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무겁다.

그렇다.

내가 그렇게 느낀 건 기억할 수 있는 6살 때부터 였다.

 

“그러게, 내가 애 낳지 말자고 했지? 애땜에 나가는 돈이 얼만데!”

“당신이 싸돌아다니고 빚만 늘어나서 그런 거잖아! 이번엔 또 어떤 여자 만나고 들어왔어? 어?!”

 

행복이란 무엇일까.

내가 부모에게 배운 것은 각양각색의 이유로 서로 핏발을 세워대며 싸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는 사랑받지 못한 존재인 것.

 

나는 그렇게 방치된 채 커갔다.

 

후줄근한 옷.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수련회비.

친구들이 모여 PC방갈 때 부러움을 삼킬 수 밖에 없는 처량한 내 신세.

 

그 신세는 15살 때.

그러니깐 추억이라 부를 수 없는 추억이 각인된 후 8년이 지났을 때 급작스럽게 변했다.

 

“니 애비 해외로 도망갔단다.”

 

화장대에서 분을 바르며 이번엔 어떤 남자를 만나러 가는 건지 모를 엄마는 내게 툭, 충격적인 말을 꺼냈다.

 

“…해외로?”

“그래. 도박빚 갚으려다 사기치다 걸려서 토꼈다잖아. 나참 웃겨서.”

“…….”

 

엄마는 하나도 안 웃긴 무뚝뚝한 표정으로 화장을 마치고 내게 고개를 돌렸다.

 

“이번엔 만나는 남자는 근사해. 재혼하면 팔자필지도 몰라.”

“…….”

“하아. 엄마 만나는 남자 하나도 안 궁금하니? 너 정말 내 자식이야?”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짖누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집을 나간 엄마는,

1년 후 정말 팔자가 피었는지 나를 버리고 집을 나갔다.

 

내가 16살이 되던 해였다.

 

[미안해. 우리 자기가 애 있는 돌싱은 부담스럽다고 하잖아. 너도 이제 다 컸으니 어련히 사렴. 시간 나면 보러 갈게.]

 

“…….”

 

학교에서 돌아온 날 반긴 건 무정한 부모의 쪽지, 자기 짐을 급하게 빼느라 도둑이 든 것보다 엉망진창이 된 집안 꼴, 황량히 변해버린 공기였다.

 

“하….”

 

나는 두 부모가 살아있지만 고아가 됐다.

16년간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채 방치가 된 버림받은 고아가 말이다.

 

그런데 웃기게도 화가 나거나 어이없지 않았다.

그들에게 사랑다운 사랑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이 상황을 스스로 놀랍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날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피부에 차갑게 와닿는 현실의 문제였다.

 

“내일이 월세 내는 날인데… 돈은 어떡하지…?”

 

집주인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확인해봤지만 역시 내주고 갈 리 만무했다.

 

‘다 컸으니 어련히 사라고……? 어떻게?’

 

눈치 빠른 집주인은 다음 날 나를 바로 내쫓았다.

한순간에 살 곳을 잃은 고아가 된 난 할 수 없이 가까운 일산에 살고 있는 삼촌의 아파트 문을 두드렸다.

양손의 짐을 한가득 든 채.

띵동.

 

-누구세요?

 

안에서 작은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자 작은어머니는 내 행색을 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일단 들어오렴.”

 

삼촌의 집은 궁핍한 월세살이를 하던 내 집과 차원이 다르게 화사했고 공기도 달랐다.

내가 엉거주춤 거실에 앉자 쇼파에서 5,6살쯤 된 딸과 놀아주던 삼촌은 날 보곤 한숨을 내뱉었다.

 

“…그 짐은 뭐냐?”

 

때 묻지 않은 흰색벽지처럼 행복함밖에 없는 공간에 나란 불행 가득한 골칫덩이가 굴러들어온 걸 절절히 느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속사정을 모두 털어놓자 삼촌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 진짜 그 부모란 작자들은 애를 싸질러놓곤 책임을 안지니…….”

 

삼촌은 혀를 몇 번이나 차더니 내 어깨를 두드렸다.

 

“승현아, 당분간 우리 집에 지내거라. 방법을 찾아보자.”

 

그 따뜻한 한마디.

절망밖에 없는 내 마음은 그 한 마디에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다.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흑… 흑… 감사합니다…. 삼촌……. 흑….”

“…그래.”

“우리 집에 같이 사는데 오빤 왜 울어? 응? 이제부터 나한테도 오빠가 생겼네! 히히.”

 

삼촌의 딸이 내 팔을 콕콕 찌르며 좋아했다.

여기까지 벼랑에서 굴러떨어진 나는 한 줄기 희망을 부여잡았다고 생각했다.

삼촌은 창고로 쓰는 퀴퀴한 방을 보여줬다.

 

“오늘부터 여기서 자거라. 뭐 청소는 알아서 하고… 일단 씻어라. 냄새가 나서 원….”

 

집에서 갑자기 쫓겨났는데 씻을 시간이 있을리 만무했다.

식은땀을 줄줄 흘려가며 내 짐 챙기기도 버거웠으니.

나는 삼촌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단 말을 전했다.

 

학교는 어떻게 하나 걱정했지만 잘 곳을 구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학교를 옮기지 않고 다닐 수 있게 됐다.

비록 통학까지 4,50분이 걸리지만 말이다.

일찍 일어나면 해결되는 일이다.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 날 저녁, 원래라면 3인 가족의 식사상에 내 밥이 차려졌다.

나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진심으로 감사하단 말을 전했다.

 

다음 날 아침, 누구보다 일찍 나가야했기에 아침을 먹을 수 없었다.

학교가 끝나면 다행히 저녁밥을 먹을 수 있었다.

삼촌과 작은 어머니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감사하단 말을 꼬박꼬박했다.

이들이 없었으면 나는 학교도 못 다니고 잠을 잘 곳이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친척은 삼촌뿐이었다.

 

‘내가 잘하자. 힘 쓰는 일, 청소 모두 나서서 하고, 삼촌 딸이랑도 계속 놀아주고, 내 공부도 열심히 하고 호의를 절대 잊지 말자.’

 

그렇게 3개월이 지났다.

 

달빛이 창문을 뚫고 안을 드리우는 새벽.

화장실을 가려고 내 방을 나왔을 때 나는 삼촌의 방에서 불빛이 새어나오는 걸 볼 수 있었다.

속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정말 빨리 내쫓으라니깐? 왜 남의 자식을 우리집에 들이냐 이거야.”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아. 하지만 혜연이가 저렇게 좋아하잖아.”

 

이혜연은 삼촌의 딸이다.

나는 엿들어선 안 된다는 걸 알았지만 도저히 못 들은 채 방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여보. 조금만 참아. 적어도 의무 교육은 시켜주자. 17살이 되면 어련히 살라고 하고.”

“…알았어. 하지만 내보낼 땐 돈 쥐어주지 마. ”

“말 안 해도 그럴 거야. 나도 내 형이 내다버린 자식한테 돈 한 푼도 아까우니깐.”

“알면 됐어. 불 꺼. 자게.”

 

나는 엿들은 걸 들킬까봐 황급히 소리내지 않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삼촌의 방이 굳게 닫혀지고 불 꺼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황망한 마음이 들었다.

 

“어련히… 또 어련히 살아남아야 하는구나.”

 

화장실 청소며 거실이며 베란다며 마다하지 않고 나서서 열심히 했고, 눈칫밥이 보여 깨작깨작 먹으며 먹고 싶어도 더 먹지 않았다.

부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이혜연과 열심히 놀아줬다.

집을 허락해준 그 은혜를 갚으려고 나 나름대로 열심히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나는 남의 집 자식이다.

나는 눈에 가시 박힌 존재다.

나는 곧 내쫓겨날 거다.

 

3개월 뒤 중학교를 졸업하면.

 

“어련히 살아남자. 그래. 그러자.”

 

그날부터 나는 야간의 한 식당에서 일했다.

미성년자는 일을 할 수 없다. 법으로 제정된 규칙이다.

그러나 일손이 모자르고 돈 한 푼 아끼고 싶은 가게 사장은 어디에나 있는 모양이다.

‘금화반점’이란 중국집 가게에서 매일 9시부터 12시까지 설거지와 청소를 했다.

시급은 7천 2백원.

최저 시급도 되지 않았지만 매일 2만 1600원씩. 

한 달이면 64만 8천원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저금했다.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그리고 한시적으로나마 집에 묵게 해준 은혜를 갚기 위해 여전히 광이 나도록 삼촌의 집을 청소하고 닦았다.

화장실 청소는 이제 노하우가 쌓여 군데군데 때 빼는 방법을 익혔다.

날이 추워지자 베란다 청소는 손이 시렸지만 티내지 않고 열심히 닦았다.

 

“오빠 오늘도 청소해? 나도 도와줄게!”

 

이혜연이 그럴 때마다 나는 당황하며 거절했다.

작은 어머니가 옆에서 인상을 쓰는 것이 눈에 훤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예정대로 삼촌은 졸업을 1개월 앞두고 밤에 내 방을 두드렸다.

 

“승현아 자냐?”

“아뇨. 아직 깨있어요.”

“들어가마.”

 

삼촌은 방에 들어서자 얼굴에 손을 내저었다.

창고로 쓰는 방은 아무리 닦고 닦아도 먼지가 나기 때문이다.

 

“켁. 큼큼…. 다름이 아니라 네게 긴히 할 말이 있어서다.”

“네.”

 

그 날밤 들었던 그대로 삼촌은 중학교를 졸업하면 집에서 나가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그렇게 반대했는데 애엄마가 성화를 부려서 어쩔 수 없다. 미안하다.”

“아뇨. 6개월이라도 지내게 해줘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삼촌.”

“쯧, 이렇게 참한 아이를 형은 왜 내팽겨쳤는지 이해가 안간다. 마음 같아선 내 자식 삼고 싶은데….”

 

거짓말이다.

내가 이 집을 나가면 살 곳이 없다는 걸 모를 리가 없을 테니깐.

 

“갈 곳은 있고?”

“친구 집에서 잠깐 지내려고요.”

 

이건 나의 거짓말이다.

나는 친구가 없다.

나는 진실한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인생에 어두움이 녹여난 내 어두운 분위기에 선뜻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학교 생활을 버티기도 벅찼다.

 

“친구 집도 오래 다니진 못할 거다. 한국 사람 인심 좋다는 말도 옛말이고…. 부모가 호적에 있으니 고아원도 못 갈테니 구청에라도 가보거라. 혹시 모르니깐.”

“네. 알겠습니다.”

 

그 날 처음 만난 그때처럼 삼촌은 내 어깨를 두드리고 방을 나갔다.

나는 불청객이다.

부모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마지막 동아줄이었던 삼촌의 집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나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단 한 순간도 만나지 못했다.

그저 어련히 살란다. 어련히….

 

“…….”

 

1개월이 지났다.

중학교 졸업식엔 많은 부모님들이 말끔히 차려입고 졸업을 축하했다.

나는 졸업장을 가방에 숨겨놓고 집으로 돌아와 내 방에 있는 짐을 뺏다.

짐은 별 것 없었다. 이제 중학교 교복을 버려도 되니 오히려 줄은 셈이다.

 

“가니? 조심히 가렴. 다가오는 사람들 조심하고.”

 

작은 어머니는 짐을 들고 나가려는 날 힐끗 보곤 마음에도 없는 작별인사를 건넸다.

 

“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환영해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6개월간 날 돌봐줬던 집이다.

진심을 담아 다시 감사함을 전했다.

그러나 뒷맛은 씁쓸했다. 다시 만날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큰 가방을 어깨에 매고 내가 향한 곳은 6개월 전 내가 살던 월세집이다.

낡은 빌라의 1층 101호의 초인종을 누르자 이가 빠진 집주인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녀는 나를 보고 눈을 흘겼다.

 

“여긴 뭔 일이야?! 시방. 돈 못 받은 것도 서러운데 씨벌.”

“…죄송합니다. 돈 갚으려고 왔어요.”

 

주머니를 뒤적여 현금 50만원을 덜덜 떨리는 손으로 꺼내자 눈을 빛낸 집주인인 훽하고 낚아챘다.

집주인은 손에 혀를 묻히고 황급히 돈을 셌다.

 

“하나,둘,셋,넷……. 삼십만…사십만…오십만……. 딱 맞네. 이거 훔친 거 아녀?”

“아니에요. 이만 가볼게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집주인 어르신.”

 

고개를 숙이고 뒤돌아 빌라를 나가려 하자 갑자기 뒤에서 벼락같은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야!!!”

 

화들짝 놀라 뒤를 돌자 집주인은 슬리퍼를 신고 내 앞을 막았다.

 

“니 어디 사는디? 살 곳은 있고?”

“네, 이제 구해봐야죠…. 고시원에 갈까 생각하고 있어요.”

“거기 가지 말고 여기 살어. 니 방 비었다.”

“……네?”

 

집주인은 답답한 듯 말했다.

 

“니 나가고 6개월 동안 아무도 세 안들었다고. 그냥 거기 가지 말고 여기 살어.”

“싫은데요?”

“왜?”

“왜긴요. 비싸니깐요. 한 달에 60만원밖에 못 버는데 여기서 살면 10만 원 갖고 한 달을 버텨야 돼요.”

 

집주인이 혀를 찼다.

 

“하, 씨. 니 버리고 도망간 부모는 소식은 있고?”

“없어요.”

“미친 새끼 둘. 애를 낳았으면 데리고 도망가야지 다 큰 어른 새끼보다 애새끼가 돈을 갚으니 에잉. 쯧쯧쯧.”

 

집주인이 호탕하게 외쳤다.

 

“내 그때 내쫓아서 미안했다. 돈만 관련되면 나도 정신이 훽가닥해가지고…. 절반에 세 줄게. 어때?”

 

절반?

50만 원의 절반이면 25만 원이다.

창문이 없는 저렴한 고시원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창문도 있고 방도 크다.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뭐?! 왜!”

 

내 거절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집주인의 목소리가 복도에 우렁차게 울렸다.

…아무리 자기 빌라라도 윗집에 세들어 사는 사람들은 무슨 죄일까…….

나는 할 수 없이 갑자기 호의를 베푸려는 건지, 세들어오는 사람이 없어 날 붙잡으려는 건지 모를 할머니에게 설명했다.

 

“고시원에 가면 밥이랑 김치가 공짜니깐요. 공과금도 낼 필요 없고요. 방이 좁고 불편하지만 돈 없는 저한테 이보다 좋은 곳도 없어요.”

“하 씨…….”

 

집주인은 답답한지 혀를 길게 끌어찼다.

나는 다 됐다고 생각해서 다시 고개를 숙였다. 감사의 말도 잊지 않았다.

 

“이만 가볼게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머니.”

“반의 반에 줄게.”

“네?”

 

반의 반?

25만 원의 절반이면 대략 12만원에 세를 주겠다는 말인가?

 

“김치랑 밥도 주마. 아니 반찬도 남은 거 줄게. 어때? 여기서 살고 싶지? 그렇지?”

“…왜 그렇게까지 하시려는 거예요?”

 

순수한 궁금증이다.

나에게 주는 어른의 호의가 나는 낯설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집주인이 고개를 홱하고 돌았다.

 

“이것도 싫음 말고. 뭐 가던가 말던가.”

 

갑자기 주저없이 집으로 돌아가려는 할머니의 손을 나도 모르게 황급히 잡았다.

집주인은 뒤돌아보며 입가를 실룩거렸다.

 

“새끼. 너 마음에 들었다. 계약서 쓰자. 일로 들어와.”

 

집주인은 손은 세월의 흐름에 주름졌지만 그 따스함은 내게 전해졌다.

 

태어나서 자란지 16년이 끝나가는 12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본 어른의 순수한 호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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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 주인공이 쌍둥이 키웁니다.

연중런 했던거 ㅈㅅ합니다.. 글 쓰는게 뼈를 깍듯이 힘들고 아프네요... ㅈㅅ... 

퇴고 못해서 어색한 부분들 ㅈㅅ합니다. 죄송합니다... 주말에도 바빠서 시간이 없네요...

죄송합니다...