퉁퉁 분 눈을 억지로 떴다. 새벽까지 울다 잠든 탓에, 나는 멍한 상태로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저 조용한 방 안. 바깥에서는 어머니가 울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나니 조금씩 정신이 들었다.


 그러자 머리 속을 파고드는 괴로운 현실이 나를 압박했다. 나는 떨리는 숨결을 간신히 흘리며 붕대로 두껍게 묶은 손목을 힘겹게 이불 속에 파묻었다.


 파닥, 하는 소리와 함께 종이더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불 밖으로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떤 물건이 내 행동으로 떨어진 줄은 잘 알고 있었다.


 힘겹게 주웠다. 군데군데 물 같은 액체로 젖어 꾸깃꾸깃한 일기장이었다. 분명 미아의 눈물이었을거야. 분명. 나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애써 되짚어보며 일기장을 펼쳤다. 


 그날 미아는 죽었다. 그저 옥상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 그건 더러운 어른들과 왕따 주동자들에 대한 복수일지, 자신의 죽음을 내 눈에 담기 위한 것인지는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녀와 함께하고 있었다. 모두가 학교 건물 바깥에서 떠들고 놀고 있는 시간이었다. 미아는 그 시간에 나를 데리고 옥상문을 따더니, 대뜸 웃으며 속삭이고는 죽어버렸으니까. 이렇게 생각해보니 둘 다 였을지도.


 그러나 미아는 정말로 죽고 싶었던 것은 아니였다. 그건 분명했다.


 전날 밤, 미아는 나에게 도망치게 해달라고 울부짖었다.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죽고 싶지 않다고 소리쳤다. 하지만 나는 학교 내에서도 불가촉천민에 불과할 뿐인 친구도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을 뿐이었다.


 반면에 미아는 달랐다. 가까운 소꿉친구였음에도 나와는 달리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천재였다. 어른들의 압박감과 폭력을 한 몸에 받을만큼 고등한 존재였는데.


 미아야. 내가 너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든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했을까, 아니면 그대로 순응하면서 버텨냈을까. 또는 너처럼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릴까.


 하지만 이런 생각따위는 더이상 의미가 없었다. 이미 미아는 죽었고, 다시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떠나버렸다.


 억지로 찢겨져 생긴 흉터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미아가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내가 사랑하던 그녀의 죽음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살기 싫은거라면 여기 남을거야. 바로 네 마음 속에. 날 좋아하면서 도와주지도 않았잖아. 그러니까 나 좀 살려줘. 이 겁쟁이 새끼야.


 미아의 일기장 마지막 페이지에는 그런 문구가 적혀있었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단말마였다. 그 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하늘로 날아오르며 눈물로 가득한 구겨진 미소로 나를 응시하던 그 눈을.


 "미안해, 아무것도 못해서 미안해……."


 가슴을 쥐어짰다. 나는 그 한마디를 품 속에 끌어안고 또다시 울다 지쳐 잠들었다.


 꿈을 꾸었다. 미아가 죽으려하던 그 순간이었다. 누구보다 귀엽고 아름다운 얼굴과 참방이는 머리칼, 그리고 깊고 깊은 심연 같은 미소.


 나는 미아가 좋았다. 대외적으로 그녀는 완벽한 학교의 아이돌이었지만, 내 앞에서는 그 시커먼 속내를 맘껏 드러냈었다. 일방적으로 그날 있었던 모든 불만들을 욕설을 섞어가며 속삭였다. 그 안팎의 차이가, 몹시도 사랑스러웠다. 그런 그녀가 좋았다. 그래서 좋았다.


 그랬기에 나는 미아가 된다. 살려달라고 말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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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는 평소처럼 간단한 화장을 하고, 예쁘게 다려놓았던 교복을 꺼내 입었다. 언제나 깔끔하고 단정하면서도, 기품 넘치는 모습은 철저히 그녀다웠다.


 미아는 그런 아름다움으로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매료시켰다. 전교생들은 학생회장이었던 미아를 존경하고 따랐다. 물론 선생님들도 그런 미아를 끝도 없이 칭찬하기 바빴다. 마치 입 안에 모터라도 달린 것처럼.


 그랬던 미아는 이미 한번 내 곁을 떠났다. 하지만 지금은 되살아나서 나와 함께 있다. 분명 내 안에 함께 있겠다고 말했으니까. 이제 영원히 함께인걸.


 오늘은 할 일이 너무 많다. 미아는 나와 달리 언제나 전교 1등을 차지할 정도로 똑똑하다. 공부는 쉴 틈이 없으며, 운동도 만능. 나는 미아가 공부하는 모습을 마음 속으로 조용히 지켜보았다.


 수업시간 종이 울렸다. 미아는 지친 얼굴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다음 수업 시간에 필요한 교과서를 꺼내려 했다. 그러자 누군가가 뒤에서 그녀를 강하게 밀쳤다. 놀란 미아가 뒤를 돌아보자, 한 남학생이 혐오감으로 가득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씨발 변태 새끼가. 대체 왜 쳐 나오고 지랄이야. 정신병자도 아니고."


 남학생은 경멸 섞인 말로 미아를 거칠게 매도했다. 대체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 그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닌데. 분명히 미아란 말이야.


 그러나 미아는 못 들은 척, 남학생을 향해 빙긋 웃으며 교과서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남학생은 콧방귀를 뀌며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미아는 더이상 예전의 독한 모습을 숨길 생각이 없는 듯 했다.


 “개새끼가, 사람을 밀치고도 사과도 안하는구나. 존나 머리에 도덕이라고는 일도 없나보네. 너희 부모님이 그렇게 가르쳤나봐? 사람 때리고도 배 존나 째라고. 그렇지, 씨발 새끼야?”


 미아가 거친 욕설을 쏟아내자, 남학생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뭐라고 했냐? 죽고 싶냐?”

 “너희 부모님이…….”


 그 순간 눈 앞이 새하얘졌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미아는 온데간데 없고, 내가 그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래, 이런 순간은 미아의 역할이 아니다. 바로 내 역할이야. 하지만 미아는 더이상 패배하지 않는다. 굴복하지 않는다.


 “부모도 버린 새끼가 감히 씨발!”


 주변에서는 무슨 일인가 싶은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한편 남학생은 소리를 지르며 미아…… 아니, 나를 노려보며 눈을 부릅떴다.


 “연미아 뒤진 뒤로 왠 또라이 새끼가 사람 열받게 하네. 좆 자르고 나니까 니가 걔 같냐? 막 복수라도 하고 싶었어? 근데 어쩌라고. 약한 년 뒤지던가 말던가 내 알 바는 아닌데, 남자 새끼가 좆 자르고 여자 행세하니까 개 역겨운거 아냐? 니 애미 애비가 널 버린 이유도 알만 해. 안그러냐?”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주변에서 남학생 몇몇이 인상을 찌푸리며 다가왔다. 다시금 공포가 몰려왔지만 꾹 참았다. 미아는 지지 않아. 미아라면 언제나 강해야 한다고. 겁 먹지 않아. 미아는 이제 포기하지 않아.


 나는 미아를 대신해 다가오는 폭력을 견뎌내야만 했다. 더이상 미아는 고통스럽게 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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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는 지지 않아. 결코 패배하지 않아. 미아는 충분히 고통 받았었다. 이제는 행복해야만 한다. 남에게도 굴하지도 않고, 마지막까지도 견뎌내는 것이 미아의 원래 모습이다. 나는 미아를 행복하게 해줘야 해. 나와 함께 하는 미아를 위해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견뎌내리라고 다짐했다. 지금도 그렇다.


 “오랜만이구나. 잘 지냈니? 그동안 지원해준 돈이 부족하지는 않았고?”

 "네. 아저씨 덕분에 잘 지내고 있었어요. 돈도 충분해요. 항상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만족스러운 얼굴로 껄껄대며 웃는 아저씨를 향해 생긋 웃었다. 그의 얼굴에는 붉은 빛이 돌고 있었다. 붉은 등과 침대보의 빛이 그 얼굴에 비쳐지고 있었다.


 “그동안 널 못 만나서 얼마나 지루했는지. 비슷한 애기들 중에서도 유독 너만큼 귀여운 녀석은 드물잖니. 내가 취향이 좀 특이해야지.”


 나는 미소만 지으며 남자의 옆에 앉았다. 이런 일은 미아에게 맡길 수 없기 때문에 내가 대신 하게 됐다. 물론,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런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다. 내가 미아를 택했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이 날 버린 것이, 내가 미아를 택했기 때문이듯, 나의 선택은 정답이었다. 그러니 후회하지 않는다.


 아저씨는 내 등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어깨와 귓불을 어루만지며 제딴에는 색기를 불어넣는답시고 내 귀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오늘도 아저씨가 뜨거운 맛을 보여주마.”

 “잘 부탁드립니다, 아저씨.”


 나는 그날도 몸을 팔았다. 모든 것은 미아를 위해서다.


 수시로 호르몬 주사를 맞지 않으면 곤란하다. 미아가 살아갈 껍데기를 계속해서 지속시켜 나가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미아는 나와 함께 해주지 않을테니까.


 미아야, 나 정말 잘하고 있지? 널 위해서 나는 내 몸도 팔았는걸. 너랑 함께 하고 싶어서 이렇게까지 하고 있어. 내 마음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널 위해서. 내 고백 잘 듣고 있지?


 그래도 솔직히 말하면 힘들긴 해. 나 정말 많이 힘들어. 하지만 항상 널 생각하면서 참고 있어. 널 위해서라면 이렇게까지도 할 수 있거든. 나 같은건 중요하지 않아. 전부 네가 더 중요하니까 버릴 수 있어.


 그래도 솔직히 힘든건 사실이야. 미아야, 나 솔직히 힘들어. 그래도 항상 널 생각하면서 참고 있어. 널 위해서라면 이렇게까지도 할 수 있으니까. 내 성기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나 따위도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건 오로지 너 뿐이야.


 가끔 다들 나보고 정신이 이상하다고들 하지만, 대체 뭐가 문제람. 너는 지금도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


 오늘도 화장을 하고 예쁘게 다린 옷을 입는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지낸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미아도 분명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거야.


 그렇지, 미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