 안다면 소정이나마 대행수수료를 자신이 챙길 수 있다.


원가를 아끼고, 구매자에게 구미가 당길 상품을 만들고

사업구상을 철저히 준비해서 적절한 마진률을 설정하는 것.


옆 상가에서 접합된 수입 외제차를 팔아넘기고 소고기 회식을 하는동안

자신은 매입한 차량을 닦고 조이고 기름칠한다.


양주를 까고 소고기를 굽던 옆단지 사장이

폐업을 결정하고 쓸쓸히 떠나가는 동안

남자가 망하지 않고 사업을 영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객이 싸다 어쩌다 해도 

1시간도 안되서 올린 순이익이 수십만원이다.

차량 정비시간을 고려해도 최저임금과 비교한다면 훨씬 높다.


주말엔 차량을 매입하러 다니고, 틈틈히 광고도 올려야한다.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그래. 이런 것도 차가운 자본주의라 할 수 있을까?

열심히 일한 만큼 돈이 벌린다.

경영학도 전공하지 않은 유튜버가 말하는 것 처럼

세상은 그렇게 각박하지만 않다.


“하. 힘들다. 별일 없었어?”


그리고,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여자가

남자의 매장으로 들어온다.


“갑자기 왠일이야? 무슨 일 있어?”


들어오는 여자를 남자가 맞이한다.


손님용 좌석을 잡아당겨 앉히고

디카페인 커피를 한 잔 준비한다.


“그냥, 외근이야. 이 주변에 일이 좀 있어서”


여자는 직업 특성상 외근도 잦다.

어쩔 땐 눈 코 뜰새없이 바쁘다가도

어쩔 땐 일이 없어 영업을 다녀야 한다.


“힘들겠네.”


“말도 마, 방금까지 고객들이 뭐라는지 알아?

말도 안되는 허풍에 거짓말에… 나 참.”


여자는 손사래를 치며 하소연을 한다.

남자가 건네준 디카페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저녁은? 같이 먹을까?”


“좋지. 먹고나면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봐야 겠지만…하아….가기 싫다.”


“하하… 먹고 사무실까지 데려다줄게”


“오늘은 일 더 없어?”


“매입의뢰 들어온 차도 없고.

 차량정비도 더 할거 없고.

 조금 일찍 닫는다고 해서 

 한 대 더 팔수 있는것도 아니잖아.”


“흐아아… 그냥 당신도 나도 일 다 때려칠까?”

여자가 손님용 테이블에 머리를 박는다.


언뜻 보면 이 한 쌍은 어울린다고 하기 힘들다.


여자의 정장은 한눈에 보아도 고급 원단이다.

잘 다려진 셔츠를 받쳐 입고

굽이 높지 않은 구두도 남자의 것 만큼 반짝반짝 닦아놓는다.


알람기능이 달린 스마트 워치를 손목에 차고.

무거워 보이는 커다란 서류가방을 들고 돌아다닌다.


높은 연봉을 받을 것 같은 직장인

색조화장도 하지 않아서

총천연색으로 꾸며진 남자와 더욱 대비된다.


여자는 무채색에 가까운 색들로 감싸여있다.

검은색, 흰색, 회색, 짙은 갈색…


한가지 아이러니한 건

차분한 남자와 달리

여자는 짜증에 울상에 앙탈이 한가득이다.


영국 첩보영화에 나오는 대사처럼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옷이 예의범절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다 거짓말같다.


어쩌다가 이렇게 정 반대인 사람들이 만나고 있는지도 참 신기할 따름이다.


“예전에 힘들게 공부할 땐 언제고

 이제와서 때려치겠다 그래.


 오늘 저녁에, 저번에 먹고싶다던 파스타집으로 가자. 술은… 한 잔만 할까?”


“정말?”


남자는 팻말을 영업종료로 돌려놓고

꽉 끼는 숏패딩을 껴입는다.


책상위에 올려진 스마트키를 꺼내든다.

엔진음이 우렁찬 하얀색 국산 중형 세단을 준비시킨다.

트렁크 뒤편엔 범퍼보다 커다란 사제 리어 윙이 장착되어 있다.

반짝거리는 커다란 사제 휠과, 차량의 등급에 어울리지 않는 미쉐린 소프트 타이어

안쪽으로 보이는 빨간색 브레이크 캘리퍼.

금속제 틴팅과 각종 스티커까지

남자처럼 전형적인 양카의 표본이다.


여자의 짐을 뒷좌석에 내려놓고

여자를 조수석에 앉히고

찬찬히 차를 몰아 여자가 좋아하는 파스타집으로 향한다.


남자의 모습이 그러하듯

규정속도도 넘지 않고

칼치기도 하지 않고

방향지시등도 제깍제깍 켠다.

과속방지턱도, 조수석에 앉아있는 여자가 놀래지 않도록

살며시 넘는다.


이외로, 머플러나 등화류 등 불법 튜닝은 단 한개도 들어가 있지 않다.


—---


“오늘은 어떤 중고차가 우리를 기다릴까요?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바깥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2인조가 영상을 촬영하느라 바쁘다.

남자도 시장동향조사차 찾아본 영상에서 언뜻언뜻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다.


허위매물, 가짜매물

겉만 멀쩡하고 속은 완전히 망가진 침수차

반파된 두 차의 앞 뒤를 붙여 살려낸 접합차

관리가 전혀 안된 양카

하다못해 흡연차까지


중고차 매매상들을 대상으로 

한 방 먹이는 것을 소재로 삼는 유튜버들이다.


저런 시작 영상은 안보이는데서 찍던가 하지…

남자는 인상을 살며시 찌푸린다.


알만한 중고차 매매상들은 저런 손님을 받지 않는다.

차량을 살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껏 꺼내온 차량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꺼내보고 몰아보고선

불만사항을 한가득 이야기하고 

정작 차량은 구매하지도 않고서 돌아간다.


그리고 2주 쯤 있으면 매장 후기가 벌집이 되어있다.

 

애초에 정상적인 매물을 가져오면 되는 것 아니냐?

라는 주장도 있고, 실제로 그게 합당한 주장일 정도로

이 부천 중고차매매단지는 양아치들의 온상이다.


하지만, 멀쩡한 매물을 꺼내와도 시간만 버리는건 마찬가지다.

까딱하면, 하루 종일 차량을 사지도 않을 저 손님에게 매달려 있어야 할 지 모른다.

구매를 고려하는 손님과

매장을 공격하러 오는 사람은 엄연히 다른 존재다.

그리고, 이번 촬영대상이 하필 남자의 매장이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2인조가, 카메라를 가방에 숨기고 매장안으로 들어온다.


“어서오세요. 어떻게 오셨을까요?”


남자는 최대한 정중하게 손님을 맞이한다.


“와. 사장님 패션이 정말 죽이시네요. 어디 소속이세요?”


2인조 중 한 명이 몹쓸 농담을 건넨다.

물론, 그런 농담이 건네져도 할 말이 없을정도로 남자의 패션과 문신이 튀긴 하지만

그걸 면전에 대고 뱉어낼 이야기는 아니다.


“여기 매장 소속..이지요 하하”


남자는 농담을 적당한 농담으로 받아준다.

어깃장에 어깃장을 부리며 화를 내봤자

화살은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어떤 형식으로 이런 영상이 편집되고 흘러가는지

많이도 보아왔다.


“다른게 아니고, 오늘 여기 같이온 그.. 여자친구 차를 보려고 하거든요”


2인조 중 한명은, 다른 한명의 차를 사러왔다며 상황을 설정한다.

젊은 여성이 사려고 하는 중고차.

같이 알아봐주러 온건지 남자친구가 나서는 형태

흔하다면 흔할 수 있고

고정관념에 업자들이 호구잡고 털어먹는 형태이기도 하다.


 “아.  원하시는 사양이나 주행거리가 있으실까요?””


남자는 자신 나름의 규칙에 따라

손님의 응대를 시작한다.


원하는 차량을 확인하고

자신이 가진 매물을 나열하고

그 중에서 손님이 원하는 모델을 찾아간다.


“카니발, 3만키로요”

2인조 중 여자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짧게 대답한다.


까다로운 모델이다.

가솔린이면 가솔린의 장점이 있고

디젤이면 디젤의 장점이 있다.


7인승이면 공간을 넓찍하게 쓸 수 있고

9인승이면 버스전용차선과 보험등 각종 혜택을 볼 수있다.

등급에 따라서 안전사양과 가격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고

3년 전에 풀 체인지도 있어서 세간의 인식이 천차만별이다.


어르신들은 스타렉스마냥 업자들이 사람싣고 다니는 차로

아이가 있는 부모세대들은 어쩔수 없는 단 하나의 선택지이자 유일한 구원자

젊은이들에게 양카의 종착점.


이 모든 사양을 제 입맛대로 골라서 타는게 기아자동차의 기함 카니발이다.

비슷한 사이즈의 전기차가 나오고

가격도 크게 비싼 축은 아니라 기함 보단 가성비 차량 중 하나이지만

괜히 25년간 장수하는 모델이 아니다.


“원하시는 옵션이 있으실까요?”


이제부터 수많은 문답의 시작이다.

디젤이냐 휘발유냐 부터

차량의 등급이나 옵션을 하나하나씩 체크한다.


“음… 잘 모르겠어요”


환장한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도 안온다.


“크게 디젤모델과 휘발유 모델이 있어요.

 7인승이냐 9인승이냐 차이도 있구요.


 엔진 규격과 인승부터 고르시면 됩니다.”


남자는 여성에게 하나하나 결정을 구한다.


“어…가솔린이 좋을 것 같아요.

 9인승까진 필요 없어요.”


“주행보조옵션이나 순정네비게이션이 필요하실까요?”


“네. 있으면 좋죠”


차분히 선택지를 좁혀나간다.


남자는 파일철에서 한 대의 카니발 모델을 꺼낸다.


“사양에 맞는 모델은 저희가 이거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2020년식, 3만키로 좀 넘었고, 무사고 차량이에요

순정 네비게이션에, 주행보조옵션에, 휠도 인치업이 되어있어요.

색깔이 대신 잘 나가는 화이트나 블랙이 아니라 실버네요”



“가격이 얼마죠?”


2인조 남자가 가격을 먼저 확인한다.


“밑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어디보자.. 3,860만원 입니다.”


“아…네…”


2인조는 계획이 틀어진다.

3~4천만원의 중고차를 구매하려는 사람은 호구중에 호구다.

특히 어정쩡한 카니발, 그랜저, 소나타는 더욱 그러하다.


국내 차량으론

조금만 더 보태면 훨씬 고급형인 펠리세이드를 살 수 있고

크기가 작아도 제네시스를 노릴 수 있다.


해외로 제조사를 돌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카니발 보다 작아도 내노라하는 SUV들이 즐비하다.


랜드로버 디펜더

지프 레니게이드 등등 소형~준중형 SUV들이

카니발을 살 돈이면 구매해봄직한 중고차가 나온다.


보태보태병을 더 보태면

BMW 같은 독일산 SUV도 살 수 있고

튼튼하기로 유명한 볼보도 있다.

렉서스 같은 고급 일본차도 노려볼만 하다.


세단으로 방향성을 돌려도

아우디, 폭스바겐, 폴스타, 테슬라가 있고

감가상각률이 높은 슈퍼카들도 수비범위 내로 어거지로 넣어봄직 하다.


다른 업자들 같으면


‘다른 모델은 관심 없으세요?’


하면서 

관리가 하나도 안되고

여기저기 가져다 박아서 비정품으로 범퍼를 교체하고

도색과 세차만 그럴듯하게 해놓은

그들 기준의 ‘단순사고’ 차량을 가져올 법 한데.


이 남자는 몇가지 대답에 딱 부합하는 차량만을 가져온다.

애초에 손님이 보이는 곳에 가격을 표시한 정찰제가 흔치 않다.


“한 번, 실물을 보실까요?”


그리고 남자가 2인조에게 권유를 한다.


“네..네! 한번 보죠. 까짓거”


2인조는 이대로 콘텐츠를 망가뜨릴 수 없다.

2인조 남성은 호기롭게 차량을 보여달라 말한다.


남자는 주차된 번호를 확인하고

차키를 챙겨서, 7분만에 2인조를 부른다.


“어…진짜….있네요”


믿을 수 없다.

남자가 잠시 차를 가지러 간 동안

사진 뒤에 있던 성능기록부와 보험이력도 꼼꼼히 확인했다.


지금 이 차량을 당장 자신이 구매해도,

이빨 좀 깐다면 2백만원은 얹어서 다른 사람에게 팔 자신이 있다.


이런건 열에 열은 미끼매물 이어야 한다.

적당한 핑계를 대며 이 차는 팔지 않아야 하고

손님이 끝까지 요구하면 협박을 하거나 도망가야하는 그런 상황이여야한다.


그걸 찍어서 혼줄을 내주는게 자신들의 본업이다.

애초에 그런 일을 해왔던게 2인조들이다.


몇 년 전 있던 태풍에 당한 침수차를 파는게 아니라면

이 가격에 내놓을 머저리 차팔이가 있을리 없다.


“차량 한 번 살펴보실게요”

남자가 2인조를 차량 앞으로 안내한다.


이제부턴 이판사판이다.

본넷을 열고, 시트를 들춰내고, 여차하면 차량 하부도 찍어서 살펴보아야한다.


그리고 남자가, 남은 콘텐츠를 산산조각낸다.

판매업자가 직접 본넷을 열어서, 모래와 기름때가 묻지 않은 깨끗한 엔진룸을 보여준다.


“엔진오일은 제가 매입하자마자 갈았어요.

 아직 브레이크유는 교체 안하셔도 되구요.

 브레이크 디스크나 타이어도 크게 마모되지 않아서 신경 안쓰셔도 되요”


“아…감사합니다.”


2인조 남성은 연신 차량을 살펴보기 바쁘다.

시트를 들춰내서 물티슈로 닦아보고

잘 닦지 않는 2열 보조석 안전벨트를 확인하고

트렁크 하부를 살펴보고

쭈그려 앉아 차량 하부를 스마트폰으로 비추어본다.


2인조 남성이 차량을 살펴보는 동안, 

남자는 어떠한 재제도 가하지 않는다.


대신 실운전자라 주장하는 2인조 여성을 운전석에 앉히고,

부가옵션을 하나씩 설명한다.


“여기가 크루즈 컨트롤 버튼이고

이제 차로유지보조 버튼입니다.


와이퍼는 앞으로 밀면 뒷유리 와이퍼가 닦이구요.

기어 노브는 스틱이 아니라 회전식이니까..


여기로 돌리면 D단, 여기로 돌리면 후진…”


“아. 이런 것도 다 있네요”


“나름 최신형 차량이니까요. 

차량이 커도 좌우측 사각지대 알람도 울리니까. 

실제로는 차폭 때문에 불편하지 않을겁니다.”


설명을 도란도란 나누고 있는데

땀에 절은 2인조 남성이 남자를 불러세운다.


“저..저기요. 하아. 이거 전에 탄 사람. 담배 피웠나요?”


마지막 동앗줄을 부여잡는다.

인천 부천 차팔이들의 카니발을 팔 때 단골멘트가 나오길 기다린다.


‘40대 직장인 여성분이 타셨는데

 담배는 피우지 않으셨고

 출퇴근 용도로 산건데, 본래의 용도와 맞지 않아 싼 가격에 내놓은 것’


이라는 단골 멘트를


에어컨 필터만 까도 걸릴 거짓말을 부디 남자가 내뱉어주길 기대한다.


“아. 담배 피우셨죠. 아직 냄새가 나나요?

 30대 남성분이 타신 차량인데

 제가 직접 에어컨 필터도 갈고, 탈취 청소도 좀 했는데. 아무래도 힘드네요


 이거, 송구스러워서 어쩌죠?”


남자는 차량의 단점을 과감없이 말한다.


시중 시세보다 저렴하다면 응당 그러한 이유가 다 있다.

흡연은 남자의 기술론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때문에 매입가를 낮게 부를 수 있었고

판매가도 그만큼 낮아진다.


“어…그…저…그게….괘..괜찮습니다. 잠시만요”


2인조 남성은 핸드폰을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한다.




“야..야. 너 지금 돈 좀 있냐? 한 3천만원만.

 대박이야, 대박매물이라고, 이거 당장 사야해.

 

 아 좀 구해봐, 너 돈 많잖아. 천오백, 천오백도 없어?”


그리고, 구석에서 소곤소곤 통화하는 소리가

아쉽게도 남자와 2인조 여성이 앉은 카니발 운전석에도 들린다.

2인조 남성이 이것저것 확인한다며 앞뒤 문짝과 트렁크까지 모두 열어놨기 때문이다.


“하아…진짜… 도움이 하나도 안되네…씨팔”


2인조 여성이 머리를 감싸고 욕지거리를 한다.


“오빠, 혹시 우리 알아요?”

그리고 다짜고짜 남자를 오빠라 부르며

자신들을 아는지 물어본다.


안다. 당연히도 안다.

유튜브좀 챙겨보는 중고차 업자라면

블랙리스트를 만드는게 당연하다.


구독자 몇 천 남짓의 별볼일 없는 놈들도

이름까지 리스트에 적어놓는다.


그래도 여기선…


“아뇨. 오늘 처음 뵙습니다만…”


남자는 점잖게 시치미를 뗀다.

부디, 볼일 다 봤으면 조용히 돌아가주면 좋겠다.

통화중인 2인조 남성이 여기저기서 돈을 긁어모아 이 차를 산다 그래도 골치가 아프다.


분명, 수수료나 대행비를 가지고도 트집잡을건 없나

뒤져보려 할 것이다.


남자가 돈을 만지는 부분이 이 쪽이기 때문에, 

차량가액처럼 시장 최저가를 유지하긴 힘들다.

남자도 바보라서 차량을 싸게 파는게 아니고

자선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다.


“오빠, 실은 우리.. 아니 나. 유튜브 하거든

 구독자 3만이면 나쁘지 않지?”


“아. 유튜브 하시는군요.”


“괜찮으면, 나랑 같이 방송해보지 않을래? 

저 남자 차좀 안다고 해서 데리고 다니는데 영 별볼일도 없고.


 오빠는 남자답고 듬직한게 맘에 드는걸?”


2인조 여성이 슬며시 남자의 손등에 손을 올린다.

자세를 낮추고 남자를 올려다보며 이야기한다.

고개를 좀만 더 숙인다면, 깊게 파인 V넥의 가슴 안쪽이 남자에게 비쳐보일지도 모른다.


“아…아뇨. 전 방송같은건…”


남자는 여자의 손을 밀어내며

거절의 의사를 표시한다.


“어머. 귀엽네.

 지금 당장 결정하라는거 아냐.

 잘 생각해보고, 다음에 또 봐.


 꼭이다?”


2인조 여성은 남자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뺏어서

자신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건다.


남자의 업무용 전화번호야 매장 안내사항에 적혀있지만

남자에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각인시킨다.


운전석에서 내려서

세월아 내월아 3,860만원을 구하기 위해 전화를 돌리는 동료를 버리고

여성은 이 중고차단지를 떠나간다.


“저…그 사장님, 죄송한데 저희가 오늘은 구매하기 힘들거…어라?

 여기 앉아있던 여자 어디갔어요?”


“방금 가시던데, 같이 가신거 아니였어요?”


남자는 남겨진 남성을 위해 다시 모르는 시늉을 한다.


“하씨. 그게. 하…..죄송합니다. 다음에 다시 올게요”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남겨진 2인조 남성은 중고차단지 밖을 향해 뛴다.

좌우로 방향을 살피다가. 여성이 간 방향과 정 반대방향으로 뜀박질을 한다.


남자는 주차장에 다시 차를 집어넣는다.


뭐, 이렇게 공치는 날도 있는 거다.

자영업자란게 다 그렇다.


—-


[으아아아아.. 때려칠거야. 안해!]


여자가 문자메세지로 투정을 부린다.


기껏 고생해서 공부를 다 해놓고 시험까지 봐놓고선

정작 힘겹게 얻은 직업을 내팽겨치려고 한다.


[많이 힘들지. 주말에 어디 멀리라도 나가볼까?]


손님을 기다리는 남자가 여자를 얼러본다.


[그건 주말이나 되야 하는 일이잖아.

 지금 힘들다고오오 지금!]


도저히 남자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남자에게 짜증을 낸다.


물론 남자에게 해결을 구하는 건 아니다.

지금 당장 힘든 사실을 남자와 공유하고

남자에게 위로받길 원하는 것이다.


[누가 귀한 아가씨를 이렇게 들들볶아! 

 누구야. 말만 해. 내가 혼줄을 내줄테니까]


남자가 평소 하지도 않은 센 척을 여자에게 해본다.


[뭐래. 하나도 재미없거든.

 통화. 할 수 있어? 목소리 듣고싶다.]


아무래도 정답인 듯 하다.

남자는 핸드폰을 들어 단축번호 1번을 누른다.


“여보세요오오오”


여자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통화를 한다.


“에구야. 파김치가 다되가겠다. 이를 어쩌니”


“진짜, 이번 일만 넘기면. 때려칠거야”


“그래그래. 이번 일만 마무리 잘 지어보자”


여자가 자신이 하는 일을 때려친다고 말한게 수십 회다.

실제론 적성에도 잘 맞고, 업계 평가도 좋다.

일이 고된건 사무직도, 현장직도, 자영업도 매한가지다.


남자가 할 일은, 힘들어 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잘 듣는것.
그만두던가 말던가, 여자가 잘 결정할 것이고

함부로 직업을 그만두는 어리석은 짓도 하지 않을 것이다.


“주말에.. 어디 멀리 가볼꺼야?”


“그래, 통일전망대라도 가볼까? 파주에서 부대찌개도 먹고”


“뭐야 아저씨 같잖아”


“왜 이래. 날씨 좋으면 피크닉 명소로 유명하다고”


주말 일정을 계획하며 잠시 여자의 기운을 북돋아준다.


“뭐, 한 번 아저씨의 감성을 믿어보겠어”


“그래. 아저씨 감성이 꼭…”



……그리고 손님인지 불청객인지

구면의 얼굴이 남자의 매장 문을 연다.


“안녕하세요~ 저 왔어요~오빠!”



“뭐야. 오빠?”

“어..어. 아냐. 저번에 왔던 손님. 내가 금방 다시 전화할게”


남자는 황급히 전화를 끊는다.


“제가 다시 보자고 했죠? 

 오늘은 꼭 확답을 들으려구요”


핸드폰을 들고 있는 여성 BJ는, 연신 미소를 지으며 남자에게 이야기한다.


한 겨울에도 노출이 심한 옷차림이다.

맨살이 드러나는 부위는 없다.

짧은 바지 밑으론 두꺼운 스타킹을 신고

상의도 윤곽이 다 드러나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긴팔이다.


방송인이라고 다 이러하지 않을 터인데.

다루는 주제나 방송성향이 너무나 자극적으로 치우쳐져 있다.


“손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저번에 말씀드렸다 싶이…”


“그러지 말고, 저희 시청자들한테 인사 한번 하세요

 안녕하세요~~”


여성BJ  핸드폰을 들어 자신과 남자를 동시에 화면에 담는다.

작은 화면에 두 명의 얼굴이 담길 수 있도록

남자에게 바짝 다가선다.


[와 진짜냐?]


[홀쭉한 초롱이다 홀쭉한 초롱이]


[대한이햄, 붓싼은 어찌하시고 부천까지 올라오싯습니까?]


[니 대한이햄 아나? 내도 아는데]


[대한이햄이 니 친구가?]


[윗도리 꼴에 언더아머 아냐?ㅋㅋㅋㅋㅋ존나웃겨]


[그림판이다 그림판. 문신봐라 봐라]


화면 옆으로 온갖 댓글들이 줄지어 올라간다.


“저… 고객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남자가 황급히 얼굴을 가리며 물러선다.


“아이. 그러지말고, 한번 이야기라도 들어보세요

 제가, 여기 매장 홍보도 해드릴 수 있다니까요?


 잘만 하면, 가지고 계신 매물들 완판! 

 완판신화 하면 저 아니겠어요?”


흡사 홈쇼핑 쇼호스트 같은 포즈와 어투로 이야기하며

시청자들에게 어필을 한다.


[오빠한테 말만 해, 중고차 따윈 2~3대정도 내가 팔아줄게]


[차팔이들이 다 거기서 거기지, 하물며 부천ㅋㅋㅋ 안봐도 뻔하다]


[여기 가게 상호 어디야? 누구 아는 사람 있어?]


시청자의 댓글이 계속해서 올라온다.


구독자수 3만, 실시간 시청자 수는 채 백오십명 가량 밖에 안되지만

평일 대낮시간에 이정도 시청자를 잡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손님, 핸드폰 내려주세요.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그러지말고, 시청자 여러분, 그저께 제가 와서 여기 차량을 봤는데

 글쎄 20년식 카니발 30,000km 짜리가 3,800만원 하는거 있죠?

 엔진룸도 깔끔하고 차량하부에 부식도 하나 없고

 여기 사장님이 직접 엔진오일도 교체하신다네요”


여자가, 자신이 소개받았던 매물을 즉석에서 읆어버린다.

남자가 관자놀이를 부여잡는다.


[카ㅋㅋㅋ니ㅋㅋㅋ발ㅋㅋㅋ, ‘그 차’ 나왔쥬?]

[부천 중고차따리가 파는 차가 다 거기서 거기지]

[엔진오일 지가 갈았데 ㅋㅋㅋ 그거 아무나 하는거 아냐?]

[좀 싼데, 침수차 아냐?]


댓글들이 온갖 유언비어를 생산해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내 말 들어봐, 진짜 트렁크에 하부에 벨트에 엔진룸 안쪽까지

 내가 다 봤다니까요? 

이런거 아무데서나 찾을 수 있는게 아니에요

강 추 매 물”


남자가 누차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싸면 싼 이유가 있다.

수수료와 대행비를 남자가 모두 받아서 처리하고

수수료비율도 크게 싼 편은 아니다.

흡연 차량이기때문에 감점요인도 충분히 있다.


저런 식으로 무조건 깔끔하다, 좋다 이야기하면

부천과 인천 중고차매매단지에 흔해 빠진 양아치들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손님. 핸드폰 내려주시고, 차량 사실 거 아니시면 나가주세요”


[나가랜다 ㅋㅋㅋ 손님 가려받는 꼬라지 봐라]

[거봐 침수차라니까. 백프로야 백프로]

[방송 키니까 호구잡을 수 없어서 쫄리는거 아냐?]

[차팔이 새끼들 꼴 좋네 ㅋㅋㅋㅋㅋ]


댓글들의 내용이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오른다.

남자는 연신 여성 BJ의 화면을 가리고, 자신의 얼굴을 가리느라 바쁘다.

몇 분 더 있으면, 시청자들이 남자의 매장 상호를 찾아낼 것이고

조그마한 실수에도, 폭탄 리뷰가 쏟아질 것이다.



남자가 잠시 커피를 타는 시늉을 하며 시간을 끈다.

경찰을 불러서 내쫒아야 하는지

아니면 경찰을 부르는게 일을 더 키우는건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저 여성 BJ의 저의가 어떠하든

표면상으론 아무런 대가도 없이 매장의 홍보를 하러 온 것이다.

이곳 중고차매매단지 다른 사장들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온갖 매물들을 여자의 핸드폰에 담아서 보여주려 할 것이다.


한 번만 더, 커피를 내어주며 간곡히 요청한다.


“손님, 죄송하지만 저희는 방송을 통한 광고를 원하지 않습니다.

 핸드폰은 내려주시고, 차량을 구매하지 않으실거면 나가주세요”


“여기 오빠 되게 깐깐하다.

 알았어요. 여기 차 한대 사면 되죠?


 여러분~ 아무래도 차를 한대 사야지 나갈 수 있나봐요. 어쩌죠?

 차량 종류 하나만 저렴한걸로 추천해주세요.

 레이? 모닝? 역시 가격 방어가 잘 되는 경차가 좋을까요?”


[경차살빠엔 보태보태 롤스로이스지]

[스파크 좋아, 쉐보레가 튼튼해]

[쉐슬람 꺼지시고]

[응 다음 흉기, 모닝 관짝]

[캐스퍼도 중고차 매물 있나?]


“캐스퍼 괜찮다. 사장님. 저 캐스퍼 한 대만 보여주세요.

 가격은… 천만원?”


[경차따리가 천만원 ㅋㅋㅋㅋ]

[차라리 그 돈이면 아반떼를 사고말지]

[구아방 한 8백 하냐?]


이 BJ, 차량을 살 생각따위 없다.

차량을 알아보고, 구매를 종용하고, 할인을 하는 과정 자체가 컨텐츠다.

어떻게 해서든 양아치 문신충의 표본인 남자를 화면에 담아내고

조회수를 빨아먹어 올린다.


괜찮은 영상이 만들어지면, 그걸 빌미로 남자를 꼬드긴다.


평소같은 손님이면, 가격만 알아보러 왔더라도 친절히 응대한다.

성능기록부를 보여주고, 가격을 알려주고

차량에 앉히고, 엔진룸을 보여준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된다.

저 핸드폰이 실시간 라이브를 전국에 송출하는동안은

남자가 가진 파일철을 함부로 펼쳐서도 안되고

차량을 가져와서 엔진룸을 열어제껴도 안된다.


무엇을 하더라도 저 여자 BJ의 바람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을 끄는것도 정답이 아니다.

어찌해야하나 판단이 서지 않는다.



“하아…하아…”


그리고, 남자 매장의 문이 열린다.

고급 원단으로 만들어진 정장을 쫙 빼입고

하얀색 셔츠를 안에 받쳐 입고

남자가 신은 광택 구두만큼 반짝거리게 닦은 구두를 신은 

남자의 여자친구인 여자가

매장에 숨을 몰아쉬며 들어온다.


“자…자기야. 지금, 들어오면 좀 곤란해, 여기 손님이”

아직, 여성 BJ의 핸드폰이 실시간으로 방송을 송출한다.

여자의 얼굴도 여차하면 나올 지 모른다.


“어머, 여자친구분도 있으셨어요? 능력남이네 오빠”


[문신충이 ㅋㅋㅋㅋ진짜 저런놈들이 여친 잘만들더라]

[저런 놈도 여친이 있는데]

[여자도 문신녀 아냐? 봐봐 봐봐]

[예쁘냐?]


“손님, 부탁입니다. 제발 좀”


“나와, 내가 해결할게”


여자는 남자의 어깨를 밀어서 젖힌다.

이내 여성 bJ의 카메라 렌즈에, 어렴풋이 여자도 잡힌다.


“어머, 예쁘시다. 안녕하세요. 제가 어린 거 같은데.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여성 BJ는 이내 가까이 여자에게 붙는다.

한 달음에 이 부천 자동차매매단지를 뛰어서 달려오느라

땀 범벅에 머리도 헝클어진 여자와

옷까지 쫙 빼입고, 방송용 화장도 마친 여성 BJ가 한 화면에 잡힌다.


보란듯이, 여자의 나이를 올려치며 ‘언니’라 부르려 한다.


[야 이거 싸움거는거지, 한방 맥인거지? ㅋㅋ]

[외모 ㅅㅌㅊ?]

[땀, 머리 헝클어진거봐 ㅋㅋㅋ딱 내취향이다]

[너무 비교되는거 아냐?]

[언니라 부르면 되냐니 ㅋㅋ 여자 입장에선 싸대기 바로 갈겨도 무죄]


자극적인 멘트들이 줄지어 댓글창으로 올라온다.


“아뇨. 인사가 늦었습니다.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중인 변호사 김은영이라고 합니다.

 주로 맡는 분야는 가정법원인데… 분야가 분야다보니 

 명예훼손, 채권추심, 모욕, 가리지 않고 진행합니다.”


“...어…네?”

순식간에, 여성 BJ의 얼굴이 굳는다.


[비상. 손가락 잠궈라. 변호사님이시다]

[곧 클린해질 채팅창입니다]

[변호사님, 방금 글은 제 고양이가 쓴 겁니다.]

[저도 제가 키우는 강아지가 쓴 글입니다.]

[병신들 나대더니 변호사느님한테 딱걸렷네 ㅋㅋㅋㅋ]


“어디보자... 여기 제 명함입니다. 대한변호사협회 공식 소속이니,

 검색하시면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여자는 자신의 명함을 꺼내들어 여성BJ의 카메라로 들이민다.

대한변호사협회의 마크와 함께, 여자가 운영하는 변호사사무실의 로고도 보인다.


[야 좆된거 아니냐?]

[진짜 큰일 난 거 같은데]

[야, 댓글에 이상한거 쓴 놈 없지?]

[허튼 거 쓰지말고 가만히 있어]

[나 Tor 써서 상관 없음]

[병신아 유튜브 아이디 떡하니 나오는데 VPN이 무슨상관이냐]


댓글창이 술렁인다.

차량이야기, 외모이야기, 나이이야기, 문신이야기

온데간데도 없이 범죄와 소송에 관련된 이야기만 줄지어 나온다.


“저….여러분, 방송은 오늘 여기까지만 할께요. 구독과…좋아요 부탁드려요”


“아. 방송 끊기전에, 제가 실시간 영상은 방송 꺼지는 데로, 댓글 하나씩 찾아보겠습니다.”


여자가, BJ의 핸드폰에 대고 외친다.

황급히 여성BJ가 핸드폰을 뒤로 감춘다.

방금까지 들고잇던 고화질 스마트폰이 무기인양 휘두르고 다녔는데

형세가 역전된 꼴이다.


“유튜브 채널명이 어떻게 되시죠?”


“저…언니. 그게 아니라…”


“언니가 아니라. 저는 김은영 변호사 입니다.”


“벼..변호사님.. 그…그게”


“채널명하고, 성함좀 알려주세요. 뭐… 알려주기 싫으시면 제가 따로 알아내면 되는데

 여간 귀찮은게 아니라서요”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한번만 봐주세요”


“아뇨아뇨. 저한테 그러실 건 없고. 제가 뭐 잘잘못을 따지자는게 아니니까

 여기 가게 하고, 사장님 얼굴하고, 제 얼굴이 송출된

 이 유튜브 채널 명하고, 본인 성함만 알려주시면 된다니까요?”


여자는 협박따위 하지 않는다.

여성bJ에게 사과를 요구하거나, 잘잘못을 따져가며 소리를 치지도 않는다.


송사에서 가장 시간이 오래걸리는, 

상대방의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증거를 수집할 기초자료를 확인하고자 한다.

구글은 대한민국에게 비협조적이라고?

정보공개청구 해봤자 아무것도 안알려 줄 거라고?


웃기는 소리.


저 유튜버 여성이 이 매장 안으로 들어올 때 까지

순전히 걸어서만 들어왔을까?

차량이 없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했을거고, 찍은 신용카드가 있다.

차량이 있다면 그 번호가 있고, 차량등록증엔 그 주인도 기재가 된다.

대포차를 쓸 정도로 머저리거나 능력자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방송하는 BJ치고

유튜브 단 한개 채널만 단독송출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철수하네 마네하는 트위치, 아프리카, 하다못해 망해서 아무도 보지않는 카카오TV까지

플랫폼과 단독계약을 맺지 않으면 2~3개 플랫폼에 동시송출하는게 유튜버의 기본이다.

 

설령 여기서 이 여성BJ가 줄행랑을 쳐도 상관없다.

적당히 여자의 인상착의를 가지고

협약 탐정사무소에 돈 백만원에 의뢰라도 찔러주면

이름, 사는 곳, 출신 학교, 방송채널까지 싹 다 1주일내로 조사해준다.


구글이 비협조적으로 나오고

이 유튜버가 솜씨좋게 모든 영상을 다 지워버린 뒤

모르쇠를 한다 그래도 상관 없다.


송사를 질질 끌어가는건 변호사의 특기이자 전문분야다.

법원에 출입하느라 일상생활을 망가뜨려버리면 된다.

소정의 인지대와 수수료는,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


“자기야. 괜찮아. 아무일도 없었잖아”


일을 크게 키우고 싶지 않은 남자는 여자의 어깨를 잡아 만류한다.


“당신은 가만히 있어. 내가 해결한다고 말했잖아아!”


방금까지도 무미건조하게 여성 BJ의 인적사항을 물어보던 여자가

남자에게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그게…”


“내가 해결한다고. 

 당신이 애초에 행동거지를 똑바로 못하니까. 내가 바로잡아주겠다잖아.

 평소처럼, 저기 자리에 앉아서 매물이라도 정리하던가

 핸드폰으로 중고차 유튜브라도 보고 있으란말야!”


“어..어… 알았어. 자기만 믿을게”

남자는 아무런 소득도 없이, 자신의 전용석으로 되돌아간다.


“하아… 소란스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다시 물을게요. 채널명하고, 성함만 알려주시면 됩니다.”


“제가 잘못했어요오오. 그럴려고 한게 아니라…흐으으으윽”

이미 여성 BJ는 여자에게 무릎을 꿇고 양손을 싹싹 빈다.

남자는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서 자신의 여자친구와 여성 BJ를 관망한다.


여자는 자신의 바짓단을 붙잡고 하소연을 하는 BJ를 쳐다보기만 한다.

구태여 말을 건네지도 않고

건네는 말에 긍정이나 부정을 하지도 않는다.

방금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한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지도 않는다.


이 여성 BJ에게, 책잡힐 건덕지를 단 하나도 건네주지 않고자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중간중간, 핸드폰으로 문자를 송신한다.


30분을 여성 BJ가 눈물 범벅이 되어서 빈다.

구독자 3만명이 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가정사가 얼마나 비루했고

학창시절 자신이 얼마나 별볼일 없었고

인생이 얼마나 순탄치 않았고

당신의 잘생긴 남자친구에게 이성으로 흥미를 느낀게 아니라

사업적으로 동업을 제의한 것 뿐이라고

변명에 변명을 거듭한다.


“음… 괜찮습니다. 알려주기 싫으시면

 구태여 알려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볼 일 끝나셨으면, 돌아가보셔도 됩니다.”


여자는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BJ에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여준다.


그곳엔, 방금까지 유튜브로 송출된 여성 BJ의 실시간 방송이 재생된다.


‘여기 오빠 되게 깐깐하다.

 알았어요. 여기 차 한대 사면 되죠?


 여러분~ 아무래도 차를 한대 사야지 나갈 수 있나봐요. 어쩌죠?

 차량 종류 하나만 저렴한걸로 추천해주세요.

 레이? 모닝? 역시 가격 방어가 잘 되는 경차가 좋을까요?’


채널에서 자동 녹화된 유튜브 라이브가 올라와있고

여자의 핸드폰에서 다시 재생되고 있다.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여성 BJ의 인상착의, 방송주제, 대략적인 구독자 수, 실시간 방송여부.

찾을만한 증거는 많다.

협약된 탐정사무소는 별것도 아닌 일로 100만원의 수익을 올린다.


“제발요오오 한 번만 봐주세요…”


“아니 뭐.. 잘못한 것도 없으시고, 제가 뭐 봐드린다 만다 할 만한 사안이 있는것도 아니고.

 보세요. 예쁜 얼굴이 눈물때문에 다 망가지잖아요.


 그만 우시고, 진정하시고…


 아. 차량 사러 오신건가요?


 경차? 저희 남자친구가 마침 중고차 매매업을 하는데

 한 번 매물들 살펴보시겠어요?


 제 소개 받고 왔다고 하면 잘 해줄거에요


 여보~ 여기 손님. 

 경차 알아보러 오셨대. 천 만원 정도 생각한다는데?

 캐스퍼 있어?”


방금까지 송출되던 방송내용을 보란듯이 여자 앞에서 읊어준다.

잔인할 정도로 여성 BJ 앞에서 모든 걸 모르는 시늉을 한다.

마치 처음 본 사람인양, 얼굴에 마스카라 범벅인 된 사람에게

중고 캐스퍼를 사겠냐며 물어본다.


마지못해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들어가보세요 이제”


매장 바닥에 앉아있는 여성 BJ를 일으켜 세운다.


“당신, 뭐야, 내 앞에서 다른 여자 챙기는거야?”


“그만하면 됐어, 충분히 알아들었을거야. 그렇죠?”


“잘못햇어요오오. 방송 영상도 바로 삭제하고, 다시는 안올게요. 

 다시는 안그럴게요 변호사니임”


“빨리, 차량 사실거 아니면, 매장에서 나가주세요”


남자의 손길에 밀려서 3만 구독자의 여성 BJ가 매장에서 쫒겨난다.

남자는 문에 걸린 팻말을 영업종료로 돌려놓는다.


“뭔데? 나보다 저딴 년이 중요해? 그렇게 좋아?”


“그 이야기가 아니잖아.”


“이게 다 당신이 행동거지 잘못하니까 생긴 일이잖아.

 당신이 해결 못하는 일

 내가 바쁜와중에도 달려와서 해결해주고, 도와주고 했는데


 아주 나만 나쁜년이야. 그치?”


“그런거 아냐”


“아니긴 뭐가 아냐, 내가 살다살다,

내 남자친구한테 고객들한테서나 받는 취급을 받게될 줄은 몰랐네. 


 나한테 정작 중요한 사실은 다 숨겨놓고

 송사 끄트머리 가가지고는 어쩔수 없다는 듯 말하고

 일이 흐트러지면 죄다 내 탓이라고

 아주 그냥 나만 나쁜년이지 안그래?”


“지금 그 이야기가 아니잖아”


“내가 이야기하는데 왜 토를 다는거야! 

 그럼 내 말이 틀리다는거야?!

 

 저 병신같은 유튜버 새끼가

 내가 당신한테 준비해준 매장에 와서

 행패를 부리고, 당신한테 꼬리치고, 진상 염병을 부리는걸

 변호사 명함까지 팔아가면서 해결해줬는데


 내 말이 지금 틀리다는거냐고오!”


“...”


“어? 취업도 공시도 못하는 사람한테

 일억 이억 되는돈 쌔빠지게 굴러다가 벌어서

 중고차 매매업이라도 해보라고

 매장 임대도 해주고, 자본금도 가져다주고

 사장 직함도 달아줬는데


 아주그냥 나만 나쁜년이고 나만 몹쓸년이지?”


“...”

남자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여자의 말에는 틀린게 없다.

여자가 변호사 시험을 공부하던 시절

취업준비와 공무원 시험을 병행하던 남자와 도서관에서 눈이 맞았다.


유명 대학 법학과에 로스쿨까지 다니고 변호사시험도 준비하는 

엘리트중에 엘리트가 당시 여자였다. 

마치 지금처럼.


그에 반해 남자는 대학도, 능력도, 자격증도 별볼일 없었지만

사람 됨됨이 하나만큼은 완벽했다.

마치 지금처럼.


재수가 없던건지, 길이 아니던건지

적성에 잘 맞지 않았던 것인지


성실함 단 하나만 가지고는 취업시장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공무원시험도 통과하기는 힘들었다.


여자가 변호사시험을 통과하고, 경력을 쌓아 개업을 할 동안에도

남자는 변변한 직장마저 구하지 못했다.


그런 남자에게 종잣돈을 쥐어준게 여자다.

차량에 관심이 좀 있어보이고

사람 성실하고 

시장 동향 파악하는데 빠삭하니까


중고차 딜러라도 해보라고 사무실을 차려줬다.


처음엔 완강히 거부하던 남자도

여자가 직접 사무실을 구해서

월급사장으로 남자를 앉혀버리니 별 말을 하지 않는다.


종잣돈 1억을 가지고, 차량 3대정도를 구매하더니

1주일을 넘게 팔 생각은 안하고 쪼물딱거렸다.


그리고 사올때보다 멀끔해진 차량을

꽤나 괜찮은 마진율을 남겨서 판매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이번엔 자동차 4대를 구매했다.

다시 1주일이건 2주일이건 틀어박혀서 기름범벅이 될 정도로 조물딱거리고

괜찮은 마진율로 팔아넘기길 반복했다.


그러길 수십 번을 반복했다.

이제 남자는 주차장 한 켠을 다 채울 정도로 차량을 굴린다.

파일철 한가득, 제조사와 차종별로 다양하게 매물을 구비해 놓았다.

여자는 보지도 않을 손익계산서를 매년 따박따박 만들어 건넨다.


영업을 한다는 사람이 기름때쟁이인게

보기가 좋지 않아서 여자 취향대로 좀 꾸며주었다.


옷도 최신 브랜드로 비싸게 맞춰 입혀주고

어디가서 얕잡아 보이지 말라고 목에다가 금목걸이도 걸어주었다.

기 싸움에서 밀리면 안되니까 문신도 시키고

시계도 45mm짜리 큼지막한 걸로 하나 걸어주니까

사람이 봐줄만 해졌다.


그랬더니 여자가 꼬인다.

고새 이꼴이다.

직접 나서서 날파리를 쳐내고 문제를 해결해주었는데

남자는 여자가 영 못마땅하다는 듯 말을 한다.


여자는 잘못한게 하나 없는데 억울해서

남자에게 소리를 지른다.


“왜 내가 내 시간 돈 정성 다 들여서 당신한테 이런 대우를 당해야 하는건데에에!”


이제는 여자가 남자의 앞에 쓰러져 운다.

최선을 다해서 남자를 돌보아주는데

남자는 그걸 알아봐주지 않는게 너무나 서운하다.


“...항상 고마워”

남자도 매장 바닥에 주저앉는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여자에게 감사의 표현을 한다.


“...말로만?”

눈물을 닦으며 여자가 남자를 바라본다.


“아냐. 이번에도 자기 덕분에 잘 해결되었어.

 당신 아니였으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감이 안잡히더라”


“....말로만?”


“..저…그러면….주말에 어디 멀리 나가볼까?”


“안아줘”

여자가 남자에게 양 손을 뻗는다.

남자가 여자를 살며시 안아준다.

서로가 등을 토닥이고 쓰다듬는다.

남자가 여자의 머리를 쓸어내린다.


여자의 숨소리가 차분해진다.


“항상, 챙겨줘서 고마워”


남자가 여자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여자가 바라는건 별 것 아니다.

남자에게 자신의 행동을 인정받는것.


사람 하나 담궈버릴 기세로 매섭게 몰아쳐도

그것이 모두 남자를 위한 것이며

그러하니 다른사람들은 여자를 욕해도

남자 단 한명 만큼은 여자를 인정해주는 것.


“그리고?”


“사랑해. 당신덕분에 잘 해결됐어”


“정말이지?”


“그럼, 앞으로도 무슨 일 있으면, 자기한테 부탁할게”


“그래. 나만 믿어. 내가 다 해결해줄게”


남자는 여자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여자도 남자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잘 쓸게요~~”


19년식 6만km 그랜저가 매장 밖으로 떠나간다.

타이어가 오래되어서 교환이 필요한데

타이어만큼은 원가 부담이 크다.


구매자에게 반드시 교체할 것을 신신당부한 뒤에

계약을 마치고 차량 대금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또오세요~”


남자도 나가는 차량을 향해 손을 흔든다.


파일철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아서 한 숨을 돌린다.


그 뒤로도 별 일은 없었다.

그 여성 BJ가 운영하던 채널이 사라졌다.


그 뿐이다.

사과영상이네 뭐네 올라왔었나본데

남자가 보기도 전에 채널이 송두리째 삭제되었다.


유튜브로 다른 채널을 살피며 시장동향을 파악한다.

최근 잘나가는 차량이 무엇인지

가격은 어느정도에 책정되는지

고객들은 어떤 옵션을 선호하는지 등등등…


[지이이이이잉]

업무용 핸드폰에서 모르는 전화번호가 찍힌다. 


“여보세요?”



“사장님. 제발 살려주세요. 그 변호사님께 말씀좀 해주세요.

 저도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었고

 제가 막무가내로 들이닥치긴 했지만

 그렇다고 뭐 피해를 드린 건….”

[지이이이잉]


익숙한 목소리가 남자의 귓가에 울린다.

채널이 사라진 3만 구독자의 여성 BJ.

하소연을 남자에게 쏟아내는 와중에도


업무용 핸드폰이 문자를 수신하며 진동을 울린다.


문자는 여자에게서 온 것이다


[전화 끊고, 차단해]



“여보세요? 사장님. 제말 들리세..”


남자는 전화를 끊는다.

착신된 전화번호를 차단하고,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두달 쯤 전에

여자가 여러 서류를 챙겨와서는 도장을 찍고 이름을 쓰라 그랬다.


하나는 고소장이고, 다른 하나는 위임장이었다.


평소에 남자라면 내용을 읽고 설명을 받은 뒤에야 서명을 했겠지만

여자는 남자에게 무어라 이야기조차 하지도 않고

읽을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당신한테 나쁜 내용 아니니까, 그냥 이름쓰고 도장찍어. 

 나 바쁘단말야”


남자는 여자의 말대로 고소장에 고소인으로 이름을 적고 도장을 찍는다.

여자를 변호사로 선임하는 서류나, 각종 위임장에도 이름을 적고 도장을 찍는다.


그리고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련히 여자가 알아서 잘 하겠거니… 여자의 주장대로 여자를 믿었다.


장황한 반성문들이 남자의 가게로 들어오기도 했다.

읽어보지도 않고, 여자에게 전해주었다.


남자는 뒤를 돌아본다.

매장안에 설치된 방범용 CCTV가 반짝인다.


CCTV 카메라 렌즈를 향해

남자는 손 모양으로 하트를 그려보인다.


[지이이잉]

핸드폰이 다시 문자를 수신한다


[나도, 사랑해]

여자가 답변을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