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의 개선.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마왕 토벌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용사 파티가 왕국의 수도로 귀환한 지도 벌써 한 달.


본래 전쟁이라는 것은 전쟁을 준비하고 전쟁을 벌일 때에 신경을 써야 할 일이 많은 법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은 법이다.


각 지역에서 멸망한 가문이 있는지, 그들의 영지 상태는 어떠한지, 내년 세수는 어느 정도일지, 다른 국가들의 정세는 어떠한지..


전쟁이 끝났기에 희망은 가득하지만, 세상에는 희망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들이 있는 법이지만.


그러한 절망 역시도 이겨내는 것이 인간이기에. 


그렇기에 용사는 인간들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가 해왔던 일도, 해야 할 일도 아니니까.


그녀는 시선을 돌렸다. 그래, 인간의 쪽이 아니라.


마왕군의 쪽으로.


*


왕국의 수도, 베밍턴은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인간의 평등함을 주장하는 여신교, 그리고 그런 여신교가 이룬 신성제국에서는 구역을 분리한 것이 여신님의 가르침을 배반하는 것, 인간이 인간을 차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럴 때마다 왕국은 '구역을 나눈 것은 행정상의 편리함을 위해서'라며 둘러대곤 했다.


전쟁 중에 귀족들이 사는 구역에는 기사단이 상주하였기에 그리 큰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으며, 빈민가에는 기사단은 커녕 용병조차 돌아다니지 않았기에 전례없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이 역시도 귀족들이 사는 구역은 왕궁과 가깝기에 기사들이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고, 인간 언저리들이 사는 구역은 저 멀리,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박아두었기에 기사들이 도착하기 어려웠을 뿐이다.


그래. 참으로 비루하기 짝이 없는 변명.


그런 시대이기에 그 남자 같은 이가 빛나는 것이겠지.


용사는 그리 생각하며, 다 쓰러져가는 빈민가의 작은 오두막 문을 열었다. 오두막이라고 하는 것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얼기설기 덧붙인 누더기 같은 나무판자 덩어리처럼 보이는 집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 법이다. 늘 그렇듯.


그 '안'에 무엇이 있는가. 그것이 중요한 법이지.


바닥에 깔린 지푸라기를 헤집어, 문고리를 잡아 지하실로 가는 문을 연다. 축복받은 석재로 기반을 잡고, 그 위에 순은을 잔뜩 발라 마감한 지하계단에는 2급 성물을 일정한 간격으로 붙여놓았다.


그 누구도 함부로 나갈 수 없도록.


그리 계단을 한참 걸어내려가다 보면, 문 한 짝이 용사를 반겨준다.


사치스러운 복도와는 대비되는, 나무로 이루어진 수수한 문. 


그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녀를 반겨주는 것은-


뚜욱- 뚜욱-


심장에 성검이 박힌 채, 박제된 나비처럼 벽에 겨우 매달려있는 남자.


가슴팍에서 피가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다가, 다시 다리를 타고 올라가 심장 속으로 흘러들어가는, 기묘한 광경을 만들어내는 남자.


용사파티의 배신자이자, 마왕군의 배신자이기도 한. 


용사파티의 검사이자, 뱀파이어 로드이기도 한. 


불사자이면서, 스스로의 죽음을 바라는 자.


쟝.


용사는 남자의 앞에 서서 무릎을 굽혀 바닥에 흐르는 피에 손가락을 담갔다. 아니, 담그려고 했지만, 피는 사람의 손길을 피하듯 가랄져 그녀의 손가락은 지하실의 바닥에 닿을 뿐이었다.


히죽-


용사는 그 광경이 퍽 웃겨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고작 핏방울 주제에. 아니, 핏방울이니까 제 주인처럼 자신을 피하는 걸까.


스윽-


용사는 일어나 성검의 손잡이를 붙잡고 망설임없이 뽑아냈다. 우지직- 으득- 하는, 검을 쑤셔넣을 때 부숴졌던 뼈가 검이 빠져나옴에 따라 다시 붙는 소리가 지하실을 울린다.


그렇게 뽑아낸 성검에는 단 한 방울의 피도 묻어있지 않았다. 


단 한 방울도.


바닥에 흐르던 피도 제 주인이 깨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더 이상 흐르지 않고 제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


쟝은 아무 말 없이 천천히 눈을 떴다. 심장에 검이 박혀 가사 상태로 빠져드는 것도, 그 가사 상태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으니까.


"좋은 아침이에요, 쟝."


"...아."


쟝은 벽에 간신히 기대어 선 채로 용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성검에 피가 묻지 않았지만, 무언가를 털어내듯 검을 휙 휘두른 용사는 성검을 검집에 집어넣곤 자신을 향해 미소지었다.


그와 대비되는, 괴로움에 가득찬 표정이 쟝의 얼굴에 떠오른다.


"...제인."


"네."


"나는 언제 죽을 수 있는거지."


용사 - 제인은 그런 쟝의 질문에 볼을 부우 하곤 부풀렸다.


"제가 늘 말하잖아요. 쟝은 죽을 수 없다고."


"죽여줘."


"싫어요. 제가 쟝을 왜요."


쟝은 벽에 기댄 채, 천천히 주저 앉았다.


이 대화를 나눈 것도 벌써 몇번째일까.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반복된 대화에도 불구하고, 용사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당신은 죽을 수 없다.'


쟝은 떨리는 손을 들어 제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검이 심장을 파고 들기 전, 마지막 기억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머리카락의 길이.


그래, 불사, 불로, 불변. 고귀한 흡혈귀의 군주이자, 전 마왕군의 군단장 중 하나.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집어삼킨 생명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


하급 흡혈귀로 태어나, 잡아먹고, 마시고, 삼키고, 배신하고, 다시 잡아먹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어른, 아이, 여자, 남자, 늙은이, 귀족, 흡혈귀, 인간, 마족, 엘프, 드워프-


살아있는 것의 피를 갈취해 비로소 가장 높은 위치에 올라선 그는.


스스로의 몸에 흐르는 피에 역겨움을 느꼈다.


자신에게도 소중한 것, 지키고 싶은 것이 생겼기에.


자신이 빼앗아왔던, 누군가의 지키고 싶은 것의 무게를 비로소 알게 되었기에.


그렇기에 그는 용사파티에 투신해, 마왕을 물리쳤다. 


자신의 죗값을 치루기 위하여, 마지막으로 제 목숨을 내놓으려 했지만. 


유일하게 그를 죽일 수 있는 용사는 그를 지하실에 가둔 채, 몇 번이고 가사 상태에 집어넣었다 꺼낼 뿐이었다.


"제인. 내가 죽어야 이야기가 끝나는 법이다."


"무슨 소리에요."


제인은 고개를 살짝 숙여, 머리를 붙잡은 채 좌절하고 있는 쟝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쟝은 용사파티의 검사잖아요. 그런 쟝이 왜 죽어요."


그런 엄한 소리는 하지 말라는 듯, 제인은 방긋 웃으며 쟝의 머리를 익숙한 손놀림으로 쓰다듬었다.


그러나 쟝이 그 손에서 느끼는 것은 체온의 포근함이 아닌, 절망감.


이마저도 자신의 업보라 생각하며 받아들이려고 했던 때가 있었지만, 용사가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은 이후부터 쟝은 필사적으로 죽으려 했다.


스스로의 몸에 수많은 마법을 꽂아넣고, 목을 베고, 마왕에게 피해를 입힌 검술로 제 목을 쳐보려고 해도-


죽지 않았다.


그가 집어삼킨 수많은 목숨들이, 그가 죽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에.


그리고 그렇게 살아날 때마다, 그는 제 자신에게 극렬한 혐오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여태껏 집어삼킨 목숨의 맛이 혀를 괴롭히는 듯해, 쉴새없이 구역질을 하곤 했다.


자신은, 죽어 마땅하다. 죽어야 한다.


살아가는 것은 자신이 용서할 수 없다-


용사는 그런 쟝의 중얼거림을 듣다가, 묘한 열을 띈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 모습은 제 동생 몰래 생일 선물을 준비한 것만 같은 어린 아이와 닮아 있었다. 이 뒤에 올 것을 너는 모르겠지, 라는. 굉장한 기대감이 담긴 미소였으니.


그리고 그런 미소를 멍하니 바라보던 쟝은-


"제발, 제발-"


바닥에 쓰러져 제인의 발목을 붙잡았다. 차가운 석제 바닥에 짓눌린 제 관절들이 삐그덕거렸지만, 그걸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쟝은 대가리를 바닥에 박은 채, 용사에게 빌었다.


"나를 죽여줘. 나는 살기 싫어. 나는 죽어 마땅하잖아."


"쟝이 왜 죽어요."


제인은 발목을 붙잡은 쟝을 어찌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주저앉아 부들부들 떠는 쟝의 머리를 부드러이 쓰다듬었다.


"쟝은 착한 사람이잖아요. 용사파티에서 사람도 많이 구했고."


"구한 사람보다 죽이고 먹은 사람이 더 많아. 나라 하나를 통째로 삼켰는데."


"마왕군에 붙은 가문의 아이들을 구하고 보살펴주고. 마왕군에 붙잡힌 포로들도 구해주고."


"그건, 용사파티의 일원인 척을 해야 했으니까-"


"무엇보다 당신의 부관."


부관. 


쟝은 그 단어가 들려오자, 더욱 머리를 세게 바닥에 박았다. 쿵, 쿵, 소리가 날 정도로 머리를 찍어댔지만, 제인은 개의치 않았다.


겨우 그 정도로 상처입거나 아파할 사람이 아니니깐.


"단 한 번도 사람을 죽인 적이 없는 아이. 순혈 흡혈귀의 본능을 이겨낸 아이. 로제타."


"아, 아아-"


쟝은 그저 제인의 다리를 붙잡은 채로 몸을 덜덜 떨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직감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이 뒤에 올 것은, 그가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미래라는 것을. 


찰칵-


지하실의 문이 열린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은, 핏방울을 닮은 새빨간 머리카락의 여인. 인간으로 친다면 스무살 초반. 갓 어른이 되어 어리숙한 티와, 성숙한 여인의 매력이 공존하는 아이이자 여인.


잔혹하기 그지없는 흡혈귀의 본능에서 벗어나, 선을 향해 나아가고자 했던 아이. 그가 지켜야만 했던, 그가 이겨내지 못했던 본능에서 벗어난. 죄악이 없는 아이.


그녀가 성녀의 부축을 받으며 지하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성녀는 제인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건넸지만, 로제타는 파리하게 질린 안색으로 쟝을 바라볼 뿐이었다.


"물건은 잘 가져왔어?"


"물론이죠. 이거 빼온다고 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성물과 순은으로 도배된 지하 통로를 건너기 위해 성녀의 부축을 받던 로제타는, 성녀가 몸에서 떨어져 작은 상자 여럿을 꺼낼 때까지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쟝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녀가 지금부터 저지를 일은, 그 어느때보다 불경한 일.


그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흡혈귀의 본능과 죄악에서 벗어난 그녀가 저지르는 최초의 악.


타인의 생사여탈권을 손에 쥔 채 주무르는, 그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를 유린하는 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건 로드님이니까요."


로제타는 그리 중얼거리며, 쟝에게 다가가 제인의 옆에 쭈그려 앉았다.


시커먼 머리카락과 닮은 검은색 눈동자가, 덜덜 떨며 그녀를 바라본다. 이윽고 시선이 만나지만, 쟝이 눈을 질끈 감았기에 이어진 시선은 끊어진다.


"왜, 왜..."


"저를 내버려두고 죽으려 하셨잖아요."


로제타는 그리 중얼거렸다.


"저는, 저는 늘 로드님만 있으면 된다고 했는데. 로드님은 저를 내버려두고 죽으려고 하셨잖아요. 죽여달라고 애원하셨잖아요."


로제타가 자신과 같은 죄악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랐기에, 그녀에게 죽으려 하지 않았다. 대신 제 죽을 자리를 찾아, 용사를 찾아왔다.


남겨진 그녀의 심정은 헤아리지도 않은 채.


"목숨 따위 얼마나 빼앗을 수 있어요. 그게 뭐가 어려운 일인데요."


로제타 - 쟝이 그토록 지키려고 했던, 죄악 없는 아이는 멍하니 쟝을 내려다보았다.


멋대로 바라고, 멋대로 버리고. 


살아남기 위해 다른 이를 죽여야만 했던 쟝은, 로제타만은 그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기에 그녀를 버렸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상상조차 못한 채로.


"자, 슬슬 시작할까요?"


성녀가 한참 뒤적거리던 여러 상자 중 하나에서 랜턴 하나를 꺼내들었다. 


안에는 불도, 불을 붙일 매개체도 없었지만, 랜턴에서는 은은한 빛이 흘러나와 지하실을 가득 채웠다.


특급 성유물, 불사의 랜턴. 


임종을 맞이한 이가 세상에 남을 가족에게 마지막 말을 남길 수 있도록 돕던 성인이 남긴 유물이 그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영역 내의 그 누구도 죽지 않는다. 


상처의 치유는 돕지 않기에 숨이 붙어있는 상태로 유지될 뿐이었지만, 그게 그녀들이 바라는 효과였다.


"자, 쟝."


쭈그려 앉아있던 제인은 일어나 성검을 뽑아들었다. 쉬익- 하고 성검이 공기를 가르며 제 흉흉한 검날을 드러낸다. 


"제발, 나를 죽여줘. 나는 살고 싶지 않-"


쟝은 바닥을 기며, 지하실의 벽돌을 손으로 긁어대며 빌어 보았지만.


우드득- 뿌걱-


검이 등가죽을, 뼈를 가으며 나아가 심장에 꽂히자 부르르 떨더니 바닥에 축 쓰러졌다.


울컥- 울컥-


성검이 꽂힌 심장은 제 안에 흐르는 것을 쏟아냈지만, 떨어뜨린 물건을 줍듯이 다시 피를 주워담았다.


"시작할까요?"


그 속내만큼이나 알아보기 힘든 실눈을 가진 성녀가 빙긋 웃으며 옷을 걷어올려 팔을 내밀었다. 제인 역시도 팔을 내밀었고, 로제타는 그 둘의 팔뚝을 손톱으로 가볍게 그었다. 


새하얀 살결을 타고 피가 줄기가 되어 흘러내리지만, 중력을 따라 바닥에 닿지 않고 공중에 떠 로제타의 손 안으로 흘러들어간다.


로제타는 그 줄기를 끌어당겨, 쟝의 심장으로 이었다. 드높은 진조의 피는 한낱 인간의 피를 거부했지만-


푸욱-


그의 심장을 붙잡은 로제타의 손이 쟝의 피를 집어삼키기 시작하자, 심장은 허겁지겁 그 인간의 피를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이것은 죄악. 


드높은 진조, 뱀파이어 로드, 하나의 핏방울에 가장 가까운 이를 한낱 인간으로 끌어내리는 행위.


그러나 로제타는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잘못한 것은 그니까.


죄악 따위, 저지르면 어떠한가. 집어삼키고, 유린하라- 그것이 흡혈귀의 본능인걸.


여태껏 그의 취향대로 순수한 척, 순결한 척을 해왔을 뿐인걸. 


쉴새없이 솟구치는 흡혈 본능을 억누르는 것도, 그의 소중한 존재가 되기 위한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소중하다면, 버리지 말았어야지."


로제타의 손이 심장을 움켜쥔 채 여러번 심장을 쥐었다 풀었다를 반복한다. 심장은 그녀의 손놀림에 따라 진조의 피를 울컥 울컥 쏟아낸다.


그가 용사에게 죽음으로써 더 이상 누구도 짊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그가 태워버리고자 했던 흡혈귀라는 종족의 죄악을 모조리 집어삼킨다. 


이윽고 존재감을 잃어버린 그의 심장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하게 뛰기 시작한다. 인간의 피를 받아들여, 인간으로 추락한다.


그제서야 로제타는 그의 몸에서 손을 뽑아낼 수 있었다. 


차가운 벽돌 바닥에 드러누워, 간신히 숨을 들이마쉬고 내실 뿐인. 


이 세상의 전지와 전능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땅에 추락한 고귀한 존재- 아니, 그녀들의 손으로 떨어뜨린 한낱 인간.


"아핫."


로제타는, 용사는, 성녀는, 그리 미약한 존재를 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죽는 것도, 사는 것도.


그녀들의 손에 달렸으니까.


여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